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일예배

☆ ♣주일예배(주후 2025년 2월 2일)"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by ☆ 향기야(hyacool) ☆ 2025. 2. 2.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5년 2월 2일)
제목: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Who Will Go for Us?"-새로운 길-이사야 시리즈 ⓷
말씀: 이사야 6:1-13
대표기도: 신동호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


* 이사야 6:1-13,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하였더니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여호와께서 사람들을 멀리 옮기셔서 이 땅 가운데에 황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

오늘 예배를 통하여 여러분 각자 있는 삶의 모든 무거운 점들이 벗겨지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하여 능력을 체험하고 특별히 하나님 오늘 필요하시면 치유도 경험되기를 원합니다. 그 뒤에 보면 오늘 이사야 6장의 말씀은 너무나 고귀한 말씀이고, 여기에 사상과 또 이사야의 수려한 문장이 있지만 그걸 뛰어넘는 영광스러운 계시(啓示)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계시를 통하여 이사회를 부지깽이로 인두로 지져주실 때 이 사회가 치유(治癒)받았습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으로 여러분들 마음 하나하나를 상처(傷處)나고 트라우마 된 것을 치유해 주시길 바랍니다. 본문의 제목은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오늘 세 번째⓷, 이사야서 강연인데 이 말씀이 오늘 이 시대에 지금 현재 우리에게 꼭 필요한 말씀으로 선포되기를 원합니다.

이사야의 6장에 오늘 이 말씀이 나오기 전에 바로 5장에 뭐가 나오느냐 하면, 제가 이제 66장을 다 강요를 할 수는 없어요. 왜냐하면, 66장 전체가 다 이제 길기 때문에 1년 내로 마쳐야 되니까, 제가 이제 어떤 분들은 언급만 하고 넘어가는데 5장에 보면, 5장 앞으로 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했는데 너희가 들포도를 맺었도다. 4절 뒤에 보니까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그렇게 기다렸거늘 너희들은 들포도를 맺으면 어찜인고?, 앞에 2절에는 극상품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이사야 5:4,
4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음은 어찌 됨인고.

*이사야 5:2,
2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도다 그 중에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술틀을 팠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를 맺었도다
-저는 이 본문의 말씀을 잊을 수가 없는 게 저는 4형제인데요. 제가 맏아들이에요. 제가 맏아들인데요. 할릴루아입니까? 제가 이 맏아들인데 제가 이제 뭐 동생들하고 약간 티격태격한다든지, 아니면 저희 부모님 보시기에 내가 조금 부족하다 그럴 때 우리 아버지는 오라고 캄 그러면서 성경구절 몇 구절을 가지고 이제 저를 이제 교훈하시는 거예요. ‘피차 물고 물으면 서로 망할까 조심하라’ 갈라디아서 5장 말씀하고, 그 다음에 오늘 이 말씀이 두 번째로, 제게 주시는 말씀이었어요. ‘너는 어찌하여 하나님은 너에게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하셨는데 너는 어이하여 들포도를 맺는가?’ 너무나 신비해가지고 잘 못 알아들었어요.

그렇지만 오늘 이 말씀을 제가 준비를 하면서 그때 생각이 나며, 내 인생도 그러고 또 우리 민족도 그러고,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이 극상품 포도를 맺기를 원하시는데, 들포도를 맺는 상황이었어요. 거기에 대해서 오늘 이제 1절에, 웃시야가 죽던 해에 그렇게 했습니다.

*이사야 6:1,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근데 이 1절에 웃시야가 죽던 해에 바로 이전의 5장 마지막 30절에 뭐라고 되어 있는가 하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같이 보죠.

*이사야 5:30,
30 그 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 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흑암과 고난이 있고 빛은 구름에 가려서 어두우리라.
-그러니까 상황 자체가 울세야가 죽던 상황이고, 그 다음에 흑암과 빛이 흑암과 고난과 그래서 어두움 가운데 있었다. 그러니 마치 극상품 포도를 맺어야만 하는데, 들 포도를 맺는 그런 상황이었어요. 조금 더 설명을 드리면, 웃시아가 죽던 해라는 것은, 웃시아는 아주 12살 때 왕에 등극해 가지고 그 다음에 52년 동안 웃시아가 이렇게 이스라엘을 통치를 했어요. 그리고 통치하는 가운데 이사야 6장의 상황이, 역대하 26장과 그대로 연결되어 있는데, 역대하 26장 15절을 보니까,

*역대하 26장 15절,
15 또 예루살렘에서 재주 있는 사람들에게 무기를 고안하게 하여 망대와 성곽 위에 두어 화살과 큰 돌을 쏘고 던지게 하였으니 그의 이름이 멀리 퍼짐은 기이한 도우심을 얻어 강성하여짐이었더라.
-하나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느냐면, 웃시아 50년 통치 기간 가운데 굉장했습니다. 우리식으로 말하면 아주 경제 군사 강국이 되었고, 디지털 강국이 되었고, 방산 초일류 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리 되었는데 너무 잘 되니까, 나중에 그 16절에 보니까, 무슨 말이 나오느냐 하면,


