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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5년 1월 22일) 제목: "복음이 이끄는 화해와 회복" 말씀: 빌레몬서 1:8-20 찬양인도: 쉐키나(이동선 부목사님) 사회: 강건우 부목사님 설교자: 이지형 부목사님 ----- * 빌레몬서 1:8-20,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13 그를 내게 머물러 있게 하여 내 복음을 위하여 갇힌 중에서 네 대신 나를 섬기게 하고자 하나. 14 다만 네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 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 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17 그러므로 네가 나를 동역자로 알진대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고. 18 그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19 나 바울이 친필로 쓰노니 내가 갚으려니와 네가 이 외에 네 자신이 내게 빚진 것은 내가 말하지 아니하노라. 20 오 형제여 나로 주 안에서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게 하고 내 마음이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하게 하라. ----- ▶2025년 여호와를 앙망하며 나아갈 때 반드시 새로운 길이 열릴 줄로 확신합니다. 우리는 다양한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박수 쳐주는 인생처럼, 아름다운 관계 속에서는 우리의 삶에 큰 기쁨과 의미를 가져다주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모든 관계가 평안하지는 않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점점 더 분열(分裂)과 대립(對立) 속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가족 간의 갈등(葛藤)은 물론이고 친구와의 단절(斷絶), 직장 내의 불화(不和), 심지어 나라와 민족, 교회 안에서조차도 갈등이 생겨서 관계가 깨어지기도 합니다. 가까운 관계일수록 갈등은 더 깊게 느껴지고 화해(和解)는 더 어렵게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갈등과 상처가 너무 깊어 도저히 상대방과는 화해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갈등은 단순히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안에 죄성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죄(罪)로 인하여 깨어진 인간의 관계는 이처럼 갈등과 상처(傷處)를 낳게 됩니다. 그 결과 우리는 자주 서로를 피하거나 상처를 더 깊게 만들기도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관계의 갈등과 상처 속에서 용서(容恕)와 화해(和解)를 선택하기를 어려워합니다. 이러한 상황(狀況)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음(福音)을 주셨습니다. 복음은 우리의 개인의 죄를 용서받고 구원(救援)받게 할 뿐만 아니라 우리가 맺고 있는 모든 관계를 변화시키며 갈등과 상처를 회복하게 하는 능력이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복음이 무너진 관계를 어떻게 새롭게 하는지 함께 나누길 원합니다. 빌레몬서는 사도바울이 골로새교회의 지도자인 빌레몬에게 쓴 편지입니다. 빌레몬의 종이었던 오네시모는 주인에게 상처를 입고 도망쳤지만, 로마에서 바울을 만나 복음을 통해 변화되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오네시모를 빌레몬에게 다시 보내며 그를 단순한 종이 아니라 주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로 받아들일 것을 요청합니다. 이 짧은 편지는 복음이 사람들의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또 그 과정에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어떠한 신앙적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복음이 이끄는 화해와 회복의 세 가지 원리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우리의 삶에서도 복음의 능력이 이끄는 화해와 회복의 열매를 맺게 되길 소망합니다. 먼저 첫 번째 원리입니다. 복음은 무너진 관계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본문 8절에서 10절까지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더 읽겠습니다. I. 복음은 무너진 관계를 향해 나아가게 합니다. * 빌레몬서 1:8-10, 8 이러므로 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아주 담대하게 네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으나. 9 도리어 사랑으로써 간구하노라 나이가 많은 나 바울은 지금 또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갇힌 자 되어. 10 갇힌 중에서 낳은 아들 오네시모를 위하여 네게 간구하노라. -아멘 바울은 빌레몬에게 요청할 때, 자신의 사도적 권위를 앞세우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의 신앙적 스승이었기 때문에 빌레몬에게 마땅한 일로 명할 수도 있었지만 그는 사랑으로 간구(懇求)하는 방식을 선택합니다. 자신을 복음의 사명을 위하여 갇힌 자 나이가 많은 자라고 표현하면서 현재 자신의 그 상태를 자신이 나이가 많고 감옥에 갇힌 연약한 상태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빌레몬에게 권위가 아니라, 연민(憐憫)과 사랑으로 다가가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이 강압적인 명령이 아니라 사랑으로 이끄는 초대(招待)임을 보여줍니다.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관계는 파괴된 상태였습니다. 당시 종이 주인을 떠나 도망가는 것은 법적으로 큰 죄로 간주되었으며 주인의 입장에서는 경제적으로 감정적으로 큰 손실을 입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런데 바울은 복음으로 하여금 깨어진 이 관계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깨어진 관계를 외면하지 않고 직면하게 합니다. 