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19일) 제목: "새로운 창조물" 말씀: 고린도후서 5:17~2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단희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ㅡ *고린도후서 5:17~20,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 ▶지금 단위에 이런 과일들이 다 있는 것이 이번 주나 다음 주까지, 전 세계는 추수 감사 주일로 지나고 있어 물론 좀 빨리 지났습니다마는 지난번에 말씀한 대로 지금 현재 우리의 감사의 수준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할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드리면서 남들이 모르는 초월적 감사, 절대 감사, 평생의 감사가 우리 성도들의 미래가 결정되기를 바랍니다. 제가 정말 고마운 거 하나는 지난 목요일 날 저녁에 우리 아이들 수능 대면으로 6,400명의 아이들이 와가지고 여기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자기들의 생애를 주요성을 의탁하는 것을 보면서 제가 담임 목회자로서 너무 많은 감동이 있었어요. 한국교회에 소망이 있다!!. 다 패배주의 비관주의 그리고 냉소주의를 극복하고 한국사회에 소망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오늘 본문을 통해서는, ‘새로운 창조물’에 대해서 제목으로 말씀을 드릴 겁니다. 우리가 잘 아는 우리 암송하는 우리는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뭐라고요? 피조물이다. 이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말이 새 한글 성경에는 ‘새로운 창조물’이다. 이렇게 번역이 돼 있습니다. 오늘 회중 찬조한 것처럼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을 얻은 몸,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 얻어 할렐루야!~~. 제가요. 여러분들 회중 찬송에서 나를 많이 봤어요. 제가 이 찬송을 선택하는 데는요. 제가 모험이 필요해요. 왜냐하면 이 찬송 길이가 보통 찬송의 1.5배, 그러면 그냥, 제가 설교 시간이 줄어지는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걸 택했는데, 그냥 매가리 없이 찬송을 하고 있다. 여러분 담임 목사가 가끔은 이런 얘기를 해야 합니다. 누가 좋은 말 하는데 그랬어요. 찬송 하나를 가지고도 진짜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로 된 찬송을 하는데 그냥 달싹달싹하면 안 되는 거예요. 전력투구의 해서 해야 하는 거에요. 전력투구해서요.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새 영 새 몸 새 마음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입술에 찬양의 새 노래가 흘러나오는 거예요.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을 되고 옛 것은 지나고 새 사람이로다. before, after, 이전과 이후가 확실하게 다른 것이 새로운 창조물이라는 뜻입니다. 본문을 기록한 바울은 완전히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죠? 살인 주동자로 예수 믿는 사람 다 죽이려고 그러다가 그 마사에서 거꾸로 져가지고 3일 동안 눈이 멀어가지고, 이랬는데 하나님께서 그를 새로운 창조물로 만드시고 그 눈꺼풀의 비닐이 떨어져 나가게 하시고, 그 살인 폭행자요, 주동자가 무슨 죄인의 교수가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오늘 복음 선포자로 쓰잖아요. 영광스러운 새로운 창조물이 된 거예요. 어두운 가운데 있었던 그가 눈에서 비닐 같은 것이 벗어지면서 참 빛의 자녀가 된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요한 켈린 선생님 같은 분은, 새로운 창조물이 되었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부패한 의지가 선한 의지로 변화되는 것이며 예수 믿기 전에는 선명하지 않았던 대립이 명확해진다 그랬어요. 