*역대하 26장 16절,
16 그가 강성하여지매 그의 마음이 교만하여 악을 행하여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되 곧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가서 향단에 분향하려 한지라.
-뭐 무슨 악을 했냐 하면 웃시아가 잘했어요. 잘하다 막판에 야 제사장에 드리는 그 제사를 나는 좀 할 수 없나? 그렇게 해가지고 성전에 들어가서 제사를 드리다가 하나님이 치셔서 이마에 나병이 나가지고 쫓겨나 가지고 유폐되다가 그래 죽었어요. 그러니 그다음에 요담왕이 이제 맞아요. 요담왕이 나라를 받았는데, 이제 이런 상황들이 그렇게 만만한 상황이 아닌 거예요. 마치 오늘 우리 국제 정세나 대한민국의 정세하고 좀 비슷한 그런 성향이 많이 있어요. 그런 상황에서 오늘 본문에서 한 서너 가지 동사가 나오는데,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이 말씀이 우리에게 어떤 식으로 접목(接木)될 것인가를 생각하며 이 말씀을 통한 치유를 여러분들이 경험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첫 번째 동사가 뭐냐면 내가 본즉 일절로 보니까

I. 본즉.

-1절 웃시아가 죽던 해에 뭐라고 되어 있습니까? 내가 본즉, 뭘 보았는가,
*이사야 6:1,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절 3절 4절에,
*이사야 6:2-4,
2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말미암아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에 연기가 충만한지라
-할렐루야 그렇게 하니까 이런 찬양하니까 사전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이와 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만 이런 찬성을 할 때에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며 성전의 연기가 충만하여졌다. 구약에 보면 성막이나 성전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빽빽하게 임할 때, 소위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과 하나님의 임재 연기가 조그만해진다. 이 말이에요.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에 빽빽하게 입었어요. 빽빽하게 입었어요. 그러니까 그 이후에 오늘 이제 오늘 이후에, 드디어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이사야의 주님이 부르신 사명에 대해서 그 소명으로, 반응하는 내용들이 쭉 나와 있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가 본즉, 이라는 이 동사를 통한 우리가 깨닫는 것은 뭐냐 하면, 그 누구도 예외 없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보아야 사명을 가질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걸 여러분들 믿으셔야 되시는 것이 제가 이사야설을 해석할 때에 제 개인의 실력과 능력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신약에 창과 교부들의 창으로 해석을 해야 한다고 했어요. 오늘 이사 6장에는 이 말씀을 사람들이 이 말씀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해야 내게 주신 사명을 확인하고 주님 앞에서 임받을 수 있다. 이렇게 나오는데 이걸 사람들이 믿지를 않아요.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2장에 보면 뭐라고 나와 있느냐면, 요한복음 12장에 먼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다 같이 읽겠습니다.

*요한복음 12:39,
39 그들이 능히 믿지 못한 것은 이 때문이니 곧 이사야가 다시 일렀으되.
-예수님의 해석의 신약의 창인데 요한이 깨달은 거예요. 보겠습니다. 곧 그 이사야의 내용을 가지고 믿음 없는 것을 말씀하시고, 41절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바로 이어서 뭐라고 하면

*요한복음 12:41,
41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아멘, 여러분 이사의 6장에 있는 내용 성경을 좀 안다 하시는 분들도 6장의 내용이 요한을 통하여 신비한 복음서인 요한을 통하여 이사야의 이 말씀이 신약의 창으로 재해석된 걸 잘 모를 거예요. 여하한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하나님이 주신 음성을 듣고, 사명을 깨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오늘 이 안아주심의 본당에서 드리는 오늘 이 주일 예배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目睹)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왜 어떤 사람들은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어떤 사람은 목도하지 못할 것인가? 그 이유가 무엇일까? 요한이 깨달은 진리가 있습니다. 왜 그렇게 깨닫지 못할 것인가? 요한복음 12장 43절, 39절 41 43절에 같이 보겠습니다.

