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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無名花(무명화) / 이름없는 꽃 - 大谷 成運에게 부친다. 남명 曺植

        一年消息管多時 (일년소식관다시)

        名與香埋世不知
        (명여향매세불지)
        摠是名香爲己累 (총시명향위기누)
        洛陽曾得機人歸 (낙양증득기인귀
        한 해의 소식을 자주 들어 보았지만 이름과 향기는 세상에 묻혀 알지 못한다네. 이름과 향기는 본디 자신에게 허물이 되는 것 서울에서 일찍이 몇 사람이나 돌아올 수 있었던가?

      성운(成運) 1497-1579 :
      字 건숙(健叔), 號 대곡(大谷) 창녕인(昌寧人)으로
      "대곡집(大谷集)"이 남아 있다. 요점 정리 작자 : 南冥 曺植(남명 조식) 연대 : 조선 중기 형식 : 한시, 칠언절구 주제 : 명리(名利)를 쫓다가 자신에게 허물이 될 수 있음을 교지하는 詩 출처 : 南冥集 이해와 감상 대곡(大谷) 성운(成運)에게 부친 무명화(無名花)라는 제명(題名)의 이 시는 이름과 향기에 대한 세인의 태도에 대하여 묻고 있다. 명리(名利)를 쫓다가 잘못됨이 자신에게 허물이 되므로 허명(虛名)에 대하여 경계할 것을 말하고 있다. 낙양(洛陽)에서 이름을 얻은 벼슬아치가 과연 몇사람이나 온전히 돌아 왔던가를 상기 시키며 이름을 숨기고 사는 무명화와 같은 산림처사의 은일(隱逸)을 토로하고 있다. 한편으로 이름과 향기를 초야에 묻고 살고 있는 남명 자신의 자부(自負)를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도저히 용서받을 수 없는 범법자들이 권세욕에 탐익하여 자기 자신마저 속이면서 목민관의 명리를 쫓아 청백리가 되겠다고 설래발치는 무리를 보면서 예나 지금이나 허명에 눈이 멀어 명예가 실추된 치졸한 인간들의 탐욕에 실소(失笑)를 금할 수 없다. 심화 자료 조식(曺植)1501(연산군 7) ~ 1572(선조 5). 본관은 창녕昌寧이고, 자는 건중(楗仲), 호는 남명(南冥), 시호는 문정(文貞)이다. 성리학의 실천적 의미를 중시한 그는 엄격한 자기 절제와 현실에 대한 거침없는 비판 등을 통해 현실에서도 경(敬)과 의(義)를 적극적으로 실천하였다. 이러한 학문적 성향은 제자들에게도 계승되어 임진왜란 당시 제자들의 적극적인 의병활동으로 나타났다. 그의 제자로 김효원, 김우옹 등 저명한 학자들이 배출되었다. 일반적으로 낙동강을 경계로 경상우도 지역 오늘날의 경상남도 지역을 중심으로 학맥을 형성하였다. 유명한 글로는 '단성소'라고 불리는 '을묘사직소'가 있다. 선조 때 대사간, 광해군 때 영의정으로 추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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