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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대기업이 벤처 사야 창업생태계가 산다"

 


한경 스트롱코리아 창조포럼

한국경제신문과 미래창조과학부가 공동 주최한 ‘스트롱 코리아 창조포럼 2013 대토론회’가 지난 10일 밀레니엄서울힐튼호텔에서 열렸다. 이날 토론에서 각계 전문가들은 “한국이 경제강국이 되기 위해선 벤처형 창조기업을 집중 육성해야 한다”는 점과 “젊은이들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고 과학기술 분야에 뛰어들고 창업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토론회 내용을 정리한다.

#대기업, 벤처인 수 더 늘어야
전문가들은 벤처기업 육성정책을 쏟아냈다. 남민우 벤처기업협회장은 “대기업이 벤처기업을 인수하는 것은 잡아 먹는 게 아니라 키우는 것”이라며 “벤처 투자가 선순환되는 창조경제 생태계를 만들려면 대기업이 더욱 과감하게 벤처기업 인수합병(M&A)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최문기 미래부 장관은 “M&A를 활성화시켜 100억원, 200억원의 돈을 번 벤처 부자가 많이 나오게 하겠다”며 “창조경제는 대기업 또는 벤처기업이 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창업을 통해 돈을 번 사람들이 재창업하거나 엔젤투자자, 멘토로 나서면서 자연스럽게 창업 생태계를 형성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희범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은 “중국이 해외 우수 인재 1000명을 유치하겠다는 천인(千人)계획을 세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데 우리도 이공계 인재에 대한 전폭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며 “숫자를 늘리기보다는 지금 인재들이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장학금 혜택을 대폭 늘리자”고 제안했다.

임덕호 한양대 총장은 “창업 관련 지표가 하나도 없는 현재의 대학평가 시스템에서는 기업가 정신을 가르칠수록 대학 평가 순위가 떨어지는 모순을 겪게 된다”며 “대학 생태계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도 “교육 시스템이 창업보다 새로운 연구를 하라고 부추기기 때문에 ‘SKY(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인재들이 창업하지 않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정갑영 연세대 총장은 “대학에서 학문에 얼마나 포커스를 맞출 것인지, 창업을 지원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청년창업 토양이 마련돼야
토론자들은 창조경제를 실현하고, 행복한 일자리를 창출하기 위해선 벤처 창업을 더욱 장려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2000년대 초의 벤처 거품이 재연되는 것을 우려해 감시·감독에 신경 쓰기보단 공격적인 벤처 육성정책을 세우고 청년들이 자유롭게 창업에 나설 수 있는 ‘벤처 토양’을 마련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이다.

토론회에서 정규재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실장은 “거품 없는 벤처 성장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던졌다. 남 회장은 “2000년 국내에서 발생한 벤처 거품은 일부 부작용을 낳기도 했지만 이후에 많은 벤처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또 “거품이 전혀 없이 특정 산업이 발전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고 덧붙였다.

정부지원책과 관련해 이상목 미래창조과학부 제1차관은 “정부는 올해 미래창조펀드와 크라우드펀딩 등을 통해 총 6조9000억원의 창업투자금을 지원할 계획”이라며 “벤처기업이 대출이 아닌 투자 위주로 자금을 조달하고, 많은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정부가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하고 세제 혜택을 제공하는 등 기업하기 좋은 ‘판’을 벌이면 민간 기업이 실질적인 창조경제를 주도해 나가기 바란다”고 말했다.

벤처기업이 생산한 상품을 판매하는 ‘유통채널’을 확충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가수 싸이가 글로벌 스타가 된 것은 유튜브라는 유통채널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일본에는 도큐핸즈(TOKYU HANDS)라는 벤처기업의 아이디어 상품을 판매하는 공간이 있지만, 한국에는 벤처기업들이 양질의 상품을 만들어도 정작 이를 소비자에게 팔 수 있는 창구가 없다”고 말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적대적인 관계가 될 수밖에 없는가”라는 정 실장의 질문에 이 부회장은 “대기업이 커다란 판을 펼쳐놓으면 중소기업들이 이와 연계된 새로운 아이디어 상품들을 쏟아내고 있어 사실상 상호 협력적 관계로 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석·박사만 좇는 풍토는 문제