* 요한복음 12장 43절,
43 그들은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의 영광보다 더 사랑하였더라.
-아멘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 영광보다 더 사모하면 찬란한 하나님의 쉐키나의 영광을 체험하지 못하고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내 것으로 확정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오늘 여러분 사람의 영광을 하나님보다 앞선다는 건 어떤 뜻이에요. 소위 사람이 먼저다 인본주의가 먼저다. 이런 소리 많이 하고 그러는데 여러분 그렇게 계속하는 동안은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볼 수가 없는 것이에요. 소위 자기중심, 자기 프라이드, 자아실현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내 자아를 죽이고, 자아를 죽인다는 것은 뭐냐면 자기 욕심이 커질 때,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지 못하고, 또 반대로 또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자기 연민에 빠질 때도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 순전한 마음으로 주님 오늘 이 시간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게 하여 주십시오. 그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로마스 6장의 바울이 깨달은 진리가 뭐냐 하면 로마서 6장은,

*로마서 6:4,
4 아버지의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아버지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려주셨다고 그랬어요. 여러분 예수 그리스를 하나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 가운데 살려주셨다면, 오늘 여러분들의 죽음과 같은 상황도, 하나님의 영광을 특히나 영광을 체험할 때, 하나님은 여러분들의 죽음과 같은 상황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제가 한 번씩 말씀드립니다만, 우리가 하나님께 구하고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에게 필요한 거 많이 주세요. 우리에게 필요한 의식주 살아갈 것 주시기도 하시고 다 주시고 다 하지만, 하나님의 영광만은 아무나 응답하지 않으세요.

하나님의 영광만은 오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쉐키나의 영광을 깨닫고, 그 셰키나의 영광을 통하여 자기 중심이나 어떤 자아가 아니라, 정말 자기를 부인하면서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아니하고 자기 욕심에 눈이 가려워지지 아니하고 하나는 하나님의 영광의 우선순위가 되어서 주님 내가 진짜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합니다. 어려움과 고난과 문제 가운데서도 한결같이 내 영적인 시선과 안테나가 주님께 고정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사모할 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응답해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누구에게도 예외가 없어요. 그래서 이 영광의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목도할 때 본즉, 그랬고 두 번째 단어는 뭐냐 하면, 5절을 보니까 말하되 말하되,

II. 말하되.

*이사야 6:5a,
5a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제가 교부들의 창으로 보면서 전 세계 수많은 교부들, 파덜들, 어구스틴이다. 혹은 잉나티우스다 이레니우스다 이런 여러 폴리갑이다. 여러 우리 교부들이 4세기, 5세기, 6세기 또 church fathers들을 교부들을 볼 때에,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한 분들에게 나타나는 두 가지 공통적인 현상이 있었어요. 하나는
⓵뼈를 깎는 뭐라 그럴까요? 정말 뼈 때리는 자기 자기의 부족함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자기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죄성에 대한 각성을 하고
⓶또 하나는 그 각성 이외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한 사람들은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에 예외 없이 각성을 하고, 그다음에 사명을 발견하는 것이 할렐루야!~~ 그것이 오늘 두 번째 나타나는 말하되에요. 뭐라고 말하냐면 죄에 대한 각성을 하는 것이에요.

오늘 죄에 대한 각성을 어제로 보낼 때, 그때 내가 뭐예요?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라’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자기 자신의 부정함 때문에 나는 망하겠다. 망하겠다. 나는 망하게 된 사람이다. 처절하게 죄에 대한 각성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난 2천년 교회 역사에 누구나 예외가 없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면, 첫째는 죄에 대한 각성으로 자기는 망하게 되었다고 또 하나는 그 이후에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무슨 뜻인가? 여러분이 죄에 대한 각성을 한다. 그래갖고 이사야가 다른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다. 그 뜻이 아니에요.

너무나 강력한 하나님의 영광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비춰볼 때에, 이게 거룩한 절망이에요. 영적 절망이에요. 여기서 정말 소위 긍정적인 절망이에요. 하나님 앞에서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비춰보니까 자기가 얼마나 죄성이 많은지, 예를 들어서 이런 것입니다. 빨래가 깨끗한데 빨래가 놓여있는데, 흰 눈이 내리는 거예요. 흰 눈이 내리면 그 자기가 깨끗하고 빨래가 흰 눈에 비교해 보면 이것은 칙칙하고 더럽기 짝이 없는 것이에요. 우리가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목도하고, 그 빛 앞에 나를 비추어 볼 때, 나는 정말 죄인 중에 괴수요, 바울이 고백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하나님 영광을 목도할 때 나타난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누가복음 5장에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처음 만나 주셨어요.

베드로를 만나주시고 난 다음 베드로가 깊은 데 가서 그물을 내리라. 그럴 때 낮에는 깊은 데 가면 고기가 없는데 가봐야 소용이 있겠나, 그렇겠지만, 마음의 예수님의 영광이 압도가 돼 가지고 깊은 데 구워내는 그물을 찢어질 정도로 고기가 많이 잡혔어요. 깜짝 놀라가지고 그 예수님의 영광 위엄 앞에 베드로가 깨닫고 난다음, 누가복음 보면 5장에 뭐라고 얘기하느냐, 아주 그냥 강력하게 얘기하는 거야. 뭐라고 얘기하느냐,

*누가복음 5:8b,
8b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에 엎드려 이르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
-이것은 긍정적 절망이에요. 이거는 거룩한 절망이에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아니야. 너는 앞으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아윌 메이크 유 피셜즈 오브 맨, -I will make you fishers of men. ‘내가 너로 하여금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리라.’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모두가 다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그 모세도 떨기나무 앞에서 하나님의 40년 동안 벌벌 떨면서 그냥 고난을 겪고 난 다음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난 다음에 하나님이 그에게 사명(使命)을 주시잖아요. 거의 여유가 없어요. 이것은 이사회가 남보다 더 죄를 많이 짓고 더 부족하다 그게 아니에요. 이사야가 찬란한 영광 앞에서 나는 망하게 된 존재다 그 찬란한 빛 앞에 나는 죄인일 수밖에 없다.

