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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4월 14일)-
(예수님은 누구신가?-Who is JESUS?)-9번째
제목: "용광로(鎔鑛爐)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예수님"
말씀: 다니엘 3:19~27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이현규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다니엘 3:19~27,
19 느부갓네살이 분이 가득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향하여 얼굴빛을 바꾸고 명령하여 이르되 그 풀무불을 뜨겁게 하기를 평소보다 칠 배나 뜨겁게 하라 하고.
20 군대 중 용사 몇 사람에게 명령하여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결박하여 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지라 하니라.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23 이 세 사람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결박된 채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떨어졌더라.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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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대 찬송 감사합니다. 명실공이 우리가 지금 봄의 한가운데 꽃 대궐 속에 충만한 봄의 시간이 되었습니다. 제 마음속에 우리 성도들도 예외 없이 영원의 봄 동산을 경험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근데 오늘 여러분 찬송가를 부르는데 이 찬송가가 보니까 좀 맥아리가 없어요.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찬양대도 잘 모르시는 것 같고, 근데 이 찬송은 제가 한27년 전쯤 브라질의 상파울로에서 한인 교민들 집회를 하는데, 마지막 시간에 청소년들 한 십여 명이 나오더니, 특 송을 하는 거예요. 이걸 가지고 우리 교우들은 잘 모르고 있는데, 27년 전에 브라질 상파울로의 한인 교회 청소년들이 이 찬송을 하는 거예요. 특 송으로, 저는 어릴 때부터 이 찬송을 잘 알았어요. 근데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거예요.
♬“이 말씀 전할 때, 내 마음이 기쁘고, 말씀을 할수록 새 기쁨 넘치네, 우리에게는 새 기쁨이 넘치기를 바랍니다. 그다음에 이 말씀을 들을 때, 이 말씀 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가사가 안 나오죠? 나라 영광중에 나부를 새 노래 옛 부터 좋아하더니, 이 말씀 다시 3절에, 이 말씀 들은 사람 또 듣기 원하고 목말라 사모하니 말씀 진리라.” ♪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목마른 말씀이 되기를 바라고,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진리의 말씀으로 여러분들 탁 정리되기를 바랍니다. 옛 부터 좋아하더니, 말씀 뭐 하고 싶은데 시간이 없어요. 못합니다마는 이 찬송을 집에 가서도 함 불러보세요.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지금 주신 음성이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들이 브라질에 있는 청소년들을 이상으로 찬송이 돼서 영의 눈이 떠지기를 바랍니다. 사람들 다 그래도 주님 잘 섬겨요. 아무것도 없어도 해외 디아스포로로 흩어져 가지고 뭐 보장되는 거 없어도 이런 찬송을 통하여 주님의 임재를 깨달으면 이겨낼 수가 있는 것이에요.
오늘 저는 예수님 누구신가?(Who is Jesus?-더블유제이 시리즈) 번째 “용광로 풀무불 속에서도 함께하시는 여수님”에 대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오늘 이 본문의 스토리는 여러분들이 익숙하게 하는 내용이고, 처음 오신 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사드락과 매삭과 아벳느고라는 다니엘의 구약에 다니엘의 세 친구인데, 구약에 출중한 인물인 다니엘의 세 친구인 이들이 풀무불 속에, 용광도 속에서 구원받는 내용입니다. 이 저는 여기서 어떻게 예수님을 발견하고 여기서 어떤 은혜를 받을 수 있을 것인가? 여러분 로마서 15장 4절에 이런 말씀해 주세요. 같이 한번 읽겠습니다.
*로마서 15:4,
4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위로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구약의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뭐냐, 특별 오늘 이런 말씀을 기록한 이유가 뭐냐면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여러분 교과서 알죠“ 교과서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교과서가 될 것이다. 오늘 3장에는 이 본문의 말씀이 여러분들의 생애와 여러분들의 생애와 여러분들의 인생에 교과서가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 다니엘과 다니엘의 세 친구란 1차 포로 때에 잡혀갔어요. 이 차 3차 포로 뒤에 잡혀가는 사람들에게도 얼마나 이 말씀이 위로가 됐을지 몰라요. 그리고 후대에 있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들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매달리고 수많은 고통 속에서도 이 말씀이 시대에 한 민족의 민족이 면함을 당할 어려움 가운데서도 교과서가 된 것이에요. 오늘 우리의 상황 우리의 주위의 상황이 녹록치 않고 수많은 일들이 일어났지만 여러분과 저의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삶에 교과서가 되기를 바랍니다. 첫 번째 생각할 것 하나님을 진심으로 섬겨도 풀무 불에 던짐을 당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I.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겨도 풀무 불에 던짐 당할 수 있다.
