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5월1일)
제목: ''역리의 세상에서 순리대로 사는 법''
말씀: 로마서 1:24~27
설교자: 조준일 목사님(울산 대영교회 청소년부 회장 초빙)

기도회 인도 : 오정현 담임 목사님
--------------------------------------------

(롬 1:24-27)
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오늘은 주일학교 자녀들이 많이 왔다 사람이 바뀌려면 의식개혁이 되어야 한다. 그다음은 생각의 센스가 있어야 한다.-마음이 젊어져야 한다는 것이며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능력이 중요하다. -담임 목사님-

 

▶조준일 목사님(울산 대영교회 초빙)
-이렇게 귀한 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게 되어 기쁘다. 담임 목사님과 사랑의교회 성도님들께 진심으로 감사하며, 이 말씀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고 그 진리 가운데 변화와 결단의 은혜의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올 때에 사람들은 밀레니엄이라고 해서 많은 변화가 이루어졌다. 그 변화를 뒤로하고 입대를 했다가 오니 세상이 그 순간 짧은 순간에 많이도 변화가 되었다. 제일 먼저 충격은 오락실이었다. 오락게임 등이었는데 새로 출시된 것들은 발판을 뛰는 것도 나오고 춤을 추는 것이 스텝대로 하는 것 등이 놀라게 했다. 또한 복학을 하려고 보니 수강신청을 하게 되는데 학교에 가서 해야 하는 시스템이 변화하여 인터넷을 통해야 하는 PC방이나 집에서 수강신청을 3분 만에 신청을 해야 하는 시스템이 되어 있었다.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모든 것이 기계적인 것이어서 열심히 하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문제는 인식과 사상의 변화이다. 아직도 사람들의 생각이 이렇게 변하게 한 것을 잊지 못한다. 충격을 받은 한 수업을 잊지 못한다. 형법강론이라는 수업에서 여자 교수님은 마치 연예인 중에 한사람을 언급했다. 트렌스젠더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자가 여자가 된다는 트랜스젠더라는 말도 익숙하지 않았다. 받아들여지지도 않았다 그 교수님은 젠더들의 신분이 변경신청을 하여 수강을 신청하는 것에 대해 질문했다. 이 사람은 남자인지 여자인지를 질문하기도 했다. 당시 예비역들은 놀랄 수 없었고, 밀레니엄의 인식의 변화가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다. 누가 봐도 여자가 아닌 남자인데 대법원은 본인의 성을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법적으로 바뀌게 됨이 인정했다. 밀레니엄의 시대의 인식의 변화가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그 후 우리 사회가 문화적으로 극심한 갈등을 일으키게 될 것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를 분명히 창조하셨다.

이 사회는 마치 콘센트처럼 인공적으로 법과 사회적 합의라는 젠더를 끼우면 얼마든지 성별이 바뀌게 하는 것처럼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문화는 창조질서를 역행하는 역리이다. 반드시 심각한 문제를 야기 할 수밖에 없다. 20년 전 청년의 때의 불길한 예감이 시간이 갈수록 맞아떨어졌다. 지금은 어떤 것이 진짜 성경적인가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조차도 혼란스러워하는 문화적 변화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저 연예인의 문제가 학교, 정치, 사회, 공공기관, 문화, 심지어 교계에까지 들어오게 되고 거기에 대한 성경적 기준을 갖추지 못한 교회나 성도들은 자신도 모르게 비 성경적인 내용을 문화라는 이름으로 수긍하게 되는 어처구니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는 이것을 역리의 시대라고 말한다. 역리라는 것은 순리의 반대이다. 조금 더 성경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모든 것을 역리라고 한다. 그리고 역리의 시대란 하나님의 진리에 어긋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시대를 이야기 한다. 순리를 바꾸어 역리가 상식이 되면 역리가 순리가 되는 것이다. 이 말이 익숙하지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밀레니엄에 변화가 급속히 빨라지는 세상과 사회가 문화적으로 극심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창조질서를 무시하는 역리였다. 중요한 것은 학교 정치 공공기관 등에 비성경적인 것이 문화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하나님은 그런 시대를 보시며 기뻐하신 적이 한 번도 없으시다.