긍정적이고도 거룩한 절망을 하고, 그 아우라 앞에 꼼짝도 못하는 것이 자신이 얼마나 무가치한 존재인지를 깨닫고, 그걸 통하여 거룩한 두려움으로 거룩한 절망감 때문에 탄식할 때, 이것은 굉장히 긍정적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어떻게 좀 제대로 해볼 수 없을 것인가? 그야말로 현타 진실의 순간을 맞이하게 되는 것이에요. 스페인의 투우에 가보면 모먼트 투루스라고 ‘진실의 순간’이라고 있어요. 마지막 투투 소아 그다음에 투우사가 마지막 죽기 직전에 있잖아요. 창을 가지고 내려가야 돼요. 내려찍기 직전이 그 순간이 진실의 순간인데 자기의 부족함을 깨닫고, 그 진실의 순간을 현타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제가 지금도 기억하는 것이 2007년도에 지금부터 한 18년 전에 놀스 캐롤라이나 있는 블랙마운틴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빌리그램 목사님께서 마지막 거기서 이제 노년을 보내고 계셨는데, 그때 좀 오라고 해서 제가 가서 빌리그램 목사님하고 시간을 좀 보내고 기도를 하고 그랬어요. 아마 1시간 반 이상 그렇게 했을 거예요. 근데 그 1시간 반 동안 세계적인 리더요. 그 다음에 하나님이 쓰시는 종인데, 그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노년이고 몸이 좀 아프셔도 휠체어를 타고 계셔도 아우라가 있는 거예요. 내가 그 앞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여러분들은 반응도 없는데요. 나는 나는 반응을 했어요.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그러니까 인간도 하물며 그럴진데, 찬란한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 영광을 목도할 때 오늘 얘기했던 것처럼 말하되 ‘나는 죄인으로서이다.’ 이렇게 할 때에 하나님 베드로에게 사명 주신 것처럼 그렇게 사명을 주실 줄로 믿는 것입니다. 언제인가? 6절 다시 한번 뭐라고 나와 있냐면, 이렇게 6절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이사야 6:6,
6 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그때에, 그래서 여러분 하나님의 영광은 신앙의 북극성과 같은 것이에요. 하나님 영광의 눈이 열리게 될 때, 그리고 내 자아를 부인하고, 어떤 거룩한 절망을 하고, 이것이 삶의 나침반(羅針盤)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저희 부친은 늘 극상품 포도에서 말씀하시고 자주 말씀하시고 그다음에 저희 집의 가훈은 넘버원이 뭐였냐면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이것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걸 뭐 무슨을 체크하고 점검할 때, 이걸 제일 우선순위(優先順位)에 두라는 것이 여러분들은 저의 영적 가족인 줄로 믿습니다. 저희 부친이 저에게 그렇게 얘기한 대로 나도 똑같이 여러분들과 함께 이 은혜를 나누고자 하는 것입니다. 극상품 포도를 맺어야만 하는데, 그걸 위하여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하고, 거룩한 절망을 하고, 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사명에 귀 기울이면서 그리할 때 무슨 일을 할 때의 표준이 뭐냐, 모든 일의 기준이 이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이것이 정말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인가?

이것을 늘 물어보므로 알미암아 그때에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허락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때 어떤 축복을 주시는가? 오늘 다 읽지 않았는데 교도 갈 때 이제 6절 그때에 드디어 7절 8절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크게 우리가 합독하겠습니다.

*이사야 6:6~8,
6그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술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할렐루야, 오늘 처음 제가 서론에 말씀했습니다만 천사가 인두를 가지고 스랍이 인두를 가지고 그냥 이사야 입술을 짖어버렸어요. 그 입술을 짖어버릴 때에, 그의 악이 제하여 졌고, 죄가 제하여졌고, 이 사야가 치유가 된 것입니다.