“산업계에서는 한양대 공대 라인이 셉니다. 서울대, KAIST 학생들은 기업에 안 가기 때문이에요. 그렇다고 창업을 하느냐? 그렇지도 않아요. 다들 석·박사만 하려고 하죠.” 박병원 전국은행연합회장은 “국내 대학들은 시스템 자체가 창업을 장려하지 않다 보니 기존 기술이 산업현장에서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강혜련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은 “기업이 나서서 학생들에게 ‘비전’을 제시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미국에서는 IBM, 모토로라, 시스코 등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과학·기술·공학·수학(STEM) 캠프를 열어 과학기술 분야 직업의 청사진을 그려준다는 것. 김종갑 지멘스 회장은 “대학 졸업자를 뽑으면 재교육과 적응기간만 6개월에서 3년까지 걸린다”며 “학교에서 기업이 필요로 하는 교육을 해야 산업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고 강조했다.

김태훈 한국경제신문 기자 tae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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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50년 한국 성장은 창조산업에 달렸다"

“제조업과 첨단산업이 지난 50년간 한국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면, 앞으로 50년은 창조산업이 한국의 새로운 성장동력이 될 것입니다.”

박구선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KISTEP) 부원장은 ‘스트롱코리아 창조포럼 2013’에서 ‘창조경제시대, 과학기술이 동력이다’란 주제 발표에서 이같이 강조했다. 넓은 땅도, 부존자원도 없는 한국이 지난 50년 동안 국내총생산(GDP)이 30배 늘어 세계 15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한 것은 과학기술이 뒷받침됐기 때문이란 것이다.

박 부원장은 “지금 한국이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고 있는 메모리반도체, 평판디스플레이, 고속전철, 차세대 원자로 등이 모두 1992년 시작한 G7 사업의 결과물”이라며 “더 넓게 보면 1962년 기술진흥 5개년계획을 발표하고, 1966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을 세운 것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창조산업을 육성하기 위해 ‘포스트 G7 사업’을 시작할 것을 주장했다.

정지훈 명지병원 정보기술(IT)융합연구소장은 “정보통신기술(ICT)이 다른 산업보다 우월해서가 아니라 다양한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더 많은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토대가 되기 때문에 매우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미래시장연구실장도 “한국의 경제성장률과 산업별 고용유발계수가 계속 떨어지는 상황에서 창조경제로의 전환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 <성공을 부르는 습관> 한경닷컴,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편집-2013.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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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국회 나설 일 아닌데도 관여…멍드는 시장경제

재계가 6월 임시국회를 앞두고 바짝 긴장하고 있다. ‘입법 만능주의’에 빠진 국회가 경제민주화 차원에서 어떤 법을 양산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법의 타당성과 실효성을 제대로 따지지 않은 채 각종 규제를 담은 법이 쏟아지면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법을 만드는 행위 자체는 국민이 국회의원에게 부여한 고유 권한이지만 최근의 입법 활동은 과도하다는 시각이 많다.

 

 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 국회 상황은 입법 과잉”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국회가 나설 일이 아닌데 관여하고, 갈등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면서 법으로만 해결하려 한다”고 지적했다. 국회가 모든 갈등을 법으로 해결하려는 입법 만능주의에 빠졌다는 비판이다.

#브레이크 없는 의회 국회의 과잉 입법은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간 불합리한 ‘갑을(甲乙)’ 관계를 손보는 법안(공정거래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이른바 ‘남양유업’ 사건을 빌미로 여야는 불공정거래 행위에 대해 최대 10배의 손해배상액을 물리는 법안을 경쟁하듯 내놓고 있다. 주무부처 수장(노대래 공정거래위원장)까지 “가맹본부와 가맹사업자 간에 문제가 조금 있다고 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해 관련 법을 무턱대고 만들 수는 없다”고 우려했을 정도다. 과도한 입법 추진은 필연적으로 부실 입법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규제 심사와 공청회 등을 거치지 않아도 되는 의원입법의 특성 때문이다.

