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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2월 25일)-회복을 넘어 부흥으로-시리즈 14번째 강의.
제목: "챗 GPT시대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말씀: 사사기 7:1~23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조철민 부믁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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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기 7:1~23,
1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따르는 모든 백성이 일찍이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고 미디안의 진영은 그들의 북쪽이요 모레 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4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 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이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네게 이르기를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5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 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누구든지 개가 핥는 것 같이 혀로 물을 핥는 자들을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누구든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들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더니. 
6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 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7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넘겨주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자기의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8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 모든 백성을 각각 그의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 명은 머물게 하니라 미디안 진영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에 있었더라.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12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사람들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많은 수와 같고 그들의 낙타의 수가 많아 해변의 모래가 많음 같은지라.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주셨느니라 하더라. 
15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며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너희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고. 
16 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어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17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내가 하는 대로 하되 내가 그 진영 근처에 이르러서 내가 하는 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19 기드온과 그와 함께 한 백 명이 이경 초에 진영 근처에 이른즉 바로 파수꾼들을 교대한 때라 그들이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21 각기 제자리에 서서 그 진영을 에워싸매 그 온 진영의 군사들이 뛰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23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부터 부름을 받고 미디안을 추격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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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현 담임목사님.
할렐루야! 
오늘 새로운 은혜가 넘치는 복된 주일이 될 줄 믿는다. 지하에 있는 분들은 잘 모르시는데 오늘 광장에 새로운 현수막이 딱 붙었다. 뭐라고 씌어 있는가? "새 봄, 새로운 호흡, 새로운 은혜“새로운 은혜가 충만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되려면 시대를 극복하고 말씀으로 체화가 되어야 한다. 요즘 연초부터 SNS나 언론을 달군 빅이슈 중의 하나가 ‘챗GPT’이다. 채봇이라고도 한다. 챗GPT는 마이크로소프트가 개발한 것이다. 쳇GPT는 (Generative Pre-trained Transforme)-자동 회귀 언어 모델이며 딥 러닝을 사용하여 인간과 유사한 텍스트를 생성하는 것이다. 그러니까 챗GP는 인공지능(chatGPT)라는 것이다. 이것은 이제 빅 데이터 시대이다. 수많은 빅 데이터를 가지고 이제 인공지능 이런 것들이 역할을 하는 것이다. 무서울 정도이다. 어떻게 하냐면, 여러분 평생에 책을 만 권 읽을 수 있는가? 제목도 만권 보기가 힘들 것이다. 쉽지가 않다. 그런데 챗GPT는 순식간에 책을 만 권, 십만 권을 읽을 수 있다. 거기에 대한 내용도 종합적으로 판단도 한다제가 한 번 테스트를 해보았다. 
 
제가 한 번 오정현은 누구인가? 를 넣어 보았다. 저보다 더 잘 알고 있어서 정말 세상에 깜짝 놀랐다. 저보다 더 많이 내용이 나왔다. 그리고 '믿음에 대해서 설교해 주세요!' 했더니 설교 문이 쫙 나왔다. 어떻게 보면 참 기가 막힌 일이다. 컴퓨터는 잘 못 되면 플러그를 뽑아버리면 되지만 그런데 이 챗GPT는 플러그를 뽑아도 계속 역사한다. 왜냐하면 클라우드에 저장된 것을 다 가져오기 때문에 그러니까 이 챗GPT가 잘못된 방향을 잡으면 세상이 시끄러워지고 희한한 일이 벌어진다. 이러한 시대이다. 
 
※제임스 스미스는 칼빈대학의 신진학자, 기독교 철학자인데 이러한 시대 앞에 우리는 인간이 이성적인 존재라고는 말할 수 없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모든 인간은 예배하는 존재이고 갈망하는 존재이다. 사랑하는 존재이다. 이런 시대 가운데서도 이런 엉터리 예배하고, 엉터리 갈망하고, 엉터리 사랑하는 것으로 이 갈증을 채울 수가 없다. 라고 이야기 한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예배하는 존재로 여기실 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명을 갈망하는 존재로 부르신 줄 믿는다. 하나님은 우리를 진짜 사랑하는 존재로 부르신다. 좀 더 깊이 들어가면 주님은 온전한 제자가 부르신 것이다. 예수님을 점점 닮아가는 그야말로 참 존엄한 존재로 보시고 계신다. 그리고 우리를 고상한 존재로 보신다. 그러니까 온전한 인격, 고상한 인격, 존엄한 인격으로 만들었는데 이 챗GPT가 우리에게 아무리 두려운 마음이 있어도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이런 가운데서 아무리 그게 대단하더라도 본문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두려웠는지를 말씀하고 있다. 
 
