수요예배(‘20. 6. 3)
제목: ''매이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
말씀: (디모디후서 2: 9~10)
설교자: 백승준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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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모두는 코로나로 인한 어둠이 지나가고 있다, 어둠의 때, 모든 것을 종식시켜 주시고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시리라 믿는다. 많은 문제를 직면하며 살고 있을지 모르겠다. 선교부를 일하면서 그렇고 해외에 살고 있는 안전문제가 마음에 걸린다. 선교지가 의료체계나 힘든 열약한 한 환경의 건강이 염려가 된다. 코로나로 인해서 단기선교도 우리교회에도 취소되었다. 우리 성도들의 선교로 소통이 되었었는데 그런 일들로 인해서 취소가 되어서 좀 아쉽고 한동안 갈 수도 없게 되어 선교의 자원을 어떻게 하나님은 인도하실지 그것에 대한 숙제와 고민도 떠안고 있다. 무엇보다도 더 마음을 누르는 것은 한국교회를 향한 연일 메스컴에 대한 잘못된 뉴스들이 교회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를 갖게 되는 그런 현실을 바라보면서 코로나 이후의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걱정도 있다. 그러나 오늘 디모데후서를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강력하게 말씀해 주셨고 깨닫게 해주셨다.



본문에
-9 “이 복음으로 인하여 내가 악을 행하는 자처럼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당하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느니라”.
이 말씀은 바울이 유언과도 같이 남긴 말씀이다. 이 말씀을 남기고 4장에 부음바 되어서 그의 떠나는 그 시간 직감한다. 사도 바울은 다시 한 번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사도 바울은 이 복음으로 인하여 마치 악을 행한 범죄자처럼 감옥에 갇히기까지 고난을 당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그 어떤 사슬에도 묶이지 않았고, 매이지 않았고, 갇히지 않았다. 여전히 복음의 말씀은 널리널리 전파되고 있었던 것이다. 괴로운 상황에서 보게 된다. 고린도후서 1123-27절까지 보면 그것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바울은 고생의 순간들을 마음속에 새겨놓았던 것 같다.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부름을 받고 그의 복음이 평생이었지만 연일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신음했다. 그러나 분명히 한 가지를 깨달았다. 그러나 몸은 엉망이었지만 한 번도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지 않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절대 매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도 그 진리를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귀신들린 여인을 치유해 주는 모습이 있다. 그 치유에 기적이 일어나자마다 바울과 신라가 감옥에 갇힌다. 옷이 찢겨지고 매를 맞지만 그들은 그래서 찬양을 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때 지진을 일으키셨고, 하나님께 백성들이 돌아오는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이 메시지가 빌립보 감옥에서 선포되었고, 빌립보 교회가 개척되었다. 또한 바울은 죄수의 신분으로 가택 연금되어 있는 모습을 본다. 그러나 그 기간에도 하나님의 말씀을 담대히 전하였고,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였다. 그 결과 가이사의 집에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오게 되었고 로마 그 당시 제국의 수도였던 로마에 하나님은 교회가 든든하게 세워지는 것이었다.