 

 지난 4월 국회는 2016년부터 정년을 60세로 연장하는 법안(고용상 연령차별금지법), 화학물질 유출 사고가 난 기업에 연간 매출의 5%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는 법안(유해화학물질 관리법)을 충분한 의견 수렴 절차 없이 통과시켰다. 두 법안 모두 “시기상조” “과잉 처벌”이라는 지적이 많았다. 그럼에도 6월 임시국회에서 이런 법안 통과가 되풀이될 여지가 크다는 데 문제가 있다. 여야는 3일 국회를 열어 공정거래법 개정안(대기업의 부당 내부거래 규제 강화), 금융회사지배구조법(대주주 적격성 심사 확대) 등 파급력이 큰 법안을 처리한다는 계획이다.

#국회보좌진 기업엔 '슈퍼 甲' 

 

 불공정 거래 행위를 손보기 위한 공정거래법 개정안 입법 바람이 불면서 아이러니컬하게도 국회가 또 다른 슈퍼 갑(甲)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모 의원실 비서관은 업무와 관련이 있는 기업 등에 가족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렸다. 국회와 정부부처를 담당하는 대관(對官)업무 직원들은 이를 두고 골치를 앓고 있다. 국회 정무위는 각종 경제민주화 관련 법을 다루는 상임위다. 한 관계자는 “요즘은 국회의원 자녀들도 알리지 않거나 축의금을 받지 않고 조용히 결혼하는데 청첩장을 받고 이름을 확인한 순간 깜짝 놀랐다”며 “자신의 결혼식도 아닌 가족의 결혼식 청첩장을 돌리는 건 너무한 것 아니냐”고 말했다. 국회 보좌진이 해당 기업의 상품이나 서비스 이용 등을 공짜로 요구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한다.

 

 대관업무 담당자들이 이처럼 ‘하을(下乙·을 중에서도 낮다는 의미)’로 지내는 건 경제민주화 바람을 타고 각종 입법이 난무해 의원이 아닌 의원실 보좌진에게서도 얻을 수 있는 정보가 많기 때문이다. 국회 관계자는 “몇몇 의원을 제외하면 사실 입법에 대해 모르는 의원이 많다”며 “의원은 입법 방향을 지시하고 실무는 보좌진이 알아서 하는 경우도 많고, 방향 지시에도 보좌진의 입김이 많이 들어간다”고 전했다.

 

#법사위원회 월권 논란도 

 ‘입법 홍수’라 불릴 정도로 많은 법안이 쏟아지며 주목받고 있는 곳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법사위)다. 법사위는 각 상임위원회에서 올라온 법안들에 대한 법체계 검토와 수정을 할 수 있는 권한을 갖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일고 있는 법사위 월권 논란은 각 상임위에서 ‘자격 미달’ 법안이 올라오기 때문에 법사위가 이를 과도하게 수정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시각이 있다. 4월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유해화학물질관리법 개정안’이 대표적이다. 여야 환경노동위원들이 유해화학물질 유출 사고로 중대한 피해를 일으킨 업체에 물리는 과징금 기준을 ‘기업 전체 매출의 10% 이하’로 정했지만 법사위원들이 이를 ‘개별 사업장 매출의 5% 이하’로 고쳤다.

 

 이에 여야 환노위원들은 법사위가 개정안의 본질적 내용까지 수정해도 되느냐며 크게 반발했다.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법사위처럼 특정 상임위에다 법 체계 및 자구 심사권을 부여해 옥상옥(지붕 위에 또 지붕을 얹는다는 뜻으로 불필요하게 일을 이중으로 하는 것을 의미)을 만들어주는 사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미국은 물론 다른 어느 나라 의회를 보더라도 특정 상임위가 다른 상임위에서 통과된 법안의 내용을 멋대로 고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다”고 말했다. 또한 “법사위가 상임위 및 소관부처 간 조정 기능을 맡고 있다고 착각하는 것 자체가 문제”라며 “법사위의 고유 기능으로 명시된 법 체계 및 자구 심사권도 폐지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주장했다.

