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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4년 03월 24일)-세례주일
제목: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님"-(Jesus helping us in our suffering)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⓻번째
말씀: 시편 22:1~31,
마태복음 27:45-5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장은진 부목사님(1부)
사회: 임병영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

*시편 22:1~31,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3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4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5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9 오직 주께서 나를 모태에서 나오게 하시고 내 어머니의 젖을 먹을 때에 의지하게 하셨나이다.
10 내가 날 때부터 주께 맡긴 바 되었고 모태에서 나올 때부터 주는 나의 하나님이 되셨나이다.
11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22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23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
24 그는 곤고한 자의 곤고를 멸시하거나 싫어하지 아니하시며 그의 얼굴을 그에게서 숨기지 아니하시고 그가 울부짖을 때에 들으셨도다.
25 큰 회중 가운데에서 나의 찬송은 주께로부터 온 것이니 주를 경외하는 자 앞에서 나의 서원을 갚으리이다.
26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마태복음 27:45-50,
45 제육시로부터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되더니.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47 거기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이 사람이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48 그 중의 한 사람이 곧 달려가서 해면을 가져다가 신 포도주에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거늘.
49 그 남은 사람들이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구원하나 보자 하더라.
50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니라.

▶할렐루야! 참 특별한 주일입니다. 오늘 종려 주일인데, 아침 8시에 이른 아침에 우리 1부 찬양대, 영광 찬양대 참으로 귀한 찬양 들을 수 있게 하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그리고 오늘은 일곱 번째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리즈 겸 오늘 종려주일 고난주일 메시지가 되겠습니다. 특별히 온 성도들, 또 오늘 학습 세례에 입교하시는 여러분들의 생애에 잊을 수 없는 말씀의 깊은 신비가 폭포수처럼 내려주시길 바랍니다. 다시 한 번 말씀의 깊은 은혜와 신비가 폭포수처럼 깨달아지기를 바랍니다. 오늘 시편 22편과 마태복음 27장은 너무나 참 신묘 막측(神妙莫測) 하게 서로 연결이 되어 있습니다.

그걸 여러분들에게 좀 설명을 할게요. 시편 22편은 특별한 말씀이고,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사도 베드로가 다윗에 대해서 얘기할 때 선지자 다윗이다 그랬어요. 다윗은 왕이었는데 사도행전 2장에 보면 선지자 다윗이다. 다윗이 왜 선지자일까? 선지자에 대한 증명이 오늘 이 본문이에요 선지자라는 것은 뭐냐 하면 미래에 일어날 일을 정확하게 예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사건이 사건을 설명 천 년 전 사건인데, 천 년 전의 사건을 이와 같이 아주 정치(精緻)하게, 정확하고 치밀하게 예언한 것 자체가 다윗의 선지자 직을 증명하고 있는 것이었어요. 마치 이런 뜻이에요. 천년 이후의 사건을 예언한다 했을 때, 우리나라가 고려시대 고려가 918년에 아마 건국되었을 거예요. 그러니까 10세기 초반에 고려시대에 있는 어떤 사람이, 1950년도에 6.25 사건을 6.25에 일어날 사건을 그대로 예언한다 합시다. 그때에 사람들이 철 탱크를 타고 어떤 희한한 철 탱크를 타고 진격을 하고 위에는 비행기가 날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그리고 그 이후에 대한민국이 발전을 하고 강남에 테헤란로가 있고, 사랑의 교회가 있다.

여러분, 이걸 천 년 전에 고려시대 초기에 이걸 정확하게 예언 한다. 그러면 이건 기가 막힌 거죠. 이런 선지자가 없는 거예요. 그러니까 오늘 시편 22편의 예언은 이 정도의 정확성을 가지고 천년 이후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여러분들에게 예수님은 누구인가 시리즈를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5장 39절에 뭐라고 말씀하고 있는가, 함께 보죠.


