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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전집 58장]   

 

일이 잘 풀려 나갈 때 뜻밖의 슬픔이 생기는 법이다

苦心中 常得悅心之趣. 得意時 便生失意之悲.
고심중 상득열심지취. 득의시 편생실의지비.

괴로운 마음 속에 항상 마음을 즐겁게 하는 멋이 깃들일 것이다.
득의得意한 때에 문득 실의失意의 비애가 생기느니라.

[해설]

우주의 원리는 변환자재하여 항상 한 자리에 머무는 경우가 없다.
인간을 일컬어 소우주라 하거니와 인간사 역시 항상 변화한다.
따라서 곤궁에 빠져 허덕일 때는 다시 희락의 기회가 찾아올 것
이라는 소망을 가질 수 있고, 이와는 반대로 매사가 뜻대로
이루어져 나갈때에는 언젠가 어려움이 닥쳐올 것이라는
각오하에 더욱 노력하라는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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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전집 57장]   

 

인간본성의 참된 글을 불완전한 책 속에 묻어 버리지 말라


人心에 有一部眞文章이어늘 都被殘編斷簡封錮了하며
인심    유일부진문장          도피잔편단간봉고료

有一部眞鼓吹어늘 都被妖歌艶舞湮沒了하나니
유일부진고취        도피요가염무인몰료

學者는 須掃除外物하고 直覓本來하면 纔有個眞受用하리라
학자    수소제외물        직멱본래       재유개진애용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한 권의 참된 문장이 있건만
옛 사람이 남긴 책쪼가리 때문에 모두 묻혀 버린다.
사람마다 그 가슴속에는 한가락의 진정한 풍류가 있건만
세속의 요염한 가무歌舞로 인하여 갇혀 버렸다.
모름지기 배우는 자는 외물外物을 쓸어 버리고
근본을 찾는 데 힘쓸 때,
비로소 참 문장과 풍류를 얻을 수 있으리라.

[해설]

모든 사람의 마음에 하늘로부터 받은 이성(理性)과 감성(感性)이
있건만 대개는 잡동사니와 같은 지식과 어설픈 예술 따위에 의해
가려지고 만다. 지식인이라고 자타가 공인하는 사람 중에는
"그런 것까지도 아는구나"라며 감동을 주는 사람도 있지만 보다
높은 차원, 혹은 통찰력이라든가 창조성은 전혀 느낄 수 없는
사람인 경우가 적지 않다. 예술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명인들은
어중간한 사람들의 비판은 두렵지가 않지만 그 분야에 생소한
사람들이 직감적으로 하는 지적이 제일 무섭다고 한다.
천부의 자질을 살려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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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전집 56장]     

책을 읽더라도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문자의 노예이다


讀書 不見聖賢  爲鉛槧傭   居官 不愛子民   爲衣冠盜
독서 불견성현  위연참용   거관  불애자민  위의관도.

講學不尙躬行 爲口頭禪 立業不思種德 爲眼前花.
강학불상궁행 위구두선 입업불사종덕 위안전화.

글을 읽어도 성현을 보지 못한다면 "지필紙筆의 종"일 뿐이고
벼슬자리에 있어도 백성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관복을 입은
도둑에 지나지 않는다. 학문을 하면서도 몸소 실천함을 숭상하지
않는다면 입으로만 참선하는 사람일 뿐이요, 큰 일을 일으키고도
은덕을 심지 않는다면 눈앞에서 잠시 피었다가 지는 꽃일 뿐이다.

[해설]

실천의 중요성을 강조한 교훈이다. 학문을 하여 입신출세하는
목적은 국가와 민족에게 이바지하려는 것이거늘 목적과 상관없는
행동을 한다면 그것처럼 비참한 인생도 없을 것이다. 오늘날에도
입으로만 애사(愛社)하는 무리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기에 공자
(孔子)는 『논어(論語)』에서 "한 말은 반드시 실행에 옳기고 실행
하면 반드시 성과를 거두라"言必行 行必果"라고 역설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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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근담(菜根譚) 후집 제21장     


눈앞의 일에 만족할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이상향이다


都來眼前事 知足者仙境 不知足者凡境.
도래안전사 지족자선경 부지족자범경.

總出世上因 善用者生機 不善用者殺機.
총출세상인 선용자생기 불선용자살기.

눈앞의 모든 일을 만족한 줄로 알고 보면 그것이 곧 선경仙境이요,
만족할 줄을 모르면 그것이 곧 속세이다. 세상에 나타나는
모든 원인을 잘 쓰면 생기生機가 되고 잘못 쓰면 살기殺機가 된다.

『노자老子』에 '족한 줄 아는 자는 욕을 당하지 않는다(知足不辱)'
라는 말과 '족한 줄 아는 자는 부자이다(知足者富)'란 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족한 줄 알며 살아가는 것이 행복의 첩경이란
뜻이겠지요. 그런데 인간은 왜 만족할 줄을 모르는 것일까요?
인간의 욕심에는 한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부족함을
느끼며 불평과 불만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평생을 두고 부족함만 느끼며 살아갈 것이니
마음 속의 번민과 갈등, 시기와 질투는 또 오죽하겠는지요.
그런 생지옥 속에서 어서 벗어나라는 것이 저자 홍자성의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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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채근담(菜根譚) 전집 제20장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일하면 귀신도 그를 해칠 수 없다


    事事留個有餘 不盡的意思 便造物 不能忌我 鬼神 不能損我.

    사사류개유여 부진적의사 편조물 불능기아 귀신 불능손아.


    若業必求滿 功必求盈者 不生內變 必召外憂.

    약업필구만 공필구영자 불생내변 필소외우.


    무슨 일에 있어서든지 다소의 여지를 남겨 두는 마음이 있으면 조물주도 시기하지

    못할 것이오, 귀신도 해하지 못하리라. 그러나 만일 일마다 반드시 가득함을 구하고

    공功마다 가득함을 구한다면 안으로부터는 변란이 생길 것이고, 아니면 밖으로부터

    의 환란을 자초할 것이다.

    [해설]

    완벽주의에 대한 경고의 말이다. 사람이나 사물을 평가할 때,

    좋은 면을 보느냐, 나쁜 면을 보느냐에 따라서

    그 결과가 크게 달라진다.


    좋은 면만 보는 사람은 대상의 장점만을 보고,

    결함과 약점에 대해서는 '이것은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라며 남겨진 문제를 지적하는 사람이다.


    이에 반하여 나쁜 면을 보는 사람은 남의 결함과 약점을 샅샅이 지적하고

    비록 좋은 면이 있더라도 그것을 깔고 뭉개 버리는 사람이다.

    완벽주의란 거의가 후자에 속한다.


    그들은 마치 사냥개처럼 냄새를 맡으면서 돌아다니고 어떤 결함이

    발견되면 때를 만났다는 듯이 떠들어댄다.


    그리고 장본인에게는 변명할 여지조차 주지 않는다.

    남보다 높은 위치에 있는 이런 상사는 조직과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완벽주의를 버리고 좋은 의미에서의 대범함을 

    익히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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