오늘 이것이 이사야 때 말씀으로 끝나면 되나, 2700년 전의 사건으로 끝나면 되나, No! 노 이것이 오늘 이 시간 여러분들의 삶에 이 순간 접목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주간에 한국의 유명한 교육 기업가를 만나갖고 대화를 하는데, 제가 참 은혜로운 간증을 들었어요. 그는 신앙의 4대째고 그의 할아버지가 외할아버지가 계시는데 외할아버지가 경남 창원에서 신사 참배를 반대했어요. 평신도로 반대를 하니까 일본 사람이 와 잡아갔어요. 감옥에 갔는데, 네가 그냥 어쩔 수 없이 신사 참배 반대에 참여했다고 사인만 하고 난 앞으로 안 그럴 거다. 그렇게만 하면 풀어주겠다. 그러니까 그러냐고 생각하고 그냥 사인을 해 가지고 나왔대요 나왔는데 기도를 하는데 이건 아니지, 그리고 다시 나는 사인 못하겠다고 다시 감옥갔대요. 그때부터 주워 패고, 고문하고, 이렇게 해가지고 완전히 거기서 완전히 그냥 거의 생명의 숨만 좀 남아가지고, 이제는 시체처럼 돼 가지고 밖에 던져버림 당한 거예요. 그래서 이분이 내가 내가 죽겠구나, 이런 생각을 하고 그 40대 후반이었는데.

기도라도 하고 죽자. 그리고 사내가 산기도를 눈이 와 있는 기도원에서 기도해서 산기도를 하는데,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 말씀을 읽고 할 때 갑자기 불처럼에 임해가지고 천사가 스랍이 와서 기도하는 가운데서 그야말로 자기의 몸에 막 그냥 인두를 가지고 지지는 것 같은 아픈 부분을 막 지지는 것 같은 그런 은혜를 받았대요. 그래 가지고 사형성과 내려진 사람이 회복이 돼 갖고 95세까지 살았대요. 그 유명한 교육기업가도 나오고 말이지요. 한번 제가 자세한 얘기를 다 말씀 못 드렸는데 이 말씀을 들으면 그게 무슨 전설 따라 삼천리 아닌가, 그런 분도 계실 거고, 어떤 분은 그렇지 하나님 오늘도 내 삶의 아픈 부위라든지 아픈 상황에 주님이 스랍들을 보내 가지고 지져주십시오. 나는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사모합니다. 그리고 내가 사명자가 되겠습니다.

이런 결심을 할 때, 하나님이 필요하면 저도 이 말씀을 듣고 나도 그 간성을 듣고 나도 마음이 뜨거워졌어요. 그래갖고 나 좀 아픈 부위가 있었는데,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까 좀 나은 것 같더라고요. 뭐 이거는 여러분들 여러분들 알아서 하세요. 아시겠어요. 제가 무슨 평소에 내가 치유를 많이 얘기하는 목사도 아닌데, 근데 하나님만 있으면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거 아닙니까? ‘주여 우리는 죄인입니다. 내가 거룩한 절망을 하고 하나님의 내 자신을 돌아보오니 하나님 우리가 고백하는 이 고백 가운데 주님이 스랍들을 보내 가지고 인두로 내 입술과 내 아픈 부분과 내 트라우마와 내 상처와 주여 심지어 이 민족의 상처까지도 지져주십시오.’ 오늘 이 마음이 우리가 하나님 말씀에 살았고 능력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금 체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첫 번째 본즉, 두 번째는 뭐예요? 말하되, 내가 고백하는 거예요. 나는 죄인입니다. 이사야가 다른 사람보다 죄가 많은 거 아니에요. 찬란한 하나님의 쉐키나 영광 앞에 자기가 죄인 것을 고백하게 된 것이 그 거룩한 고백의 거룩한 절망이에요. 세번째로는 일렀어요. 8절에 이르되,

III. 이르되.

*이사야 6:8a,
8a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이사야 6:8b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바로 8절 뒤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시작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아멘, 오늘 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목도를 하고, 두 가지 죄에 대한 각성과 그 다음에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에, 반드시 주님 앞에서 고백하는 내용이 있다면 그것이 뭐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내가 이르되, 공통적인 현상이에요. 그리고 이거는 피상적인 얘기가 아니고 이건 여러분의 것으로 고백이 돼야 되는 것이에요.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어 주십시오. 오늘 말씀을 듣고 난 다음에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 동생을 보내어 주시옵소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우리 목사님만 보내주십시오. 주여 내가 여기 있나 우리 순장님만 보내주십시오. 이게 아니고,,, 실제로 여러분들의 것으로 와 닿아 가지고 그것이 환경적으로 어떤지는 제가 다 구체적으로 다 모르지만 여러분들의 상황 가운데서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내가 사명받은 자로서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여러분 이 마음이 없는데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과 오늘 이 말씀을 듣는 저와 여러분이 주연회가 여긴 나를 보내어주소라 이런 사명이 없는데 어떻게 세상이 바뀔 수가 있겠어요. .나를 보내소서.라는 이 사명 이 마음에 자세가 없고 이 반응이 없는데 어떻게 새로운 길이 열릴 수가 있겠어요? 우리는 신앙생활을 그냥 표피적으로 종교 생활하고 그다음에 신앙생활을 그냥 피상적으로만 한다면,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데, 피상적인 하나님이 아니라 인격적인 하나님을 제대로 만났다면 내가 원하는 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을 경험해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사야가 나를 보내소서 했을 때 자기가 무슨 왕족 출신이고 자기가 왕궁 교육을 받고 자기가 굉장한 문장을 쓸 수 있는 이런 자기 실력으로 그것 때문에 나를 보내 달라고 한 게 아니에요.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죄인임을 각성하고, 사명받은 자로서 그의 깨달음을 갖게 될 때에 그야말로 사명받은 자로서 하나님이 자기를 변화시켜 주셨기 때문에, 자기가 보내 달라고 말씀하는 것이에요.

