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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9월 1일)
제목: "물 떠온 하인들과 제자들은 알더라“-예수님은 누구신가?⑰-2
말씀: 요한복음 25:11
대표기도: 윤주은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임병영(1부), 문진호(2부), 이기호(3부), 임상규(4부)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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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2:5-11,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
8 이제는 떠서 연회장에게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9 연회장은 물로 된 포도주를 맛보고도 어디서 났는지 알지 못하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연회장이 신랑을 불러.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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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첫째 주일이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말씀한 대로 목요일까지는 힘들어도 제3일의 기적을 저희들에게 주시기를 바랍니다. 금토일 3일째 앞으로 1절에 있는 것처럼 제3일의 카이로스의 기적을 주신 것처럼 가정적으로 개인적으로 또 교회적으로, 민족적으로 하나님께서 이 한 달 동안 우리 민족을 불쌍히 해주시고 여러분들 가정 가정마다 이 한 이 1달 동안 매일매일 감사와 은혜로 충만을 채워주시기를 소망합니다. 감사드리고 이 1달 동안 앞서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총의 표정을 1명도 예외 없이 경험하기를 원합니다.
 
오늘 저는 예수님이 지금 누구신가에 대해서 쭉 말씀을 하고 있는데, 변화의 능력자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 물 떠온 하인들도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했더라. 제자들도 예수님이 메시아인 줄도 모르고 그냥 선생님 정도 생각했는데, 오늘 이 가나 혼인 잔치의 표적과 기적을 경험함으로 말미암아 주님을 오늘 메시아로 깨닫게 되었더라. 영안을 열게 되었더라. 오늘 다 우리 육신의 비닐이 다 이렇게 벗겨지고 하늘나라를 향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에 대한 영안이 열리는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자, 오늘 2장 11일절 요절 같이 되어 있는데,
 
*요한복음 2:11,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자, 오늘 이런 말씀은 교회생활을 오래 하신 분들은 어릴 때부터 가나 혼인 잔치에 뭐 표정 많이 들었잖아요. 그래서 예수 믿는 분들 가운데서 술 먹는 분들의 근거가 이거에요. 그 예수님이 이거 했다고 말이지, 근데 그건 오해한 것이고, 아주 중요한 건데 첫 표적이라 해서 표적(表迹) 여러분 표적이란 말이 본래 이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은 근본적인 변화고, 화학적인 변화고, 일반적인 자연 질서를 위반하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에요. 예술이면 창조주기 때문에 법칙을 만든 분은 법칙을 초월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창조하셨다면 이것도 가능한 것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흔히들 이게 정말 가능할까 어떻게 물이 포도주가 되나 하는 그런 관심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왜? 주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셨을까? 지난주일은 제가 그 종말론적인 혼인 잔치 집에 대한 말씀을 드렸고, 오늘은 왜 실제로 이게 왜 이렇게 하셨을까? 그 이유는 그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 유대인들이 가졌던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의 개념이 엉망진창이고 정말 천국 같은 기쁨이 아니라, 어떤 마음이 답답하고 지옥 같은 그런 상황이었기 때문에 주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가 뭐다. 진짜 하나님 나라가 뭐다. 그리고 그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주님의 이 땅 오실 회개하라. 하나님 나라가 가까웠다. 천국이 가까웠다고 그랬는데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시키려고 제자들을 뽑은 거예요. 그리고 제자들을 뽑고 오늘 하인들을 사용하신 거예요.
 
그러면 하나님 나라가 뭐다. 라고 제대로 깨달아야 되겠는데 제자들 하나님 나라 일꾼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어떤 개념과 컨셉이 분명해야 되는데, 그것이 엉터리니까 그 엉터리를 새롭게 해주고 고쳐주고 그러니까 그걸 고쳐주고 난 다음에 너무너무 놀라가지고 이 첫 표적, 아 표적을 보니 비로소 예수님을 믿었다. 할렐루야!~~ 그래서 표적이란 말이 아 그리스어로 세베이온 이라고 그러는데 이 표적은 겉으로 드러난 이적 기적보다 더 중요한 거 그 속에 담긴 배경, 의미, 숨겨진 영적인 중요한 법칙 이런 것들을 깨달아야 된다.
 
그래서 오늘 여러분 우리가 어릴 때부터 많이 들어왔지만 오늘 이 가운데서 정말 이 시대 21세기 오늘 이 초 연결 사회에 AI와 CHAT GPT가 난무하는 이 시대 가운데서, 요즘 뭐 딥페이크 해가지고 난리잖아요? 이런 시대 가운데 이 말씀 오늘 얘기는 어떻게 접목되어야 할 것인가? 여러분, 우리가 성경을 볼 때 구약이 있고 신약이 있는데, 구약과 신약의 차이는 우리 성경은 한 장 차이예요. 한 장 차이 그런데 실제로는 한 400년 동안에 중간기가 있었어요. 그 400년 중간기 기간을 지나는 동안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이 변질이 된 것이 어떻게 변질이 됐는가? 제가 한 번씩 강조했지만, 크게 3가지 그 당시의 종교적 흐름을 통하여 변질이 되었어요. 그리고 그 제자들도 당연히 그 변질된 흐름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었었어요.
 