*사사기 7:3,
3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외쳐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 떠는 자는 길르앗 산을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 명이요 남은 자가 만 명이었더라.
-미디안의 13만 대군이 쳐들어온다고 하니까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기드온도 굉장히 두려워한다. 그러니까 챗GPT 이런 시대에 이런 잘못된 빅 데이터를 가지고 잘못된 판단을 하고 그럴 때에 사람이 가지고 있는 어떤 인격적인 것에 있어서 마귀가 우리를 훼손시키려고 하고 있다. 마귀는 우리를 타락시키고 우리를 미워하고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챗GPT 두려워 보이지만, 아무리 발전하는 시대라고 해도 챗GPT는 영성이 없다. 챗GPT는 성령이 없다. 말씀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말씀에 기름 부으심과 말씀에 조명을 빅데이터를 가지고 설명하는 그것이 대신할 수는 없다. 성령께서 이 시간을 통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주의 영이 함께 하시는 그 능력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온전함을 파괴하는 것, 고상한 인격을 파괴하는 것이지만, 우리는 온전한 사람 되기를 원하고 주님은 온전한 제자 되기를 원하신 것처럼, 아무리 이 챗GPT가 발전되었다 하더라고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는 될 수 없다. 그래서 온갖 일들이 다 있지만, 여러분 우리는 책 백 권, 천 권 읽기도 힘든 인생인데, 순식간에 책을 십만 권, 백만 권을 읽는데, 그것도 잠도 안자고, 밥도 안 먹고, 그냥 하는 것이다. 우리는 잠도 자야하고 우리는 쉼도 있어야 하는데,,, 그런데 인공지능 이 채팅서비스는 잠도 안자고 그냥 한계가 없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난리를 치는데, 우리는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마치 오늘 기드온이 미디안의 13만 대군을 앞에 놓고 두려워 떠는 것과 같다. 오늘 본문을 보면, 북쪽에 미디안 대군이 쳐들어 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모든 것을 약탈하고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으니 하나님께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별볼일없는 므낫세지파, 가운데 요하스의 아들, 기드온이라는 자를 택해서 이스라엘의 사사로 세우신다. 
 
그런데 이 기드온은 온전한 사람이 아니었고 두려움에 떠는 약자였다. 겁쟁이였다. 하나님은 믿음의 용사를 이야기할 때 첫 번째 기드온이 나온다. 오늘 챗GPT 시대에 수많은 일들이 많이 있지만 어려운 시대이다. 우리는 두려운 것이 아니라, 오늘 말씀을 통해 온전한 인격, 고상한 인격, 예수님의 오전한 제자가 되는데 무장되는 이런 축복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 육신의 눈은 흐려질 수 있고 육신의 몸은 약해질 수 있지만, 우리의 영은 펄펄 살아야 하는 것이다. 오늘 본문에, 두려움이 일상화 된 이스라엘 백성들이었다. 이스라엘 곡식을 추수할 때면 미디안 족속, 아말렉 족속, 동방족속이 다 약탈하고 단합을 했다. 얼마나 심하게 억눌렀는지 사시기 6장에 보면 알 수 있다. 
 
*사사기 6:2,
2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으로 말미암아 산에서 웅덩이와 굴과 산성을 자기들을 위하여 만들었으며.
-백성들이 산에 동굴을 파고 들어가 숨어 살기도 하고, 참호 같은 것을 만들어서 피신할 정도였다. 두려움이 일상화 된 것이다. 그리고 미디안이 연합군이 추수할 때가 되어가지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본격적으로 약탈하는데 어떤 인공지능이 우리 인간성을 약탈하고, 훼손시키고, 파손시키는 그렇게 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13만 5000명이 들어와 진을 치는 것이다.
 