*요한복음 5:39,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이 신구약 성경 전체가 누구에 대해 증언하는 것이라고요? 예수님께서 예수님이 우리의 메시아이시다. 오늘도 학습, 세례에 입교하시는 분들이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영원한 구세주심을 믿는 것을 사역하고 고백하는데 이것을 증언하는 것이에요. 이걸 증언하는 구약과 신약은 모두 예수님에 대해 증거하고 있어요. 특히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이 경험한 것, 예수님께서 스스로 자신에게 말씀하신 것이 어떻게 보면 최고의 간증이 되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예수님이 스스로 내가 예수님이 스스로 어떤 고난을 당하시고, 어떤 고통을 당하시고 예수님이 어떻게 십자가에 따라 본인 당신께서 말씀하신 그것을 다윗의 입을 빌러, 다윗의 예언을 빌려가지고 말씀한 그것이 최고의 간증이라는 것이에요. 기독교 신앙에서 간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오늘도 제가 말씀 마치고 나면 우리 한 분 나와서 간증할 것인데 간증할 것인데 간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래서 오늘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통하여 예수님의 최고의 간증을 여러분들이 생생하게 주님이 들려준 음성으로 듣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I. 첫 번째, 버림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

-오늘 시편 22편은 지금 이게 이제 쭉쭉 읽어내려 가는데 1절부터 오늘 31절까지 본문이 되어 있는데요. 이 내용은 고난도 해석이 필요한 것이 아니에요. 그냥 우리가 어느 정도 문자적으로 우리가 국어 해석 능력 정도만 있으면 쭉쭉 읽어내면 그냥 그대로 우리가 이해가 되는 것이에요. 1절에,

*시편 22:1,
1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그리고 오늘 여러분들이 봉독한 마태복음 27장 46절에 엘리 엘리, 라바 사박다니 기억나십니까?

*마태복음 27:46,
46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그러니까 시편 22편에 이 예언의 말씀이, 마태복음 27장 천년 뒤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에요. 너무나 이게 신비한 거예요. 메시아의 고난에 대해서 이 예언의 말씀이 시편에서 천 년 전에, 천년 이후에 그대로 이루어진다는 겁니다. 예수님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부르셨는데 사실 이 내용은 우리가 죄 지은 우리가 사실 우리가 고백해야 할 내용인데 예수님이 내 대신 고백하시는 것이에요. 여기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니, 마태복음에서는 엘리 엘리 그러니까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막 그러니까 엘리라는 말을 듣고 예수님이 엘리야를 부르는가 보다. 이렇게 오해를 했습니다. 우리 가운데 그런 식으로 오늘 말씀을 오해하는 분이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아무도 없기를 바라는 거예요. 그리고 2절에 보니까 내 하나님이요.

*시편 22:2,
2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그다음에 중요한 게 밤에도 잠잠하지 않을까 밤에도 부르짖었다는 거에요. 어떻게 낮에 부르짖는 또 밤에도 부르짖는다 말이 안 되잖아요. 예수님은 제 30부터 제 90까지 6시간 동안 매달려 계셨는데 근데 특별히 제 60부터 제 90까지 완벽한 깜깜함이 왔어요. 그건 일식하고 달랐어요. 예수님이 저주를 받아 우리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그 가운데 깜깜한 가운데, 그와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완전히, 완전히 온 사위가 깜깜하게 돼버려 그것을 지금 여기서 설명하고 있는 거예요. 낮에도 부르짖고 낮이 밤인 그때도 부르짖는다 이 말이에요.

여러분, 예수님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 우리 죄 때문에 깜깜한 깜깜 갑자기 온 땅에 흑암이 왔다고 그랬어요. 그렇게 부르짖는 그 고통의 우리의 상황을 살펴봅니다. 마태복음 1장에 보니까 예수님을 임마누엘 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항상 성부 하나님과 함께하시는 분이시다. 그런데 늘 함께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다. 그러고 완벽한 하나 됨의 계신 분이 완벽한 임마누엘의 차원을 누리시는 분이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래서 오늘

◇“성자 예수의 가장 큰 고통은 ‘하나님께 버림받는 고통’이었다. 읽어보겠습니다.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완벽하게 버림받으신 것이다.”