 

이태명 한국경제신문 기자 chihir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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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진국 의회는 의원입법도 '규제심사' 의무화 

 

미국 영국 독일 등 선진국의 의원입법 과정은 깐깐한 편이어서 졸속 입법 시비가 거의 없다. 민주적 절차에 따른 입법의 역사가 긴 이들 국가 역시 다양한 시행착오를 겪은 뒤에야 정교한 제도를 도입할 수 있었다. 전문가들은 한국도 브레이크 없는 의회 권력을 제어하기 위해 선진국의 몇몇 입법 장치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는 의원 발의 법안이 의회에서 정식 논의(청문회) 전에 대부분 폐기된다. 첫 번째 관문인 소관 상임위원회의 서류 심사를 통과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의원들이 낸 법안들은 한국의 감사원 격인 회계감사원(General Accounting Office)에서 엄밀하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상임위에 제출한다. 이 자료를 바탕으로 상임위는 가치 있는 법안을 고른다. 의원법안만 허용하는 영국도 전문적인 규제개혁 기구를 의회 내에 두고 있어 규제 법률이 쉽게 통과되지 못하는 구조다. 정부 각 부처에도 규제심사국이 있으며 상·하 양원에는 규제개혁을 전담하는 위원회를 각각 두고 있다.

 

 또 영국 규제정책 위원회, 네덜란드 행정부담자문위원회, 스웨덴 규제철폐위원회 등도 규제 법안의 타당성을 촘촘하게 따지고 있다.

 

프랑스도 2008년 헌법을 개정해 입법에 따른 규제 영향을 평가하고 있다. 국회 입법조사처 관계자는 “법안 제출권이 정부와 의회 모두에 있는 독일은 80% 이상이 정부 입법 법안이고 의원 입법만 가능한 미국과 영국도 대부분 법안이 정부에서 나온다”며 “한국과 달리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필요한 법만 새로 만들어진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편집-20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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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기적’을 이끈 남덕우 전 국무총리가 지난 18일 오후 9시55분 숙환으로 별세했다. 고(故) 남 전 총리는 수년간 전립선암을 앓아왔다. 최근 노환이 겹치면서 병세가 악화돼 강남 세브란스병원에 입원했으나 결국 유명을 달리했다. 향년 89세.

고인은 1945년 국민대 정치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경제학 석사, 미국 오클라호마주립대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 시절이던 1964년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 발탁돼 제24대 재무부 장관이 됐다. 이후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 제14대 국무총리 등 14년간 공직 생활을 하면서 한국의 산업화를 주도했다.

공직에서 물러난 후 1983년부터 제18~20대 한국무역협회장을 지냈다. 이 기간 동안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센터와 코엑스전시장 등 무역 인프라를 만들었다. 별세 전까지 한국선진화포럼 이사장과 전국경제인연합회 원로자문단 좌장, 무협과 산학협동재단 고문 등으로 활발히 활동했다.

#한국 산업화의 일등 공신
‘운명이다. 할 수 없다.’ 1969년 10월 남덕우 서강대 경제학과 교수는 납덩이같이 가라앉은 마음으로 스스로를 타이르며 청와대로 향했다. 관료가 된다는 것 자체가 실감나지 않았던 그에게는 축하 인사도 어색하게만 느껴졌다. 장관 임명장을 준 박정희 전 대통령이 남 교수에게 다가왔다. “남 교수, 그동안 정부가 하는 일에 비판을 많이 하던데, 이제 맛 좀 봐!” 주위에서는 웃음이 터져나왔다. 1982년 국무총리에서 물러날 때까지 14년간 계속된 그의 공직 생활은 이렇게 시작됐다.

고인은 1969년 박 전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재무부 장관으로 전격 임명됐다. 당시는 산업화를 위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장관 임기가 끝나면 대학강단으로 돌아갈 생각이었지만 결국 성사되지 못했다.