오늘의 본문 로마서는 고린도에 있던 바울이 로마교회를 그 지역 전도를 위해 베이스캠프로 쓰기 위해 쓴 편지이다. 당시 로마교회는 여러 문제가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성경적으로 해결해 주면서 동시에 진짜 복음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서 설명해 주고 있다. 바울은 1장에서 복음에 존귀함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18절부터 갑자기 이 시대의 더러운 문화를 고발한다.

 

*로마서 1장 18절을 보면,
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하지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부터 나타나나니

-하나님이 당시의 로마 사람들의 죄를 보시고 진노하셨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하나님의 진노는 죄에 대한 불쾌함이다. 매우 불쾌해 하셨다. 당시 로마시대는 죄악이 절정에 달했던 시대였던 것 같다. 죄를 짓고 또 짓다 못해서 24절에 보면,

 

롬 1: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버려 두사 그들의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하나님이 내벼려 두셨다고 하신다. 그 결과는 26절이다.

26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부끄러운 욕심에 내버려 두셨으니 곧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하나님의 노하심의 절정이 죄의 버려두심이고 버려두심 결과 인간의 욕심이 극에 달한 현상이 동성애로 드러났음을 이야기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순리를 바꾸어 역리로 쓰는 시대라고 표현하고 있다.

당시 로마시대 동성애는 상상을 초월한다. 심각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에 로마황제였던 네로 황제는 자신의 임신한 부인의 배를 차서 죽여 버렸다. 그리고 난 후에 수포로스라는 한 남자청년에게 반해서 동성애를 즐긴다. 그것도 그 청년을 거세시켜서 결혼까지 한다. 그 뒤로도 황제는 사람들이 있던 없던 스포로스와 성적인 유희를 즐겼다고 한다. 역사에 처음 기록된 트랜스젠더인 것이다. 그 외에도 황제열전이라는 책을 읽어보면 그 기록에 열두 명의 황제 중에 열 한 명의 황제들이 동성애를 즐겼다고 나온다. 황제가 이정도이니까 귀족이하 모든 국민들은 쾌락의 끝에 동성애가 있음을 문화로 인지했던 것이다. 자연스러워진 것이다. 그 현상을 보며 바울은 역리가 진리를 대신하는 시대를 안타깝게 여기고 이 상황에 대한 성경적 입장을 우리에게 전하게 된 것이다. 역리가 순리가 되는 것이 비록 로마시대만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이다. 역리가 순리가 되어 하나님이 진노하실 만한 일들이, 불쾌하실 일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제도화 되고 있고, 교육되고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사실 오늘 굉장히 마음이 어렵다. 요즘 청년들은 축복과 격려로 원하는데 어쩌면 지적과 지탄과 회개를 강조하는 설교일 것이다. 그러나 로마서도 하나님의 은혜를 말하기 전에 그 땅에 죄를 먼저 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더욱 더 간절히 바라게 했던 것처럼 오늘 설교 이후에 하나님의 순리를 향한 불같은 마음이 일어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한다. 이 땅은 지금 어떤 상황이며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오늘 본문 26절에 나오는 역리는 파라피쉬라고 하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자연 질서에 대항하다는 것이며 대적하고 거스르다 라는 것이다. 26절에 보면, 여인들이 역리로 쓰고 남자들도 순리를 버리고 부끄러운 일을 했다고 나온다. 단수가 아닌 여자들 남자들이다. 사회의 다수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역리 문화를 만들어 냈다는 것이다. 한 두 명이 그 사회에서 그 죄를 지으면 사회적 에피소드 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가 된다는 것은 다른 문제이다. 문화가 된다는 것은 역리가 정상으로 인식된다는 것이고 상식이 되는 것이며 제도화 된다는 것이다. 제도화 된다는 이야기는 법으로 만들어지고 그것이 교육되어 진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 시대에 동일한 현상들이 엄청나게 많이 일어나고 있다. 바로 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이다. 그것이 울산에서 시작이 되고 있다. 가르치는 내용도 놀랍다. 이 작이 오래전부터 서울에서도 이미 착실하게도 준비되고 있는 것이다. 울산보다 20년보다 먼저 서울에서 포괄적 성교육이 많은 사람들에게 가르쳐지고 있다. 그리고 작년부터 공교육에 커리큘럼에 포괄적 성교육에 엄청나게 애를 쓰고 있다. 우리의 자녀가 학교에서 받는 성교육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