그럼 오늘 오늘 이 시간 여러분의 실력과 여러분 재능과 여러분 능력과 여러분 환경을 보면 갈 입장이 된 분이 거의 없어요. 별로 없어요. 그런데 내 실력과, 능력과, 내 지식과,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룩한 수풀을 가지고 거룩한 인도를 가지고 내 인생의 부족함과 연약함과 수많은 더러움을 지져주시고 치유하시고 새롭게 해주신 그 변화의 능력 때문에 나를 보내 달라고 얘기하시는 거예요. 오늘 이것이 그래서 주님 뭐라고 말씀하시냐면 ,요한복음 15장에 보니까,

*요한복음 15:16,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다고 했어요.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가지고 이건 놀라운 그러니까 여러분 이걸 제대로 깨달으면 주님 앞에서 이 말씀을 반응하고, 오늘 이 시간 이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 대한민국 지난 12월 어려운 상황 가운데서도, 주여 나를 보내소서라고 우리 모두가 다 진심으로 고백하고 매워 다닐 때 세상이 변화될 것이오, 여러분 진심으로 나를 보내소서 할 때에 우리의 부족한 인생의 주녀 앞에 놀랍게 쓰임받는 하나님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그렇게 고백할 때에 그를 고백할 때에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9절의,

*이사야 6:9,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여호와께서 이러시되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는 것처럼, 주님이 하늘과 땅에 있는 권세를 가진 그분이 가라 오늘 이 말씀을 깨닫고 이 말씀이 여러분의 것으로 확인되기를 원합니다.

그러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여러분 난세에 영웅이 난다고, 진짜 여러분들이 이걸 깨닫고 여러분들 고백을 하게 되면 이 어려운 시기에 여러분들이 하나님 나라의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정규군이 될 것입니다. 적당한 당나라 군사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정규군이 될 것입니다.

저는 청년사역을 많이 했잖아요. 그리고 청년시절 수양회를 하면 마지막 시간에 콜링을 해요. 마지막 시간에 항상 우리가 헌신하는 시간이 있어요. 헌신의 시간을 가져요. 그런데 이런 사명과 은혜를 깨달으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놀라운 일이 벌어지는데, 적당한 곳에 가는 것 적당한 좀 평안한 곳에 가는 거 이런 것보다도 오히려 오지, 험지, 어려운 거 그쪽에 부르마 콜링을 할 때 오히려 그런 곳에 더 많이 가서 더 많이 주의 선교사면 선교사 더 많이 가겠다고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이걸 이 차원을 여러분들이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는데, 하나님이 가라고 하실 때는 오히려 어려운 일일수록 더 가게 되는 역사가 일어나는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것은 어마어마한 특권이에요. 산꼭대기든, 바다 밑이든, 적당한 곳이 아니라 주께서 원하시는 곳에 어디든지,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어디든지 그래서 오늘 오늘 회중 찬송 할 때에 아무든지 예수 나라를 이끌면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는 외국 같은 경우는 어릴 때부터 이 찬송, 애니웨어 위드 지저스 아이 캔 세브릭 고, 이렇게 나와 있는데,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어릴 때부터 이 찬송을 많이 부르는데, 한국 교회는 이걸 아주 모르는 분들이 많이 계시는데 나중에 집에 가가지고 오늘 회중 찬송 불렀던 거 아무든지 예수 함께, 그러니까 한 20번 이상 해보시기 바랍니다. 어디를 가든지 겁낼 곳 없네. 어디든지 예수 함께 가려네 이것이 뭐냐 하면 주님이 가라고 하시는 것이고, 오히려 내 실력과 능력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가라고 하시니까 그 특권으로 알고 산꼭대기 된 바다든 사무엘은 그 어릴 때 어린 사무엘이 사무엘상 3장에 보니까, 사무엘이 ‘말씀하시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어디든지 가겠다.’ 이런 사람들이 무엇이 되는가 오늘 요 절 중 하나인데 13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이사야 6:13b,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이 땅에 거룩한 씨가 되는 것이에요. 그 앞에 보면 13절에, 밤나무 그 다음에 상수리 나무 황폐하게 돼야 돼 배임을 당하고 그중에 10분의 일이 남아 있을지라도 황폐하게 될 것이다.