우리는 갈등을 피하고 상처를 숨기며 살고 싶어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그 관계로 다시 부르며 용기(勇氣)와 사랑으로 다가가게 합니다. 재로 인해서 무너진 관계를 복음의 능력으로 회복하길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깨닫게 합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본질입니다. 한 가족이 있었습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 깊은 오해가 생겨서 몇 년 동안 서로 연락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중에 자녀가 복음을 맞이하고 복음을 받아들이고 부모님께 용기 내어서 연락하여 용서를 구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쉽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은혜에 붙잡혀서 한 걸음씩 나아가게 되었을 때, 깨어진 관계가 회복(回復)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의 삶에도 복음으로 화해를 향한 용기를 내야 할 관계가 있지 않습니까?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은 갈등이나 상처로 인한 단절된 관계가 우리에게도 있을 수 있습니다. 누군가와의 상처받은 관계가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지는 않습니까? 복음은 그 관계를 외면(外面)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다시 나아가라고 우리를 도전(挑戰)합니다. 하나님과 관계가 깨어졌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의 십자가 사랑으로 말미암아 다시 하나님께로 이끌어주셨듯이 우리도 인간적인 갈등을 뛰어넘어서 관계를 회복하도록 요청하십니다. 이 과정이 참 쉽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사랑하셨고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우리를 위해서 아들을 주셨다는 그 은혜를 기억하게 한다는 것이죠. 혹 이 시간 말씀을 듣는 중에 해결되지 않은 갈등의 관계가 떠오르십니까? 내가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 수 있도록 기도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우리는 복음을 통해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하나님께서 주시는 용기와 사랑으로 그 관계 속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때로는 바울처럼 깨어진 관계를 화해로 이끄는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우리를 방관자(傍觀者)로 살게 하지 않고 화평의 사역(使役)에 동참(同參)하도록 이쁩니다. 이것은 우리가 받은 복음의 은혜를 삶으로 실천하는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부터 용서함을 받았고 사랑받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복음의 화해를 이루는 도구가 되어야 하는 줄로 믿습니다. 복음이 이끄는 화해와 회복의 두 번째 원리는 복음은 용서와 화해를 요청합니다. 본문 11절 12절에서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는데요. 함께 읽겠습니다. II. 원리는 복음은 용서와 화해를 요청합니다. * 빌레몬서 1:11-12, 11 그가 전에는 네게 무익하였으나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 12 네게 그를 돌려 보내노니 그는 내 심복이라. 아멘, 오네시몬은 과거의 빌레몬에게 무익(無益)한 존재였습니다. 그는 종(從)으로서 주인의 재산(財産)과 신뢰(信賴)를 배신(背信)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빌레몬에게는 큰 실망과 상처를 안겼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가 이제는 나와 내게 유익하다 나와 내게 유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복음의 능력으로 오네시모가 완전히 새로운 사람이 되었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일 뿐만 아니라 우리를 새로운 존재로 변화시킵니다. 오네시모는 바울이 전해 준 복음을 통하여 도망친 종에서 이제는 바울의 심복(心腹)으로 바울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소중한 존재로 변화되었습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예배드리는 우리 역시 복음의 능력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된 하나님의 자녀인 줄 믿습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용서하시고 새롭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용서는 복음을 믿는 자가 마땅히 따라가야 할 길임을 믿습니다. 계속해서 바울은 빌레몬에게 오네시모를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요청하지 않습니다. 본문 14절 말씀을 제가 읽겠습니다. * 빌레몬서 1:14, 14 다만 내 승낙이 없이는 내가 아무것도 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너의 선한 일이 억지같이 되지 아니하고 자의로 되게 하려 함이라. -아멘, 바울은 복음의 진정성이 억지가 아니라, 자발성(自發性)에서 나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강요에 의한 용서는 참된 사랑과 회복을 가져오지 못합니다. 그러나 자발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며 행하는 용서와 화해는 그 자체로 복음의 증거(證據)가 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도 억지로 무엇을 하려는 태도는 오래 가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고 우리의 마음의 진정성 있는 순종을 보시면서 그 순종(順從)을 원하신다는 것이죠. 진정한 복음의 변화는 억지에서 나오지 않고 은혜를 깊이 깨달을 때 자발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용서가 억지가 아닌 자발적인 선택으로 이루어질 때 하나님의 사랑이 드러나는 순간이 됩니다. 