박 전 대통령은 “정치는 내가 맡을 테니 경제장관들은 경제 살리기에 전념해달라”며 전폭적인 신뢰를 보냈다. 고인은 1974년 재무부 장관에서 부총리 겸 경제기획원 장관으로 영전했다. 1979년 대통령 경제담당 특별보좌관을 맡았다. 이 기간 동안 사채동결, 증권시장 개혁, 중화학공업 육성 등 굵직굵직한 경제 정책을 진두지휘했다. 최장수 재무장관(4년11개월), 최장수 부총리(4년3개월)라는 기록도 세웠다. 이후 1980년부터 82년까지 국무총리를 맡은 뒤 공직을 떠났다.

#은퇴후에도 시장경제 수호 활동

한국 경제 현대사의 산증인인 그는 건국 이후 경제관료 중 최고로 꼽힌다. 이론과 실무를 겸비했고, 기획력과 추진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고인은 특히 반대 의견에도 귀를 기울였다. 그가 2009년 발간한 서예집 ‘지암 남덕우 서집’ 첫 장에 나오는 논어 구절 ‘화이부동(和而不同)’은 삶의 지침이었다. ‘소인은 서로 같다면서 화하지 못하고 군자는 서로 다르지만 화한다’는 이 구절은 서로 입장이 다르더라도 대의를 위해서는 화해할 수 있다는 정신을 강조한 것이다. 고인은 “공직에 있는 동안 나와 생각이 같지 않은 사람들과 호의적으로 대화하고 설득하면 문제를 풀 수 있다는 것을 느꼈다”고 말하곤 했다.

고인은 학자와 관료 시절 ‘대한민국의 성장’을 위해 노력했고, 은퇴 이후 ‘수출 확대와 대한민국의 선진화’에 힘썼다. 1983년부터 1991년까지 제18~20대 한국무역협회장으로 재직하면서 한국 무역의 중흥기를 이끌었다. 서울 삼성동 종합무역센터 건립을 주도, 코엑스 전시장을 만들고 한국무역정보통신을 세웠다. 고인은 당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외국 바이어가 테헤란로에 방문하면 무역센터 빌딩에서 한국 업체를 만나고, 전시장에서 상품을 고르고, 현대백화점에서 선물을 사고,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 잠을 자고, 공항터미널에서 출국 수속을 밟는다”는 청사진을 밝혔다.

고인은 2005년 구평회 E1 명예회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 등과 함께 재단법인 한국선진화포럼을 설립해 경제 원로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이 재단은 한국 사회의 선진화를 목표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연구하는 민간 싱크탱크다. 작년 9월 대선을 앞두고 전직 경제부총리 12명과 함께 경제민주화에 대한 토론회를 개최해 출자총액제한제도 부활, 신규 순환출자 금지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또 최근까지 TCC동양 산하 우석문화재단 이사, 서강포럼 고문, 전국경제인연합회 윤리위원회 위원, 한국무역협회와 산학협동재단 고문으로도 활동했다.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연도 각별하다. 고인은 2002년 박 대통령의 한나라당 시절부터 후원회장을 맡았다. 2007년 한나라당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에서는 경제정책자문단의 좌장을 했다. 지난 대선에서도 박 대통령에게 경제 자문을 했다.

서욱진 한국경제신문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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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강학파 주도…외환위기 전까지 수출성장 정책 주도

고(故) 남덕우 전 총리는 1970년대 고도성장 정책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서강학파의 좌장이다.

서강학파는 한국 경제학계에서 최초로 학파로 인정받았다. 1960년대 미국에서 신고전주의 경제학을 배운 뒤 귀국해 서강대 교수로 활동한 사람들이 주축이다. 성장을 최우선시해 서구식 경제 근대화 모델을 토대로 대기업과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 정책을 펼쳤다.