*사사기 6:11,
11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에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그 당시 10만 대군이 얼마나 큰 숫자인가? 빅 데이터를 가지고 우리를 주눅 들게 하는 것처럼,, 그런데 하나님은 기드온이라는 그렇게 소심하고 겁쟁이이고 소심한 사람을 택하신다. 앞에 6장에 보면 기드온이 밀 타작을 할 때 원래 타작하면은 마당에다 펴놓고 타작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그 타작하는 누가 쳐들올까 겁이 나서 포도주 구덩이가 있는데 거기에 숨어서 거기 틀에 밀을 타작하고, 기드온이 그만큼 겁이 많았다. 하나님께서 사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쓰겠다고 하시니까, “아이고!, 저는 므낫세 지파, 내 아버지 집으로서 가장 작은 자입니다.” 라고 대답한다. 막 읍소(泣訴)를 한다. 
 
*사사기 6:15,
15 그러나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오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니이다 하니.
-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돕겠다고 하시는데도 세 번이나 시험을 한다. 양털, 이슬, 등을 시험하는 것이다. 그런 계속 안 해보려고 한마디로 겁쟁이고 쫄보였다. 이것을 우리가 보면서 너무 놀란 게,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일들이 생긴다. 그런 상황을 앞에 놓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사사기 6:12,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우리가 믿음보고 2.0을 하고 그 다음 하나님나라의 정규군이 되고, 이런 말을 하지만 웃는다. 오늘 이 말씀을 내 것으로 삼고 확신하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도온 같은 쫄보, 겁쟁이에게도 여러분 큰 용사 라고 하신다. 여러분, 큰 영사, 시대적 영웅는 이 어려운 가운데서 어떻게 되는가? 시대가 영웅을 만드는가? 영웅이 시대를 만드는가? 역사서 ‘사마천’을 보면, 많은 영웅을 시대가 영웅을 만들지만, 그런데 성경은 시대가 영웅을 만들지 않는다.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큰 용사여, 하신다. 
 
*사사기 6:12,
12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하매.
-여러분 이것을 다 안다고 하면 안 된다. 우리가 온전한 인격이 아니다. 마귀는 우리가 인격성을 초월하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겁에 질리게 만들고, 우리로 하여금 구덩이 속에 들어가게 만들고, 물파서 내려가게 만들고 이게 전문이다. 그런데 진짜, 하나님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하신다. 오늘의 찬양 중에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 이렇게 찬양을 했다. 우리가 어떤 경우에도 실제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신다. 찬송을 통해서든, 예배를 통해서든, 영적인 교제를 통해서든, 이유를 막론하고 여호와가 함께 하시도다 하신다. 그게 큰 용사된 비결이다. 시대가 용사를 만드는 게 아니다. 큰 용사가 시대를 만드는 것도 아니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다.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여호와께서 함께 하신다. 챗GPT 가운데서 우리가 크로노스 시간과 카이로스 시간이 있는데 크로노스 시산은 그냥 흘러가는 시간이다. 연대기적 시간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시면 그것은 크로노스 시간이 아니라, 카이로스 시간이다. 그러니까 여러분과 제가 우리 남은 생애를 하나님과 함께 하시도다. 그런 은혜를 받아서 크로노스 연대기의 삶이 아니라, 신대기적인 카이로스로 살아야 한다. 믿음보고 2.0보고 정도는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신대기 시대를 살아야 한다. 참 중요하다. 하나님이 어떻게 체험하게 하시는가? 두 가지를 말씀하겠다. 
 
첫 번째는 
I. 하나님은 끝까지 남은 자를 택하신다. 
 