사랑하는 영가족 여러분, 우리 중에서 용서가 쉬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용서(容恕)는 쉽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는 일은 우리의 마음속 깊은 상처를 다시 떠올리게 하고, 인간적인 자존심을 내려놓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복음은 우리를 용서의 자리로 이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가 받은 그 은혜를 기억하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하기를 원합니다. ※코리텐 붐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합니다. 코리텐 붐은 네덜란드의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그녀와 가족은 나치 점령 시기에 유대인을 숨겨주었다는 일로 인하여서 발각되어져서 강제 수용소(收容所)에 끌려가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그녀는 비인간적인 고통(苦痛)을 겪었고 사랑하는 언니 배치를 잃는 아픔까지 겪게 되었습니다. 전쟁(戰爭)이 끝난 후에도 그녀의 마음에는 깊은 상처와 아픔이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코리가 강연(講演)을 하던 중에 자신을 고문했던 나치의 경비원과 재회(再會)하게 됩니다. 그 경비원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면서 코리에게 용서를 구했습니다. 하지만 코리의 마음에는 그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 앞에 기도하면서 제가 용서할 수 없는 마음을 고백하오니 주님께서 저를 통해서 용서하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간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순종하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그를 용서했습니다. 그 순간 코리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자신의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깨달았습니다. 용서는 우리의 감정이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면. 내가 그를 용서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 코리 텐 붐(Corrie ten Boom) - - 다시요. 그리스도께서 나를 용서하셨다면 내가 그를 용서하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의 용서를 기억하며 용서가 필요한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손을 내밀 수 있기를 바랍니다. 혹시 지금 여러분에게 화해를 요청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통로가 되며 용서와 화해의 시작점을 만들어가는 십자가의 전달자로 쓰임받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마지막으로, 복음이 이끄는 화해와 회복의 세 번째 원리는 복음은 새롭게 변화된 관계를 만듭니다. 본문 15절 16절의 말씀을 함께 봉독하겠습니다. III. 복음은 새롭게 변화된 관계를 만듭니다. *빌레몬서 1:15-16, 15 아마 그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그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16 이 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 이상으로 곧 사랑 받는 형제로 둘 자라 내게 특별히 그러하거든 하물며 육신과 주 안에서 상관된 네게랴. -복음은 관계의 본질을 변화시킵니다. 오네시모는 더 이상 도망친 종이 아니라, 사랑받는 형제가 되었습니다. 더 이상 종으로서 빌레몬에게 속한 자가 아니라, 이제는 주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요, 바울의 동력자가 되었고 빌레몬에게도 그러한 관계로 받아들여져야만 했습니다. 바울은 빌레몬에게 단순히 법적 사회적 틀 안에서 오네시모를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서서, 그를 그리스 안에서 형제로 영접(迎接)할 것을 요청합니다. 이 편지를 받아본 빌레몬의 입장이 어떠했을까요? 이 요청은 당시 사회적인 통념(通念)을 완전히 뒤집어 놓는 혁명적(革命的)인 제안(提案)이었습니다. 당시 로마 세계에서 주인과 종의 관계는 철저히 상하관계로 고정되어 있었고, 종은 기본적인 인격적 대우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지금 오네시모를 빌레몬의 종으로 되돌려 보내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서 완전히 새롭게 된 관계로 받아들이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빌레몬에게 그를 영접하기를 내게 하듯 하라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 자신과 동등한 위치에서 빌레몬이 교제하듯이 오네시모도 동일한 사랑과 존중으로 대해주라고 고백(告白)하고 있다는 것이죠. 더 나아가 바울은 오네시모의 잘못을 자신이 책임지겠다고 선언합니다. 18절의 말씀을 우리가 함께 읽도록 하겠습니다. *빌레몬서 1:18, 18 그가 만일 내게 불의를 하였거나 내게 빚진 것이 있으면 그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아멘, 이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중보자의 역할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용서를 우리에게 떠올리게 하는 것이죠. 우리 모두 죄로 인해서 하나님께 큰 빚을 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의 모든 빚을 십자가에 대신 갚아 주셨습니다.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대신 갚아주겠다고 한 이것은 바로 복음의 본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十字架)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복음은 용서를 요청하고 그 용서를 위해서 희생(犧牲)을 감수(勘收)합니다. 바울은 자신의 희생을 통해서 빌레몬과 오네시모의 화해를 이끌어냅니다. 이처럼 복음은 어떤 문화적 사회적 장벽도 뛰어넘어서 모든 관계를 새롭게 하는 줄 믿습니다. 