 

▷포괄적 성교육이 무엇인가?

-교육청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포괄적 성교육은 여성과 남성의 성에 대해 신체 구조적 차이와 같은 생물학적 특징만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를 중심으로 인간의 생애에서 성과 관련된 모든 경험을 포괄하는 교육이다. 라고 말하고 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 대충 좋은 의미 같다. 남녀가 평등이라는 뜻으로 여겨지고 대충 넘어간다. 정의가 모호하면 강론을 열어보고 구체적으로 우리 아이들이 무엇을 배우는지를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우리 자녀들의 성교육이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은 유네스코의 제도인 성교육을 따른다고 한다. 그게 무엇인지 서울 성문화센터에서 찾아보니 크게 8가지 영역으로 나온다. 보니 젠더교육이 중간에 떡하니 있다. 젠더교육이 무엇인가? 젠더는 존 머니라는 학자가 처음 제시한 단어이다. 기존의 남성 여성을 해체하고 모든 성은 사회적 역할에 따라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라고 말하고 있다. 여자가 될지, 남자가 될지, 혹은 양성이 될지를 자신의 성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는 인정하는 것이라고 하며 인정하지 않으면 차별이고 억압이고 부당한 대우이라고 교육하는 것이 젠더 교육이다. 역리가 순리가 되는 교육인 것이다. 이제 성에 대한 아이들에게 성은 ‘네가 결정할 수 있는 거야’ 성이 선천적으로 정해지는 것이 젠더 차별이야라고 교육하는 것은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을 정면으로 대항하며 순리적으로 살지 못하게 하는 교육이다. 이것을 우리는 찬성할 수 없다. 우리 아이들이 이 교육을 받게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이 반대를 많이 했다. 이것을 이름만 살짝 바꾸어서 ‘성 인지 교육’이라면서 교육한다. 워낙 유명한 단어이다.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성인지 감수성 부족이라는 단어라고 들어 보았을 것이다. 서울에서도 작년에 초등학교 대상의 부모를 교육했다. 성인지 감수성이란 단어 그래도 성에 대한 느낌이다.

이성을 대할 때 이것이 차별인지 폭력인지 성적인 부당한 대우에 대한 느낌인 것이다. 성 인지 감수성, 나쁘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 괜찮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이 단어의 원래 명칭은 젠더 센서티버티(gender sensitivity이다. 젠더 민감성, 사회적 정치적으로 성별을 정할 수 있고 성경이 정한 것 외에 다수의 성이 인정받아야 하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한 민감성, 젠더 민감성, 이것이 성 인지 감수성의 원래 뜻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다르게 만드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한 거룩한 구별이 있기 때문이다.