-오늘 보니까 13만 5천명이 쳐들오니까 기드온과 3만 2천명이 왔다. 하나님은 거의 4대 1이다. 그런 상황에서도 너무 많다고 하신다. 두려운 자들은 다 가라고 하신다. 몇 명이 남았냐면 만 명이 남는다. 하나님은 그것도 많다고 하시면서 물을 먹는 모습을 보시고 골라서 9,700명을 보내버리고 하나님께서 300명으로 남게 하신다. 기드온에게 있어서 피곤한 일이다. 목숨 걸고 싸워야 할 대군이 13만 5천명이나 되는데 고작 300명을 가지고 가라고 하시니까,,, 그런데 한 명이 450명을 맡게 되는 것이다. 우리 하나님이 450명이 전문이신 것 같다. 우리는 늘 불완전하고 마귀는 우리를 늘 불완전한 인격으로 훼손시키려고 하고, 우리의 고상한 인격을 오염시키려고 하고, 우리의 온전한 제자 되기를 방해한다. 심지어 쳇GPT로 두려움의 상황을 가지고 우리를 두렵게 한다. 하나님은 거기에 굴하지 아니하고 온전한 인격을 갖게 하시고 존엄성을 유지하게 하신다.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기를 원하신다. 내가 두렵고 쫄병같고 모자랄지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큰 용사가 되는 것을 믿고 끝까지 하면 남은 자의 은혜를 이런 마음을 가진 자를 하나님은 쓰신다는 것이다. 이게 벼랑 끝 전술이시다. 항상 함께하시고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라. 마지막 하나인 이삭을 바지라고 할 때, 여러분 기가 막힌 일 아닌가? 정말 답답하지만 칼을 들고 이삭을 찌르려고 하니, 하나님이 아니야, 스톱하신다. 우리는 거기서 이제 이삭을 살려주실 것을 생각하지만 아브라함은 여호와 이레 그 덤불 뒤에 숫양을 준비해 숨겨놓고 계신 것을 보고 여호와 이레, 그런 그가 끝까지 남은 사람들에게 여호와 이레를 믿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전략은 벼랑 끝 전략이며 십자가도 벼랑 끝 전략이다. 그런데 십자가를 통해 다 이루었다고 그러는데 보통 다 이루었다는 예수님이 이 땅에 사명을 다해주신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깊이 들어가면 하나님께서 ‘앞으로 모든 것들을 온전케 하실 것이다.’ 라는 것이다. 그 이유는 모든 세대가 부족하고 시대의 흐름과 시대의 상황에 두려움이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격적,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갈 수 있도록 온전한 제자로 될 수 있도록, 그의 존엄이 훼손되지 않도록, 그의 고상함이 파괴되지 않도록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의 사건을 통하여 미리 다 이루어주신 줄 믿는다. 그래서 하나님은 항상 마지막까지 남는 자에게,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끝까지 남는 자에게 하나님은 쓰시는 줄 믿는다. 그리고 하나님의 독특성은 이 어려움의 시대, 쳇GPT시대에, 기가 막히게 하나님의 전략을 사용하신다. 그것은 말도 안 되는 무기를 가지고 최상을 뒤엎는 것이다. 이제 기드온과 함께 전쟁에 나갈 사람은 300명이 남았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9절에 보면, 
 
*사사기 7:9,
9 그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아직까지 전쟁 시작도 안 했는데 하나님은 이미 이겨놓은 전쟁처럼 이렇게 선포하신다. 내가 그것을 너의 손에 넘겨주었느니라. 고 하신다. 이미 이겼다고 하신다. 그런데도 기드온도 별로 마음에 안 닿은 것이다. 쫄보라서.., 그러면 혼자가 두려우면 부하를 붙여주시겠다고 하신다. 부라, 부라와 같이 하라고 하시며 조력자로 붙여주고 에너지를 주게 하신다. 기드온을 격려하게 하신다. 
 