-우리가 그래서 뭐 어떤 사람들은 예수님의 육체적 고통, 육체적 고통 그건 그것과 비교가 안 되는 완벽한 영적 고통을 겪으신 거예요. 어느 정도였는가, 오늘 6절에 보니까

*시편 22:6,
6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이다.
-예수님이 그리고 7절부터 8절까지 보니까, 나를 보는 나는 벌레예요. 사람이 아니라 그러니까 완전히 이건 이거는 여러 벌레 벌레는 밟으면 밟혀야 되고 차면 차해야 되고 그냥 짓밟으면 짓밟히고 이런 것이 벌레 아닙니까? 그 주님의 그 모멸감 그리고 7절 8절,

*시편 22:7-8,
7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
8 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경멸받는 비참한 범죄자 취급을 당하셨습니다. 비웃음을 당하셨습니다. 이 내용은 마태복음 27장 39절에 그대로 증명하고 있어요.

*마태복음 27;39,
3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똑같은 내용입니다.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조롱하고 비방하고 그래서 이 성부 하나님께로부터 버림받은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이 고난을 날 것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럴 때 아! 그렇구나, 천 년 뒤에 이 사실이 너무나 정하고 치밀하게 이루어지고 있구나. 오죽하면 12절 13절에,

*시편 22:12-13,
12 많은 황소가 나를 에워싸며 바산의 힘센 소들이 나를 둘러쌌으며.
13 내게 그 입을 벌림이 찢으며 부르짖는 사자 같으니이다.
-대적들이 황소로 황소처럼, 그리고 그 누구도 막을 수 없는 황소의 힘처럼 힘이 있어 보였어요. 이것은 마치 위협적인 사자처럼 보였어요. 자기를 찢어버릴 것처럼 무섭게 다가온 거예요. 원수에게 둘러싸여 있는 것이 어느 정도 무섭게 다가왔느냐 하면 시편 22편 14절, 15절에 이렇게 다가왔습니다.

*시편 22:14-15,
14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15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주님의 고난과 주님의 고통에 대해서 설명하고 있는데, 모든 뼈가 어그러졌다는 거예요. 십자가의 고통 때문에 그리고 밀랍 같아서 다 녹아졌다는 거예요. 그 봄날, 그때의 그 뜨거운 태양빛 때문에 십자가에서 혀가 입천장에 붙었다고요. 주께서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십자가에서의 고통이 절절하게 느껴지는 것입니다. 6시간을 십자가에 고통 속에 있을 때, 손과 발이 못 박혀 달려 있을 때 뼈와 관절이 다 튀어나온 거예요. 14절에 뼈가 어그러졌다고 했어요. 심장이 밀랍처럼 녹아버린다고 그랬어요. 그 이후에 끔찍한 목마름이 온 것입니다. 탈수가 시작되어 갖고 혀가 입천장에 붙어버린 것입니다. 뜨거운 태양 아래 타버려서 끔찍한 목마름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요한복음 19장에 보니까 “내가 목마르다. 내가 목마르다.” 이것은 육신의 몸을 육입은 분으로서 어떻게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차원의 고통과 목마름이었어요. 그리고 16절과 17절에 오늘 본문 6절, 17절에


*시편 22:16-17,
16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17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오늘 다윗이 시편 여러분 이 내용들을 얼마나 이게 중요한가 하면요. 다윗이 시편 22편을 쓸 당시에는 십자가형이 존재하지 않았어요. 유대인들의 최악의 형벌은 뭐냐? 돌에 맞아 죽는 것이었어요. 그때 유대인들 다윗의 입장에서는 이런 십자가형이 있겠나, 근데 그 십자가형을 다윗의 입장에서 예언적으로 제일 정확하게 설명한 것이 이것이었어요. 십자가형에 대해서 이렇게 제대로 세밀하게 치밀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이에요. 세상의 언어로 설명이 안 될 정도로 내용이 디테일하고 확실한 것입니다. 시편 저자 다윗은 그가 개들에게 둘러싸였다. 무슨 말입니까? 개는 유대인들이 이방인 특히 로마인들을 향하여 쓰는 단어였습니다. 실제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근처에 죽음 주변에 있었죠. 그리고 시편 저자는 이들이 이들 로마 이방인들에게 둘러싸였다고 그래갖고 18절에 뭐라고 18절에 나옵니다. 18절에 같이 읽겠습니다.