단지 인간적인 화해에서 멈추지 않고 그 관계가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는 사랑의 공동체(共同體)로 변화되도록 만듭니다. 이는 오늘날 우리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복음은 우리의 모든 관계를 새롭게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간적인 계산이나 사회적인 지위를 넘어서 서로를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받는 형제요, 사랑받는 자매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여전히 종종 우리를 신분이나 지위 배경으로 나누고 갈등하도록 만듭니다. 하지만 복음은 그러한 구분을 넘어서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는다면 우리의 관계에서도 복음의 변화가 나타내야 될 줄로 믿습니다. 특히 우리가 쉽게 판단하거나 무시했던 사람들에게 복음 안에서 사랑과 존중으로 다가갈 때, 그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이 드러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복음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사랑을 실천하도록 이끕니다. 상대방이 먼저 변화하기를 기다리기보다 내가 먼저 사랑의 행동을 선택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또한 하나님의 관점을 하나님의 관점(觀點)으로 상대를 바라봄으로써 더 이상 세상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형제와 자매로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시길 소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는 복음이 무너진 관계를 향해 나아가게 하고, 용서와 화해를 요청하며 새롭게 변화된 관계를 만들어 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cs 루이스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용서는 우리가 받은 은혜를 반영하는 가장 강력한 행위다" -C.S루이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한 우리는 용서를 선택해야 하고, 하나님의 그 사랑 가운데 그 화해를 통해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내야 하는 그리스도인 줄로 믿습니다. 오늘 말씀 앞에서 여러분은 어떠한 결단을 하시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가 받은 복음을 단지 마음속으로 간직하고 멈추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이들과 나누며 화해와 회복을 이루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화해(和解)는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복음의 능력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복음의 능력이 드러나길 소망합니다. 그러하기 위해서 먼저 깨어진 관계를 직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화해를 향한 한 걸음을 내딛을 수 있는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상대를 용서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하고 복음으로 인하여 새롭게 변화된 관계를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나타내는 모든 영 가족들 되시길 바랍니다. 복음은 화해의 능력입니다. 복음은 회복의 능력입니다. 모든 영 가족이 복음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나타내는 삶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복음의 진리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심에 감사드립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깨어졌던 하나님과의 관계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의 능력으로 회복되었음을 믿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되었을 때에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용서하시며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주신 그 놀라운 은혜를 기억합니다. 하나님 아버지 우리의 삶이 복음의 증거가 되기를 원합니다. 우리가 화해의 중재자가 되어 가정과 교회 사회 속에서 하나님의 평화와 사랑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복음이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통해 드러나고, 우리의 삶이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도구가 되게 하옵소서. 특별히 사랑의 교회 모든 영가족들이 2025년 한 해를 살아가는 동안 박수 쳐주는 인생으로 세워져서 복음의 힘찬 깃발을 들고 세계 교회를 견인(牽引)하며 남북 통일의 비전을 품고 세계 선교의 마무리를 이끌어낼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그리하여 마침내 ‘2033-50의 비전’을 이루어 가는 이래 우리 모든 연가족들이 아름답게 쓰임받는 주님의 온전한 제자들로 세워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신실하게 인도하실 주님을 기대하오며 살아 계신 우리 고주 예수 그리스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요약 복음의 은혜로 다시 일으켜 세워져서 갈등을 직면하며, 깨어지고 무너진 관계를 회복할 용기를 주시길 간구해야 한다. 고통의 십자가 위에서 내미셨던 주님의 손에 자발적으로 내손을 포개는 십자가의 전달자 되어 복음이 이끄는 용서의 자리에서 화해의 시작점으로 쓰임받으며, 복음으로 통념을 완전히 뒤엎는 관계의 혁명을 일으키시는 주님을 확신하여 세상의 시선이 아닌 하나님 시각으로 형제와 자매를 새롭게 바라보는 자로 주 안에서 연합하여 하나님 나라를 성취하여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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