젠더 이데올로기는 이것을 해체하는 것이다. 남성, 여성, 그 외에 다수의 여러 성들을 인정한다. 그리고 성별로 고정된 역할을 주는 것은 차별이고 폭력이며, 젠더 감수성이 떨어진다고 표현하고 있다. 동성애를 보고 이상하다. 정상이 아니다 라고 표현하면 성인지 감수성이 떨어지는 것이고, 폭력, 부당한 대우가 되는 것이다. 트랜스젠더는 비성경적이며, 죄인이며 죄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폭력이 된다고 교육하는 것이 바로 역리를 순리인 것처럼 바꾸는 것이 성인지 교육이며 지금 우리 학생들에게 시행하고 있는 교육인 것이다. 더 구체적으로 보면 원래 성인지 교육자료인 교재가 작년에 여성가족부에서 나다운 성교육이라고 수천 권을 전국에 다 뿌렸다가 하도 이 항의가 들어와서 전량 회수를 했다. 그런데 또 성 인지 교육 추천으로 또 들어왔다. 아빠인권 선언이라는 책이다. 아빠가 집에서 집행하는 권리이라는 책이다. 처음부터 보면 나쁘지 않게 보인다. 이해할 수 있고 용인 할 수 있고 때로는 추천하고 싶은 내용등도 있다. 마지막에 슬쩍 이 권리를 넣는다. 15조 원하는 대로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원하는 대로 동성연애를 할 수 있다는 것의 그림을 넣어놓았다. 동성연애 그림을 넣고 아이는 입양하는 권리를 넣어놓았다. 정상적인 가족처럼 아이가 엄마에게 전화를 하는 그림도 있다. 그것의 내용은 “엄마, 아빠가 여자 친구와 함께 연못을 바라보고 있어요.”많은 내용을 생각하게 한다. 일단은 정상적인 가정에서 아이들이 아무렇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이다.

 

로마서 1:27절에 보면,
27 그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자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 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와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성경은 이것이 분명히 부끄러운 일이라고 말씀하신다. 순리를 버리고 역리로 쓰는 것이라고 이야기 하는데,,, 정작 우리 아이들이 받게 되는 성인지 교육은 ‘우리 아빠는 역리대로 살아갈 권리가 있으며, 그것은 죄도 아니고, 부끄러운 일이 아니라, 인간의 권리이다.’라고 세뇌하고 있는 것이다. 아이 인권선이라는 책에서는 더 노골적이다. 15 남자든 여자든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권리, 이렇게 성경에 대하여 역리를 순리로 만드는 교육이 우리 아이들이 받게 될 포괄적 성교육이며, 성인지 교육이니, 너무 화가 난다. 이 내용에 그리스도인 부모로서 여러분은 동의가 되는가??? 이 뿐만이 아니다. 초등학교를 상대로 하는 성교육 가이드에 적나라하게 묘사되어 있는 것을 추천도서라고 선정하고 있다. 아이들이 성에 대한 절제와 책임을 배우기보다는 다분히 쾌락적으로 접근하는 조기성애와 될 우려가 매우 높다. 상당히 비성경적이다. 성애화란 모든 것을 성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사회적 구조, 인간의 목적을 성적 쾌락에 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한 거룩한 성전임을 고린도전서 3장에서 말씀하신다. 인간은 그 거룩 성을 대적하여 성적대상화 시키고 있다. 이 성인지 감수성이 이 사회에 얼마나 거세게 몰아치는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성인지 교육에 대한 교육에 지원이 얼마인지를 아는가?? 코로나로 모두가 허리띠를 졸라 맬 때, 무려 35조원이 책정되었다. 국방부 예산이 50-60조이다. 나라 지키는 것도 아닌 35조이면 서울시 1년 예산 수준인 것이다. 천 이백만 인구를 위해 쓸 예산만큼 성인지에 투자하고 있다. 그래서 무얼할까를 생각해본다. 역리를 순리로 바꾸는 무차별적인 시도를 하는 것이다. 강사를 교육시키고, 교재를 편찬하고, 학교에 수천 권 보급하고 읽히고 가르치고, 성문화센터를 전국 곳곳에 만들어서 역리를 보편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성교육 강사가 오천 명 정도이다. 문제는 지금도 성교육 강사를 양성하고 있고, 특히 영유아 교사들, 학부모까지 계속 성교육을 하고 있다. 그런데 말이 성교육이지 영유아, 초등학교 교사와 학부모들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모두 젠더이데올로기를 가르치는 사람들이다. 그걸 배운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가르치게 한다는 것이다. 우리 유치원 다니는 아이들에게 남자애가 남자애를 사랑하는 것이 아주 자연스럽다고 그 반 선생님이 가르친다면, 그 아이들은 어릴 적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곳에 35조 예산이 들어가고 있다. 더 무서운 것은 2019-20년에 서울에서 성 평등, 다시 말해서 젠더 이데올로기 사업을 하는 자, 단체들에게 10억 가까이 지원한다. 그 공모에 당첨된 사람 중 4-5명 중에 보면, ‘교회를 바꾸는 젠더스쿨’도 있다. 이것은 무엇인가? 교회에 들어가 있는 젠더에 대한 성경적 개념을 자기들이 바꾸믄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시민 단체가 서울시에게 돈을 달라고 하고 서울시는 좋다라고 하면서 지원해 주는 것이다. 교회를 바꾸려고 하는 것이다. 결국은 이런 젠더사상과 교육이 추구하는 것은 성경에 말하는 가정의 모습, 성경적 성역할의 해체이다. 이런 것을 연구하기 위해 35조를 사용하고 있다.