-오늘 18절에 보니까 단연히 세 친구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우리는 우상 신상에 절하지 않겠다. 제가 배경을 다 뭐 자세히 말씀 다 못 드립니다마는 느부갓네살 왕이 당대 최고의 황제였고 당대 최고의 권력자였고 무소불이(無所不爲)를 행사하는 사람이었어요. 그러니까 신상을 세웠어요. 그것도 평지에다가 높이 세워갖고 더 두드러지게 보이라고 세워 가지고 이제 절하라고 그랬어요. 근데 절 못한다고 다 이들 질투하던 사람들이 이들이 관리로서 잘 하니까 옆에는 항상 그래요. 누가 잘하면 대한민국 사람하고 똑 같에요. 누가 잘하면 봐주지를 못하는 거야. 질투하고 같이 박수치고 같이 해가지고 같이 잘하면 같이 성공하는데 물어뜯고 집어 뜯고, 잡아 뜯고, 지난주에 제가 원,불,비라고 그랬죠? 물어뜯고 집어 뜯고 잡아 뜯고 물,집,잡이에요. 그래갖고 이 세 친구를 갖다가 얼거 매 가지고, 이제 신상에 절하지 않는다고, 그래서 당시에 느부갓네살 왕이라는 이 황제가 왕이 무소불이 왕이 모욕을 당했다고 느끼고 그래서 이제 풀무 불에 집어 던져지게 되는데, 여기서 우리가 먼저 생각할 것은 우리가 어떨 때는 결단하고, 순종하고, 충성하면 늘 사람들이 격려하고 인정해 준다고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을 때가 많이 있어요. 오히려 미워하고 박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요한복음 15장 20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5:20,
20 내가 너희에게 종이 주인보다 더 크지 못하다 한 말을 기억하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은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요 내 말을 지켰은즉 너희 말도 지킬 것이라.
-사람들이 나를 박해하였으니 즉 너희도 박해할 것이다. 전에 우리 개혁 판에는 사람들이 나를 핍박했으니까, 너희도 핍박(逼迫)할 것이다. 주님을 핍박 하니까 주님을 따르는 사람들도 핍박한다. 오죽하면 사도바울은 디모데후서 3장 12절에,
*디모데후서 3:12,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핍박을 받으리라. 여기서 경건하게 산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경건하게 개인적인 경건도 있습니다마는 복음을 위해서 전도를 하고, 기독교 신앙 가치관을 가지고 한번 나라를 한번 제대로 세워보고자 애를 쓰고, 전도와 선교를 위하여 어제도 여기 우리가 복음 통일을 위하여 어제도 여기 수많은 사람들이 모였고, 오후 한 시에 주님 이 나라가 피 흘림 없이 복음적으로 통일되게 해 달라고 막 그렇게 할 때에, 사람들이 박해를 하는 겁니다. 숨어서 경건하게 살면 누가 박해를 하겠어요? 그런데 기독교 정신을 선포하고, 이 나라가 사회주의가 되면 안 되고 이 나라가 공산주의가 되면 안 됩니다. 라고 외칠 때 박해가 있다는 것이에요. 이 세상은 세속의 우상들을 섬기지 않는 자들에게 그리고 복음을 선포하는 삶들에 대해서 저들 나름대로 뜨거운 용광로(鎔鑛爐)를 준비해 놓고 있는 것이에요. 용광로는 빈정거림과 무시와 따돌림의 화덕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제대로 섬기고 기독교 신앙 가치관을 가지고 우리가 지금 차별금지법 ,동성애, 이런 거 반대하면 얼마나 무시라 미국 같은 데 가면요 완전히 왕따 시키고 있잖아요. 동부의 아이비리그 잘난 데는 전부 다 교술 다 동성애자들이 많고 얼마나 풀무 불을 많이 준비했는지 몰라요.
다시 본문으로 들어가 가지고, 느부갓네살 왕이 화가 머리끝까지 나가지고 풀무 불을 7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그랬어요. 그리고 세 사람을 끌어다가 풀무 불에 던져 넣기 위하여 아주 더 힘이 센 사람들이 세 사람을 묶어 가지고 풀무불 속으로 왔어요. 저 이게 풀무 불이 제 제철 용광로인데, 내가 자세히 위에 있을 때, 뭐 자세 설마 큰 거 있어요. 그리고 밑에는 사람들이 막 왔다 갔다 할 정도로 있잖아요. 위에서만 갖다 놓고 이제 네 그런 게 있어요. 제가 설명을 다 못하고 21절과 22절을 보니까,
*다니엘 3:121-22,
21 그러자 그 사람들을 겉옷과 속옷과 모자와 다른 옷을 입은 채 결박하여 맹렬히 타는 풀무불 가운데에 던졌더라.
