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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2년 4월 9일)

제목:“예수님의 속마음”
찬양인도: 믿음의 4대 훈련생 연합찬양대
말씀: 마태복음 9:35-38
말씀읽기: 김영광(초등부),
대표기도: 김동현 장로님(전파사역부)
사회자: 김도훈 부목사님
마무리기도와 암송: 오정현 담임목사님

설교자: 홍문균 목사님-초빙(국제전도폭발 한국본부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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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9:35-38,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하나님 앞에 영광을 올려 드리고, 또 초대해 주시고 배려해 주신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 감사하다. 우리 신앙생활에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성경은 우리 신앙생활에 제일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신다.
 
*잠언4:23,
23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
-그런데 마음 지키기가 쉽지 않다. 어디서 그 증거를 잡느냐면 우리 자신이다. 말에 사람들은 마음먹기 달렸다고들 한다. 그 사람의 십 년 후를 보려면 지금 그 사람의 마음에 무엇이 담겨있고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떤 생각이 담겨있는 가를 보면 그 후에 십 년 후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여러분,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알기를 원하는가? 그 사람의 외모보다 그 사람의 마음 됨됨이를 보시면 그 사람이 그 사림이다. 사람들이 많이 속지 않는가? 우리 주님은 절대 속는 분이 아니시다. 사람들은 외모를 보고 속지만은 나는 사람들의 마음을 본다고 하신다. 주님의 그 불꽃같은 마음이 언제나 우리의 마음을 살피고 계신다는 생각을 생생하고 하고 사는 것, 신앙생활 하는 것, 대단히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마음은 사람들이 말하기를 열길 물속은 다 알지만 한 길 사람 속마음은 알기가 참 어렵다고 한다. 신비롭고 신비로운 것이 여러분과 제 마음이다. 우리 주님을 모신다고 할 때, 솔로몬이 말하기를 하늘에 하늘들에 하늘들의 하늘이라도 하나님을 모실 수가 없는데 어떻게 이 적은 지성소 공간에 임재하십니까!! 놀랍지 않는가? 그런데 그 성령 그 하나님이 그 영광의 주님이 우리 마음에 계시다는 것, 얼마나 신비로운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마음이 한 번 예수님을 모시고, 성령님을 모신다음에 줄기차게 그 예수님의 중심이어야 하는데 세상적인 것, 죄악된 것, 무엇보다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도사리고 공격하고 상처주고 무너뜨리고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 성경은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우리 하나님도 우리의 마음을 불꽃같이 살피시면서 그 중심에 임재하시는 동시에 사탄도 우리 마음에 들어와서 우리를 지배하기를 원한다. 드디어 지배당한 사람이 한 사람이 있다.
 
*요한복음 13:2,
2 마귀가 벌써 시몬의 아들 가룟 유다의 마음에 예수를 팔려는 생각을 넣었더라.
-마음이 지배당하니까 가룟 유다의 삶의 전체가 주님을 배신하고 완전히 무너지는 그의 인생으로 전락되고 있는 것을 성경을 통해서 잘 알게 된다.
 
우리 예수님께서도 이 마음에 대해서 여러 모로 말씀을 가르치셨다. 잘 아는 ‘씨 뿌리는 비유’, 그리고 예수님 당시 서기관 율법사 장로들의 마음의 상태를 보시면서 ‘어찌 너희들 마음은 무덤처럼 부패하고 더러운 것만 있느냐?’ 하신다. 성전이 있고 예배가 있고 전통이 있고 또 ‘일주일에 금식이 있고, 십일조 정확하게 바치고 있으면서 너희 마음은 그렇게 위선으로 가득 차 있냐?’고 하신다. 예수님께서 강하게 지적을 하셨다.
 
제가 어떤 분이 이렇게 기록한 것을 읽고 제 자신을 깊이 살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가장 심각하게 짓는 죄가 있다. 그것은 마음의 얄팍함이다. 너무 가볍고 너무 쉽게 예수님을 이야기 하고, 하나님을 이야기 하고, 성령님을 이야기 하고, 그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존귀하심과 영원하심을 이야기 하면서 그 실생활의 내용을 보면 너무나 가볍게 어떻게 보면 희미하게 주님을 섬기고 있는 그런 모습을 이 얄팍함으로 표현했다.
 