*시편 22:1,
1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예수님의 간증이에요. 다윗의 입을 빌려서 다윗의 예언을 통하여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에요.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쳐입었나이다. 실제로 로마 군인들이 십자가 발치에서 예수님의 겉옷을 가지고 제벽 벗기를 했죠. 오늘 마태복음 27장 30 35절에,

*마태복음 27:35,
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그래서 거칠고 완악한 로마 군인들이 예수님의 옷을 전리품으로 삼아서 나누었습니다. 여러분 이만큼 아주 구체적으로 실제적으로, 이해가 되십니까? 그냥 이거는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II. 두 번째로, 버림받은 고통의 처절함.

-예수님이 받으신 고통의 처절함이 어느 정도인가 이 예수님이 받으신 고통은 우리가 상상하는 어떤 육신의 고통 차원이 아니에요. 이것은 예수님이 버림받은 고통인데, 이거는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처절한 고통이었어요. 저와 여러분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아버지로부터 버림받은 거예요. 그러니까 엘리 엘릴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이 하나님이 어찌하여 나를 부르셨나이까? 이 예수님의 절규가 주는 이 충격이 있는 거예요. 완벽한 고통, 완벽한 고통,,, 그리고 미리 말씀드리면 그 완벽한 고통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게 된 것이에요. 끝까지 우리를 우리가 버림받지 않은 것을 이런 사실 앞에서 확정하는 것이에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리라(I will not abandon you). 내 손에서 이 영생을 빼앗을 자가 없으리라. 너에게 준 것은, 흔히 예수 믿는 사람들은 이 절규를 예수님이 너무 인간적으로 힘들어가지고 하나님 원망한 것이라, 도울 같은 사람들은 그런 얘기하고 있는데,,, 이것은 그런 차원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우리 죄 때문에 가졌던 영적인 처절한 고통이에요. 우리가 분명히 알아야 할 예수님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의 핵심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육신적인 고통을 받으셨지만 육체적인 고통이 메인이 아니었어요. 그가 찍힌 상처 가시면류관 못 박힘, 온갖 천대 멸시 조롱과 침 뱉음, 뺨 맞음, 극심한 구력 이것도 기가 막혔지만 이게 핵심이 아니에요. 중요한 것은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님과는 완벽한 교재가 있었는데, 그 십자가에서 이 순간만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 완벽한 교재가 끊어지고, 버림받은 것이에요. 이것은 인간의 언어로 표현할 수가 없는 거예요. 왜? 한 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성자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 그분의 두 분의 임마누엘의 이 끈끈함은, 이 강력한 교통은 끊어진 적이 없었어요. 그런데 우리 때문에 거기서 십자가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어요?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를 경험한 영적 분리가 일어난 거예요. 이거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고통의 극치였어요. 나와 아버지는 하나라고 그랬는데 그분이 그 시간만은 저와 여러분 때문에 아버지에게 버림받으시고 교재가 단절된 거예요.

이걸 우리가 가슴 아리를 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것을 이해해야 되는 것이에요. 이 순간만은 하나님 되심을 포기하고, 이 순간만은 우리의 모든 죄를 다 뒤집어쓰시고, 이 순간만은 지옥까지 내려가신 거예요. 기가 막힌 거예요. 다시 저와 여러분 죄 때문에 이렇게 버림받은 거예요. 하나님과 완벽한 단절 이걸 우리가 눈물을 흘리면서 이해를 해야 돼요.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고, 제자들에게 배신당하고 친구들은 다 예수님 곁을 떠나고, 오죽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우리도 일마다 때마다 하나님 배신하고 예수 믿으면서,,, 그리고 고통 받으신 예수님의 기도가 계속해서 시편 22편 19절부터 21절까지 계속 읽겠습니다.

