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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10월 21일)

제목: ''고난의 유익''

말씀: 데살로니가후서 2:13~17절

설교자: 강대인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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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데살로니가 성도들에게 위안이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이것 때문에 스스로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또 한 가지 좋은 이유가 있었는데 이는 그들이 주께 사랑받는 자들이었다고 하는 것이다.

 

〔1〕은혜로운 선택의 부동성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처음부터 택하셨다.

(1) 선택의 시기: 그것은 처음부터였다.

(2) 선택의 목적: 그것은 구원, 곧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이다.

(3) 구원을 얻는 방법: 그것은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는 것'이다. 우리는 거룩했기 때문에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라 거룩하게 되기 위해서 택하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우리는 우리가 바라는 삶을 살아서는 안 된다. 거룩함과 복됨 뿐 아니라 믿음과 거룩함 역시 반드시 서로 결합된 것이어야 한다.

 

〔2〕복음으로 부르심의 효력(14절):그들은 또한 복음으로 부르심을 입었다.

그것은 영예롭고 복된 부르심일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으로의 부르심이다. 그러한 부르심을 입은 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어서 그의 영광을 보게 될 뿐만 아니라 그들 또한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될 것이며 그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들이 될 것이다.

 

2. 굳게 설 것을 권고함.

바울은 결코 "너희가 구원을 받을 자로 택하심을 입었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주의하지 않아도 되며 안심해도 된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굳게 서라고 말하고 있다. 즉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자신들이 고백한 기독교 신앙 안에 견고히 설 것을 권고 받고 있는 것이다.

 

▷그들을 위한 바울의 진정어린 기도.

1. 기도의 대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우리 아버지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께 뿐 아니라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께' 직접 기도할 수 있으며

또 그렇게 해야만 한다.

 

2. 바울에게 격려가 되었던 것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자신과 그들을 위해서 이미 행하신 것을 숙고함으로 힘을 얻는다. 하나님의 사랑이 곧 우리가 가지고 있거나 가지기를 바라는 모든 선의 발상이 되며 근원이 되는 것이고, 이 근원에서부터 우리의 온갖 위안이 나온다. 또한 성도들이 받는 위안은 영원히 계속되는 위안이다. 성도들이 받는 위로는 스러져 버리는 것이 아니다. 그들의 위로는 영생의 소망과 성도들이 바라는 것은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와 긍휼이며 또한 성도들의 소망은 이것들에 근거한 것이다.

 

3. 바울이 그들을 위해서 기도한 내용은...

그는 그들이 더욱 넘치는 위로를 가지기를 위해서, 그리고 굳게 서기를 위해서 기도했다. 위로는 굳게 서게 하는 수단인 것이다. 하나님의 길 안에서 즐거움을 가지면 가질수록 우리는 그만큼 그 안에서 우리가 굳게 서는 것 역시 위로를 위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머뭇거리거나 멈칫거린다면 우리는 분명히 신앙의 기쁨과 즐거움을 잃어버리게 되고 말 것이다. 우리는 모든 선한 일과 말에 굳게 설 수 있어야 한다. 우리의 선한 일과 선한 말에 의해 그리스도께서 높임을 받으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선한 영향력을 주시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선으로 바꾸셨다.

 

▶고난을 통해서 우리는 어떤 것을 얻을 수 있는가?

첫째로, 고난은 위로의 능력을 주신다.

- 모든 환난 중에 위로를 받아서 다른 사람에게 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둘째로, 고난은 하나님만 의지하게 한다.

- 바울은 능히 굳건하게 서라고 한다. 말씀을 의지해야만 고난을 이길 수 있다. 바울은 내 의지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만 바라보게 되었다. 고난이 견고하게 하고

셋째로, 고난은 기도하고 감사하게 한다.

-바울은 기도를 했다. 다른 사람들과 함께 기도했다. 합심하며 기도하며 간구하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하셨다는 것을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리기 때문이다. 기도의 응답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게 되는 것이다.