나중에 내가 자막으로 한번 보여드리고 싶은데 부패한 의지가 선한 의지로 대화되는 것이며, 예수 믿기 전에는 선명하지 않았던 대립이 명확해서 무슨 뜻인가? 예수를 믿기 전에는 그 경계가 모호했어요. 희미했습니다. 오리무중이었지만 예수를 믿었던 난 다음에 하나님의 영역과 사탄의 영역이 다 구별되는 것이에요. 그리스도와 저 그리스도가 구별되는 것이 교회와 세상의 일들이 구별되는 거예요. 물론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역 하나님의 영역에 미치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하나님의 일과 그렇지 않은 일들이 구별이 대표적인 예로 동성애 확대법 됩니까? 안 됩니까? 이거는요 안 됩니다. 새로 이거는 창조의 영역, 하나님의 창조 질서의 영역에서 벗어나려고 하니까, 이건 우리가 구별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 것이에요. 그리고 여러분과 제가 지금 1부 예배 같은 경우는 다 우리가 새로운 창조물로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참여하고 있잖아요. 여러분과 제가 새로운 창조물로 살고 있는지 아닌지를 어떻게 구별할 수 있나요? 어떻게 판별할 수 있나요? 판별의 기준은 뭐냐? 위기의 순간에, 인생 위기의 순간에, 그 위기의 순간에 성경 말씀 하나님의 말씀이 그 위기를 타개하는 결정체가 되는지 아닌지가 그것이 바로, 이 사람이 다른 말로하면 성경 말씀이 당시 위기의 순간 여러분의 삶을 결정하는지 아닌지 그걸 확인하는 것이에요. 또 하나 그러니까 우리가 위기의 순간에, 우리가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접근을 달리고 주의 말씀을 의지하여 극감을 밝히리이다. 아멘. 그다음 위기의 순간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엎드리면 여러분들은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새로운 창조물은 어떤 경우에도십자가가 인생 도로길의 중앙선을 삼는 사람들 그러니까 중앙선이 인생의 도로 기능이 있잖아요. 중앙선이 딱 표준이잖아요 표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의 삶을 결정하게 하고, 십자가를 삶의 중앙선으로 삼고 있다면 여러분은 예수님 믿고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가는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창조물로서의 세 가지 삶의 형태가 있어요. 지난주는 제가 세례식을 하면서 장례식 치러야 한다고 그랬죠? 내 자아에 대한 장례의식이에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부인하고 내 공로가 아니고 주님의 은혜 아래 나 자신을 맡기면서 염수 같은 태도가 아니라 착한 자의 태도를 갖는다. 제가 장례식 얘기를 했습니다. 오늘은 두 번째 세 번째로 할 거예요. 장례식을 치르는 사람은 장례식을 치르는 이거 굉장히 소극적인 얘기예요. 좀 이게 이게 장례식이 아니라 소극적이라면 진짜 중요한 거는 뭐냐 더 우리가 장례식을 내 힘으로 치를 수 있는 거 아닙니까? 더 중요한 것은 주님과 연합되어 가지고 주님과 연합이 있어야 장례식을 치를 수 있죠. 여러분과 제가 우리 실력으로 장례식을 못 치릅니다. 내 자아의 당 장례식 내 자아를 깨뜨리고 내 본능이 원하는 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그 모든 인간의 자유 의지를 정말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 안에서 제대로 하려면, 주님과 연합 때문에 경지가 올라가야 되는 거에요. 그래서 누구든지 그리스도 뭐에? 아래에 있으라. 17절에 아래에 있다는 말이 주님과 연합되었다는 말 그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주님과 연합되어 있다는 말이에요. *고후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그리고 주님과 연합되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고하시고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휘몰아치고 이렇게 될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내 자아는 장례식을 하지만 주님과는 연합되고 결혼식을 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장례식과 결혼식이에요. 