*시편 22:19-21
19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
20 내 생명을 칼에서 건지시며 내 유일한 것을 개의 세력에서 구하소서.
21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칼에서 구원해 달라고, 로마의 권위를 상징하는 칼에서 구원해 주시고, 개의 세력, 그리고 사자의 입, 들소의 뿔, 이거 뭐 다 다윗은 본래 목동이었기 때문에 그가 목동으로서 할 수 있는 예언자적인 언어를 구사하고 있는 것이 들소의 뿔, 사자의 입, 개의 세력, 오늘도 우리를 위하여 이런 고통을 낳으신 우리 예수님, 그분만이 우리의 영원한 생명의 구주이신 줄로 믿습니다. 이것을 영의 눈을 열어서 우리가 깨닫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은 이걸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다음이 중요합니다.

*시편 22:27-28,
27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니.
28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이 고통이 끝나고 난 다음 그 고통으로 인한 좋은 결과가 온 우주와 지상에서 어떻게 펼쳐지는지 나오고 있는 거예요. 아멘, 여러분 주님의 이 고통은 여러분들이 다 땅의 모든 사람들이 주님 앞에 돌아오도록, 이 주님의 고통은 저와 여러분이 이 시대를 향하여 축복의 근원이 되도록, 주님의 이 고통은 저와 여러분이 복음을 가지고 이 시대를 변화시킬 수 있도록, 모든 나라와 모든 족속이 주님 앞에 돌아올 수 있도록 우리에게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 고통을 복음의 진리를 깊이 깨닫는 자마다 시골의 할머니도, 무학한 할머니도, 그다음에 젊은이도, 이상하게도 세계를 품고 하나님 나라 전체를 위해 기도하게 되고, 오늘 다시요 여기에 27절 28절에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그러니까 저 아르젠티나에도 그다음에 아프리카에도, 중앙아시아에도 대한민국에도, 누구든지 이 고통의 십자가의 은혜를 제대로 깨달으면, 온 세상을 품는 하나님 나라의 영적인 그릇으로 만들어 주시는 것이에요.

오늘 입교 문답하는 우리 젊은이들 여러분들을 통하여 온 세계를 통하여 여러분들을 통하여 온 세계가 주님 앞에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이게 내하고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니에요. 하나님 우리에게 안아주신 본당을 주시고 은혜를 주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깊은 곳 통과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난 다음에 너희들은 다 글로벌 스탠다드로 올라가라. 제발 좀 싸우지 말고 대한민국은 다른 길이 없어요. 우리끼리 싸울 건 아무런 힘이 없고, 아무런 의미가 없고 세계를 우리가 품어야 되고, 세계교회 쇠퇴를 막아야 되고, 그 결과 시편 22편 29절부터 31절까지,