그러니까 주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가 하나님 나라 건설 정말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 우리가 주님 앞에서 그리스의 보혈의 피로 구원받고 영원한 하나님의 영광의 능력을 체험해야 되는데, 그럴려면 생각과 컨셉이 발라야 되는데 그 당시에 잘못된 억눌린 이 하나님 나라와 신앙의 흐름에 대해서 잘못된 거에 대해서 주님께서 오늘 이걸 정리를 해주세요. 첫 번째, 그 당시에 로반뉴 월 넘버원에 뭐라고 돼 있냐면 참된 하나님 나라의 의미를 방해하는 3가지 몇 가지 흐름이라고요. 3가지를 그 400년 침묵 기를 지나면서 첫 번째가 뭐냐 하면,
 
I. 참된 하나님의 의미를 방해하는 세 가지 흐름.
 
-바레세파가 있었어요. 이 바리세파는 회당 중심에서 이 성경을 해석하고 그다음 율법을 해석하는 그런 사람들이었어요. 주로 중산층 중심이었는데요. 근데 이 사람들은 율법을 해석하다가 그 율법(律法)을 자기 사유화를 시켜 가지고 그 율법에다가 멍에를 얹어놓고 율법에다 법칙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지키지 못하면 정죄하고, 사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자기를 돌아봐야 되는데 그 율법의 어떤 기준을 가지고 남들을 판단할 도구가 된 것이에요. 그니까 남들을 판단하니까 그 마음에 천국이에요, 지옥이에요? 남들이 보면 자기는 의로운 같지만 나중에 지나놓고 보면 그 마음이 남 비판하는 사람의 그 마음이 뭐가 좋겠어요. 지금도 이스라엘에 가면요 그래서 호텔에 가면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어요. 왜냐하면, 안식일에는요. 유대인들은 버튼을 눌르면 안 돼요. 몇 번 못 알아들었는데요. 요 몇 층간을 눌리면 안 되는 거예요. 그거는 죄인들 이방인들만 눌리고, 자기들은 안식일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어요.
 
그러니까 시간 3분이면 3분, 4분, 1분이면 1번씩,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엘리베이터를 만들어 놓고 자기들은 나는 버튼 안 눌렀어요. 이렇게 스스로 위안을 삼고 그러니까 마음이 어떻겠어요. 그 율법이라 율법이란 것이 그게 여러분 생각 시내 산의 율법은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율법이 율법주의가 되면 맹물이 되는 거예요. 근데 그 맹물을 줄이면 오늘 성령의 폭발력이나 포도주로 바꿔주신 것이 시내 산의 율법을 갈보리 산에 보혈의 복음의 능력을 가지고 우리에게 새로운 길, 새로운 능력 향기로운 삶을 바꿔주시는 것이에요. 오늘날도 똑같아요. 오늘 우리가 이 세대 사랑하는 사람들과 다시요. 그 율법을 가지고 자기 거울을 만들어 자기를 돌아보게 해야 되는데, 그걸 가지고 나 홀로 표현한 게, 그러니까 기독교의 정신과 기독교 복음도 사유화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자기만 거룩하고 자기만 맞다. 이래 가지고 맨날 난 비판 하는 거예요. 그리고 비판하면서 유체(有體)이탈(離脫) 화법으로 비판하면서, 그 사람을 통하여 예수를 믿는다든지 그 사람을 통하여 교회가 부흥을 한다든지 그 사람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 그런 일은 거의 없어요. 그냥 율법을 사유화하는 것이에요. 복음의 능력에 들어가지 못한 게 오늘 이런 바리세파적인 흐름이 우리 속에도 있을 수 있어요. 저는 어릴 때부터 아주 정통 보수 신앙의 아버님을 목사님 모시고 살아왔기 때문에 저는 어릴 때부터 굉장히 어떤 율법적인 어떤 딱 이거. 이것에게는 이게 저에게는 참 신앙생활에 좀 옥죄이는 그런 것이 있었어요. 저는 어릴 때 매3주5, 매실주 이름이 아닙니다. 에 매삼, 주오, 매일 3장, 주일 5장, 그걸 안 하면 나는 너무 마음의 부담이 많은 거예요.
 
