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1년 1월 10일) 제목: "새 일을 행하시는 하나님" 말씀: 이사야 43:18-21절 설교자: 오정현 목사님 사회: 윤하중 목사님 ------------------------------------
(이사야 43:18-21절) 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21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30년 만에 온 한파를 뚫고 생중계에 참여한 모든 성도들, 지난 한 해의 모든 묵은 것들과 짐과 아픔을 주님의 은총아래 다 덙져 버리길 바란다. 예배를 드리는 모든 성도를 위해 축복하시길 하나님께 기도한다.
이 예배를 통해 새로운 전기, 새로운 모멘텀이 되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눈이 확뜨이길 바란다. 본문 21절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 우리가 새로운 전진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오늘 확 열리게 하는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니, 우리를 지으신 이유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을 찬송 예배예배하는 것은 목적에 부합한다는 것이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피조물이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살아가고 있는지 어떻게 알수 있는가이다. 찬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일이 아닌 것을 구분한다. 그런 면에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영적인 통찰력을 주시길 바라며 소망한다. 인생은 어떤 동기가 있어야 움직인다. 아무리 대단해도 삶의 동기가 약해지면 불타는 소명을 끝까지 완주하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우리가 예배하는 어떤 동기가 있어야 한다.
I. 영원의 삶의 동기 1.내적 동기이다. 사람답게 살아보는 것이며, 2.외적 동기- 잘하는 것이 있다. 대부분은 이 두 가지로 움직인다. 그러나 우리가 내적, 외적 움직임보다 한차원이 높은 영원함의 동기이다= (Eternal motivation-영원함의 동기). 우리가 온생예배를 통해 우리가 마음의 중심으로 잡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 드리는 것은, 영원함의 동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영원을 바라보고 뛰는 것이다. 영원을 향한 동기는 열심 정도가 아니라. 그냥 내 속에서 불이 붙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지치지 아니하고 성령이 주시는 은혜로 삶의 경주에서 속에서 불이 붙는 것이다. 영원에 불이 붙으면 소중한 것과 버릴 것이 무엇인지, 실체와 허상을 구분할 수 있으며, 남은 인생을 낭비하지 않는다.
그래서 솔로몬은 이것을 다 해보니까 인생에서 다 해봐도, 성경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다. -전도서 3:11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들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이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우리 속에 불붙는 것은 내 속에 하나님이 영혼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영원함에 대한 동기가 흐려지지 않는다. 우리는 영원함에 대한 동기를 갖게 되면 지치지 않고 규칙적인 에너지를 받게 된다. 영원함이란 갖으면 옳고 그름을 구분하니 전체가 기쁨이 되고 과정이 즐겁다. 영원함으로 인해 육신은 피곤해도 영은 피곤치 않는다. 모든 과정 자체가 즐겁다. 특히 마음 맞는 자들을 만나면 영원함의 동지들을 만나면 갑절의 즐거움이 있게 된다. 사도 바울은 자주자주 감옥 가운데서도 그들이 주안에서 기뻐하라고 했다. 서로 영원의 즐거움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영원이란 동기가 분명하면 영원한 새로움을 깨닫게 된다. -영원한 새로움에 눈을 뜨면, 영원한 옥시멈(Holy Oxymum)이다. 그것은 늘 프레쉬하게 새마음으로 살아간다. 영원함의 눈이 제대로 새로운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그러니까....
-'영원한 새로움'에 대해서 눈이 열리면, '영원함'과 '순간'의 통합이 이루어진다. 그 결과 '늘 새로운 현재'가 된다. 반대로 영원함을 모르면 다람쥐 쳇바퀴 돌듯 산다. 영원함으로 언제나 새로워져야 한다. 일시적인 지금 이 순간이 영원을 평생 준비하고 살게 된다. 성경은 늘 새롭다. 이사야 43장은 오늘도 다시 새롭다.Way maker- 주님이 새롭게 하신다. new way maker가 된다. 시간이 그냥 지나가고 있다. 시간이 지나갈수록 아무리 대단한 사람도 별거아니다. 다 노쇠하고 젊고 아름다운 것은 다 지나가고 처절하고 한탄함이 오는 것이다. 이 시간에도 우리는 시간이 흐를수록 긍정적이고 눈부신 소망이 있게 된다. 영원함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시간이 흐를때마다 긍정적 에너지와 눈부신 소망이 열리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이야기 한다. -고후4:16 16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도다.