 

예들 들어서 아빠 힘내세요! 등도 차별이라고 말하고 있다. 아니 힘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을 전통적인 성 연구를 고정되게 하는 것이고, 엄마는 밥만 해야 하는 사람으로 여기니 이런 생각들을 해체해야 한다는 것이다. 해체주의이다. 아빠 엄마에 대한 거룩한 희생을 해체하는 것이다. 백번 천 번 만 번 양보해서 아빠가 밖에서 일하는 것은 당연하다. 엄마가 아이들을 위해 최선을 집에서 양육하는 것이 밖에서 일하는 것보다 잘못하는 것인가? 밥이 중요하다. 극단적 페니미스트는 역사적으로 젠더 이데올로기와 그 뜻을 같이 한다. 정통적인 성 역할이 차별을 만들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런 이데올로기를 가진 사람은 이 사회에서 성과 가족의 개념을 해체하고 젠더 사상을 부지런히 교육한다. 그결과 상상을 초월하는 결과를 보게 된다. 공중파 TV에서 본인을 소개하는데 “호모로맨스 에이섹슈얼 안드로진”이다라고 –‘정서적으로는 동성애에 끌리고, 육체적으로는 아무에게도 안 끌리고, 내면에는 남자와 여자의 성이 모두 존재하는 자기가 결정한 성’이라고 말하고 있다. 커피 시킬 때 섞어서 시키는 것처럼도 아니고, 도저히 적응이 안 된다. 자기 성은 자기가 결정한다며 자기를 소개하고 있다. 인권운동가라며 소개한다. 이것이 인권이라며 포장되고 교육되고 있는 상황이다. 두려운 것은 연예인 트렌스젠더가 공중파에서 처음 나와서 개념들이 판단 없이 등장하고 있고 소개되고 있었던 것처럼 이렇게 소개된다는 것이며, 성에 대한 관념을 바꾸고 일반화 시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남자다움, 여자다움을 왜곡시키고 고정되어 있는 질서를 부정적으로 인식시키는 것이다. 성경적으로 굉장히 위험한 교육이다. 성 정체성을 본인이 결정하는 교육이 현재 인권운동, 성인지 교육을 통해 우리 아이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들어오고 있다. 이것을 열심히 막고 항의해야 한다. 적어도 찾아보고 알아보고 반대하고 서명이라도 해야 한다. 사사기 시대에 자기 시대에 옳은 대로 행하니라의 하나님의 판단이 그 다음 세대에 내려지는 것을 볼 수 있겠는가? 그 결과에 무서움은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다.

 

롬 1:27절 하반 절에 보면,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그 죄의 결과에 대해 받게 됨을 선언한다. 그것은 에이즈와 같은 고통일 수 있고, 사회적 고통일 수 있다. 영적인 어려움일 수 있다. 그것이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역리로 산 인생은 반드시 그 상당한 보응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역리의 인생- 그들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들 자신이 받았느니라.