22 왕의 명령이 엄하고 풀무불이 심히 뜨거우므로 불꽃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붙든 사람을 태워 죽였고.
-힘센 사람들이 단열의 세 친구를 뭐예요? 결박해서 풀무 불에 던졌는데 그들을 풀무 불에 던진 사람들이 먼저 불에 타서 죽어버렸어요. 그러니까 정도의 화력이니까. 이 세 친구는 이제 끝난 것 같았어요. 느부갓네살 왕도 좀 정신이 없는 게 진짜 고통스럽게 벌을 주려면 불을 7배나 강하게 하면 고통이 오겠습니까? 예 보통 풀무 불이 1000도가 넘는데, 7배라면 어떻게 되는 거예요. 불도 적당히 뜨거워요 고통스러운데 너무나 뜨거우면 뭐 고통 느낄 시간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나 이 감정이 복받치고, 생각이 잘못되면 이 세상 사람들 가운데도 판단 능력이 마비된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우리 주위에도 예상외로 말도 안 되는 내용을 가지고 기독교를 비판하고, 비하하고, 조롱하고 공격하는 사람들을 보면 저노마 저것들이 느부갓네살이구나 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에요.
우리가 말씀을 순종하고 결단했는데도 실상은 풀무 불에 던짐을 당하고 고통당하는 삶의 현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다음은 어떻게 됩니까? 거기에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데, 다니엘이 세 친구가 옷을 입은 채로 던져줬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풀무 불에 던져져서 끝인 줄 알았는데, 24절에 보니까,
*다니엘 3:24,
24 그 때에 느부갓네살 왕이 놀라 급히 일어나서 모사들에게 물어 이르되 우리가 결박하여 불 가운데에 던진 자는 세 사람이 아니었느냐 하니 그들이 왕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왕이여 옳소이다 하더라.
-그런데 이제 그다음에 더 놀라운 기적을 본 게 25절에 25절이요.
II.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의 현장
*다니엘 3:25,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네 번째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 그러니까 풀무불이 하늘이 뭐야? 여기 두 가지 기적이 일어났는데, 하나는 기적이 한꺼번에 일어났는데, ➀‘하나는 불에 타지 않고 건재한 기적’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앞에 보니까 뭐라고 돼 있어요? 그들을 포박한 줄만 탔어요. 포승줄만 탄 거예요. 두 번째 기적은 뭐냐 하면 ➁‘네 번째 사람, 신들의 아들과 같은 네 번째 사람 그들이 함께 한 것’ 이 두 가지 기적이에요. 여러분 풀무불이에요. 닭갈비집에 가면 어떻게 돼요. 그리고 저기 뭡니까? 뭐 이런 구이 집에 가면 온몸에 냄새가 나는데, 뒤에 나옵니다. 냄새 하러 나지 아니하고 포승(捕繩)줄만 결박이 없어지고 네 번째 사람이 함께한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이 네 번째 사람에 대해서 우리가 뭐 다 명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대체적으로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신들의 아들, 신의 아들 그러니까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이 신의 아들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신약의 육신을 입으시기 전에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소위 크리스토파니, 구역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지난번에 우리 여호수아 5장의 군대 장관으로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하다. 여러분, 그렇게 그냥 그렇게 해석이 되기를 바랍니다. 그럼 큰 무리가 없어요.
그리고 그들은 거의 뜨거운 용광로 풀무불 속이 아니라 네 사람이 마치 한가한 정원을 거닐 듯이 마치 왕궁을 거니는 것처럼 풀무 불은 그들에게 전혀 영향을 끼치지 못했어요. 그러니까 이걸 보면서 제가 이사야 43장 2절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고 있구나.
*이사야 43:2,
2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그할렐루야 이 약속의 말씀이 문자적으로 이루어지는 순간이었어요. 문자적으로, 여기서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인데 그것이 뭐냐 하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에게 이 풀무불의 핍박이 왔을 때에, 그것을 피했습니까? 안 피했습니까? 피하지 않았습니다. 풀무 불을 정면으로 맞닥뜨렸습니다. 그리고 정면으로 맞닥뜨리고 풀무 불 한가운데서 뜨거운 용광로 한가운데서 건짐을 받게 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맞닥뜨리는 것 하나님을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않겠다고 목숨을 건 선언을 한 것입니다. 저는 가만히 생각해 보니까요? 뭐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일단 풀무 불에 여기서 보면, 풀무 불에서 건잠 받는 기적은, 풀무불 속에 들어가겠다고 선언하고 아니 실제로 풀무불 속에 들어가야 건짐을 받는 것이에요. 아무것도 안 하는데 무슨 일이 일어납니까? 그래서 제가 썼어요. 풀무 불에 안 들어가니까 풀무불 속에서 건짐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안 일어나는 것이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풀무 불에 속에 들어가지 않으니, 풀무 불에 건짐 받는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
-어쨌든 간에 그렇게 이해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신앙생활을 왜 무언가가 일어나지 않습니까? 왜 내 신앙생활이 지루합니까? 왜 내 신앙생활에 물을 물 탄 듯 매가리가 없고, 물에 물 탄 듯 뭐가 없습니까? 왜 그럴까 왜 강직함이 없을까? 오늘 여기 본문을 보면서 우리가 해석하는 것은 풀무 불에 들어가는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가 목숨을 걸고 믿음을 지킨 결과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27절에 보니까,
*다니엘 3:27,
27 총독과 지사와 행정관과 왕의 모사들이 모여 이 사람들을 본즉 불이 능히 그들의 몸을 해하지 못하였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아니하였고 겉옷 빛도 변하지 아니하였고 불 탄 냄새도 없었더라.