우리 믿는 사람은 아프거나 나이가 들어가도 뭔가 깊이가 있다. 성령님으로 깨닫게 되면 눈부신 소망에서 믿음 보고를 한다. faith report가 되는 것이다. I'm still strong!! 그때나 지금이나 항상 동일하다. 우리는 그래서 수많은 가나안 땅들을 영적으로 정복할 수 있다. 우리가 영적으로 소망이 되는 것이다. 육의 사람은 잘 모른다. 영적으로 생명의 역사가 있는 사람은 깨닫게 되며, 다르다. 뭔가 깊이가 있다. 새로운 영원의 언어이며, 시각이며, 새로운 영원한 현재를 경험한 사람의 고백이다. 막장 드라마 같은 일들이 지금도 있는 것은 영원함의 새로움을 모르고, 이 세상이 전부인 것처럼 그 욕심으로 말미암음이다. 펜데믹 상황에서 전 세계가 막장 드라마 같은 이 시대에 절대 굴복하지 않고, 우리의 시선이 바울처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영광과 깨달음이 된다면, 핍박이 있더라도 절망치 않고 영적 DNA를 갖는 것이다. 초대교회에 교회들은 핍박 속에서도, 영원한 천국의 소망으로 살았다. 현재 상황을 그래서 이겨냈다. 영적 장차나타날 것을 보고 축복과 은혜들을 현재의 상황을 해석하는 것이다. 그 고통 상황에서도 소망으로 살아 숨쉬는 소망이 되었던 것이다. 스데반이 돌을 맞아 죽을 지경이었도 그런데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우편에 계신 것을 보고, 현재 장차 나타날 것을 지금 갖고 있는 것이다. 해석하면 돌로 쳐죽이는 사울이 충격을 받는 것이다. 이 펜데믹 가운데서도 우리 사랑의 교회는 매일 매일이 살아 숨쉬는 소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영원의 영광에 대해서 해석하기 바란다. 온 성도들이 새하늘과 새 땅에 영원한 새로움의 관점으로 우리의 신앙의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
II. 영원한 새로움이 있으면 과거에 안주하지 않는다.
광야의 길, 사막의 길에 -인간의 상식으로는 깨닫지 못하지만 영원을 가진 사람은 깨닫는다. -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20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광야의 길, 사막의 길-현실자체이다. 앞뒤가 막혀있는 것이다. 포로 생활이 끝나지 않는 것처럼 느껴진 상황이었다. 이런 배경 가운데 영원한 시각으로 봐야 한다. 반드시 광야의 길을, 사막의 강을 내신다고 하신다. 택한 자를 마시게 하신다고 하신다.
18절- 너희는 이전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유대 민족은 전통을 중요시했다. 그런데 그것을 기억하지 말라고 했다. -이것은 이전에 하나님의 위대한 일들을 구원역사를 기억하지 말라는 것은 반어법이다. 바로 19절에 보라 새일을 행하리라와 연계되어 있다. 이전에 대단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앞으로 하실 그 새 일이 너무나 영광스럽고, 찬란하기에 과거와 비교해서 과거에 연연하지 말라 하신다.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지 말자.~~!!!그 기적을 다음 세대를 기대하라고 한다. See~~! 모든 것들을 분사형으로 I'm doing!! 계속 영광을 받으실 분이시다.
-구속자(사 43:14), 창조자(사 43:15), 바다 가운데 길을 내시는 자(사43:16), 병거와 말과 군대의 용사를 이끌어내어 쓰러뜨려 일어나지 못하게 하시는 자(사 43:17), 새 일을 행하시는 자(43:19).
지금도 새로운 것을 주신다. 영원과 순간의 통합을 이루시는 하나님. 이전의 아픔도 다 기억하지 말라와 비교할 수 없다. 옛날의 영광스러움과 앞으로의 영광이 대립이 있을 수 없다. 이 새일을 기대하면서 살아야 한다. 지금도 하나님은 뉴 웨이 메이커이시다. 그래서 우리는 새로운 꿈을 꾸게 된다. 조심해야 한다. 한 때 그리스 헬라제국, 스페인과 포루투칼이 화석화 되었다. 그리스도 그렇다. 우리 교회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40년에 안주하지 말아야한다. 우리 사랑의 교회를 위해 새일을 행해 주시길 원한다. 기도하면서 이 말씀을 통해 이전의 일을 기억하지 말고 우리에게 사람을 키우고 영적 재생산을 해야한다. 그릇을 키워야한다. 사랑글로벌 아카데미도 하나님의 새일이 되게 해주시길 원한다.