신학자들이 이야기 한 것처럼, 인간이 자유의지가 있기에 하나님을 거절하고 역리대로 사는 것을 자유라고 말하지만, 그 거절의 결과에 대해서는 자유 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 뜻을 거절하는 것은 자유이나 그러나 그 결과에 대해선 결코 자유 할 수 없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을 다해 진정 하나님의 순리를 배우며 옳은 방향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이들이 해체하고자 하는 것은 성적인 해체만이 아닌 더 큰 문제는 역리현상은 확정되지 않았지만, 성경은 우리들에게 너무나 심플하고 정확하고 물러섬 없이 이 죄된 모습의 원인을 이야기 한다.

 

*롬 1:25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 아멘.

-순리를 역리로 바꾸어 살게 된 이유는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기 때문이다. 라고 성경은 분명히 이야기 한다. 바로 우상숭배이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 설 때에 역리의 인생을 사는 것이다. 우상숭배 중에 가장 핵심은 특별히 자기를 섬기는 것이다. 자신의 안락과 평안과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다. 자신을 위한 신앙행위, 자신을 우상화 하는 것이다.

나 자신이 경배의 대상이 되었을 때 인간이 가장 먼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 질서를 우리는 권위라고 말한다. 그들은 모든 질서를 나를 억압하기 위한 장치로 인식하고 그것을 해체하는 것이 진정한 자유와 나다움을 가르쳐 준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모든 순리적은 권위를 해체하는데, 가정에서는 부모의 권위를 해체하고, 학교에서는 교사의 권위를, 교회에서는 목사님의 권위를 해체한다. 나아가 하나님의 권위를 해체하며 오직 나의 즐거움과 편안함만 남게 하는 것, 그것이 우상숭배이며, 최악의 역리의 인생이다.

 

지난 2017년부터 지금까지 지속적 줄기차게 막아오고 있는 차별금지법은 젠더 교육과 해체주의의 그 맥을 같이 한다. 이대로 언제 어떤 모습으로 통해서든 우리에게 또 들어올 것이다. 그게 핵심인 것이다. 차별하면 안 된다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학생들이 어떤 기분 나쁜 일을 당했다고 생각이 들면, 이 조항으로 문제를 들고 항의하게 된다. 교사들은 이 잘못을 지적할 수 없어진다. 뭔가 모자란 부분들을 지도 편달할 수 없다. 차별해선 안되니까 이다. 누구든지 차별 받는다면 못하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동생애를 차별하거나 발언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에 모든 권위를 해체하고 개인의 감정적 만족을 추구하는 이런 교육 환경들이 점점 제도화되고 있는 것이다. 성별 정체성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뀔 수 있다고 나오고 있다. 이들이 가르치는 개념 속에 하나님이 만드신 거룩한 성에 대한 개념은 한낮 미신의 것과 같이 취급되고 있다. 불평등하고 유해한 것으로 되어 있다. 이것은 성경적 진리를 전하는 목회자의 교육은 미신의 것과 같이 치부되고 불평등하고 이 사회의 유해한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 이것은 가정과 교회, 특히 목회자들과 성경의 가치관과 권위를 해체하는데 교육 목적이 있다고 할 수 있는 것이다. 가장 놀라운 것은 성별을 바꾸는데 가장 큰 역할은 한 사람이 있다. 바로 성전환 수술을 하는 사람이다. 의사이다. 전 세계에서 성전환 수술을 하는 나라가 우리 대한민국이라고 한다. 그것도 부산에 있다. 엄청 많은 수술을 하고나서 인터뷰를 적나라하게 하는데 너무 놀라웠다. 이것은 하나님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임을 아주 끔찍한 장면들이었다. 더 끔찍한 것은 기자가 신이 만든 창조 질서에 어긋나는 것이 아닌가요? 물었더니 ‘신이 창조하는 것이니 교리에 어긋나는 것은 맞지만 신의 실수를 바로 잡는 것이라고 대답했다. 신의 실수를 바로잡는다고,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는데 남자의 영혼을 여자에 몸에 준다는 실수를 반대로 여자의 영혼을 여자의 몸에 준다는 실수를 우리 나라에게만 300명 넘게 실수하셨고, 자기가 바로 잡았다고 표현하고 있다. 이런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은 부모 교사의 권위를 넘어 하나님의 권위까지 해체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자리에 올라서고 있다. 나의 권위는 자신이 결정한다고 하고 역리 중에 역리의 세상이 된 것이다. 세상은 이렇게 바벨탑을 쌓아올리고 있다.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하고 있고, 그들의 목표를 하나씩 이루어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것을 보고 가만히 있어야 하는가? 이것은 정말 진리와의 싸움이다, 저를 목사님이 이렇게 나를 불러 강의하게 하신 것은 사랑의교회에 대한 사랑이며, 다음세대를 위한 애끓는 심정이 불같이 일어나시기 때문이다. 우리 울산 대영교회는 담임목사님이 허탄한데 시간을 쓰는 것을 싫어하셔서 어떤 정책이 일어나는 곳에는 무조건 보내신다. 때로는 하루 종일 걸리더라도 결정되기까지 힘을 싣게 하신다.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한겨울에도 피켓을 들고 함께 저항하고 우리의 의견을 외치는 것이다. 모든 교회가 왜 그렇게 하겠는가? 이게 진리의 문제이며 본질의 문제이자. 다음세대들의 영혼이 달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다음세대를 이런 교육이 우리 아이들을 망치면 안 되니까 절박한 심정으로 하는 것이다.