*시편 22:29-31,
29 세상의 모든 풍성한 자가 먹고 경배할 것이요 진토 속으로 내려가는 자 곧 자기 영혼을 살리지 못할 자도 다 그 앞에 절하리로다.
30 후손이 그를 섬길 것이요 대대에 주를 전할 것이며.
31 와서 그의 공의를 태어날 백성에게 전함이여 주께서 이를 행하셨다 할 것이로다.
-우리가 능력 있고 힘이 있어서 이런 은혜를 받는 것이 아니라 누가 행하셨다고요? 주께서 행하셨다. 이 마지막 구절은 너무나 놀랍습니다. 이 주께서 일을 행하셨다는 말은 테텔레스타이(Tetelestai)! 가상 출연할 때 마지막 주님이 잇 이즈 피니시트(It is finished) 다 이루었다. 그 내용과 똑같다는 말이에요. 주께서 일을 행하셨다. 다 이루었다. 아직 천 년 뒤에 태어나지도 않을 이들을 위하여 구원이 선포되고, 주께서 다 이루실 것을 말씀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제 좀 빠르지만 오늘 평소보다 좀 예배를 일찍 시작해갖고 오늘 시편 22시편을 제가 다 해석을 해드렸습니다. 오늘 이 시편이 여러분 평생에 남기를 바랍니다. 이게 왜냐하면 예수님의 간증이기 때문에, 오늘 집에 가서 이걸 계속 몇 번 읽어보면요. 여러분들은 온 세계를 위해 일할 수 있는 사람들이 될 것이고, 주님이 여러분들을 위하여 다 이루실 그 일에 동참하는 평생이 되리 되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겁니다. 그리고 한 가지, 그러면 고통 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버림받으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가? “고통 받는 저와 여러분을 능히 도우시는 것입니다.” 이거 오늘 키(key) 입니다. 고통 받는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가 받는 축복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고통 받은 예수님은 지금 이 순간 고통 받는 어떤 성도들을 도우시는 것이에요? 오늘도 우리 교회에 암 걸린 분들 많이 계셔갖고, 오늘도 제가 예배 마치고 나 어떤 분이 목사님 순장님이 수원들을 왜 기도하는데 이분을 위해서 목사님 암 걸렸는데 꼭 오늘 기도해 주셔서 마치고 나면, 제가 방에 들어가고 제가 기도할 거예요. 그분을 위해 수많은 고통 받는 분들이 계세요. 우리가 살다 보면 수많은 고통들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거에요. 이해 안 되는 고통들이 있는 끔찍한 고통을 당하는 분들도 우리 주위에 계시는 거예요.

오늘 본문을 통하여 깨닫게 하시는 중요한 신학적 주제는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은 고통당하는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나중에 자막으로 처리하겠습니다.

III. 고통 받은 예수님은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신다.

◇고통당하시는 예수님은 고통당하신 하나님 백성들과 함께 계시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의 피에 의하여 우리는 영적 가족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파하고 고통당할 때 우리 하나님은 고통당하신 예수님은 그 고통당과 함께 나 함께 있는 거예요. 잘 아시는 대로 제가 한번 오래전에 한번 엘리 위젤에 대한 얘기를 한번 했습니다.
※-엘리 위젤이라고 하는 유대인 대학살 중에 살아남은 사람의 얘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나치 포로수용소에서 나이 든 유대인과 젊은 유대인이 교수형을 당하기도 했어요. 많은 유대인들을 강제로 유대인들이 유대인들을 보고 그걸 강제로 참관을 시켰어요. 나이 든 유대인은 교수형 목에 달려 교수형을 당하면서 나이 든 유대인은 빨리 금방 숨이 끊어졌는데, 젊은 유대인은 교수형에 올라 가서도요. 대롱대롱 매달려 숨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고통을 당하고 있는 거에요. 그것을 보는 수많은 사람들이 너무 가슴을 아파하면서 울면서 부르짖었어요.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우리 하나님 어디 계십니까?’ 그때 유명한 얘기 엘리 위제를 통한 유명한 얘기에요.. ‘하나님은 고통당하는 사람과 함께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저 교수형에서 고통당하는 저 젊은이와 함께 매달려 계신다.’

고난 받고 고통당하신 예수님이시기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예수님은 너무나 잘 아시는 줄로 믿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의 인식 체계를 뒤엎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은혜라고 믿습니다. 다시 이것은 이 세상 사람들의 사고 체계를 뛰어넘는 기독교의 역설적인 은혜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이 세상의 지혜로는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이성 만으로는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이것이 진리의 빛으로 비춤을 받아야 하는 것이에요. 여러분과 저와 우리 교회와 이 시대 우리의 삶은 고통의 연속이에요. 어느 집도 고통 없는 집이 어디에 있겠어요? 어느 단체도 제대로 되는데 그냥 되는 게 어디 있겠어요? 자녀가 아파할 때, 그 엄마는 아파하는 자녀와 함께 밤새 같이 아파하는 것이 엄마의 마음이에요. 엄마가 자녀를 간호하는 거예요.