-그다음에 제일 감동받는 것이 뭐예요? 불탄 냄새도 없었더라. 삼겹살만 구워 먹어도 난린데 냄새가 온통 다 난린데, 세 친구는 불타는 냄새조차 없었습니다. 그들을 결박했던 포승줄 불만 포승줄만 풀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오늘 리빙 미라클!, 산 기적이 되었어요. 살아있는 기적이 어디였어요. 할렐루야!!!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 저도 저의 남은 생애 가운데 저와 여러분들은 산 기적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살아있는 기적이 돼요. 리빙 미라클!, 우리가 먼저 풀무 불에 들어가야 할 경험이 필요하고, ‘2033-50 비전’을 왜 합니까? 아무것도 안 하면 아무 일도 일어나잖아요.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잖아요. 핍박도 없어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여러분, 한 분 한 분이 영적으로 성공하고, 축복의 근원이 되고, 정말로 세계 복음주의 쇠퇴를 막고, 남북의 피 흘림 없는 복음적 평화 통일을 우리가 뭔가를 하면, 핍박이 일어나는 것이에요. 그런데 하나님께서 역사에 은혜를 베푸셔갖고 모든 포승줄을 풀어주시고, 우리가 결단을 할 때, 우리가 리빙 미라클이 될 수 있도록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목숨을 건 선언이 필요하고, 풀무불의 형벌을 피하지 않았기 때문에, 풀무 불의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다시 한 번 오늘날 내 삶에 왜 기적이 없는가? 내 삶의 신선한 감격과 주름을 섬기는 열정은 왜 없는가? 왜 내 신앙생활에 이렇게 생활이 지루하고 물에 물 타듯하고 뭔가가 없는가? 중요할 때에 주님을 향한 우리의 분명한 헌신의 자세, 중요할 때에 기독교 신앙에 대한 값을 치르는 대가,
-저는 어릴 때 태어나서 가만히 제가 보니까 어릴 때, 60명 가운데 나 혼자 예수 믿었어요. 학교만 가면 이제 예수쟁이라고 있잖아요. 뭐 예수를 믿냐? 내 주먹이나 믿어라. 이러면서 모욕당하고 교회 간다고 모욕당하고, 또 교회가 뭐 너무 초라하니까 모욕당하고, 주일 성수한다고 모욕당하고, 제가 한 번 얘기했죠? 우리 아버지 교 밑에 공병기지창 이라고 있는데, 거기에 내가 어릴 때 여름 성경학과 찬송하고 내려가면요 군인들이 이리 와 이리 와라 자식들 말이야. 어디 감히 이 앞에 노래를 부르고 다녀, 이리 와! 저놈 여기 누나 있나? 누나 없습니다. 내가 장남이니까. 어디 이러면서 노래하나 불러, ♪환난과 핍박 중에도~~이 신앙 생각할 때 기쁨이 충만하도다.~~♬ 말이 그렇지요. 수많은 핍박과 난제에요. 학교에 들어가서도 가난하고 그러니까, 예수 믿으니까, 있잖아요. 얼마나 근데 지금도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요. 예수쟁이기 때문에 찬송한다고, 전도한다고, 교회 간다고, 주일 성수한다고, 모욕당한 모든 것들이 저희 생애를 돌아보면 그것이 기적의 시작점이었어요. 수많은 기적들, 수많은 기적의 만남들이 수많은 인생의 수많은 과정과 열매들, 때론 예수님들을 모욕당하고 여기 예수님의 아내들 집안에 혼자 예수 믿는 분들을 주님들을 모욕당하고, 그래도 꿋꿋이 주님 사랑하고 그럴 때, 지나놓고 여러분 그러면, 자식이 기적을 일으킬 것이에요!!. 살아있는 미라클, 리빙 미라클(living Miracle), 여러분께 여러분들 회사 내에서 한 10년, 20년, 30년을 꿋꿋하게 신앙 지킨다고 최선을 다하고, 하나님이 여러분들을 리빙 미라클로 삼아주시는 것이에요.