 

*우리가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하는가? 원인이 있으면 방법도 있다.
▷먼저는 하나님의 형상을 먼저 회복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질서를 회복하고 최선을 다해서 그 질서를 순복하여 다음세대에 보여주어야 한다.

첫째- 하나님이 주신 내 가정을 귀하게 여겨라.

남편을 존중하고 아내를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아야 한다. 자녀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영어, 국어, 수학보다 더 중요하다고 가르침을 보여주어야 한다. 어떤 중요한 일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더 중요함을 아이들에게 몸소 보여주어야 한다. 말씀에 순종하는 부모님의 진심을 다한 그 거룩한 모습을 본다면, 그 어떤 세상의 가치관이 다가와도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둘째는- 거룩한 믿음으로 끝까지 버텨야 한다.

요즘 학교에서는 선생님이 잘못된 것을 지적할 수 없다는 것과 권위를 해체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해체주의란? 하나님 권위까지 해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여 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거룩한 성전인 거룩한 몸을 거룩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로마서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어떤 세상에서도 우리가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믿음을 이어갈 때 반드시 살게 될 줄 믿는다. 출애굽 앞에서 기도의 팔을 내리지 않고 모세의 모습에서 나온 ‘에무나’라고 하는 말이다. 도저히 이길 수 없던 상황에서 모세는 그 기도의 두 팔을 내리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여 아론과 훌은 그 팔을 잡고 버티며 기도한다. 이때 가만히 있다. 내리지 않다, 버티다가 ‘에무나’이며, 이것이 믿음이 된 것이다. 가만히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 내 눈을 고정하고, 하나님이 일하심을 버티어 기다린다는 것이다. 다리에 힘을 기도의 팔을 내리지 않고, 어떤 세파가 몰려와도 끝까지 저항하며 믿음의 자리를 지켜내는 것이 에무나 믿음이다. 세상이 아무리 우리를 고리타분하다고, 무식하다고 해도 우리는 진리를 지키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

 

칼빈주의 3대 신학자 중에 한 사람인 -아브라함 카이퍼는 1880년 10월 20일 자유주의 대학 연설에서 다음과 같이 영역주권을 위해 외친다.