우리에게도 다가오는 현실은 어둡고 좌절되고 낙망하게 만들고, 우리를 어둠의 감옥에 갇혀 있을 수 있다.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흥왕할 것이며 승리하고 결국에는 모든 민족과 백성 언어 모든 나라들이 예수 그리스도 앞에 무릎 꿇고 예수를 주로 믿고 시인하는 바로 그날이 우리 가운데 찾아 올 것이다. 우리는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 자체가 능력이 있고 살아있는 것이기에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에 매이게 할 수 없다. 토비새에서 스펄전 목사님을 인용하신 것을 기억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자와 같다~~” 이 말씀을 잘 몰랐다가 이 코로나 사태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고 얼마나 놀라운지 묵상해 본다. 우리 어떻게 해야 전도를 잘 할 수 있을까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이 팬더믹 시기를 겪으면서 분명히 깨닫는 것이 있다. 전도의 중요한 키가 아니라 우리 어떤 것을 갖고 있느냐는 것이다. 우리에게 있는 복음은 어떤 것보다 가장 능력 있는 생명의 말씀임을 믿는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너무나도 놀랍고 너무나도 큰 변화를 일으키는 능력의 기적의 말씀이기 때문이다. 사도행전 1224, 1920절에 보면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 더하더라,~ 이와 같이 주의 말씀은 힘이 있어 흥하여 세력을 얻느니라~ 등 사도행전 전체 역사를 보면 사단이 교회를 방해하고 하나님의 복음 사역자들을 방해하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말씀은 계속 흥왕하여 교회가 성장하고 힘을 얻어서 교회의 악한 것들을 이겨서 승리하는 기록이 사도행전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기에 어떤 날샌 검보다 날카로워서 이 세상 모든 악한 것들을 파괴할 수 있는 검이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놀라운 것이며 우리 손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 세상을 변화를 시킬지 다시 한 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보고자 한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흥왕하여서 이 세상을 변화 시킬 수밖에 없는가? -3가지가 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당연하게 들었던 말씀이다. 한 번 이 시간을 통해서 다시 생각해 보자. 진리란 사전적 정의는 언제 어디서나 인정할 수 있는 보편타당한 법칙이나 사실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어떤 궁극적인 질문에 대한 해답이 그것이 바로 진리라 여긴다. 진리란 말을 사용하기 위해서는 거창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 조건이 따라온다. 궁극적인 질문이란 무엇인가! 평소 우리가 먹고 살기 바쁘다보면 그런 질문 앞에 우리 자신을 잘 내놓지 않지만 우리 인생에서 이 질문들이 자주 떠올리는 순간들이 자주 온다. 가까운 친구나 가족이 세상을 떠난다든지 아니면 현실과 같이 인간이 큰 재난이나 재앙들이 찾아오는 그 시간일 때, 사람들은 근원적인 질문들을 마음속에 떠올리기도 한다. 산다는 것이 무엇이고, 죽은 이후에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되며, 이 세상은 어떻게 존재하게 되었고, 또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인가? 과연 진짜 신은 존재하는 것일까? 이러한 구체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들은 종교와 철학을 의지 했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이런 것들보다는 과학에 의지하려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게 된다. 과학은 대단한 힘을 갖게 되지만 명쾌한 해답을 주기에 그렇다. 본인(목사님)은 화학을 전공했다. 어린 시절 독극물을 실험하면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염산과 또 다른 양잿물인 수산화나트륨 독극물과 독극물을 섞으면 강력한 독극물이 될 것 같은데 그 둘은 소금물이 된다. 그러니까 NaCLNaOH이 섞으면 더 강력한 독극물이 아닌 소금물이 되는 것이다. 그 단순한 진리에 탄복했다. 그래서 그런 명쾌한 단순한 진리의 해답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은 과학을 통해서 질문들을 해결해 보려고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생명의 기원들에 대한 과학의 논리를 살피면 그 초라한 논리를 보고 우리는 과연 우리가 신뢰하며 믿는 사람이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가 많은 것들 중에 설명할 수 없는 진화론이 있다. 진화론이 인류를 어떤 기초를 설명할 때 더욱 그렇다. 태초에 어떤 물질이 있었다고 설명하는데 생명의 기원은 그 물질이 물과 암모니아 매탄 이산화탄소가 있었는데 어느 날 번개가 쳤을 때 이 물질들이 화학적 반응을 일으켜서 단백질로 변화되어 단백질이 우연히 좀 더 고차원적인 방식으로 바꾸기 시작하여 그 우연의 우연을 거듭하여 생명체로 발전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는 마치 진리인 것처럼 배웠지만 이것이 일어날 수 있는 확률은 정말 0이다. 어떤 학자는 타이핑을 칠 수 있는 원숭이가 삼국지 같은 소설을 써 낼 수 있을까? 이것은 자판의 우연의 일치로 써낼 그런 확률보다 더한 확률을 우리는 믿고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을 의지 한다면 이 세상을 의지할 것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하다. 창세기 1:1절부터 태초에 하나님이 창조하시며, 이 세상의 모든 만물이 있는 이유는 하나님이 계시고, 그 하나님이 자기의 선하신 뜻을 따라 이 세상을 만드셨기 때문이다. 만물의 영장으로서 사람이 특별한 지위를 누리는 이유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아 이 땅을 하나님과 함께 다스릴 그 영광을 같이 누릴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이기에 그렇다. 문제는 무엇인가 이 땅에서 그렇게 지음 받은 인간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배신하여 스스로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죄로 말미암아 이 세상 모든 것이 망가지게 되었다. 이 세상의 유일한 소망은 바로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허락하신 한 가지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의지함으로 말미암아 인간의 모든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라는 그 단순한 진리가 성경 안에 기록되어 있다. 