III. 풀무불(鎔鑛爐)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한 번 더 제가 구약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 크리스토파니를 정리하겠습니다.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1세기에 초림으로 성육신하시기 전에 구약에 예표로 나타나신 것이다.
*다니엘 3:25,
25 왕이 또 말하여 이르되 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그 넷째의 모양은 신들의 아들과 같도다 하고.
-The Son of God! 이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인 줄로 믿습니다. 풀무 불 가운데 신앙을 지키는 사람에게 그 신앙이 지키는 사람들을 구원해 주시는 구원자가 되시고, 그들을 보호하는 호위자 보호자가 되어 주시고, 그들의 수호천사가 되어 주시고, 그래서 가장 강력한 호위와 가장 강력한 구원은 뜨거운 용광로 불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여러분들의 생애 가장 강력한 호위는 돈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호위는 권력도 아니고, 가장 강력한 호위는 정치적으로 여러분들을 같이 하는 그런 흐름이 아니라, 가장 강력한 호위는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세요. 불 속에서도 그분이 나와 함께하면 여유롭게 걸릴 수가 있고, 고통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나를 돌보시고 있다고 고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고통스러운 풀무불 속에서도 어려움의 시간들을 말씀과 기쁨과 찬양으로 기도로 통과할 수 있도록 나와 함께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어떨 때는 말씀으로,
어떨 때는 특새의 은혜로,
어떨 때는 성도의 교제로,
어떨 때는 찬양의 능력으로,
여러분들의 호위자로,
구원자로 보호자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 됩니다.
그래서 절체절명(絶體絶命)의 위기의 순간 혼자라고 느껴지는 순간에 예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셔서 승리하게 하신 것이 기적이라 이 말이죠. 신앙 때문에 직장에서 왕따 당할 때도 주님이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오늘 저와 여러분의 사역과 삶의 현장에서 우리를 살리는 가장 큰 은혜의 원천이 뭡니까? 가장 큰 구원의 원천이 뭡니까? 한마디로 임마누엘인데, 지금 나와 함께 다시는 예수님이 나의 삶에 가장 큰 보호와 가장 큰 구원의 원천이 되는 것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걸 여러분들이 그냥 적당히 생각하시면 안 돼요.
가족을 먼저 떠나보내는 인생의 풀무 불을 당한 고통을 당하는 분들, 지금 내가 암이 하나 두 개 한두 개 있어 가지고 여러분들에게 암 때문에 고통도 하는 그런 분들, 어떻게 보면 인생의 풀무불인데 가운데서 고생하는 분들 그분들에게 제일 큰 능력과 제일 큰 치유가 뭐냐, 지금 그분들과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세요. 지금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래서 뜨거운 용광로 가운데 고생하는 분들의 고백 속에 지금도 주님이 나와 함께 계셔, 나는 그분의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여러분 참 희한한 게요 어려울수록 이게 더 실감이 가는 것이에요. 주님이 나와 함께하시는 이 은혜는 세상에 잘 나가고 모든 것이 평탄할 때 더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진짜 고통도 어렵고 눈물 날 때,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 더 잘 느껴진다니까요?
저는 오늘 여러분들에게 이제 하나의 용어를 말씀드리는데 플러스 원(+1)이라는 거예요. 나 플러스 원(+1) 예수 그리스도, 나와 함께 계시는 플러스 원(+1)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래서 오늘 용광로 속에서 함께하신 예수님에 대해서, 오늘 사실 설교 제목을 제가 ‘플러스 원(+1)되시는 예수님’ 이라고 하고 싶었어요. 저는 여러분들에게 그리스도인들은 뭔가 달라야 한다. 그래서 다른 하나의 우리의 삶의 형태가 사실 팩트 리포트(fact report) 하는 사람이 있고 또 한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 때문에 하나님이 주시는 시각을 가지고 페이스 리포트(Faith Report), 보고만 하는 사람이 있고, 팩트리 볼트 바른 사람이 있고 믿음 보고만 하는 사람이 있다. 믿음보고를 하는 사람이 있다. 페이스트 리포트라는 사람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사실보고 정도가 아니라 우리는 우리도 눈이 있으니까 사실보고를 하지만 우리는 신앙 때문에 믿음보고의 보고자가 돼야 할 줄로 있습니다. 이거예요. 그러면 오늘 이 여기 말씀과 견주어 볼 때 우리는 이 땅에서의 우리 매일매일 삶의 현장을 사랑하는 거예요. 그런데 여러분 진짜 어려울 때 여러분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깨닫는 그것이 뭐냐면 여러분 플러스 원(+1)이 되는 것이에요. 