이아침 예배하는 우리 성도님들 마음이 얄팍하다고 생각지는 않다. 그러나 그런 위험성은 언제나 도사리고 있다. 오는 본문을 통해서 우리 예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을 가지셨을까? 마태복음 마가복음 요한복음 89장에서 우리 예수님은 공생애 3년을 비롯해서 33년의 삶을 사신 그 내용을 우리가 소개 받는데 그 영광의 하나님의 본체이신 주님께서 이 땅에 발을 딛고 3년 공생애 사역을 하실 때에, 과연 어떤 마음으로 이 세상의 삶을 사셨을까?
 
저는 신구약 66권을 통해서 우리 하나님의 마음, 거룩한 성령, 우리 주님의 마음을 잘 소개를 받지만은 특별히 오늘 본문 네 구절에 의해서 우리 주님의 마음이 확연하게 드러나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말씀을 같이 나누면서 이아침 나온 모든 성도님들이 주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고 주님을 아름답게 섬겨가는 복된 기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원한다.
 
*마태복음 9:35,
35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예수님의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모든 마을에 두루 다시셔서 예수님의 마음에 모든 도시와 마을 가득 차 있다. 예수님은 하루의 시작을 하시면서 오늘 어디를 갈까? 어느 마을로 갈까 하시면서 샌들을 신고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와 열 두 제자들과 함께 “오늘은 어디로 가지?” 그 도시 그 마을이 왜 예수님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가? 구경 할 거리가 있어서 그런가? 맛 집을 찾기 위해인가? 친구를 만나기 위서인가? 아니다. 그 도시와 마을에 있는 사람들 만나기 위해서이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사실 때, 주님의 마음을 가득히 사람들이 가득 차 있었다. 가르치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쳐 주시기 위해서이다. 그들에게 찾아가서 그들에게 무엇을 얻고자 하신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도시에 모든 마을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을 돕기를 원하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원하셨다. 그들에게 친구가 되길 원하셨다. 그들을 경쟁에서 무너뜨리고 짓밟고 내가 올라가기 위해서 주님은 찾아가신 분이 아니셨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사는 시대는 무한 경쟁하는 시대이다. 누구와 경쟁하는가? 옆에 있는 사람들, 옆에 있는 친구들과 경쟁한다. 그런데 우리 주님은 경쟁하시는 분이 아니시다. ‘찾아가야지, 찾아가지 않으면 저들이 진리를 알지 못하고, 복음을 알지 못하고, 악한 사탄에 생각에 따라서 살겠지, 도와주어야지,’ 하신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런 면에서 주님의 마음을 품고 사는 사람으로 끊임없이, 끊임없이 세상을 찾아가는 성도인줄로 믿는다. 찾아가는 성도, 우리의 시선을 2천 년으로 돌이켜 본다. 1세기로 돌아가 본다. 1세기에 가장 팔레스타인 지역에 센세이션(sensation)을 일으키신 분이 예수님이시다. 예수님께서 등장하자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뭐야 이거? 하면서 목수의 아들이 이럴 수 있는가? 한다.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다. 38년 된 병자를 그냥 일으켜 세우신다. 문둥병, 앉은뱅이, 팔 마른 사람들, 나중에는 죽은 자를 살려내신다. 갈릴리 호수를 걸으신다. 사람들이 인산인해로 모였다. 우리 주님께서 어떤 집에 가셨을 때, 그 예수님께 친구 병자를 데려오기 위해서 지붕을 뜯은 것을 알지 않는가? 주님은 가만히 계시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막 몰려온 것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주님이 모든 도시와 모든 마을에 두루 다니면서 찾아가셨던 주님, 절대 이러면 안 된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든 세우고자 하시고 영혼을 구원하고자 하셨던 그 열정을 35절에서 발견하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주님의 마음이 우리 마음이 되기를 바란다. 우리는 찾아가는 사람이다. 그리스도인이 누구인가? 편한 자리에서 불편한 자리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편안한 자리에서 불편한 자리로 찾아가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구약 성경을 보면 계속 찾아오시는 하나님이셨다. 모세야, 사무엘아,~~ 구약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 찾아오는 사람들이 없었다. 우리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모든 마을에 두루두루 찾고 나가셨던 주님은 사도행전 2장 성령께서 임재하시며, 성령께서도 사람을 계속 찾아가신다. 이 거룩한 성령께서 임재 하시면 성도들이 움직이기 시작한다. 사도행전에서 사람을 찾아가시는 거룩한 성령님이시다. 우리 주님을 모신 분들의 특성도 찾아간다. 찾아가는 사람이다. 우리 성도님들께서 가만히 앉아 있다면 돌아보아야 한다. 주님의 마음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모든 도시와 모든 마을만 두루두루 찾고 계신분이 아니셨고 그 마음속에는 온 천하가 있었다. 땅 끝이 있었다.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사도행전 1:8,
8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찾아가라. 가서 네 증인이 되어라, 그리스도인은 앉아 있는 앉은뱅이가 아니어야 한다. 그 마음속에 그 이웃을 향한 찾아가서 도와주고, 그들을 세우고,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성공시키는 사람들, 그와 같은 성도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기대하신다. 예수님의 마음은 찾아가야지, 찾아가야지, 라고 하신다.
 