그리고 주일 성수, 그러니까 물론 그 자체는 너무 귀한 것인데, 나에게는 틴에이저 시절의 내 신앙이 좀 잿빛이었어요. 저는 지금도 월요일 날 저기 뭐야? 우산 뭐 월요일 날 이렇게 어느 날 제가 지금도 우산을 잘 안 들고 다녔는데, 내가 우산을 안 드는 이유가 뭐냐면 어느 날 월요일 날짜 그 당시에는 우산이 귀했는데 우산 들고 다녔는데 잊어버려 잃어버렸어요. 왜 잃어버렸나, 속으로 아 내가 어제 주일 성술을 제대로 못 해갖고, 하나님이 나를 오늘 징벌을 하시는구나! 그러니까 이 징벌 신앙 늘 얽매여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잿빛 어둠, 중3 때 얼굴 보면요. 고뇌와 그 고등학교 입학 수험표인데요. 보면 완전히 30대 중 늙은이? 아주, 아주 그래서 내가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이런 내용을 통하여 제가 영창이나 어떤 브렉트로 이거 없었으면 오늘날의 제 사역은 없었을 거예요. 혹시나 우리에게 있는 바리세파적인 기질, 비판하고, 신앙의 본질보다도 형식에 말씀의 의미보다도 말씀의 외피에 집중해 가지고, 자신의 존재와 의의를 드러내는 사람들, 오늘 이런 잘못들이 우리에게 없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흐름은 사도개파였어요. 아까 이 바레세파는 회당 중심이었고, 이 사도개 파들은 성전 중심이었어요. 사도개 파는 사독이라고 그 유명한 제사장, 대제사장 가문을 이어받는 이런 흐름이었는데요. 이 사두개파는 결론적으로 말하면 결과적으로 말하면 이 사람들은 최상류층이었어요. 바리세파가 중산층이었다면 최상류층, 이들은 아주 그저 귀족층이었고, 잘 나가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러다 보니까 자기의 어떤 대단한 어떤 위치 잘 나가는 것을 유지하기 위하여 기득권층이 돼 가지고 현실에 축복이 있으니까 현실의 그 축복을 계속 누리기 위하여 타협하고, 세속화되고 그리고 성경의 초월성과 영적인 능력을 믿지 않는 거예요. 그 마태복음 22상에 보면, 예수님께서 네가 부활도 안 믿는도다. 네가 하나님의 능력도 믿지 않는 도다. 라고 비판한 대상이 뭐냐 하면 사두개파였어요. 이 사람들은 회당의 아이들 보내지도 않고 당시에 로마 제국에서 키운 교육기관인 김나지움, 거기에 아이들 보내 가지고 그러니까 로마 권력하고 이래 서로 연결이 돼 가지고 자기 소위 세속화되어 있고 영적 가치를 부정하고 성전 제사를 집례 하는 것 같지만 타협주의자들, 혼합주의자들, 세속주의자들 이렇게 될 수 있어요. 그래서 오늘 이 본문 바로 뒤에 바로 이어서 예수님이 성전을 청결케 하신 것이었어요. 그래서 그 성전을 청결케 하신 그 타겟이 뭐냐면 사두교인들이었어요. 마지막 하나 남은 흐름이 있었는데, 그 흐름이 에스네파가 있었어요. 이 에스네파는 아주 극단적인 금욕주의자들이었어요.
 
물론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헌신하는 데 있어서 어떤 그 자기 자신을 추스르고 다 이래 이분들은 임박한 종말론에 대해서 눈을 열어 가지고, 아! 주님 오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세상에 수많은 오염되고 타락한 것들과 함께 우리 같이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따로 나갔어요. 이렇게 나와 가지고 따로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현실 세계를 부정하고, 주님 오시는 것만 기다렸어요. 주님 오시는 거 기다린 것 자체는 귀한 일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현실 세계 부정, 자 우리는 지금 밥도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아이들도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시장도 가야합니다. 우리는 직장생활도 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것들을 부정하면서 위험한 종말론에 빠져가지고, 가정을 망가뜨리고 일상생활을 거부하는 그런 스타일이 있어요.
 
그래서 에스네파, 그래갖고 이제 아주 강력한 금욕주의자들이 돼갖고 세레요한의 제자들이 이런 영향을 약간 받아서 예수님의 저자들 보고 뭐라 그랬죠? 너희들 왜 금식도 안 하느냐? 고 그런 식으로 엇박을 질렀습니다. 정리하면 3가지 첫 번째 어떤 흐름이었어요. 바리세파, 두 번째는 뭐예요? 사두개파 세 번째는 뭐예요? 에세네파 그러니까 또 어떻게 보면 우리 마음의 마음속에도 이런 속성이 조금씩 다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보세요. 하나님의 나라는 바울이 고백하기를 ‘하나님의 나라는 오직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의와 희락이라.’ 샬롬이 있어야 되고, 희락, ‘카라’ 라는 이 희락, 이 살롬의 평강과 아 희락 죄송합니다.
 