무슨 영화 제목이나 그런 거 있죠 장례식과 결혼식이에요. 장례식과 결혼식 15절에 보니까 15절 보니까,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그들 그들 그들 여러분 여러분들 보시라. 저 같은 오장의 자신을 위해 살지 아니하고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던 그분을 위해 산다. 이 결혼식에 주님과 함께 장례식 이후에 결혼식이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를 위하여 산다. 그랬을 때 우리의 삶의 목표가 예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 주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에요. 은사의 말씀이 아니고 바로 뒤에 오늘 고린도후서 11장 오늘 본문 뒤에 11장 2절에 바울이 뭐라고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후서 11:2b, 2 내가 하나님의 열심으로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바울 사도의 역할 함께 하는 역할 우리 모두를 우리 죄인이었던 우리를 예수님과 연합하게 하고 예수님과 결혼하게 하고 그래서 우리는 주님이 뭐가 됐다고요? 교회가 신부이고, 이게 그리스도의 신부인 거 다 알지만 저와 여러분은 무형 교회로서 우리 모두 한 사람 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가 될 것이에요.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놀라운 말씀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부족한데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연합하자고 우리를 받아주신 것이 그래서 오늘 우리는 이 예배를 드리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제일 정결하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님의 신부인가, 그래서 성경은요 창세기 2장에 아담과 하와의 결혼식부터 시작해가지고 성경 마지막 요한계시록 마지막 부분 거의 마지막 19장에 보니까 어린 양이 혼인 찬치, 결혼으로 시작해서 그렇지 않는데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결혼 여인들이 있어요. 구약의 선지사들 구약의 예언자들이 예언자들의 그들의 중요한 역할이 뭡니까 이스라엘과 하나님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경험하기로 말씀하시고, 그러니 창세기 2장에서 결혼으로 시작해가지고, 요한계시록 19장의 어린양 혼인 자체를 끝내라는 이 영광스러운 수준, 이 영광과 위엄과 존귀와 가치와 품위와 거룩함 이 영광스러운 이 결혼의 관계를 사탄은 죽어라고 덤벼들어요. 미치게 힘들게 해요... 사탄은요 사탄의 최고의 전략은 결혼을 파괴하고 결혼을 무너뜨리려고 합니다. 우리 가정이 결론적으로 우리 일상생활, 우리 성도들이 주님의 신부로서 살아가는 이 결혼의 영광스러운 존귀함과 깊이와 거룩함과 능력을 이걸 나타게 하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이 주일마다 주님과 연합된 이 결혼의 은혜와 축복을 늘 감사하고, 주님에 대한 사랑 보고와 믿음 보고를 결혼의 신부로서 올려드려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매주일이 이러면서 주님과의 결혼식이에요. 결혼식을 확인하고 매 주일 예배는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우리의 주님과 나와 연합의 수준을 돌아보고 매 주일마다 우리는 신랑 되신 예수님께 교회 공동체 또 우리 개인이 얼마나 제대로 정리되어 있는지 아니면 내가 매주 일마다 얼마나 이탈되어 있는지 그걸 점검하고 재 조율하는 것이에요. 주님과의 사랑의 점검 시간이에요. 이게 없다면 이게 없다면 조금씩 이탈하다가 여러분 두 달 석 달만 교회 나와 보세요. 이건 하나의 공적인 하나의 중요한 현상이에요. 여기 두 달 사다가 안 나오면 여러분들의 주님과의 결혼 생활이 완전 파탈이 보세요. 아무도 안 변하셨어. 여기 두 자리 설자. 여러분 결혼식은 완전히 다 다르다니까요. 