찾아가야 한다. 준비하고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교회 안에서 제일 미운 사람은 가만히 앉아 있는 사람이다. 주님 편에 있는 사람은 들썩한다. 일어난다. 찾아간다. 이웃들에게 길을 연다. 마음 상태를 본다. 예수님을 믿고 있는가를 확인하기를 원한다.
 
두 번째 마음을 발견하게 된다.
*마태복음 9:36,
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왜 그렇게 주님은 가만히 계셔도 사람들이 오는데, 이렇게 모든 도시와 모든 마을에 오지 않는 사람들을 찾아나가셨는가? 왜 사람들에게 주님은 찾아가기를 원하신가? 제일 미운 게 사람이다. 고집불통에다. 갑자기 마음이 변했다가, 또 화를 내다가 애같이 어른이 그런다. 그런 사람들을 주님은 그렇게 찾아가시기를 원하시는가? 여기 동기가 나온다. 주님의 마음에 눈물이 있다.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계셨다. 이 마음 때문에 찾아갈 수밖에 없는 분이셨다. 왜 주님의 마음에 측은지심, 불쌍한 마음이 있었을까? 그 대상의 자리에 영적 상태가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기(최악의 상황) 때문이다. 양에 대해서 잘 모른다. 중동 사람들은 양을 너무 잘 안다. 공격무기, 방어무기가 없는 특별한 짐승이다. 목자가 없으면 끝장이다. 그래서 목자 없는 양은 최악의 상황이다. 그런 사람을 말한다. 설명하기를 ‘고생하며 기진함이라.’라고 하신다. 이 고생하며 기진한다는 말은 죽기 전에 헐떡임을 이야기 한다. 그래서 가서 도와주지 않으면 그냥 끝난다. 짐승에게 물리기도 하고, 또 물도 못 먹고 그야말로 넘어져서 최후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런 목자 없는 상태로 사람들을 보신다. 그야말로 최악의 상태, 죽음 직전 사람으로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다. 여러분, 사람들을 볼 때, 이런 불쌍한 마음이 있었는가?
 
집에 불이 탔는데, 소리 지르면 그럴 때 어떤가? 여러분 멀리 있는 게 아니고 형제 중에 중환자 실에 있으면 어떤가? 어떻게 하더라도 살려달라고 할 것이다. 그 애타는 마음이 있다. 우리 주님은 공생애 3년 동안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셨다. 그렇다면 당연이 우리도 그 주님을 모시고 있는 우리 마음속에 이 주님의 뜨거운 긍휼과 사랑의 마음이 우러나야 예수 믿는 사람이 아니겠는가?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을 보시면서 불쌍히 여기는 여러 이유 중에 하나는 그 사람들이 예수 믿지 않고 하나님 믿지 않고 세상 떠나면 지옥이다. 지옥을 알고 계셨다. 마태, 마가, 누가복음에 지옥이라는 말이 열한 번 나온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지옥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시는 분은 예수님뿐이시다. 사람들이 지옥 어쩌고저쩌고 해도 지옥 전문가는 예수님이시다. 거기는 한 번 들어가면 회력이 없다. 누가복음 16장에 보면 부자와 나사로의 예화를 주님께서 하시는데 부자의 죽음은 그렇게 신나게 살다가 죽으니까 그 부자의 죽음이 지옥 입구더라. 여러분 세상 사람들이 세상을 떠나면 어디로 간다고 생각하는가? 예수 안 믿으면 지옥이다. 지옥이란 말이 쉽게 나오는가? 얼마나 무서운 곳인데... 그래도 침묵하고 있다면 이것은 주의 마음이 아니다.
 