제가 오늘 에이레네와 카라가 정말로 기쁨과 정말 평강과 희락이 있어야 되는데, 희락이 있기는커녕 마음이 지옥인 거예요. 그러니까 가장 이것을 깨닫게 하고 잘못된 개념을 고쳐줄 수 있는 최고의 현장이 뭐냐면 잔칫집인 거예요. 잔칫집은 기쁘고 감사하고 그다음에 서로 격려하고 축하하고 그것이 잔칫집 아닙니까?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제대로 깨달을 수 있도록 주님께서 첫 표적을, 그 이면에 끝으로 드러난 이적보다도 물이 어떻게 포도주가 될지, 그 기적도 너무 소중하지만 그 기적에 담긴 표적 의미 진리를 오늘 저와 여러분의 깨닫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우리 속에 있는 바리스아적인 것, 그다음 사두개적인 것, 에세네적인 것을 정리하면서 균형 잡힌 샬롬과 기쁨과 희락의 신앙생활 할 수 있겠는가? 지난주에는 제가 모자람에 대한 통찰력이 있어야 된다고 그랬어요. 기억나십니까? 모자랄 때, 그 모자란 것을 주님께 들고 가니까 주님께서 표적과 기적과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에요. 그러니까 저와 여러분의 삶에 수많은 메마름이 있어요.
 
우리의 인생의 강에 바닥이 말라버리는 수가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하느냐 제3의 기적을 제 사흘 날에 카이로스의 기적을 허락하여 주옵소서. 근데 오늘은 이런 상황 가운데 이런 배경 가운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 오늘 1~2가지를 말씀을 드릴게요. 첫 번째 저와 여러분들의 이 제대로 된 하나님 나라 건설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실 때 하나님 나라 건설에 동참시키기 위해 부르셨는데 그것을 이루기 위하여 첫 번째는 우리가 해야 할 것이 뭐냐 참된 하나님 나라 건설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있다.
 
II. 참된 하나님 나라 순종에 달려있다.
 
-이거지 순종한 이 얘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많이 알 수 있지만 오늘 여기 좀 진지하게 한번 우리가 이 말씀 앞에 우리가 자신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이 하늘의 나라 건설은 다시요. 뭘 순종한다. 말씀을 순종한다. 근데 오늘 순종할 때, 오늘 대상으로 나온 분이 사람들이 뭐냐 연회장은 이 잔치에 연회장은 물이 포도주가 된 사건들, 이 모든 걸 다 몰랐으나 물 떠온 하인들은 알더라. 그랬어요. 근데 그 물돈 하인들이 알게 된 배경이 뭡니까? 그리고 연회장이나 신랑신부도 몰랐지만 첩봤다로 죄송합니다. 제일 첫 번째로, 누가 알았느냐, 하인이 알았는데 하인이 알았던 배경은 뭐예요? 5절에, 이렇게 나와 있죠.
 
*요한복음 2:5,
5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이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이게 쉬운 게 아니에요. 하인들이 말씀을 순종하여 물이 포도주가 되는 기적이라는 이거는 어릴 때부터 일반 상식으로 다 알고 있는 거예요. 자 그런데 6절을 보니까 거기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요한복음 2:6,
6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 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돌 항아리가 6개가 있습니다. 정결 예식을 위하여 유대인들은 들어갈 때에 그 집에 입장할 때에 그 당시에 무슨 아스팔트 도로가 있었던 것도 아니고, 주요 환경이 깨끗한 것도 아니고, 먼지가 풀썩이고 그러잖아요. 그러면 더러우니까 손발이 더러워지니까, 그 손발을 깨끗이 손을 깨끗이 정결하게 닦는 그 물통이에요. 그 6인데 물통 하나가 한 100리터 정도 들어가는, 그러니까 100리터라면 여러분 그 뭡니까? 500cc 500씨씨 우리 큰 이 물병 몇 개입니까? 이 산수도 안 됩니까? 가만있어 2개 2개가 1리터니까 200개네요. 200개 맞죠. 2부가 1부보다 수학 실력이 좀 더 없는 것 같아요. 자 이 100리터면 큰 그러니까 그 당시에 고대 근동사회 또 광야 그 해양성 그 이스라엘 캘포니아와 비슷한 날씨인데 물이 없는 물이 잘 없어요. 물이 귀한 곳인데 그게 100리터씩 큰 항아리 6개를 채우는 게 그 쉬운 일이겠어요.
 