*이사야 6:13a,
13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
-밤나무가 있고 상수리 나무도 다 배임을 당하여도, 그 거룩한 그루터기 랩넌트, 그 남아있는 씨, 이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하나님의 사람으로 무장시켜 주신다는 것이 그 11절부터 13절까지 보면요 황폐하다는 말이 네 번이나 나와요. 배임을 당한다. 소망이 없다. 아까 들포도를 맺는다. 이스라엘 자체가 앞에 있는 것처럼, 고난과 어둠이 가장 밀려와 있다. 그 황폐하다 그런데도 유일한 희망은 뭐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고, 죄에 대한 각성을 통하여 사명을 발견한 자로서, 하나님 앞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필요하면 우리가 사명으로 간다면 직장에도 나를 보내주십시오. 학교에서도 나를 보내주십시오.

어디든지 내가 사명자로서 가정주부로서 내가 주부 정도가 아니라, 사명자 가정주부, 사명자 직장인, 사명자 공부하는 학생들, 사명자 비즈니스맨, 사명자로서의 역할을 감당할 때에 그루터기의 사명을 완수하는 것이 거룩한 씨가 되는 것이 우리 옛날에 후진국일 때 우리 어려울 때 보릿고개라고 있었습니다. 보릿고개를 넘길 때 이제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남아있는 먹을 게 없어요. 그런데 아무리 어려워도 춘궁기가 있다 하더라도 농부들이 아무리 배가 고파도 이듬해 농사를 위하여 종자를 꼭 남겨두었어요.

왜냐하면, 내일의 희망적인 추수를 기대할 때, 오늘 지키고 보존하는 이 씨앗이 있어야 남아있는 씨앗 보존한 씨앗이 있어야 내일의 미래를 기대할 수가 있기 때문에 아무리 춘궁기 보릿고기라도 그 씨앗은 남겨두었어요. 황폐할 수 있습니다. 어려울 수 있습니다. 힘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하나님의 교회 신신한 죄의 종들을 여러분 거룩한 그루터기로 남겨두신 줄로 믿습니다. 아시겠죠. 그러면 여러분들이 거룩한 그루터기 씨라고 얘기할 때 이건 남들이 하는 거다 나하고는 상관없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시면 안 되는 거예요. 여러분들과 저는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하나님이 주신 이 사명을 위하여 모두가 다 거룩한 그루터기의 주님이 주시는 사명과 비전이 있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그리고 이런 거룩한 그루터기는 아까 말했던 황폐함 가운데, 어려움을 겪는 가운데, 고난을 겪는 가운데 웃시아가 죽던 해에, 힘든 상황 가운데서도 그 황폐함을 극복하고 고난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극복하고 거룩한 그루터기의 사명을 감당하라 이거예요. 그래서 신약의 창으로 또 해석을 하면 오늘 이 사이 모든 상황은 야고보서 1장 3절 4절을 보니까, 무슨 이야기가 나오냐면,

*야고보서 1:3~4,
3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4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
-자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명을 발견하고 할 때, 이것이 수월한 환경은 아니에요. 어려운 환경이에요. 그리고 그 어려운 환경 시련이 많이 있어요. 그런데 극복하면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온전하고 구비한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거는 전 세계 이건 동일한 법칙이에요. 동양고전은 뭐 성경은 아니지만, 그러나 맹자 같은 경우 하늘이 장차 큰 사명을 그 사람에게 맡기려 하면 ‘반드시 그 사명자가 되려면 누구도 예의가 없다. 반드시 그의 마음을 괴롭게 하고, 그의 근육과 뼈를 수고롭게 하며, 그의 몸을 굶주리게 하고 그의 생활을 빈궁하게 하고 그가 하는 일을 어지럽게 하느니라.’ 잘 알아요. 우리가 하물면 나무 제대로 된 나무를 가지고 그 집안에 훌륭한 어떤 기둥으로 쓰려고 하더라도 톱질을 해야 되고 그 기둥을 위하여 대패질을 해야 되고 거친 바람을 극복해야 좋은 사공을 만들 수 있듯이, 제가 이 얘기를 왜 그러냐 대한민국의 상황이 전 세계 어느 나라에 비해서 우리처럼 이런 고난이 많은 나라가 어디 있습니까?