바울은 개인적으로 영적으로 3년간 뒤집어졌다. 공동체에서 훈련되고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해야 한다. 삼고초려을 한 것이다. 바나바로부터 코칭받고 시대의 새일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그 시대에 보면 이방인들이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는가를 새로운 시각을 하나님이 보여 주신다. 유대인 중에 완고한 사람들이 안 믿었다가 바울로 인해 새로운 그들이 글로벌이 된 것이다. 그래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 사랑글로벌 아카데미가 목자의 심정으로 영적 사관학교가 되어야 한다.지금 이 시대가 어떤 시대인지를 깨달아서 우리가 기대하면서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를 통해 진정한 영적 재생산이 되어야 한다. - 20절 - 장차 들짐승 곧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내가 광야에 물을, 사막에 강들을 내어 내 백성, 내가 택한 자에게 마시게 할 것임이라. 주님이 이루실 새 창조의 일을 말씀하신다. 가슴이 웅장하다. 장차 들짐승이 승냥이와 타조도 나를 존경할 것은, 승냥이와 타조는 혼돈과 폐허를 초래하는 짐승들도 새창조의 주님을 찬양한다는 것이다. 새로운 출애굽이다. 놀라운 일이다. 신학자들은 출바벨론이라 한다. 출애굽보다 낫다고 말한다.
-3월에 사랑글로벌 사역이 시작하는데, 새로운 일을 위해 신선한 사역이 되길 하나님께서 인도하시길 소망한다. 우리에게 큰 그림을 주셨듯이 공동체적, 개인적으로 어떻게 적용을 해야 하는가? 하나님께서 스가랴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에게 접목되어야 한는가? 새로운 길, 새로운 삶이 되어야 한다. 공동체적으로 접목되어야 한다.
마가복음 2:22절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는 자가 없나니 만일 그렇게 하면 새 포도주가 부대를 터뜨려 포도주와 부대를 버리게 되리라 오직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느니라 하시니라. 새 부대가 되길 바란다. 담는그릇이 새것이 되어야 한다. 그 시대에 걸맞아야 한다. 주님 나라의 역사를 담을 때가 되었다. 대 변화의 차원에 대해서 이 시기에 너무나 큰 변화이고 속도가 빠르기에 볼 수 있는 안목이 없듯이 대변불관이란 말이 나오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의 새로운 시각, 우리가 감당할 대변직관, 큰 변화를 보고 시대의 흐름을 볼 수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안목을 주시길 바라는 마음이다. 하나님의 새로운 것에서 눈이 열리기를 바란다. 광야에 감추인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사막의 강을 발견하는 축복이 되어야 한다. 현재의 분사형으로 체험하고 영적 중심을 체험하게 되어야 한다. 사랑글로벌이 영적 용기를 주고 받아야 한다. 우리는 규칙적으로 영적 교제가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고전 16:18절에 - 그들이 나와 너희 마음을 시원하게 하였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사람들을 알아 주라. 바울은 브리스길라와 아굴라에 통하여 신선해졌다. -우리도 신선해지게 주시게 될 것이다. 과거의 은혜에 안주하지 말고 하나님의 신실한 종으로 살아서 나이가 들수록 하나님이 주시는 소망의 빛이 되어야 한다. 믿음의 용장들이 되어야 한다. 우리 모두 대변불관(大變不觀)시대에 대변직관(大變直觀)을 주시고 새로운 길을 평생이 되게 하시길 원한다.
♣요약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은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 일이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 회복이다. 즉 이스라엘에 대한 심판으로 내려졌던 불행한 역사가 끝나고 이제 하나님께서 행하실 새롭고 큰 구원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고 앞에서 냉담하던 이스라엘은 이방 민족의 침략으로 인해 깊은 절망에 빠졌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잊고 계시지 않았고, 그들을 위해 놀라운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에도 우리를 향한 ‘새 일’을 가지고 계신다. 하나님이 그의 백성을 지으신 목적은, 하나님께 대한 찬송을 부르게 하기 위해서였다. 즉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증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증인이요, 증거자가 되기 위해서 선택되었다. 본래 모든 인생의 목적도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다. 또한 우리의 증거는 쉼없이, 성령의 능력을 받아, 부끄러움과 두려움 없이, 하나님을 증거하는 것이어야 하며,
영원한 새로움으로 말씀을 통해서 나와 가정, 교회, 나라가 회복되고, 모두가 대변불관 시대에서 대변직관이 되어서, 우리 속에 주님이 계셔서 우리의 눈과 가슴이 답답함 속에서 눈과 귀가 열리고, 주님과 새로운 길을 열어가야 한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도 영원을 향한 새로움의 동기로 가슴에 불이 타올라 갑절의 은혜로 평생을 주님 말씀과 믿음 안에서 살아 숨쉬는 믿음의 보고를 새롭게 하여, 사랑 글로벌 아카데미가 영적 사관학교로서 무한한 사명을 펼치며 주님 나라에 헌신하는 사관학교로 비상하는 주님 자녀로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