이것도 모르고 교회에서 이렇게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도 있고 교회 지도자라는 사람들도 엉뚱한 소리 하는 사람도 많고 참 안타까운 일이에요. 다시 매주 매주일이 주님과 사랑의 점검 시간인 줄로 믿습니다. 매주, 그래서 오늘 우리 남성 성도들은 좀 모르지만 우리 남자라도 영적으로 우리가 주님이 뭐라고요? 신부에요. 다시 장례식을 거친 사람은 반드시 주님과의 결혼식을 해야 합니다. 남자들도 주님과의 결혼식 주님과의 연합을 위하여 내 삶의 목표를 재정리하고, 주님을 위해 살겠다는 15절처럼, for him, for his kingdom... *고린도후서 5:15,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신랑과 신부, 산성를 가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사랑하겠느냐? 우리는 주님과 결혼식을 하고 매 주일마다 주님과 세례 하는 걸 다시 확인하고 감사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신부로 산다는 것은 예수님의 사랑과 희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어떤 세상의 유혹과 도전에도 맞서서 예수님께 내 충절과 충성을 신부로서 올려드리는 것이에요. 예수님의 신부로서 산다는 것은 오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건해가지고 우리 주님의 사랑에 우리가 간곡하며 사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형용 못하고 증량도 못하고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 성도여 주님을 향한 사랑의 충절로서 찬양을 올려드리세”... 서구사회는 결혼하는 여자 분들이 남편의 성을 따릅니다. 우리 이름 앞에다가 예수님의 성을 따라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의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패밀리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 교로 말하면 영적, 가족 영 가족이 되는 것이다. 그럴 때 나만을 위하여 이기주의의 삶을 살던 이 삶이 청산되고 결혼하고 연합됐으니까 주님을 중심으로 이주주의의 삶을 산다. 이런 말, 제가 한 번씩 하고 있어요. 이기주의가 아니라 뭐라고요? 이주주주의, 새로운 삶을 주님과 연합 때, 그럴 때 오늘 15절 뒤에 그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하십니다. 우리의 삶의 목표가 달라지는 거예요. 연합의 수준이 달라지는 거에요. 여러분 왜 삽니까? 왜 삽니까? 신랑 되신 예수님을 위하여, 왜 예배드립니까? 신랑 되신 주님의 은혜를 위하여, 주님을 위하여 왜 자녀를 키웁니까? 주님을 위하여, 공부를 왜 합니까? 모든 것을 죽을 위해 그야말로 For him and Theis Kingdom. 주님 나와 관계에요. 80여 개 인구 가운데서 우리가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한국 땅에 태어났어. 우리가 중국이나 일본이나 북한에 태어날 수도 있지만 우리가 이미 한국에서 그로 태어났어요. 대한민국에 태어났어요. 나는 왜 태어났고 왜 살아야 됩니까? 이 근본적인 질문을 주님 앞에 진지하게요. 진지하게, 그래서 매 주일마다 이 예배가 은혜의 결혼식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 매 주일마다 내 삶을 점검하고, 내 삶을 점검하고, 내 삶을 점검하고, 결혼식의 삶을 잘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 우리에게 놀라운 말씀을 또 하나 주신 거예요. 그것이 뭐냐 남은 인생을 어떻게 살게 할까? 오늘 16절 17절 18절, 18절 19절 20절에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화목함 가지고, 예수 20절에 보니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실이 되고 엠베서더(Ambassador), 대사가 되고 하나님 나라의 특명전권 대사를 가지고 그래갖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에요. 그게 바로 그냥 결혼식 이후에는 우리가 제가 그냥 용어를 만들어 사명식이에요. 사명식. 사명을 선포하는 인생을 사명자로 살아가라는 사명의식이 그러니까 우리 구약의 절기가 3대 절기가 있거든요. 오순절 또 뭐가 있나요? 