새 창조, 새 하늘이 일어나면 이 모든 고난은 사라진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만 의지하며 등불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요약

고난은 하나님이 위로를 주시며,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시며, 기도하고 감사하게 하신다. 주의 은혜가 아니면 단 한 순간도 우리는 살 수 없다. 어떠한 고난에도 하나님 앞에 굳건히 서서 서로 위로하고 기도와 감사를 하나님께만 기도하게 하시며, 고난 가운데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실 줄 믿기에 우리는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지고 걷는 자이다. 하나님이 입혀주시고 안아 주시지 않으시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어떤 유혹의 사탄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리의 말씀으로 굳건하게 영적 성장이 되어야 한다. 바울 사도가 고난 가운데 성도들에게 진리의 말씀으로 굳건하게 서게 한 것처럼 위로의 사람, 믿음의 사람, 기도의 사람으로 사용되기를 소망한다. 처절한 인생길에서도 책임지시고 이끌어 가실 것을 믿기에 진리를 붙잡고, 주시는 힘과 믿음 안에서 데살로니가 성도들이 다시 하나님 앞에 선 것처럼, 이 코로나의 어두움에서 고난이 유익임을 깨달아서 온전히 빚어져서 무장되길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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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9월 30일)

제목: “하나됨의 秘訣”

말씀: 다니엘 2:46-49절

설교자: 박인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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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니엘 2:46-49절)

46. 이에 느부갓네살 왕이 엎드려 다니엘에게 절하고 명하여 예물과 향품을 그에게 주게 하니라.

47. 왕이 대답하여 다니엘에게 이르되 너희 하나님은 참으로 모든 신들의 신이시요 모든 왕의 주재시로다 네가 능히 이 은밀한 것을 나타내었으니 네 하나님은 또 은밀한 것을 나타내시는 이시로다.

48. 왕이 이에 다니엘을 높여 귀한 선물을 많이 주며 그를 세워 바벨론 온 지방을 다스리게 하며 또 바벨론 모든 지혜자의 어른을 삼았으며.

49. 왕이 또 다니엘의 요구대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세워 바벨론 지방의 일을 다스리게 하였고 다니엘은 왕궁에 있었더

*다니엘은 굴러온 복을 차버리는 상황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11절-13절에 보면, 왕의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첫째=>서로에 대한 지지로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본문에 다니엘과 세 친구가 함께 먹지 않고 있다. 믿음의 친구들도 음식을 거절했다. 서로 지지해주는 것이며, 믿음의 결단인 것이다. 서로가 큰 힘이며 능력인가를 보여준다. 누군가가 나와 함께 있는 다는 것이 가장 힘이 된다. 결혼도 그렇다. 서로가 든든한 버팀목이 된다. 다니엘 11절과 13절을 보면, 함께 동참하는 친구들을 보면 믿음의 결단의 친구들이다. 그래서 다니엘과 서로 격려하며 인내하는 것이다.

잠언 4:12절에 보면 “한 사람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하느니라.” 공동체도 이렇게 서로 밀어주고 격려해 줄 때 든든한 버팀목이다. 레드우드 뿌리가 서로 지지해 주고 연결해 엮어져 있는 것처럼 서로가 이어지듯, 어떤 상활에서도 쓰러지지 않는다. 이것이 공동체의 믿음과 같다. 서로 지지해 주어야 한다. 잘못을 지적하는 것보다 믿어주고 사랑해주고 인정해 줄 때 더 서로가 더 큰 힘이 된다.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인내하시고 격려하시고 지지해 주셨다. 무엇보다도 뜨겁게 사랑하여 허다한 죄를 덮는다고 베드로는 예수님의 사랑을 깨달아서 우리에게 강권한 것이다. 그래야만 공동체가 하나가 된다.

 

▷둘째=>서로를 위한 중보기도로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서로를 위해 기도해 줄 때에 하나가 되는 것이다. 수많은 중보기도가 서로 터져 나올 때에 공동체가 세워지는 것이다. 중보기도가 그래서 가장 중요하다.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니 우리는 서로 함께 기도해야 한다. 특별한 느부갓네살의 꿈을 해석하는 다니엘이 2절:17-18절에 친구들에게 알리고 그들에게 중보기도를 요청한다. 다니엘은 집으로 가기전에 친구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서로 구하게 하고 우리가 주께 구한 것을 서로 중보기도 한 것이며 기도의 동역자가 된 것이다. 마음을 모아 간절하게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우리도 기도하고 있다는 것에 힘을 얻고 용기를 얻는 것이기에 중보기도가 중요하고 하나가 되는 것이다. 에스더의 중보기도처럼 민족의 위기 앞에서 모르드개에게 유다민족을 향해 기도를 요청한 것처럼 에스더4:15-17절에 금식하면서 기도하였더니 에스더가 유다민족에게 먹지 말고 중보 기도한 것처럼 그대로 행했더니 승리했다. 하나님은 중보를 통해 하나님은 역사하심을 알게 했다. 중보기도는 내가 그 자리에, 아픔과 고통, 슬픔의 자리에서 그를 위해 기도한다는 것이다. 동참한다는 것이다. 많으면 더욱 좋은 것이다. 중보기도가 수없이 함께 함에 승리가 있다. 중보기를 경험하지 않는 사람은 잘 모른다. 중보기도는 공동체를 세우는 힘이다. 장작불처럼 불 붙어서 합치어져 더 잘 타는 것처럼, 쇠까지 녹이는 풀무불이 되는 것이다. 중보기도의 수많은 역사가 일어나길 소원한다.