“만일 네 손이나 네 발이 범죄 하거든 찍어 내버리다. 장인이나 다리 저는 자가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과 두 발을 가지고 영원한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 하게 하거든 떼어 내 버리라. 한 눈으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 불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성경 중에서 제일 끔찍한 부분이 여기이다. 그 자비하신 주의 입에서 지옥 갈 경위에는 찍어버리라. 잘라버리라. 떼어버리라. 이것은 사람을 잡아놓고 눈을 확 뽑고, 생사람을 세워놓고 톱으로 손을 자르고 한다면 생각을 해보라. 얼마나 끔찍한가? 그것보다 더 끔찍한 게 지옥이다. 이것을 주님이 보고 계신 것이다. 그런데 예수를 믿으면 영원한 천국에 갈 텐데 놀랍게도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 4보음 가운데에 89장에 천국이란 단어가 36번이 나오는데 34번을 예수님이 이야기 하신다. 예수님은 지옥과 천국의 전문가이시다. 영광의 천국이 얼마나 놀라운 곳인데 그 백 년 천 년 사는 곳이 아니고 영원한 세게 영원한 영광을 하나님과 보내는 곳이 영생의 장소인데, 예수님만 믿으면 되는데, 그 예수를 안 믿기에 무서운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다. 주님은 가만히 계실 수가 없다. 그 사람들을 볼때에 너무 불쌍하신 것이다.
 
제가 군에서 유격훈련을 받을 때 한여름이었고, 굉장히 힘들었다. 그런데 해병대 특수 병들이 헬리곱터를 타고 고흥으로 내려가서 낙하산을 타고 내려오는 고공침투 훈련을 하는 훈련이었다. 우리가 훈련을 하면서 보니까 조교가 쉬라고 했다. 그늘에서 보니, 낙하산병들이 오는 게 얼마나 보기 좋았는지 모른다. 그런데 한 순간 모든 대원들이 소리 질렀다. 벌떡 일어났다. 한 병사가 뛰어 내리는데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것이다. 다른 사람들은 전부 물결처럼 내려오는데 이 군인은 직방으로 뚝 떨어졌다. 그때 제 마음이 너무 서늘했다. 슬펐다. 자기 사랑하는 아들을 군대에 보냈는데 자기 아들이라고 가정을 해보라. 부모가 그것을 보았을 때, 떨어지는데 왜 낙하산이 안 펴지는가? 태평하게 생각하겠는가? 내 아들이라고 생각하면 어떻게 해서라도 무슨 일을 해야 되지 않겠는가? 예수 안 믿으면 그 낙하산 병사처럼 펴지지 않는 낙하산이 되듯이 그냥 떨어지듯이 뚝, 한다.
 
친구, 가족, 형제, 떨어지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이 편안하다면 예수님의 마음을 모르고 있으며 우리가 믿는 복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예수님의 깊은 마음, 불쌍히 여기는 마음, 여기 불쌍히 여긴다는 마음은 심장이 터진다는 것이다. 그 영혼을 건지시려고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십자가까지 오르셨다. 예수님의 깊은 속마음은 ‘불쌍하다. 너무 불쌍하다.’ 이 마음이 여러분과 저의 마음이시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마지막 주님의 깊은 속마음을
 
*마태복음 9:37-38,
37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38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우리 예수님의 마음이 확고하시고 바쁘시다. 이유는 추수할 곳은 많은데 일꾼이 너무 적다는 것이다. 추수할 것이 많은데 거둘 사람이 없다. 그 추수할 많은 것 때문에 일꾼이 필요하지만 또 다른 이유 때문에 일꾼이 빨리 필요하다. 그것은 ‘때’ 때문이다. 일 년 농사는 모내기, 김매기, 농약치고 여름을 김매면서 보내고, 그런 후에 가을에 추수를 한다. 가을 추수가 일 년 중 가장 귀한 때이다. 그런데 농사를 잘 지었어도 그 때에 곡식을 거두지 않으면 곡식이 썩는다. 때, 때문이다.
 
