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로 세금이 덜 걷히면서 정부의 하반기 경제 운용에 비상이 걸렸다. 올해 세수가 당초 목표(210조3981억원)보다 10조원 이상 펑크날 경우 국내 경제가 하반기에 ‘재정절벽(재정지출 대폭 삭감)’ 상황에 직면할 수 있기 때문이다. - 6월25일 한국경제신문
☞ 침체된 경기를 부양해야 하는 데다 복지 수요 또한 크게 늘어나 쓸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닌데 나라 곳간은 점점 비어가고 있다. 게다가 세금마저 잘 걷히지 않는다.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의 첫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조어) 국가들의 얘기가 아니다. 바로 대한민국의 현재 모습이다.
정부가 쓰는 돈은 국민들의 호주머니에서 나온다. 정부로선 세금을 낭비하지 않고 세금 수입(세수·稅收) 범위내에서 지출하는 게 원칙이다. 만약 세수는 뻔한데 펑펑 써댈 경우 PIGS처럼 나라 살림이 파탄에 이르게 된다. 또 올초 미국에서 보았듯이 정부의 갑작스러운 재정 지출 축소(재정절벽)는 경기를 급속히 위축시켜 경제에 큰 부담을 줄 수 있다.
불행히 우리나라에서도 PIGS의 재정위기와 미국의 재정절벽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그 기미는 정부 지출은 폭증 추세인데 세수는 뒷걸음치고 있는 데서 찾아볼 수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 1~4월에 걷힌 세수(국세 기준)는 73조6437억원으로 작년 같은 기간보다 9조3521억원 줄었다. 그 결과 4월까지 걷힌 세금은 올해 세수 목표(199조원)의 35.4%로, 지난 5년간 같은 기간 평균 징수율 41.1%보다 5.7%포인트가 낮다. 전년 동기보다 세수가 줄어든 건 이례적이다.
왜 세금이 걷히지 않는 것일까? 그 이유는 경기 불황과 저성장으로 기업의 법인세가 줄어든 데다 가계도 소비를 줄여 상품을 사고 팔 때 내는 부가가치세 또한 감소했기 때문이다. 우리 경제는 최근 8분기 연속 성장률이 0%대에 머물고 있다.
이런 사정은 지방자치단체도 마찬가지다. 중앙정부는 국세를 걷고 지자체는 지방세를 걷는데 서울시의 올 지방세 수입은 5월 말 현재 4조5568억원으로 목표액(4조9886억원)보다 4318억원(8.6%) 적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서울시의 지방세 징수는 12조30억원에 그쳐 목표액(12조6110억원)보다 6080억원이 적고 지난해보다 2411억원이 줄어든다.
정부는 부족한 세수를 메우기 위해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실시하고 지하경제 양성화에 목을 매고 있다. 하지만 이는 정도(正道)가 아니다. 쥐어짜기식 세수 확보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세금 수입을 늘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경기를 살리는 것이다. 경제가 성장하면 기업과 개인의 소득이 늘어나고 자연스럽게 세수도 증가한다. 조세연구원에 따르면 성장률이 1%포인트 오르면 세수는 2조원 정도 늘어난다.
또 하나 중요한 건 정부가 세금을 아껴 쓰는 것이다. 세수가 줄어들면 △국민들에 대한 세금 부담을 늘리거나(增稅) △지출을 줄이거나 △나랏빚을 늘리며 미래 소득을 앞당겨 쓰는 세 가지 중 택일해야 한다. 박근혜 정부가 선거 때 내세운 복지공약을 실현하려면 5년간 135조원이 필요하다. 정부는 여기에 필요한 돈을 ‘비과세 및 감면 축소’와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확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순진한 생각이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벌써 뭉칫돈이 장롱 속으로 숨어들게 하는 역풍을 맞고 있고, 비과세·감면 축소는 기업의 투자를 줄이는 부작용이 우려된다.