그게 그리고 또 이론적으로 맞아야죠. 아니 정결예식 행하기 전에 잔치 시작하기 전에 1주일 동안 시작되는 잔치는 1주일 동안 하는 잔치인데 시작되기 전에 그게 가득 채우라면 그건 이해가 가지만 이미 다 입장 완료인데, 바보 같은 짓이고 그다음에 이 그걸 이제 물을 떠서 갖다 주라고 했는데, 만약에 맹물이 변해 가지고 그게 포도주가 안 되고 맹물 갖다 주면 뺨이라도 맞을 수 있는 그런 상황인데 근데 뭐라고 말했어요.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그랬어요. 자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앙생활 하면서 우리 제자훈련하면서 우리 말씀을 순종하는 거 우리에게 익숙한 거예요. 근데 오늘 이 익숙한 본문에서 우리가 보화를 캐내야 하는데, 저와 여러분에게 주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그대로 하라 하느라 그게 뭐예요?
 
말씀을 순종하는 것인데, 오늘 이 예배를 통해서 아니면 여러분들이 QT를 통해서든 아니면 제자훈련을 통해서든 아니면 성경을 통해서 하는 가운데서 어떤 경우에서든지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뭐 하루에 한번이 아니면 최소한 1주일에 한번씩이라도 이상은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있어요. 만약에 여러분 2달이 2주가 가고, 한 달이 갔는데, 하나님의 백성이라 그러고 신앙이라고 그러면서도 하나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들이 도전받아보고 여러분들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이 한 달이 가도 하나도 없다면 여러분들은 그 순간, 비상(非常)상황(狀況)이에요. 버린 자식, 아니 하나님의 백성과 하나님의 사람들에게는 적어도 필요하면 하루에 한 번 아니면 1주일에 한 번, 2주일에 한 번이라도 꼭 하나님 말씀을 통한 여러분들에게 도전하는 것이 반드시 있다고 확신하는 것이에요. 지난 2주 동안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도전받아본 적이 하나도 없다. 순종을 요구할 하나도 없다. 그거 굉장히 비상사태(非常事態)예요. 지금 그리고 내가 하나님 말씀을 순종할 때, 뭘 어떻게 순종해야 되느냐 어려운 거 없어요. 이 말씀을 볼 때에 문법적으로 문자적으로, 역사적으로, 군사적으로, 리트러리, 그래머티컬리, 히스토리컬리, 셀베이션 히스토리, 구원의 구원사적으로 이걸 보게 되면 우리가 많이 가르쳤잖아요. 이거 보게 되면 자연스럽게 여러분들 마음속에 1주일에 한번, 아니면 2주일에 한번이라도 반드시 하나님이 여러분들에게 요구하는 말씀이 있을 것이에요.
 
그걸 순종하면서 우리가 어떻게 되느냐, 자 신앙의 본질은 뭐예요? 신앙의 본질은 하나님을 알아가는 것이에요. 하나님에 관해서 하는 것이 아니에요. 노우 어바우트(know about)가 아니라, 노잉가드- Knowing God! 에요. 하나님 자체를 아는 거예요. 하나님 자체를 어떻게 아는 거예요. 말씀을 순종하기 때문에 말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을 아는 것이에요. 사람들이 왜 하나님을 모를까요? 순종을 안 하니까 하나님을 모르는 거예요. 야고보서 1장을 보면 너희가 순종을 안 하니까, 기만하고 스스로 속이는 자가 되었다. 그러는 거예요. 다시요. 순종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순종 안하고 남들에게만 순종을 요구한다면, 이거는 이건 안 되는 거예요. 순종 안 하니까 영안히 닫히고 판단 능력이 마비가 되는 것이에요. 불순종하니까 잘못된 악순환이에요.
 
그래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물이 포도주가 되는 사건을 통하여, 우리는 순종에 대한 눈이 열려야 되는데 이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삶의 목표가 뭐냐면, 성공을 추구하는 거예요. 그러나 엄격히 들어가면 저와 여러분들의 삶에 목표는 성공을 추구하기보다도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돼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우리는 성공이 아니라, 말씀 순종이 되는 것이 어떻게 보면 승리가 아니라 말씀의 순종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그 제가 한 번씩 한 주간 동안 승리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내용을 말씀할 때마다 그 속에는 사실은 말씀을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승리를 위한 보이지 않는 순종이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 우리나라의 예를 들어서 무슨 차별 금지법, 성소수자 인권 확대, 성소수자나 차별 금지법 동성애 다 우리 다 참 인격이 다 귀한 분들이에요.
 