나 혼자가 아니라 플러스 원(+1)에 보고를 해야 돼 세 명 플러스 원(+1)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와 플러스 원(+1) 사실보고가 아니라, 사실보고는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 그것이라면, 믿음보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원(+1) 되시는 예수님과 함께 주신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풀무불의 임재 공식은 플러스 원(+1)이에요. 다시요. 사실보고가 나 혼자 감당하는 것이라면, 믿음보고는 내 인생의 플러스 원(+1) 되어 주시는 예수님과 함께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주일 앞에 서는 그날까지, 플러스 원(+1)의 인생을 살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우리 인생을 살아보면 마이너스 인생도 있어요. 마이너스 역할도 하는 사람도 있고 뺄셈만 하는 그런 환경도 있어요. 그런 사람 그런 환경을 만나면 우리가 에너지가 뺏겨요. 우리 주위 환경을 보면 에너지를 뺏는 환경들과 사건들이 너무 많아요. 제가 자세히 말씀을 안 드려도 여러분들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수많은 일들이 많이 일어나요!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마이너스 인생이 되면 안 돼요. 예수님은 우리 인생을 풀무불 속에서도 플러스 원(+1)으로 함께하시는 주님이신 줄로 믿는 것이에요. 오늘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풀무불 속에 들어갈 때는 그냥 세 사람 플러스 제로(3사람+0)였지만 오늘 풀무불 속에 함께 계신 예수님 때문에 뚜리 플러스 원(+1)이 된 것이에요. 부모들에게는 이 플러스 원(+1)이 돼야 할 것이고,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는 원 플러스 원(1+1)이 돼야 할 것이에요. 사람의 교회 이런 정신을 가지고 7천기도 용사를 하는데, 7천기도 용사를 하는데 7천기도 용사 7천 플러스 원(7000+1)이 돼야 할 것이에요. 요셉은 구덩이라는 풀무불 속에 들어갔습니다. 거기서 요셉 혼자서 울었던 게 아니라, 거기에 요셉 플러스 원(요셉+1)이 되었어요. 요셉 플러스 원(요셉+1)이 되니까, 창세기 39장에 보면,
*창세기 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여러분 풀무 불 상황 속에서만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거예요? 아니 풀무 불 전에도 다니는 세 친구와 주님은 동행하셨어요. 다니엘서 1장에 보면 3년 동안 훈련받을 때도 주님 함께 하셨고, 다니엘서 2장에 보면 세 친구가 각도에 흩어져 가지고 공직을 수행할 때도 함께 계셨어요. 평소에 함께하셨던 주님께서 결정적인 카이로스의 시간에, 예수님이 크리스토파니(Cristophany)로 나타나셔 가지고 결정적인 순간에 크로노스의 시간을 카이로스의 결정적 기적의 시간으로 만들어 주신 것이에요. 세 친구와 이미 동행하고 계셨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강력함으로 나타난 것이에요. 그래서 용어를 제가 하나 만들었는데,
▷평상시 크로노스의 플러스 One(Plus One)의 임재가 결정적인 시기에 믿음으로 풀무 불에 들어가는 순간 카이로스의 플러스 원(Plus One)의 임재가 되어 주신다.
예수님은 평상시에 크로노스의 플러스 원(+1)을 임마누엘로 우리와 함께 하시지만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가 결정적인 시간에 이걸 깨닫고 헌신하고 풀무 에 들어갈 때에 카이로스 플러스 원(+1)을 만들어주시는 거예요. 평상시 크로노스의 플러스 원 크로노스란 말은 그냥 연대기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그런 삶의 주님이 우리의 임재가 결정적인 시기에 믿음으로 풀무불에 들어가는 순간 카이로스 플러스 원(+1)이 되어 가지고 기적이 일어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기적 공식이에요. 오늘 이 마음을 가지고 여러분 가정 지키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자신도 지키시길 바라고, 교회도 지키고, 이민족도 지켜주시길 바랍니다. 뭐 뻑 하면 힘들면 이민 간다고 그러는데, 그런 이야기 하지 마시고, 여러분 그런 거 말씀하지 마시고, 하나님 어려울 때도 하나님 이 가운데 플러스 원 되어주신 줄로 믿습니다. 그래서 이런 플러스 원(+1)의 인생이 되면 다른 사람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에게 플러스 원(+1)이 되는 인생이 되고, 역사와 민족 앞에 플러스 원(+1)이 되는 인생이 될 줄로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 북 스토어를 사랑 플러스로 지어놨어요. 그래서 앞으로 북스토어 간판을 사랑 플러스 원(+1)으로 바꿀 거예요. 사랑 플러스 원(+1), 전 세계 성도들에게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를 대라 그러면, 많은 분들이 “여호와는 나의 목 자신에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우리 23편 1절도 좋지만 4절이 더 좋아요.