그렇게 되어있어 우리게 하나님께서 우리 가운데 다시 한 번 구원의 길을 열어주시고 하나님과 영원토록 할 수 있는 바로 그 삶, 하나님나라의 영원한 삶을 허락하신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진리가 왜 중요한가? 바로 역병이 돌던 시기 팬더믹이 있던 시기 수많은 사람들이 갖고 있었던 질문에 해답에 되어주기 때문이다. 로마시대 초기 기독교 역사를 보면은 그 시대에도 그 역병이 전 세계적이지는 아니라도 로마시대를 장악했던 두 번의 역병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 역병을 거치면서 초기 기독교가 엄청난 성장부흥이 있었다는 분석이 있다. 신학자 로드니 스타크란 사람이 쓴 책인데, 1차역병은 165년 마르크 아우렐리우스가 통치시에 천연두가 돌았다고 한다. 그 천연두로 인해 15년간 로마제국에 인구가 3분의 일이 줄어드는 죽게 되는 일이 벌어졌다. 마르크스 아우렐리우스 황제 본인도 비엔나에서 이 역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그리고 체 100년이 지나지 않아서 251년 파괴력을 가직 역병이 다시 로마에 휩쓸게 되는데 이번에는 홍역으로 여겨진다. 그 홍역으로 인해서 수백만 사람들이 죽었다. 그러나 역병의 시기, 우리와 같이 이 팬더믹의 시기에 하나님의 복음은 더욱더 흥하여서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왔다고 이 책은 기록하고 있다. 로드니 스타크는 죽음에 한 복판에서 죽어가고 언제 죽을지 모른다고 하면서 근본적인 질문으로 사람들에게 있게 되었다. 러나 유일하게 기독교 인 들만이 이 모든 질문에 대한 명쾌한 답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게 된다. 하나님은 이 땅을 창조하셨고, 하나님을 거역한 인간들로 인해서 수많은 죄가 들어오며 수많은 악과 재앙이 찾아오게 되었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돌아갈 때에 그 모든 재앙에서 벗어나 우리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될 것이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원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그 십자가의 복음을 힘 있게 전파했던 것이다.
백년이 지나지 않아서 처음 기독교인들이 첫 역병이 일어났을 때 기독교인들이 수는 사만 명에 지나지 않았지만 백년이 지난 이후에 백육십 만 명으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했다고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라는 그 확고한 사실 앞에 다시 한 번 우리 마음을 다부짐을 해야 한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선포할 책임이 있다. 베드로전서 3:15절을 보면 우리와 같은 이러한 시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왜 이런 일이 벌어지며 이 세상을 치유할 방법이 무엇인지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이 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진리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책임이 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이 말씀을 선포할 때 사람들은 진리의 말씀으로 돌아와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날 놀라운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절대로 매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2.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 이유가 있다면 구원에 이르는 진리를 얻기 위해서이다. 이 성경은 바로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영생을 얻게 되는 책이라고 성경 스스로가 증거하고 있다. 요한복음 5:39절을 보면 성경전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해준다. 신약에만 아니라 구약에 어디라도 하나님의 구원에 대한 예수 그리스도를 찾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인도 해준다. 창세기 316, 2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준비한 그 어린 양이 우리를 위해 구원할 소망의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어린양 되신 출애굽기를 보면 어린양이 되셔서 우리의 죄로 말미암아 받을 형벌을 이제는 벗어나게 만드는 놀라운 구원의 길을 보여주고 계신다. 구약 5경에 놀라운 제사에 대해서 보여주신다. 그 제사를 통해서 참된 제물이시며 우리의 유일한 중보자요, 우리의 유일한 제사상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게 하신다. 여호수아를 통해서 군대 장관으로 오셔서 친히 정복의 싸움에 최선봉에서 싸우시는 하나님의 군대장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끔 인도하시며, 다윗의 언약과 다윗의 전체를 통해서 참된 메시아 되심을 우리 가운데 소개하고 있다. 구약에서 신약 전체에서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생명을 전파하고 있다. 우리는 믿는다. 예수 그리스도로만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이 예수님으로만 영생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영생을 먹고 이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만이 이 세상 가운데 담대히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죄악과 죽음과 싸워 이기는 유일한 사람으로 세워질 수 있음을 믿는다. 고전 1555-58절을 보면 바로 이와 같이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일했던 영웅스런 선배들의 모습이 또한 로마시대 바로 역병의 시기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죽음 앞에 벌벌 떨 그 때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나라의 영원한 사명과 소명을 꿈꾸며 죽음 앞에서 사람들은 담대하게 섬겼던 믿음의 선조들이 있었기에 초대교회는 승리했던 것을 본다. 우리 또한 하님께서 주신 생명이 있기에 우리에게 시시각각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을 떨쳐내는 백성이라 믿는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형벌은 없다. 왜냐하면 더 이상 율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만이 우리를 지배하는 놀라운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두려움 앞에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담대한 모습들, 하나님의 자녀로서 이 떳떳한 모습으로서 모든 두려움을 떨쳐 버리는 우리가 되길 소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흥왕하고 절대로 매일 수 없는 이유가 무엇인가?