-나는 어릴 때 우리 형제들 가운데 우리 동생들 가운데 큰 수술을 받아야 해갖고 어릴 때 큰 수술을 받은 동생이 있어요. 사형 선고를 내려놓았는데 우리 엄마가 그 우리 동생을 업고 1년 내내 고통 하는 아이를 능막 결핵이 들어가지고 이 폐를 떼 내고 하는데 어마어마한 고통 5살짜리 내가 12살에 그걸 보면서 우리 어머니 1년 내내 고통 하는 걸 보면서, 엄마는 저 동생의 마음에 1년 전에 가 있는 거예요. 업고 전철 타고 다니면서 병원 가고,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 기적만을 일으켜가지고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이 아니시고, 고통 받는 자들, 희생당하는 자들과 함께 함께 고통을 겪으면서, 그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시면서 저와 여러분을 도와주신 줄 믿으셔야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그 고통당하시는 그 모든 것들을 그리스도의 보혈의 능력은 요한계시록 21장 4절에,

*요한계시록 21:4,
4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것을 믿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요 그리스도인의 생애라고 확신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하나님만은 하나님은 기적만 읽어 자막 한 다 주세요.

◇하나님은 기적만을 일으켜서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이 아니시다. 고통 받는 자들, 희생당하는 자들과 함께 고통을 겪으심으로 그 고통과 상처를 통하여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신다.
-고통당하신 예수님만이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울 수 있다는 사실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복음의 진리가 되는 것입니다. 다시 한 번 주님은 우리의 질고를 아십니다. 이사야 53장 3절 우리의 질고를 아는 자라

*이사야 53:3,
3 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 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고통과 슬픔과 상처와 상실과 간절한 아픔을 가진 것을 아십니다. 또한 예수님은 우리의 상처를 능히 치유하심으로써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

*베드로전서 2:24,
24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너희는 나음을 얻었나니.
-오늘 이 말씀이 여러분들에게 평생 잊혀 지는 말씀이 되게 하셔서 어떤 고통과 어떤 상처에도 낙심하지 말고,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말하는 것처럼 고통과 상처를 다시는 고통이 없는 그 은혜의 세계를 결국은 우리를 인도하시는 그 복음의 진리에 우리의 눈이 열려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이 가운데 아직까지 예수 그리스도를 내 개인의 생애 구세주와 주님으로 영접하지 않은 분이 계시다면, 오늘 이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라는 사실을 깨닫고, 그분의 고통이 나를 위한 고통이라는 것을 마음속에 믿어질 때에,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에게 구세주가 되어 주셔서 여러분 생애가 영적으로 다 성공하도록 만들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고통과 저주를 받아주셨다. 반대로 우리가 그걸 믿지 못한다면 그 모든 고통과 저주를 우리 스스로 당하고 끝을 내야 되는 거에요. 어떤 사람도 이 복음이 없으면 세상에 가장 위대한 지성인이라도, 가장 강력한 권력자라도, 모든 것을 소유한 사람도 그의 말년은 이 복음이 없으면 고통과 저주 속에서 하나며 인생을 마감할 수밖에 없는 것이에요. 오늘 이 복음의 진리 앞에 사랑의 교회는 세례를 하고, 학습을 주고, 입교를 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님이 간증하셨듯이 우리 교회 오늘 장상경 자매님, 37세이신데 이 시간에 나오셔서 간증하고 세례식을 거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약
예수님께서 뼈가 어그러지는 십자가의 완벽한 고통으로 우리 죄를 사하시고 구원해 주셨으니, 모든 세대가 주님 앞에 나오는 2033-50 비전을 이루도록 기도하며, 고통당하시는 예수님께서 고통당하는 우리와 함께 계시니, 지금 고통 받는 우리를 도우심을 확신하여 주님께서 이를 행하셨다는 것을 증거 해야 한다. 우리 교회가 7천 기도용사로서 제22차 글로벌 특별새벽기도회에서 대한민국의 고통을 치유해 주시고 좋은 지도자의 복을 주시길 간절히 기도하는 특새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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