인간 삶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께서 ‘나의 것이다.’ 라고 외치지 않은 것은 없다. -아브라함 카이퍼-

이 말의 진짜 뜻은 우리 그리스도인은 삶의 영역에서 하나님의 질서대로 사회를 변화시킬 의무가 있다는 것이다. 뒤로 물러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떤 유혹에서도 모든 영역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그 질서를 세우기 위한 믿음이 에무나 믿음이다. 그것이 물러서지 않고 버티는 것이다. 그 기도의 팔을 내리지 않아야 한다. 오직 의인은 그렇게 버티는 힘으로 사는 것이다.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에 동참하고 서명하고 의사를 표출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의견을 게재해야 한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야 한다. 진리는 반드시 승리한다. 하나님의 기준이 나 혼자라도 버티는 자는 오직 의인으로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질서 넘어’라는 책이 있다. 이 책은 하버드 대학의 교수님이자 세계적인 심리학자, 철학자인 beyond order라는 사람이 낸 책에 이렇게 말하고 있다.

-오늘날 세계에는 보수주의, 사회주의 페미니즘을 비롯한 모든 종류의 인종 및 젠더사상, 포스트모더니즘, 환경주의 등의 각종 주의(ism)를 믿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은 일신 교도와 다를 바 없다. 이데올로기가 현실에 적용될 때 지금까지 쌓아올린 지식은 힘을 잃고 환상이 세상을 지배한다.

- 이 말은 무슨 말이냐면 우리는 단순히 하나님의 교육이념과 싸우고 있는 것이 아니다. 정치이념과 싸우는 것도 아니다. 어느 당을 지지하는 것의 하찮은 싸움이 아니다. 지금 주장되는 이데올로기가 이미 신이 되어있다. 그러니까 쉽게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지속적으로 우리 아이들을 젠더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해체주의, 성인식, 온갖 것으로 전도할 것이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모든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복음이 가장 능력이 된다는 것임을 선포하고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하나님의 능력이라.

복음의 능력이 회복됨을 이야기 한다. 반드시 살리시는 복음의 능력을 이야기 한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오직 이렇게 살아낼 때에 역리의 세상에서 오직 믿음으로 순리를 고집해 나갈 때, 그렇게 버티고 대항할 때에 하나님께서 가정과 교회와 나라를 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살리실 줄 믿는다.

 

♣요약

다음세대를 위한 애끓는 심정으로 가정을 귀하게 여기고, 거룩한 믿음으로 버텨서 주님의 산 소망을 이루어가야 한다. 다음세대가 역리를 순리가 되지 않도록 신앙교육을 제대로 시키는 부모가 되어야 하며, 우리 아이들을 젠더 이데올로기, 페미니즘, 해체주의, 성인식, 온갖 것으로 전도할 것이기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막아야 한다. 모든 것 중에 가장 뛰어난 복음이 가장 능력이 된다는 것을 믿고 믿음 안에서 우리는 거룩한 성전인 거룩한 몸을 거룩한 믿음으로 끝까지 견디어야 한다.


-하나님을 치욕스럽게 만든 자들이 자신들을 치욕스럽게 하는 일에 내버려졌다. 사람이 자신의 정욕대로 하도록 내버려지는 것보다 더 무서운 노예상태에 빠질 수는 없다. 그들의 더러움과 부끄러운 욕심에서 나오는 행위들은 비정상적인 정욕들이다. 그런데, 많은 이방인들은 물론 그들 가운데 지혜 있다고 하는 자들마저도 그런 일들에 악명이 높았다. 아마 사도는 여기서 특별히 그들의 우상숭배를 통해 저질러진 혐오스러운 일들을 언급하고 있는 것 같다. 그것은 추악한 신들에게 드려지는 추악한 예배이다. 인간의 본성에 어떠한 악이 있는가를 보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진정으로 우리의 약한 본성을 억제하는 은혜를 얼마나 베푼 지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이 이런 악을 억제하지 않았다면 단지 천사보다 조금 낮게 지어진 인간이 자신을 마귀보다 더 형편없이 낮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이것을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게 받았다'고 말한다.

 

 

 

 

                                                                 (성경읽기- 홍균형 박예서 어린이)

 

 

 

*질서너머- beyond order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