3. 하나님의 말씀은 능력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요 우리 가운데 영원한 생명을 주는 말씀만이 아니라 능력 그 자체이다. 어떠한 능력인가? 디모데후서 316-17절에 기록되어 있다.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바로 성경 말씀은 하나님의 약속이며 하나님의 능력이지만 또 이 말씀을 묵상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 자신은 연약하지만 말씀을 가까이 하고 말씀이 되어 주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를 묵상할 때면 우리는 조금씩 변화되는 것을 믿는다. 하나님 말씀대로 살아갈 수 없었지만 매일 묵상하고 그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차근차근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완전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이다. 바로 그것이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초대교회 로마시대를 변화시켰다. 이 역병의 시기에 안타까운 기록이 있다. 치사율(致死率)25퍼센트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집단에서의 연구를 보면 10퍼센트였다고 한다. 그 당시 연구결과이다. 하나님의 특별한 기적이 교회 안에 계셨기 때문이다. 그것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이방인들은 서로 자기만 살기 위해서 힘쓰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달랐다. 하나님 말씀을 몸소 행했기에 실천하고 형제를 사랑하고 고통을 함께 나누었기 때문이다. 함께 병에 걸려서 죽게도 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는 것에는 걸림돌이 되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사랑 때문에 세상과 다른 놀라운 결과의 모습은 이방인들에게 큰 도전이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역병이 끝나는 순간 수많은 사람들이 바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되는 이유가 되었다. 디오니소스는 이렇게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그 능력을 말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이고 생명이고 능력이다.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방해할 수 없고 매일 수 없다. 이 세상은 우리를 매이게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분명하게 깨달아서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은 승리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공동체는 승리 하 수 밖에 없다. 믿음의 선배들이 보여 주었듯이 어려움 가운데에서도 그 말씀은 승리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가 기억해야 한다. 바로 말씀에 매어야 한다. 우리가 이 세상 가운데 채울 것은 바로 생명의 말씀 능력의 말씀에 나아가서 이 말씀으로 새로운 힘을 공급받게 된다면 이 세상 어떤 것도 우리를 꺾을 수 없다는 것을 믿는다. 세상 미디어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 말씀에 집중하라. 그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도구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으로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하나님 나라에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사람이길 주 이름으로 부탁한다.




요약
바울의 위로는 그래도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핍박하는 힘이 아무리 강하다 할지라도 인간의 마음과 양심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는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인간의 힘에 의해서도 결코 매이지 않는 것이다. 이것이 디모데로 하여금 예수님을 증거 함으로 매이게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게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바울은 왜 즐거이 고난을 당하였는가? 우리는 우리 자신의 영혼이 구원 받은 후 다른 사람들의 영혼의 구원을 위해서 기꺼이 일하고 고난 받을 수 있어야 한다.
-그 말씀이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는 도구로 만들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귀한 일꾼으로서 예수님의 참된 제자로서 아름답게 쓰임 받는 사람이길 바라며, 교회사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능력이 있고, 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힘인지, 이 세상 어떤 것도 하나님 말씀이 매일 수 없고, 하나님 말씀이 승리할 수밖에 없음을 깨달아야 한다. 우리가 이 말씀을 가까이 하여 우리의 삶 또한 승리하는 삶이 되고, 말씀이 다시 흥왕하여 한국교회가 힘을 얻고, 전 세계를 향해 선교의 열정이 타오르는 그 놀라운 부흥을 허락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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