송나라의 시인 황산곡은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를 겪지 않고서야 어찌 매화 향기가 코를 찌를 수 있다는 말인가?’ 민족적인 고난에 이 뼛속까지 사무치는 추위, 황폐와 어두움 가운데서 자기각성과 죽음 선언을 통하여 우리가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더 삼으로 말미암아 이 시대에 대한민국이 다시 한번 매화의 향기를 피울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에 무슨 죄가 많아 가지고 이 엄동설한에 전국 각지에서 광장에 나가고, 왜 12월 이렇게 고난을 겪어야 하는지, 이거는 단순히 누구를 찬성하고 누구를 반대하는 문제가 아니에요.

저는 큰 그림을 볼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민족을 연단하시고, 우리 민족의 뼈를 깎게 하시고, 톱질하시고 대패질하셔갖고 우리 민족의 뼈를 녹이는 고통을 통하여 이제 하나님이 제발 좀 그릇 키워가지고 반도에서 그만 싸우고, 반도에서 그만 싸우고,,, 이제 통일을 위하여 큰 그릇 좀 제발 준비해 주라... 큰 그릇 좀 준비해 주라 그리고 단순히 너희 나라만 살지 말고, 이스라엘은 숫자가 많지 않지만 세계 전 민족에게 큰 나름대로의 그 역할 모델을 한 것처럼, 대한민국도 앞으로 역할 모델 하라. 세계 어떤 민족보다도 수많은 고난과 배를 깎는 아픔을 믿는 민족이니까.

그걸 그냥 아픔으로만 끝나지 말고, 오늘 말씀의 사명의 인두질을 가지고 아픔을 다 치유받으므로 말미암아, A New International Spiritual Order and a New Civilization!, 뉴 인터내셔널 스페셜 오더,,,, 새로운 국제 영적 질서와 새로운 문명사에 도움이 되는, 이민족이 되기를 바란다.아멘!!!~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12월 1월 2월 앞으로 1~2달 더 어려울 것입니다. 그 가운데 사랑의 교회 교구들과 대한민국 교회 성도들은 수립 내가 여기 있사오니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나라를 위하여 민족을 위하여 기도하고, 뼈를 깎는 기도를 할 때에 간절함으로 기도할 때에 다시요. 뉴 인터내셔널 스피릿츄얼 오더,(New International Spiritual Order), 새로운 영적 국제 질서가 형성이 될 것입니다. 새로운 문명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이민족이 되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평양에서도 그야말로 우리가 집회할 수 있는 그날을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작년 10월 27일 이런 마음을 가지고 주님 사무엘상 11장에 있는 것처럼, ‘일어나 길갈로 가서 새로운 나라를 세우자.’ 대한민국을 새로운 나라로 세우자. 자유의 나라, 생명의 나라, 창조의 나라, 거룩의 나라, 영광의 나라, 기적의 나라, 세계의 나라를 세우게 하여 주시옵소서! 이게 바로 사명인 것이요. 비록 내가 부족하고 내가 나를 볼 때 내가 망하게 되었다. 할지라도 이것은 거룩한 절망을 하고 주님을 바라봄으로 말미암아 이 새로운 질서, 여러분 여기에 대한 이런 내용들을 가지고 마음의 용량을 키워가지고, 아무리 이런 거 있어도 마음의 용량을 키우지 않으면 100만 100만와트의 전력발전소가 있는데, 그거 전기가 공급이 되면, 여러분들 10와트만 갖고 있다면 그냥 조그마한 불만 켜고 있다면 그걸로 끝나는 거예요. 백만 와트의 전기발전소에 그 전력이 공급될 때 여러분들이 10만 와트 50만 와트 이렇게 준비가 되면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더 귀하게 써주실 수 있는 것이에요. 100만 킬로와트, 100만 킬로와트 하나님은 우리는 이미 주님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구원의 초청에 응한 바가 되었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쉼에 대한 초청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은혜 받으라는 초청도 받았습니다.

오늘은 주님이 우리에게 사명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누가 우리에게 갈꼬, 내가 말하되 주여 나를 보내어 주시옵소서. 여러분이 있는 자리에서 나라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베풀 만한 자비를 베풀어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아야만 이것이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거룩하다 만군의 여우와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한 시도다 거룩거룩하다 오늘 스랍들이 주님을 찬양한 것처럼, 21세기에 우리가 주님 앞에 사명자(使命者)가 되어 이 찬송하시면서 기도하시겠습니다.

♣요약
흑암과 고난 속에서 '들포도를 맺던 어두운 인생'에서 우리를 불러주셨으니, '극상품 포도를 맺는 빛나는 평생'으로 인도하여 주시길 간구하며, 뼈를 녹이는 고통 속에서도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본즉, 깊은 죄와 상처는 치유받고, '죽어도 가야 할 북극성 같은 사명'은 불타올라서, .사랑의교회가 거룩한 그루터기 되어 세계복음주의 연맹 서울 총회(2025.10.27.)에 ’나를 보내소서!‘ 하며 헌신할 때, 세계문명사에 '새로운 영적 국제 질서'를 구축하게 됨을 확신하며 헌신하자.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