그러나 우리가 지금 홍길동을 말하면 말하지 못하면 되겠습니까? 홍길동은 자기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말 못 했잖아요. 우리가 지금 앞으로요. 이 차별 금지 통과되면 제가 오늘 이 설교 못 합니다. 제가 이런 설교하면요 저한테 법적으로 고소가 들어옵니다. 그럼 저는 이게 그 법적인 걸 처리 할려고 제가 아마 검찰이나 경찰이 왔다 갔다 해야 될 겁니다. 미국이 지금 그렇게 돼 있다구요. 어제도 제가 아침에 얘기했지만, 이제는 유니버설, 우리 저기 모든 사람이 같이 쓰는 화장실을 멀쩡한 남녀화장실 다 두드려 부수고 여자화장실, 남자화장실을 다 통합시켜 버렸어요. 그럼 이거는 참 이게요 이건 말씀을 순종하면 되는 건데, 이상한 소리 하고 이상한 해석을 해 가지고,,, 오늘 사랑의 교회는 한국교회는 말씀을 순종하는 주의 종들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성공이 아니라 순종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따라서 제가 자주자주 말씀드리는 건데 이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사람이고, 이 세상에서 제일 어리석은 사람은 주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제일 지혜로운 것은 주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이고, 제일 어리석은 것은 주님 말씀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교만이라는 것은 거드름 피우는 게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 순종하지 않는 것이 교만이 되는 것입니다. 믿는 자만이 순종할 수 있고 순종하는 자만이 참으로 믿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얘기할 때 주님께서 어느 날 지혜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를 얘기하시면서 마태복음 7장에서 지혜로운 자는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잔데 그 사람은 반석 위에 세워진 사람과 같고, 집을 어리석은 자는 말씀을 듣기는 하는데, 순종을 안 할 때 모래 위에 세운 집과 같다(사상누각). 그랬어요.
 
둘 다 똑같이 말씀을 들었어요. 오늘도 여러분 저와 같이 말씀을 같이 듣는 거예요. 저도 듣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오늘 1주일, 2주일 혹은 오늘 2주일 예배를 통하여 주님이 여러분과 저에게 주시는 순종을 요구하실 말씀이 있는 것이에요. 그걸 제대로 깨닫고, 그 지키는 자가 우리가 반석 위에 세운 지혜로운 자가 될 수가 있는 것이죠. 저는 우리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할 때마다 자주 하는 얘기가 우리의 인생에 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우리가 주님 앞에 서는 그날이 우리의 인생을 피크가 되기를 원하는 거예요. 10절에 실제로 뭐라고 말씀합니까? 이렇게 나와 있죠.
 
*요한복음 2:10,
10 말하되 사람마다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고 취한 후에 낮은 것을 내거늘 그대는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두었도다 하니라.
-점점 더 좋은 걸 나중에 낸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의 삶과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개념과 순종의 은혜가 있을 때는 우리 인생은 가면 갈수록 더 좋은 포도주가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 있어요. 그런데 어떻게 하면 가면 갈수록 점포 도주가 되는가 우리의 인생에 최선은 아직 오지 않았는데 우리가 앞에 하나 뭔가 조건을 붙인다면 뭐라고 붙일 수 있는가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최선을 준비하고 계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한 문장을 더 둔다면 우리의 순종을 우리가 순종할 때 하나님은 계속해서 우리에게 최선의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것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누구에게나 최선을 아직 오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모든 사람이 최선을 경험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순종하는 이 계단이 결정이 될 때에 그 사람에게는 최선이 오게 되는 것이에요. 자, 저는 지금 모자람에 대한 통찰력 얘기하고⓵, 오늘 지금 제가 오늘은 제가 좀 순종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⓶.
 
그러면 이 순종을 얘기할 때 오늘 하인들이 이걸 순종했는데 이 하인들이 원어에 보니까 보통 우리가 하인 그러면 종(從), 그랬을 때 신약의 서신서에 쓴 둘로스 그러니까 아주 종이에요. 그냥, 그냥 자기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완전히 꼼짝 못하는 거에요. 살아 숨 쉬는 짐승 같은 그런 그래서 우리가 주님 앞에 얘기할 때 우리가 주님의 종이라고 그랬을 때 서서에서 다 둘로스 라고 우린 주님이 주인이고 우리는 꼼짝 못하는 거예요. 근데 오늘 여기 하인들은 어떤 하인들인가 보니까 원문이 둘로서가 아니라 디아크노스 그래 가지고 이 하인들이 뭐냐면 정직의 집사 비슷한 사람이에요. 그리고 1주일 동안 잔치를 하게 되니까. 품앗이로 이웃에 있는 사람들이 가서 자발적으로 하인 노릇을 하는 그런 사람이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이런 사람들은 순종 안 해도 돼요. 근데 왜 순종(順從)하는가?
 