고인이 1969년 재무부 장관에 임명된 것은 서강학파의 경제 이론이 정책으로 실현되는 계기가 됐다. 고인은 수출 지상주의, ‘선 성장 후 분배’ 등을 통한 압축 성장을 추진했다. 고인과 함께 ‘서강학파 트로이카’로 불리는 이승윤, 김만제 전 부총리도 고인과 마찬가지로 철저한 성장론자였다. 박정희 전 대통령은 1971년 이 전 부총리를 금융통화 운영위원, 김 전 부총리를 한국개발연구원(KDI) 초대원장으로 기용했다. 서강대 교수 출신들을 차례로 중용한 것이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도 서강학파를 많이 썼다. 전 전 대통령은 서강학파인 신병현 전 부총리, 김재익 전 경제수석을 기용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승윤 전 부총리, 김종인 전 경제수석 등을 중용했다. 1997년 외환위기가 터지자 성장 중심의 경제 정책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비판을 받으면서 서강학파는 입지가 좁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박근혜정부 들어서면서 다시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 김인기 중앙대 명예교수, 홍기택 산은지주 회장 등 서강학파들이 주목을 받게 된다. 박근혜 대통령 캠프에 합류했던 김종인 전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을 포함해 김병주 서강대 명예교수, 김덕중 전 교육부 장관 등도 서강학파로 분류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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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온라인신문협회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2013.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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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cus] 패션은 메시지다…"옷은 총보다 강력한 무기"

 

박근혜 대통령 패션 스타일

1961년 4월 미국의 피그스만(Bay of Pigs) 침공 사건으로 존 F 케네디 당시 미국 대통령과 샤를 드골 프랑스 대통령은 껄끄러운 사이가 됐다. 이때 케네디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에 동행한 퍼스트 레이디 재클린 케네디가 프랑스 국민과 언론의 환대를 받음으로써 관계 회복에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당시 재클린 여사가 프랑스 패션업계를 위한 특별 조치로 프랑스 대표 브랜드인 ‘지방시’를 입은 것이다. 이는 지금까지도 패션의 힘을 말해주는 사건으로 회자된다. ‘워너비 재키’란 책을 쓴 미국의 여성 기업인 티나 산티 플래허티는 “옷은 총보다 강력한 무기다”고 말한다. 패션의 힘을 일찍이 깨달은 유명 연예인, 정치인들은 인기 관리나 메시지 전달에 패션을 이용하고 있다. 잘 갖춘 패션은 시각적으로 바로 전해져 설명을 덧붙일 필요 없이 효율적으로 전달되는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최근 미국을 방문한 박근혜 대통령도 다양한 의상 콘셉트로 눈길을 끌었다.

#女정치인 옷은 국민과 소통수단


워싱턴포스트의 패션저널리스트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로빈 기번은 “여성 정치인이 입은 옷은 정치적 성명 발표와 같다”고 말했다. 특히 정치 지도자의 경우 더욱 그러하다. 여성 대통령의 옷은 단순한 의복이 아니라 국민과의 소통 수단이 될 수 있다. 직접적인 연설도 중요하지만 패션과 같은 간접적인 커뮤니케이션은 정치 성향이나 신념을 효율적으로 전달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후 국내에서도 패션 정치에 관심이 높아졌다. 헌정 사상 첫 여성 대통령이고 박 대통령이 취임식 당일에 다섯 차례나 옷을 바꿔 입으면서 박 대통령의 패션을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구글에서 박 대통령 패션을 검색하면 500여만개의 관련 기사가 나올 정도다. 박 대통령은 옷의 디자인은 바지 정장으로 비슷하지만 그날그날의 상황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에 따라 색깔을 달리하고 있다. 취임식과 경찰대 졸업식에선 군복과 흡사한 카키색 재킷을 입었다. 녹색은 안보를 강조하는 의미와 함께 안정감과 무게감을 주는 색으로 평가받는다. 한국거래소를 방문해 5년 내 ‘코스피 3000 시대’를 열겠다고 했을 땐 빨간색(빨간색은 주식시장에서 주가 상승의 표시) 의상을 선택했다. 북한의 핵실험 대국민 담화 때는 무채색 계열의 의상으로 긴장감을 나타낸 것으로 해석된다.

#브로치 vs 핸드백 정치

지난 1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타애나시 보어 박물관에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의 브로치 전시회가 열렸다. 전시회 제목은 “내 브로치를 읽어보세요.” 올브라이트 전 장관은 이른바 ‘브로치 정치’로 유명했다. 그는 벌 나비 거미 악어 등 갖가지 모양의 200여개 브로치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2000년 6월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햇살 모양의 브로치를 달아 김대중 정부의 햇볕정책을 지지한다는 뜻을 표현하기도 했다.