4절 내가 사망에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사망의 골짜기에서 주님이 나에게 사망이 음침한 죽음의 골짜기에서도 주님이 나에게 플러스 원(+1)이 되어 주시는 것이에요. 혼자, 이 세상 사람들은 잘나고 뭐 있고, 권력하고 모든 것, 지혜 이런 거 지식에 대해서 관심이 많지만 오늘 저와 여러분의 최고의 관심은 주님이 나와 함께 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것은 어려울 때일수록 더 실감을 한다니까요? 어려울 때일수록 여러분 어려울 때 저는 보면요 어려울 때, 주님의 이거 더 실감하면서 간절히 기도하고, 막 그냥 창자가 꼬이도록 어려운 기도 제목들이 많잖아요. 창자가 꼬이도록 간절히 기도했는데, 그 순간 자체는 나에게 해답이 없었어요. 당장은 해답이 없었어요. 지나고 나니까 하나님이 다 해답해 주셨어요.
시간은 좀 걸렸지만 그런데 지나고 나니까 가장 큰 가장 큰 해답은 뭐냐, 정말 어려울 때 창자가 꼴 정도로 기도의 제목이 심각했을 때, 주님의 임재를 끼면서 강하게 기도하고, 매달렸을 때 그리고 저는 어려울 때일수록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모든 해답은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방향을 잡는 것이에요. 이 일을 통하여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가? 그리고 모든 해답은 뭐냐면 어려울 때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여호사밧처럼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주님을 찬양하는 것이에요. 그런데 그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보고 그 자체가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어려울수록 플러스 원(+1)을 느끼고, 기도할 때 지나놓고 보니까 당장 답은 없었지만 어려울수록 주님의 임재를 느끼며 간절하게 매어 달리는 기도한 자체가 최고의 응답이 된 것이에요. 아멘! 자 어려울수록 주님의 임자를 느끼면서 간절히 기도할 때, 자체가 기도에 응답이 되는 것이에요.
따라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도 하나님의 플러스 원(+1)의 임재의 은혜를 제대로 실감하지 못하고 그냥 맹숭맹숭 적당히 산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고. 심지어 좀 세게 말해 저주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에요. 예수 믿고 모든 것이 잘 되어가지고, 내 힘으로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평탄해 가지고 하나님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과 하나 선생님이 함께하심을 정말로 사모하고, 매어달리지 아니하고 적당히 해서 다 잘 된다면 여러분 좋은 거 아니에요. 나라를 위하여 기도하고, 남북통일을 위해서 기도하고, 우리는 우리의 삶 자체가 막 그냥 뭐 압박을 당한다든지 막 칼로 찌를 정도로 그렇게 하지는 않잖아요? 나라를 위해 있기도 하고 통일을 위해 있기도 하고 경회를 위해 있기도 하다 보면 가스 마려할 일들이 많이 생긴다고요. 그럴 때마다 하나님의 강력한 임재를 느껴가지고 더 영광을 사모하고, 더 찬양하면, 그것 자체가 기적이 된다는 거예요. 자체가,,, 그것 자체가, 결론은 풀무 불에서 구원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지는 것이에요.
IV 풀무 불에서 구원받으면 세상이 뒤집어진다.
풀무 불 가운데서 네 번째 사람이 거리는 걸 보고 느부갓네살 왕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어요. 26절에 풀무 불 아기 그게 밑에 통이 컸어요. 밑에서 사람이 그리는 걸 보면 밑에서 본 거예요.
*다니엘 3:26,
26 느부갓네살이 맹렬히 타는 풀무불 아귀 가까이 가서 불러 이르되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 메삭, 아벳느고야 나와서 이리로 오라 하매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가 불 가운데에서 나온지라.
-저는 진짜 하나님이 함께하셔서 결단하는 자리에는 이런 결과가 나타난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저는 믿는 사람이 풀물 불을 결단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좀 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대면하는 것이에요. 좀더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수준으로까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날이 우리 교회와 개인과 이민족에게 주시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 영광을 바라보고 고통 가운데서 하나님 임재 자체가 응답이라고 믿고, 진짜 하나님을 기대하고 찬양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에요. 하나님 앞에 부딪치게 되는 것이에요. 거꾸로,
함께하셔서 결단하는 자리에 하나님께서 이런 대반전의 역사를 이루신다고 저는 확신합니다. 그래서 믿는 사람들이 우리가 제대로 풀무 불을 결단하면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나님과 대면하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29절에,
*다니엘 3:29,
29 그러므로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니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를 말하는 자가 모두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의 하나님께 경솔히 말하거든 그 몸을 쪼개고 그 집을 거름터로 삼을지니 이는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음이니라 하더라.