결국 정부 지출을 줄이는 게 해답인 것이다. 씀씀이를 줄이지 않고서 나라살림이 버텨낼 리 만무하다. 하지만 정부 지출은 되레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 당장 지자체들이 보육예산 지원을 늘리라고 중앙정부에 손을 벌리고 있다. 서울시 등은 0~5세 무상보육 사업으로 전국 지자체 부담이 지난해보다 1조4000억원이나 늘었다며 중앙정부의 지원을 촉구했다. 65세 이상 노인에게 최대 월 20만원씩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재정건전성을 무너뜨릴 시한폭탄이 될 가능성이 아주 높다. 이대로 가면 중앙과 지방정부 모두가 대규모 적자의 수렁에 빠져들 게 뻔하다.
정부로선 이제라도 국정 우선순위를 재조정하고 씀씀이를 줄여야 한다. 복지 지출도 꼭 필요한 계층이 자립할 수 있도록 돕는 데 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지자체들도 호화 청사 신축 같은 낭비를 없애고 허리띠를 졸라매야 한다. 이렇게 해야 국민의 혈세를 물쓰듯 쓰는 ‘세금 도둑’들을 몰아낼 수 있다.
정부가 미국의 양적완화 축소 검토로 건설 조선 해운 등 취약 업종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이 있을 수 있다고 보고 회사채 시장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외환위기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썼던 회사채 신속인수제와 채권시장안정펀드 등의 재도입이 검토되고 있다. - 6월25일 한국경제신문
☞ 채권은 발행 주체에 따라 △국가가 발행하는 국채 △지방자치단체가 발행하는 지방채 △특수법인이 발행하는 특수채 △금융회사가 발행하는 금융채 △기업이 발행하는 회사채로 구분된다. 이 가운데 회사채(corporate bonds)는 기업이 설비자금이나 운용자금 마련을 위해 회사가 채무자임을 표시해 발행하는 유가증권으로 사채(社債)라고도 한다. 개인의 빚인 사채(私債)와는 다르다. 회사채는 주식과는 달리 회사가 이익을 내든 못 내든 미리 약속한 일정한 이자가 지급되고 상환약속일(만기)에 상환되는 게 특징이다.
회사채 시장은 기업이 필요한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중요한 시장이다. 그런데 최근 국내 회사채 시장은 기업 신용도에 따라 양극화가 심화되고 일부 기업들은 사채 발행이 어려워지는 등 얼어붙고 있는 조짐이다. 특히 경기 침체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해운 건설 조선업종 기업들이 회사채 발행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올 들어 신용등급 ‘A’ 이상으로 높은 신용도를 가진 회사채는 8조9000억원 순발행된 반면 ‘BBB’ 이하 낮은 신용도의 회사채는 순발행액이 1조3000억원 줄었다. 건설 조선 해운업종의 올해 회사채 순발행액은 각각 5000억원, 6000억원, 3000억원 감소했다. 회사채를 새로 발행하지 못하고 기존에 발행됐던 사채도 갚아야 했다는 뜻이다.
회사채 신규 발행이 여의치 않거나 이미 발행돼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의 차환 발행이 순조롭지 않을 경우 해당 기업의 자금사정엔 심각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건설 조선 해운업종 회사들이 발행한 회사채 중 6~12월 만기가 돌아오는 회사채는 총 4조7000억원에 이른다. 전체 회사채 만기 도래액 23조원의 20% 수준이다.
게다가 우량기업마저 투자자가 없어 회사채 발행에 실패했다.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총재의 출구전략 발언 이후 세계 금리가 상승세를 보이면서 시장금리가 더 상승할 것으로 예상한 투자자들이 회사채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회사채 시장의 안정화 방안을 마련하고 있는 것은 전체 금융시스템이 흔들리는 걸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금융위는 회사채 신속인수제 도입, 채권시장안정펀드 조성 등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2001년 시행된 적이 있는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채권 은행들이 모여 지원할 대상 기업을 선정하면 해당 기업이 사채를 발행하고, 이를 정부가 주인인 산업은행이 발행 총액의 80%를 사주는 제도다. 나머지 20%는 채권 은행과 기업이 나눠 인수한다. 채권시장안정펀드는 금융사들이 낸 돈으로 펀드를 조성해 회사채를 사들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