철의 여인으로 불렸던 전 영국 총리 마거릿 대처 여사는 핸드백을 자신의 카리스마를 발산하는 데 활용했다. 대처 여사는 항상 딱딱한 사각형 모양 핸드백을 들었다. 또각또각 구두 소리를 내며 각료들 앞에 나타나 핸드백을 책상에 휙 올려놓은 뒤 좌중을 긴장시켰다고 한다. 실제로 대처 여사의 핸드백 때문에 ‘공격적’ 혹은 ‘자기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다’는 의미로 ‘핸드배깅(handbagging)’이라는 신조어가 나왔을 정도였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부인 미셸 여사도 패션 정치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다. 미국 서민층 대상의 저가 브랜드 옷을 즐겨 입는가 하면 미국 신진 디자이너들의 의상을 자주 입어 전 세계에 자국 제품을 홍보해준다. 2011년 백악관에서 열린 국빈만찬에서는 한인 디자이너의 드레스를 입고 이명박 대통령 내외를 맞이해 지혜롭게 패션을 이용하는 면을 보여줬다.

#정치인 패션 수시로 도마에

반면 패션 정치에 모르쇠로 일관하는 여성 정치인도 있다.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대표적이다. ‘패션 테러리스트’로 구설수에 오를 정도인 메르켈 총리는 버튼이 3개 달린 재킷과 정장 바지로 일관된 스타일을 추구한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메르켈 총리의 패션 구설수가 오히려 친근함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유럽 재정 위기 속에서도 독일을 잘 이끌어온 총리의 국정 능력이 조금은 부족한 패션 센스를 친근함으로 승화시켰다는 분석이다.

여성 정치인들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외모와 옷차림으로 도마에 오르곤 한다. 패션에 너무 신경 쓰면 사치스럽다 하고, 못 입으면 못 입은 대로 구설수에 오른다. 어떤 정책을 내놓고 무슨 발언을 했느냐도 중요하지만 여성 정치인들의 패션이 던지는 메시지 또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다. 힐러리 클린턴 전 미국 국무장관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블라우스 단추를 몇 개 풀었는지까지 보도될 정도로 정치인의 패션은 단골 뉴스거리다.

패션 정치에 의미 부여가 과하다는 의견도 있다. 정치인은 정치인일 뿐이고 옷에 과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느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말과 행동보다 빠르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패션의 힘도 무시할 수만은 없다.

손정희 한국경제신문 연구원 jhso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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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정치인은 넥타이를 주목하라!

패션스타일로 대중에게 자신의 철학과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패션 정치’는 여성 정치인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남성 정치인도 의상을 통해 자신만의 이미지를 형성하고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다. 특히 넥타이는 메시지 전달의 핵심 코드다. 슈트가 ‘남성이 공식적으로 입는 옷’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담고 있다면 넥타이는 크기는 작지만 전체 슈트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다. 흔히 넥타이가 오케스트라의 제1 바이올린에 비유되는 이유다. 오케스트라의 무대 중앙에 배치돼 사소한 실수라도 하면 금방 드러날 수밖에 없는 제 1바이올린처럼 남성의 패션에서 가장 주목받기 때문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는 부드러운 느낌의 슈트와 함께 초록색 타이로 친환경적 이미지를 연출한다. 드리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은 몸에 붙는 슈트와 강렬한 색상의 넥타이로 역동적인 이미지를 강조한다. 남성 정치인들은 대개 푸른색 타이로 대중에게 활력이 넘치는 인상을 주려 하고,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할 때는 강렬한 붉은색 타이를 한다. 붉은색 타이는 주가 상승을 바라는 의미에서 금융맨들도 애용한다. 소속 정당의 상징색 넥타이를 의식적으로 선택하기도 한다.

지난해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민주당을 나타내는 푸른색 넥타이를,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붉은색을 주로 맸다.

미국에서는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의 표정, 손짓, 옷차림까지 분석해 통화정책 방향을 예측하는 ‘패드 워처(Fed Watcher·Fed 정책분석가)’가 활동할 정도로 영향력 있는 사람들의 패션을 철저하게 분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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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5,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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