그 당시에 황제의 조서는 지금 우리 시대로 보면 SNS가 퍼지는 것이에요. 앞으로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질투하는 모든 인간들, 한 번 더 해봐라 ‘그 몸을 쪼개고 집을 거름 터로 삼을지니.’ 이같이 사람을 구원할 다른 신이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하나님은 이런 법적 조치가 필요 없어요. 인간에게 이런 법적 조치 받을 필요도 없어요. 그 당시 최고의 무소불이에요. 황제가 권력자 하나님을 찬양하는 거예요. 누가 찬양하라고 해달라고 했나? 찬양하라고 여기에 보니까 시대의 각 백성과 각 나라와 각 언어라고 했어요. 아벨론의 신 정도가 아니라 천하 만고의 신들을 KO시키는 결과가 나왔어요. 세 친구들이 풀무 불에 들어가겠다고 순교조인 결단하고 난 다음에 당시 정치 세계에도 글로벌하게 영향을 끼치게 된 거예요. 왕의 조서가 최고의 SNS가 되어 가지고 각 언어로 각 나라에 퍼지게 된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전 세계를 다녀보면 뭐 여러 나라가 다 주님 잘 섬기지만 한국 교회가 희망이에요. 사랑의 교회 사역이 한국 교회 사역이 올해는 ‘10.23’, 한국 교회 섬김의 날 사역이, 오늘 왕의 조서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전 세계 드디어 30절에,
*다니엘3:30,
30 왕이 드디어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바벨론 지방에서 더욱 높이니라.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초라한 아주 연약한 유대 민족이었고 초라한 포로였지만 그가 섬기는 하나님 때문에 제국의 모든 신들과 모든 권위들이 하루아침에 KO당했어요. 우리 식으로 말하면 강원도 홍천의 무명축구팀이 지금 프리미어 리그의 멘시티와 아스날을 10대 빵(10:0)으로 이긴 거예요. 저 강원도에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하기 짝이 없다. 원통 골엔 인제에 있는 축구팀이 파리의 샹제르망을 15:0으로 이긴 거예요. 별로 반응도 안 하시고,,, 사무엘상 30절 다 같이 우리 크게 보겠습니다.
*사무엘상 2:30,
30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전에 네 집과 네 조상의 집이 내 앞에 영원히 행하리라 하였으나 이제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결단코 그렇게 하지 아니하리라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이게 오늘 우리 시대가 오늘 우리가 감당해야 할 주님의 말씀인 줄로 믿습니다. 물론 주님을 열심히 섬겨도 세상 왕국에서는 높임 받지 못할 때도 있어요.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계산은 정확할 것입니다. 세상에서 높여지지 않는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왕국에서는 반드시 높여 주실 것입니다. 알다 보면 풀부 불을 경험합니다.
※존경하는 목사님이 계 목사님이라고 계시는데 그분 목사님 사모님이 계은덕 사모님이세요. 사별함을 이렇게 했어요. 이번에 최근에 책을 하나 썼는데, 사랑하는 나의 하나님이라는 책을 썼는데 이 사모님은 자녀가 없으시고 미국의 USC라는 좋은 대학의 의과대학 교수셨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 암이 두 암이 왔어요. 두 암이 와가지고 지금 뼈만 남았어요. 근데 책을 쓰시고 저한테 추천사를 부탁했어요. 추천사를 써드렸어요. ‘수많은 사람들을 키운 좋은 사모님 교수님이기 전에 목사님 사모님, 몸에 두 암이 두 가지 암이 와가지고 완전히 뼈가 남아았어요. 그 다니시는 교회에서 막 특송을 하시는데, 특송한 내용을 써놓았어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마지막 특송이에요. 귀하신 주여 날 붙드사, 뼈만 남은 풀무불이에요. 여러분 저의 삶에 최고의 플러스 원은(+1)요, 주님이 날 붙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요약
오늘 우리가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를 통하여 교과서를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한다. 어떤 상황 속에서도 플러스 원은(+1)으로 임재하시는 예수님께서 우리와 함께 동행 하시니, 우리의 삶에 풀무 불을 두려워하지 말고, 삶의 뜨거운 용광로 속에서도 주눅 들지도 말고, 기독교 정신을 우리가 부끄러워하지 말고, 복음의 횃불을 들고 영적 기백을 가지고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처럼, 이 시대를 승리해야 한다. 질병의 용광로 속에서, 경제적인 용광로 속에서, 어려움 가운데서도 플러스 원 되시는 예수님이 가장 귀한 자본임을 확신해야 한다. 우리가 풀무 불에 던져질지라도, 정면 돌파하게 해서 풀무 불을 회피하지 말고 승리하는 온전한 제자로 살아내어 주님께서 결코 너희를 버려두지 아니하심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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