유월절, 오순절, 장막절, 홍해를 건너기 전에 우리의 삶이 구원받는 건 유월절이다. 그다음에 오순절은 영적 추수를 말하는 것이에요. 장막절은 주님과 함께 동행 하는 것, 주님이 나를 인도하시지 않나, 이것처럼 신약에 새로운 3대 절기를 우리식을 얘기한다면 저와 여러분 첫째 장례식, 신앙이 되는 그다음 두 번째로 이름과 연합하는 이 결혼식을 해야 돼요. 그다음에 세 번째로 오늘 중요한 거 여러분과 저는 모두가 다 예수 그리스도의 특명전권대사인 줄로 믿습니다. 이게 사명의식이에요. 사명의식,... 주님은 이 사명의식을 위하여 18절 뒷부분에 우리에게 화목케 하는 지체를 주셨어요. 우리가 예수처럼 화복 재물이 될 수는 없지만, 화복 제물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선포하며 화목해 하는 우리가 중매한, 아까 중매한 게 아니라 바울이 우리를 격려해가지고, 예수님의 신부를 만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들을 주님의 복음의 역사에 함께 참여하도록 우리가 예수님을 증거하고 특명전권대사로서 말씀하고 이렇게 함으로 말미암아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화목향의 제물로서 우리가 사명자로서 주님의 대사로서 살아갈 수 있는 주권을 주신 줄로 찬양합니다. 이거 화목이라는 말이 영어로 리컨슬리레이션(reconciliation) 그렇게 하죠? 헬라어는 카탈라이라고 그러는데 카탈라이의 뜻은 로마의 정치계에서 쓰는 용어가 있는데 서로 반대하는 두 당들 사이에 적대감을 제거할 때 이 단어를 썼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프라블럼 메이크가 아니라 피스 메이커에요. 늘 말씀하지만 여러분과 제가 남에게 영적 에너지를 주고 어둠을 타다는 거의 어둠을 밝히는 인생 되고 여러분이 가는 곳마다 화목이 일어나기를 소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화목한 인사를 가지고 역할을 할 때에, 뭘 말씀하실 것인가 19절에 화목하게 하나의 말씀을 우리에게 다 화목하게 하는 뭘 부탁했다고요? 말씀 여러분과 저는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부탁받은 줄로 믿습니다. 그러니까 사명대로 산다는 게 무엇인가 화목하게 말씀을 부탁받은 것이에요. 저희 교회는 오늘 45번째, 그리스도인만 40 한 두 번 정도, 우리 대각성을 선택을 했습니다. 그 입장에서는 대각성 전도 수준이고, 또 대각성이라는 게, 일반 사람들에게 익숙하니까, 영어로 그레이트 레이크 대각성에 대한 시리즈를, 과거에 옥목사님이 말씀을 시리즈를 하시고, 대각성 전도 집회라는 말씀을 만들고 그것이 한국교회에 전해지고, 그리고 나중에는 일반 성도들 입장에서는 대각성 입장이 좀 그러니까 새 생명 축제가 되는 것이에요. 제가 우리교회 역사상 대각선 새 생명 축제의 최고의 날이 언제였는가? 제일 많은 사람들이 갱신한 날이 언제였는가? 지금 다 그 기록은 떨어지지 않는데, 이어령 박사님의 따님이었던 이민아 자매, 그녀는 그녀는 변호사이기도 하고 검사이기도 하고 저하고 제자훈련을 같이 하고, 나중에 이제 목사도 되고 이렇게 했습니다. 몸도 많이 아팠고 힘들었어요. 근데 2011년에 저희 교회 그때 새 생명 축제에 와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얼마나 있어서 하나님이 불러가셨어요. 거의 우리 숫자로 세다가 나중에는 그냥 안 돼갖고 그냥 어쨌든 하여튼 그날 결실한 사람이 거의 900명이었어요. 여러분 말이 그렇지 900명이면요 데리고 온 사람 합치면 1800명이에요. 1800명이 다 일어납니다. 옛날에 강남 예배당가 절대 없어요. 거기 왔던 사람들이 거의 다 일어났어요. 예수 믿기로 결단했어요. 예수님 믿겠다고 말했을 때 그런데 그게 전부 다가 아니고, 그게 전부 다가 아니고, 전주에는 부산대학교에서 복음 전도 집회를 했어요. 그날 물어보니까 주인아 어떻게 됐냐? 부산대학 어떻게 됐냐? 물어보니까 500여 명 정도가 예수님을 믿었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두 주일 동안에 거의 1,400~500명이 불꽃같이 그렇게 하다가, 그러니까 작년 재작년이 저기 뭡니까 10주기였는데, 그날, 저기 12년 전 제가 장례식 때에 제가 설교를 했어요. 하나님이 하나님 왜 이렇게 일찍 불러 가시나? 거기에 대한 말씀을 하나씩 나누고 난 다음에 제가 이제 깨닫는 것이, 아니 지난주 다락방에 우리가 다룬 핵심이 그겁니다. 여러분과 저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가? 