*요한복음 4:35,
35 너희는 넉 달이 지나야 추수할 때가 이르겠다 하지 아니하느냐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예수님을 믿는 마음, 아직 넉 달이 있어야 된다. 영적추수는 그 사람이 죽으면 끝난다. 화급한 것이다. 그런데 예수 믿는 사람은 영혼구원에 대해서 때를 놓지면 안 된다. 때를 놓치면 안 된다. 제가 전도폭발을 하면서 때를 많이 놓쳤다. 급하게 전화가 온다. “우리 아버님이 지금 중환자실인데요.” 심방을 마치고 좀 늦었다. 그러고 몇 번이나 그래서 돌아가신 분들이 계셨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복음을 전해 달라고 하면 최우선이다. 그것보다 더 귀한 것이 없고 그것보다 더 바쁜 일이 없다. 여러분 왜 그렇게 분주하고 바쁜가? 때를 놓치면 안 된다. 건강보험, 생명보험, 다 들어놓고 노후를 편안하게 지내려고 한다. 더구나 영생보험까지 든 분들이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어느 날 편안히 믿고 편안히 살다가 숨 떨어지면 천국으로 쏙 올라가려고 한다. 그러기를 원하시는 분,,, 한분도 안 계시길 바란다.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주소서 하라.” 추수하는 주인이 “하나님, 그런데 이 일꾼이 하고 싶은 사람들이 다가 아니구요 주인이 보내주는 일꾼이어야 합니다.” 라고 말한다. 왜냐하면 다들 안가니까,,, 안하려고 하니까 주인이 밀어붙여서 오도록 해 달라는 것이다. 여기 보내주소서, 는 등을 떠밀어서 보내주도록 하라는 것이다. 통계를 보면 교회 안에 실제로 일어나서 미국 같은 곳은 전도하는 사람이 5%이다. 한국교회는 한 10%정도 될 것이다. 우리 사랑의교회 4만 성도가 만 명이 그렇게 떠 밀려가서 현장에 나온 것은 아니겠지만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는 답을 갖고 계시듯이 전도하는 일이다. 우리 주님의 마음이다.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 찾아가야 한다. 영혼을 구해야 한다. 바로 지옥이니 너무 좋은 천국이 있는데 우리가 조금만 도와주면 되는데, 시간이 많다고 생각하지만 금방이다. 그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언제나 조심하게 살아야 한다.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온 천하 만민을 찾아갈 사람이 누구인가? “주님, 저보다 이 사람을 보내세요.”라고 하지 말고 “주여 저를 보내 주세요.” “30배 60배 100배는 얻지 못한다 할지라도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겠습니다. 적어도 우리 가족, 우리 친구들, 우리 동기들이라도 주님 예수 믿도록 도와주고 싶습니다. 저를 사용해 주세요. 주님의 마음을 주세요. 이 강퍅한 마음으로는 안 됩니다. 찾아가는 마음도 주시고 제 마음이 그리스도의 눈물, 긍휼함으로 채워주시고, 주님의 마음으로 제 마음을 채워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함으로 주께서, “그래, 내 마음을 주노라.” 응답 받는 이아침이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요약
 예수님이 말씀하신 추수는 우리가 마지막 한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추수를 말씀하시는 것이며 추수할 일꾼을 보내달라고 하신 것은 바로 생명구원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무조건적인 사랑을 우리가 깨달아서 영생을 얻게 하고 복음을 전파해서 영생을 얻는 자들이 많아지기를 원하신다. 때가 중요하니 제 때에 추수를 해야만이 곡식이 썩지 않듯이 때를 놓치지 말고 우리는 복음을 전파해야 한다는 것이다. 주님이 모든 천하를 두루 다니시고 전파하신 것처럼 우리도 가만히 앉아 있지 말고 일어나 찾아 다니며 전파를 해야 한다. 그래서 알곡이 하늘에 쌓여서 주님 나라에 헌신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우리가족 내 형제부터 구원을 시켜야 지옥에 가지 않게 하는 것이다. 주의 마음으로 우리 마음을 채우고 주님을 아름답게 섬겨가며 복음을 전파하는 온전한 제자로 살아야 하며 예수님의 속마음으로 깨달아서 약한 자를 돕고 그들의 친구가 되어 성공시키며 주님이 찾아가듯 우리도 찾아가서 섬기고 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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