 

▷셋째=> 서로를 향한 섬김으로 공동체는 하나가 된다.

섬김으로 하나가 된다. 다니엘은 왕에게 이야기 하는데, 정확하게 해석한다. 과거, 미래에 대한 해석을 잘하게 되었다. 승승장구한 미래가 있었지만, 2:40절에 보면.> 다니엘이 왕에게 요구한 것은 친구들의 필요를 채워주고 세워주는 자였다. 서로를 위한 섬김이다. 마태복음 20:28절에 예수님이 자기의 목숨으로 우리를 섬기셨다. 우리는 나 중심이 아닌 타인 중심인 것이다. 상대편을 섬기는 것이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이다. 그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 것처럼, 그 섬김이 깊은 관심과 사랑이 필요한 것이다. 서로 돌보아서 그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어야 한다. 성령님으로 인도함에 따라 서로 내어 놓아야 한다. 필요를 따라 채우면 가난한 자가 없게 된다. 공동체가 부요해진 것이다. 공동체가 따뜻해 주는 하는 이야기도 있다. 한 예화로,,,귀국이라는 아이이다. 질병을 가진 자이다. 키가 자라지 않는 병이다. 귀국이를 붙잡고 함께 운동장에서 뀌는 모습이 참 아름답다. 귀국이에게 가장 추억이 되었을 것이며 그 친구들도 참 아름답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공동체를 주셨다. 가정과 우리 공동체에서 어떤 모습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우리도 잘 섬기고 있는가, 중보기도하고 있는가를 생각해 본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분명한 희망과 생명을 주실 것을 믿는다. 함께 은혜의 열매를 심고 따기를 소원해햐 한다.

 

♣요약

서로를 향한 지지, 격려, 우리 안에서 행해지는 서로를 향한 간절한 중보기도, 도고기도, 끝까지 함께하며 필요를 채우는 아름다운 공동체를 우리는 경험하고 있어야 한다. 또한 상대방의 잘못을 이해해주고 용납해 주어야만이 사랑이며 주님의 실천이다.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공동체로 더 풍성하게 하시기를 기도해야 하며, 가정과 공동체에서 내가 먼저 기도하고 내가 먼저 필요를 채워주며 나아갈 때에 우리 공동체와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주께서 원하시는 성령님이 인도하시는 가운데 말씀 가운데 열어 가실 줄 믿는다. 장작이 모여서 풀무불이 되듯, 온라인에서 기도의 장작이 하나하나 모여서 쇠도 녹이는 풀무풀이 되어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력에 감사하며 다니엘처럼 아름다운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느부갓네살의 꿈에 대한 다니엘의 해몽을 증거 한다. 느부갓네살 왕의 꿈은 앞으로 전개될 세상 역사와 그 역사의 종말에 관한 것이다. 다니엘은 이 꿈을 해석함으로써 바벨론 왕의 인정을 받고, 전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얻게 된다. 그러니까... 다니엘의 꿈과 해석을 들은 왕은 그것을 자신에 대한 모욕으로 생각하여 분개하지 않았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였다. 우리는 여기서 왕이 얼마나 감동을 받았는가에 대해서 보게 된다. 다니엘에게 꿈과 해석을 주신 하나님이 참신인 것을 고백했고, 다니엘 앞에 엎드려 절하였으며 예물과 향품을 하사했다. 그리고 다니엘을 바벨론의 제 2인자로 세우고 그의 친구들로 바벨론의 도를 다스리게 했다. 우리도 서로 지지해주고 사랑해 주고 중보기도 해주며, 서로 섬기면서 공동체를 아름답게 세워가야 한다.