어떤 삶은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삶은 기적이 안 일어나는가? 이민아는 암에 걸려가지고 미나 사는 암에 걸려가지고, 벌써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몇 년을 몇 년을 늘려가지고, 복음을 전하고 충분히 할 만큼 하고 하나님 데려가셨어요. 그럼 어떻게 하나님 기적이라고 그리고 기적 같은 일, 눈도 멀었는데 하나님 눈도 뜨게 하고 그리고 그걸 아버님 이어령 박사가 보고 내가 예수 믿어야 되겠다. 결정하고 그 과정을 내가 다 설명할 필요가 없고, 하여튼 핵심은 어떤 사람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어떤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나? 기적의 어떤 미트머지는 뭔가? 하나를 딱 하나 이거예요. 여러분과 제가 생명의 복음을 전하는 특명정권대사로서의 역할과 사명과 집중력을 갖고 있으면 여러분들의 삶의 기적이라는 특명전권대사,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면서 많은 기적을 베푸셨습니다마는 거의 예수님의 기적은 생명에 관한 것이고, 복음에 관한 것이고, 사람을 그러니까 사람을 살리고 그가 주님 앞에 돌아오는 영혼 구원과 부흥과 관계가 있을 때만 주님이 기적을 내려주세요. 그리고 나머지는 관계가 없어. 예를 들어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똑똑했어요. 근데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한테 뭐야?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표적이 뭐냐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그냥 요나의 표적을 내가 보여줄 게 없다. 너희들이 부활을 안 믿는데, 뭘 내가 너희들에게 어떤 기적을 일으킬 이유가 어디 있냐? 우리도 똑같습니다. 오늘날 그러니까 수많은 선교지인데 보면요. 또 한국 교회도 마찬가지로 복음과 부흥에 관해서 죽을 똥 살 똥 하는 그런 교회요. 그런 성도 그런 지역이 기적이라는 뜻이에요. 그리고 똑똑하고 잘나고 대단하고 이런 사람들이 있는 데는요. 복음과 보면 피하거든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데, 여러분 우리가 우리 교회는요 이 대각성 전도 집회가 우리 교회 무슨 행사가 아니에요. 이거는 우리 교회 라이프스타일이에요. 왜냐하면 이런 일들을 행해야 저와 여러분의 삶의 기적이 된다는 것이에요. 우리 좀 주님을 섬기면서 기적 같은 일을 좀 체험하고 살아야 안 되겠습니까? 우리가 너무 똑똑해가지고 복음 전하는 데 등한시하고, 하나님의 구원에 대해서 별로 흥!! 이렇게 하고 이런 사람들에게는요 기적을 안 일어나요. 여러분 제가 한번씩 얘기합니다만 자유는 너무 좋은 것이지만 자유주의 신학은 안 좋은 거예요. 자유주의자는 자유주의 신학을 하는 사람들은 성경적 진리보다는 세상 적 가치관 가장 대표적으로 폴리티컬 크래머스, 정치적, 소위 약간 지식인들 약간 강남 좌파들 본다는 식으로 이 사람들 말을 잘 하죠. 동성애 누군지 다 해야 다 사람은 다 우리가 살아야 되는데, 그런 것에 대해서 상당히 쉽게 있는 것처럼 잘못된 또래랑세이런 거 하면서 있잖아요. 정치적으로 말을 많이 하잖아요. 서로 크게 성경적 진리보다 세상적 이런 어떤 가치관으로 자신의 사고와 행동을 형성한 사람들이 자유주의 신학자 이런 점에서 기적에 대해서 이런 사람들은 기적에 대해서 불편하고 자신의 생각과 가치관이 너무 세상적인 이렇게 함몰돼 있어 가지고 유럽 교회가 이렇게 내려간 이유가 뭐냐 하면 기독교를 너무 지식화해가지고 대학교를 세웠는데 복음을 전하는 이 복음의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자유주의 신학은 속죄는 물론 성경의 권위, 기적, 원죄를 부정하는 것이에요. 19세기부터 시작된 이 사조는 지금도 기독교인 해서 강력한 능력을 이어가고 있어요. 이 자유적 신앙의 특징은 예수님의 죽음, 속제의 죽음이 아닌 윤리적 희생과 헌신의 도덕적인 죽음 그러니까 예수님의 죽음이 속죄의 죽음이 아니라 이 복음적 죽음이 아니라 윤리적 희생과 헌신의 도덕적인 죽음으로 여겨지는 것이에요. 그래서 자유주의 신학자와 이에 속하는 목회자들에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이유는 기적의 뿌리인 예수님의 부활은 실제로 믿지 않고 복음의 능력을 믿지 않기 때문이에요.