오늘 제가 이래 순종을 얘기하고 말씀을 순종을 얘기하면 일반 교인들뿐만 아니라 좀 성숙한 분들도 약간의 프레셔를 느껴요 그런데 주님은 무턱대고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분이 아니에요. 주님은 너무나도 좋은 최선 너무나도 귀한 것을 남겨두시고 그걸 위하여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이에요. 주님은 무슨 앵벌이가 아니에요. 무슨 자식들 못살게 구는 그런 부모가 아니에요. 여러분과 제가 제일 잘 되기를 원하는 것이 주님의 심정이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주님께 순종하는 것이 우리 손해 보는 거 같은 그런 느낌을 가지면 안 돼요. 죄송합니다. 내가 용어를 써서 주님은 우리를 뽉아먹는 분이 아니에요. 우리 앵벌이가 아니에요. 주님은 우리의 순종을 통하여 뭘 준비하시는가? 오늘 2장 11절에 너무 중요한 말 다시 한 번,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 가라 생각해 그다음 뭐야?
 
*요한복음 2:11,
11 예수께서 이 첫 표적을 갈릴리 가나에서 행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시매 제자들이 그를 믿으니라.
그의 영광을 나타내심에 제자들이 모여 그를 믿으니라.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 나라의 찬란한 영광을 보여주신 것이 그러니까 오늘 이 시간 오늘 저와 오늘 여러분들은 저는 참 이 율법의 굴레에서 아니면 이 어떤 한국 교회의 어떤 성리학적인 어떤 유교적인 이런 것들이 있어 갖고, 악재는 이런 어려움들이 있었는데, 제가 이걸 오늘 깨닫고 지금부터 드리는 시작 한 10분 정도 드리는 말씀을 깨닫고, 이것 때문에 저는 사역의 수많은 껍질과 어떤 압박을 꿰뚫고 오늘 제가 여러분들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믿어주셔야 되는 거예요. 자 다시요.
 
순종이라는 말을 할 때 우리가 압박을 당한다든지 급박을 당한다든지, 순종이라는 말을 들으면 우린 무슨 내가 막 그냥 힘들어 이게 아니고, 더 높은 수준의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보면 상당히 자발적으로 이 순종에 대해서 눈이 열리게 되어 있다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거예요. 그러니까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순종을 요구하신 이 은혜를 통하여 우리에게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나타내신 줄로 믿습니다. 진짜 영광 찐 영광이 돼서 눈이 열리게 되어 있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영 가족 여러분, 가면 갈수록 더 나온 향기로운 포도주가 오늘 본문에 나온 것처럼,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삶에 남은 인생 가운데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믿으셔야 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은 너무나 신묘막측한 것입니다. 청춘의 시각이 청춘의 그 시대가 인생의 포도주를 마실 수 있는 시기라고 말합니다. 이 청춘과 젊음은 흥미와 보람과 모험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물이 포도주가 되는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우리가 순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깨닫게 되면 청춘이 아니더라도 남들이 볼 때 풍요롭고 그런 것이 없다 하더라도 인생의 수많은 우여곡절 가운데서도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광에 눈이 열려가지고 여러분과 제가 앞으로 경험할 수 있는 최선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요한복음 이 첫 표적의 의미는 1장 14절에,
 
*요한복음 1:14,
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이 놀라운 말씀이 잘하는 말씀인데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그 아심에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분하다. 라고 그랬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최고의 영광은 주님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것이에요. 그 주님 우리 가운데 거하셔갖고 오늘 혼인 잔칫집에 주님이 물로 포도주를 만드는 이 사건을 통하여 찬란한 하나님의 영광을 이 땅에서도 어느 정도 맛보도록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가을 사이를 통하여 하나님의 이 찬란한 영광을 모든 다락방마다, 모든 교구마다, 모든 제자훈련반마다, 모든 식구들마다 경험하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주님의 임재를 통해 경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이 첫 영광을 나타내시는 거에요. 저는 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통한 영광을 가르쳐주시고 깨닫게 하셔야 되니까.
 
아, 신앙생활의 본질이 뭔가 주님을 다 알아가는 것이라 그랬는데 주님을 더 알아간다는 건 어떤 뜻인가 하나님의 영광에 눈이 열린다는 것인데, 그래서 여러분 이 믿음 생활이라는 것이 우리의 의지의 결단에만 달려 있다면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결단하고 막 이렇게 한다면, 우리 신앙생활은 좀 왔다 갔다 할 거예요. 그런데 우리의 믿음 생활에 깊이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에 반응하는 것이 본질이라면 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에 눈이 열려 가지고 그 영광에 반응하는 것이 목표라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은 늘 변함이 없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늘 변함이 없어 그러니까 그 찬란한 영감은 변함이 없기 때문에 우리 주님의 이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확고한 방향을 베풀어주시는 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이렇게 말할 수 같이 보겠습니다.
 
*믿음이 우리의 의지 결심이라면 믿음이 우리의 의지에 좌우되겠지만, 믿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에 반응하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영광은 변함이 없기에 그리스도의 영광에 집중하는 한 우리의 믿음은 지속될 수가 있다.
 