www.sarang.org/tv/sermon.asp?sflag=wed&db_idx=20371

 
★박인기 목사님은 더 멋지시고 젊어지셨다. 그것은 성도님들만이 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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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2020. 6. 10)

제목:''흩어진 나그네들에게 ''

말씀::베드로전서 1:1~7

설교자: 김경덕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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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지에 대한 추억을 한두 개 쯤은 가지고 살고 있다. 편지함을 오래된 통을 꺼내 읽어보기도 한다. 모든 편지에는 이유가 목적이 있다. 개구쟁이 초등학교 아이가 갑자기 편지를 쓰는 것은 어버이 날이어서 쓴다. 유학 중인 딸이 왜 장문으로 아빠에게 이 메일을 쓰는가? 그것은 용돈이 떨어져서이다. 청년이 자매에게 밤바다 편지를 쓰는가? 좋아해서이다. 모든 편지에는 목적이 있다. 병무청장께서 편지를 보내는 것은 아들을 군대에 보내라는 뜻이고, 경찰서장께서 편지를 쓰는 것은 신호위반의 편지이다. 신약성경 27권중에 22권에 성경이 편지였다는 것이 편지였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성경의 저자요, 교회 지도자였던 사도들에게 편지를 써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교회가 갓 태동했던 시기에 교회들마다 당면한 이슈와 혹은 어려움이 있었다는 뜻이다. 편지 한 통을 누군가 건네 준 두루마리 한 통을 받게 된다. 두루마리 편지를 읽으면서 일고 난 사람은 평온하고 담담함으로 변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읽을 수 있도록 공동체에게 전했다. 읽는 사람과 보낸 사람은 누구인가? 학자들은 이 편지를 AD 63년에 기록된 것으로 말하고 있다. 황제 네로가 교회를 핍박할 때이다. 대 재앙과 대 환난을 앞둔 신앙 공동체에 보낸 편자라는 사실이다. 신앙 때문에 받는 이 시련은 언제까지 계속 되는가? 이 땅의 성도들은 이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가를 생각하며 이 편지를 받은 이 성도는 이 편지를 보낸 사람을 발견하고 치밀어 오르는 무언가를 느꼈을 것이다. 헬라어로 기록된 이 편지는 페트로스 ~~ 아파스톨로스 ~ 베드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이 편지는 베드로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최고의 사도 베드로가 썼다. 이 편지를 왜 썼는가?

 

* 베드로는 소아시아 지역에 거주하는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흩어진 나그네’(디아스포라)라고 한다. 디아스포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한 이후 전 세계에 흩어졌던 유대인들을 가리킨다. 베드로는 이 용어를 통해 그리스도인이 세상에 나그네 신분으로 살고 있음을 주지시킨다. 그리스도인은 비록 나그네요 이방인으로 살지만 하나님과 아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 베드로는 그것을 삼위 일체적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다.

첫째, 그들은 하나님 아버지께 미리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다.

둘째, 그들은 순종하는 자가 되도록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자들이다.

셋째,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받은 자들이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삼위 하나님의 전폭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음을 말해 주고 있다.

현재의 고난은 장차 얻을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그리스도인을 가리켜 나그네라고 하는 것은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고 배척을 당하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때로는 그 핍박이 극심해서 마치 불로 연단하는 것과도 같다. 그럼에도 그리스도인은 소망으로 인해 기뻐할 수 있다. 그 소망은 금보다도 귀하고 영광스럽고 존귀한 것이며, 그것은 썩지 않고 더럽혀지지 않으며 사라지지 않는 것이기에 ‘산 소망’이라고 말한다. 그 소망은 하늘에 간직된 기업으로써 우리가 종말의 구원을 통해 얻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러한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거듭났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시험 가운데서 보호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그 소망에 이르도록 인도하신다.

 

♣요약-

어려운 시간을 지나며 흩어져 있는 우리 성도들을 성령께서 말씀으로 연결하여 주시는 것을 믿고 나그네 같은 지금의 삶 속에서 말씀으로 주님과 동행하며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산 소망되시니 이 모든 고난과 근심은 잠깐일 것을 믿어서 주님 앞에 강한 척도 약한 척도 말고 겸손하게 세상 앞에서 당당하게 살기를 바란다. 금보다 더 귀한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라 하신 말씀을 소망으로 두고 흩어져 있기에 서로를 위해 더 기도하고 나그네 인생이기에 서로를 더욱 사랑하며 살아가는 우리 교회 모든 성도들이 되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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