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님의 부활을 상징적으로 받아들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속죄의 도구가 아닌, 도덕적 모범을 보여주는 영웅적인 행위로 생각하는 거예요.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는 사람에게 기적이 일어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탄은 우리가 부활 신앙, 복음적 신앙을 가지지 않도록 복음과 부활의 기적을 믿지 않도록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사탄의 기를 쓰고 우리가 성경의 기적을 냉소적으로 대하도록 그렇게 애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와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기적에 참여하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이죠. 그래서 여러분과 저는 복음과 복음을 통하여 하나님의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제가 다시 세상 축제와 사랑의 교회 이 대각성 전도 집회는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는 뭐라고요? 기적을 체험할 수 있는 라이프 스타일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걸 위해 우리는 사명식을 해야죠. 사명식,,, 바울은 얼마나 큰 기적을 체험했습니까? 복음 선포를 통하여 제가 준비를 다해 깜짝 놀란 것 중 하나가 사도행전 14장에 바울이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전하는데 유대인들이 찾아와가지고 군중들을 선동해서 바울을 돌로 쳐버렸어요. 사람들이 바울이 죽을 줄 알았어요. 시신을 버덩에 말아가지고 성 밖에 내버렸어요. 수많은 제자들이 너무 애통하고 바울의 시신이 꺼적더미에서 둘러싸가지고 울고 있었어요. 걱정하는 성도들과 제자들이 바울을 불렀을 때 여러 바울의 일어났습니다. 제가 그 헬라어 그 원을 보니까 일어났다는 말이 바울이 둘러서서 일어났다는 말이 그 헬라어가 누워 있다가 일어난다. 이 정도가 아니고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난다는 뜻이었어요. 죽었는데 다시 살아난 거예요.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여러분들의 삶을 현장에서 이 기적을 체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부터 저녁부터 다섯 번에 걸쳐서 말씀을 잠깐 그 우리 모든 사역자를 준비해야 순간 이 여기에 대해서 마음을 열고 전심을 다할 때 나오는 사람 특별히 우리 교회 오래되신 분들 할 때 여러분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아멘. 마지막 결론은 이런 말씀을 드려도 용기를 못 갖고, 내가 화목해 역할 제대로 잘 할 수 있나? 하면서 이런 마음 부담 있는 분들이 있어요. 여러분 파랗게 과시할 때 특명전군대사는 여러분들이 실력과 능력을 표현하는 것이 아니에요. 사실 특명전권대사는 자신의 감정이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에요. 보낸 사람의 감정이나 의견을 전달하면 되는 것이에요. 특명전권대사는 자신의 뜻과 소원이 아닌, 보낸 무의 뜻과 소원을 충실하게 대변하면 특명전권 대사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런 마음을 가지고 우리가 그냥 주님 우리에게 주신 걸 내가 전하면 된다. 라는 이 정도의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들이 될까 합니다. 환경 너무 걱정하지 말고 마음의 소원을 가질 때 특명 전권 대사의 은혜를 주실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나 저는 모든 걸 보는 시각이 환경을 통해 보는 시각이 있고, 아니면 환경을 뛰어넘어서 복음을 통해 보는 시각인 거예요. 우리는 복음을 통해 보는 시각으로 새롭게 무장돼야 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우리가 아팠던 멜리데 섬에 갔을 때에 유럽으로부터 분명히 유라굴로을 폭풍을 받고 얼마나 어려운지 그 대 폭풍 가운데 바울이 두려워했어요. 