할렐루야! 다시요. 믿음은 그리스도의 뭐예요? 영광에 반응하는 것이 이성적 논증을 초월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충만한 위엄과 영광과 경이로움에 대한 반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돼서 눈이 열리는 만큼 여러분들의 믿음의 수준이 올라가게 돼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로스를 구세주를 주님으로 모시고 피의 복음을 믿는 수 예수를 믿지만 우리의 신앙에 수많은 요동이 있습니다마는 그러나 그 요동 가운데서도 변함이 없기 위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눈이 열려야만 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하나님의 영광의 눈이 열릴 때에, 고난과 평안에 대한 개념이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어떤 고난이 와도 하나님의 영광에 접목이 되었으면 그 고난을 고난으로 끝내지 않는 것이에요. 그 고난이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이 영광의 문이 열려있지 않는 한 무슨 일이야, 세상에 살아가고 강남에 살아가고 아무리 잘 되어도 하나님의 영광과 접목돼 있지 않으면 그 신앙은 제대로 된 것이라고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정말 좋아하는 것이,
 
*고린도후서 4:17,
17 우리가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우리가 참 환난이 혼란 받습니다. 어려움 겪습니다. 고통 겪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영광의 중요한 것 영광의 무게, 영광의 찬란한 것과 비교하면 우리가 받는 이 환란을 경한 것이다.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정도의 수준이 되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러니까 이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 여러분 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필요하면 기도하면 물질도 주세요. 필요한 그러면 우리에게 필요하면 뭐 장수도 주세요. 필요하면 우리에게 복도 주세요. 그러나 하나님은 함부로 안 주는 거 있어요. 그것이 뭐냐?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은 하나님은 함부로 우리가 우리에게 안 주시는 거예요. 그것은 뭐냐 고난 가운데서도 어려움 가운데서도 이 말씀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주목하고 관심을 갖고 이 영광에 대해서 눈이 열리기를 원하는 그 사람에게 하나님은 하나님의 영광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영광을 체험하면요. 세상 사람들과 좀 달라지기 시작하는 거예요. 이 영광을 체험하면 남들이 볼 적 미쳤구나, 남들이 볼 때 저거 돌았구나, 그것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거예요. 바울을 보고 뭐라고 그랬습니까? 사람한테 니가 미쳤도다.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니까 바울은 뭐예요? ‘나는 죄인의 괴수라’ 고 바울이 무슨 죄인의 괴수예요.
 
바울은 진짜 똑똑한 사람이고 참으로 경건한 사람이고 아무도 바울을 뭐라고 할 도덕적 흠을 잡을 만한 사람이 없어 그런데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 눈이 열리니까 ‘나는 죄인의 괴수’라고 심지어 예수님 보고도 사람들이 미처 도다 그랬어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주님과 나만이 아는 은밀한 감탄사가 있는 것이에요. 여러분 영광의 눈이 열리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려워도 물론 포도전에 사건을 가지고, 저는 이 하나님 영광의 눈이 열리고 난 다음에 수님 나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광에 반응하는 평생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걸 통하여 품격 있고 주님이 주시는 신실함과 높은 은혜의 수준의 고봉에 올라가게 하여 주시옵시고, 영광일세! 영광일세! 내가 누릴 영광일세! 은혜로 주 얼굴 보옵나니 찬란한 영광 그 영광 내 것일세 장례식에만 부를 게 아니고, 오늘 이 시간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영광일세, 영광일세, 그 찬양 통하여 여러분과 제가 우리 속에 있는 바리새적인 것, 사도교적인 것, 에세네적인 것, 다 처리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한 신실한 일꾼으로 물 떠온 하인처럼 영안의 눈이 열리는 주의 종들 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믿는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일인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것입니다. 이 고통 많고 우수사려, 간난신고의 이 시대 가운데서도 찬란한 하나님 영광을 체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난도 고난이 아닌 것입니다. 환란에 경한 것과 영광의 중한 것을 비유하면서 비교하면서, 맹물 같은 인생이 성령의 폭발력 있는 포도주의 능력을 체험하게 되는 겁니다.
 
♣요약

질그릇 같은 내 마음이 율법주의 세속주의 금욕주의가 옥죄이는 지옥이 될 때, 하나님의 영광에 반응하는 강력한 믿음으로 천국을 건설하며 살아가야 한다. 내게 맡겨주신 항아리에 물을 떠다 드리는 순종을 올려 드릴 때, 가면 갈수록 더 향기롭고 풍요로운 하나님의 최선을 누리게 됨을 확신해야 한다. 사랑의 교회와 사랑글로벌아카데미(SaGA)가 하나님의 찬란한 영광에 눈이 열릴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로 변화하는 영광스러운 가을 사역이 되기를 소망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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