그냥 하나님 멜ㄹ데 섬에다가 276명, 바울을 한 명도 목숨 다치지 않고 다 섬에 기차 가게 했어요. 남들이 볼 때는 유라글로 광풍이 막 일어나가지고 난리 나고, 그리고 막 그냥 억지로 피했다. 이 정도 생각할지 모르지만, 하나님의 복음을 통한 시각은 뭡니까? 그 멜리데 섬에서 바울이 섬기는 마음을 가지고 불을 때는데 나무를 독사가 있어 독사가 바울은 물었어요. 사람들은 뭐라고 그랬지요? 바울에게 갑자기 신이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에요. 바울의 신이 아니고, 가장 정교하고 그 병고치고, 많은 사람들 병을 고치고 나면 거기서 완전히 복음의 역사가 나타납니다. 남들이 볼 때는 그냥 풍랑 일어나가지고 끝났다. 풍랑으로 어떻게 도피했다. 이렇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복음 렌즈 가지고 오면, 하나님이 거기에 어마어마한 계획이 있는 거예요. 여러분은 제가 이 대학생소도 지회가 정도가 아니고 ‘새 생명 축제’의 이건 하나의 중요한 마음이 중요해요. 우리가 마음을 모으는 하나님이 주신 예식이에요. 이렇게 할 때에 내 삶 전체가 복음적으로 조명이 돼가지고 결국은 어려운 것이 없고, 다 모든 것이 하나님 은혜를 보면서 놀랍게 기적 같은 일들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교회가 장례식, 결혼식, 사명식을 통하여, 이 땅에 살아가는 동안, 복음을 통한 사명을 가지고 시대 앞에서 기적을 기대하는 이런 귀한 형제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요약 내 자아는 장례식을 치르고, 주님께 연합된 신부로서 주일마다 은혜의 결혼식을 올려드리며, 십자가를 인생길의 중앙선으로 삼아서 가는 곳마다 우리에게 어둠을 밝히는 화목의 직책을 주셨다는 것을 믿고 생명으 복음을 모두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특명전권대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복음의 사명식으로 세워져서 주님이 선포하신 지상명령을 온전히 실천해 가야한다. -새 사람이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더불어 옛 사람, 곧 옛 자아는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어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변화된 자아를 가진 사람을 말한다. 때문에 성도들에게는, 이 땅에 살 동안에는 죄에 물든 옛 사람을 벗어버리고 성화된 사람으로 살아가려는 노력이 끊임없이 요구된다.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새로운 피조물이며 화목케 하는 직책이라 한다. 그리스도를 대신한 사신이며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 하나님의 일꾼, 의의 병기라고 말하며 자신의 참 모습을 보여준다. 바울이 이렇게 자신의 참 모습을 스스로 말함은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라 거짓 교사들의 그릇된 주장을 반박하기 위한 것이었다. |
728x90
반응형
'○주일예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03일)"이보다 큰일도 하리니"(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3.12.03 |
---|---|
☆ 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26일) "선택받은 신비로움"(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3.11.26 |
☆ 주일예배(주후 2023년 11월 05일)"하나님이 거하시는 주소"( 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3.11.06 |
☆ 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29일) "우리를 다시 살리소서!"(오정현 담임목사님)-사랑의 교회 ☆ (0) | 2023.10.29 |
☆ 주일예배(주후 2023년 10월 08일)"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크리라"(오정현 담임목사님)-45주년 기념 예배-사랑의 교회 ☆ (0) | 2023.10.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