II. 기드온에게 동역 자를 붙여주신다. 
*사사기 7:10~11,
10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와 함께 그 진영으로 내려가서 
11 그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그 진영으로 내려가리라 하시니 기드온이 이에 그의 부하 부라와 함께 군대가 있는 진영 근처로 내려간즉.
-이제 13만 5천명의 대군을 이겨야 하는데 부라와 함께 가라고 하신다. 만약 기드온이 담대한 사람이었으면 자기 혼자 내려갔을 것이다. 제가 볼 때 성경에 이 부라가 등장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나님은 부라와 함께 가서 적군들이 하는 말을 들으라고 하신다. 10절에 보면, 진영 안에 못 들어가고 진영 근처로 간다. 13절과 14절에 보면, 
 
*사사기 7:13-14,
13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보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위쪽으로 엎으니 그 장막이 쓰러지더라.
14 그의 친구가 대답하여 이르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진영을 그의 손에 넘겨 주셨느니라 하더라.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의 진영으로 굴러가는 것이다. 기드온의 칼이라고 한다. 하나님이 그 미디안의 진영과 그 모든 것을 그의 손에 넘겨주신다. 그 보리떡이 기드온의 칼이라고 하신다. 
미디안 진영이 두려워하는 것이다. 기드온이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미디안이 두려워한다. 이 기드온과 부라가 드디어 사기충천해서 기드온으로 돌아간다. 이 보리떡 특공대가 이 미디안의 사람들을 떨게 한 것이다. 그리고 기드온의 300명의 용사에게 여호와께서 미디안을 넘겨주셨다고 이제야 담대히 말하고 정작 그들의 손에 챗 GPT가 있었다든지 그들의 손에 칼이 있었다든지, 그들의 손에 창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다윗처럼 물맷돌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그냥 왼손에는 횃불을 담은 항아리와 오른손에는 나팔을 불고 있었다. 
 
*사사기 7:18,
18 나와 나를 따르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모든 진영 주위에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하나님 나라와 기드온을 위하여 나팔을 불라고 하신다. 한 번 상상해 보라. 추석이나 대보름도 아니고 나팔과 횃불을 가지고, 칼도 없이, 창도 없이 이기게 하신다. 13500명을 어떻게 하시는가? 
 
*사사기 7:20,
20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왼손에 횃불을 들고 오른손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이르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하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한다. 개역개정 판에,,, 번역에 그렇게 되어 있다. 칼이다.라고 했지만 칼이여가 맞다. 300명의 기드온의 용사가 횃불을 들고 기드온의 칼을 들고, 
 
*사사기 7:22,
22 삼백 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진영에서 친구끼리 칼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자기들끼리 내 분열이 일어나서 난리를 치고, 우리는 정말 이런 은혜를 받아야 할 줄 믿는다. 자기들끼리 정신이 혼미해서 자기들끼리 치고 박는다. 300명이 나팔소리가 엄청나게 들리게 해서 이기게 하신다. 기가막히다. 오늘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이런 은혜를 받아야 할 줄 믿는다. 온전한 제자가 되기를 원한다. 우리는 고상한 인격과 존엄한 인격으로 이것을 원하신다. 두려움을 떨지 말고 지레 겁먹고 하지 말고 우리에게 기드온의 칼이여 하심을 믿고 나아가야 한다. 항아리는 곡식을 담는 것인데, 주님이 횃불을 숨기게 하셔서 아주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발상이다. 그 어떤 사람도 전쟁에 위대한 도구라고 생각하지 못한다. 하나님은 전쟁도구로 사용하신다. 패러다임 쉬트가 되게 하신 것이다. 작고 보잘 것 없는 것이 하나님의 손에 들어가면 결국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특별한 도구가 되는 것이다. 바울도 우리는 질 그릇 같은 연약한 자라고 했듯이 고린도 교회도 성적으로 문란하고 자기들끼리 싸우고 문제투성이였다. 인생의 항아리에 무엇을 담아야 할지, 하나님 주신 말씀, 온전한 인격을 담을 때, 하나님은 우리를 도구로 사용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기드온의 300명의 나팔소리가 되면 이 시대의 소음을 덮어버릴 수가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 하겠지만, 쳇GPT가 대단한 것 같지만 온갖 소리도 나팔의 능력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온갖 데이터를 우리는 하나님의 도구로서 압도하는 체험이 되기를 바란다. 벼랑 끝은 인간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왜 하나님은 300명만 남게 하는가? 그 이유가 있다. 
 
*사사기 7:2b,
2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따르는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넘겨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쳇GPT시대는 세상이 이런 것이 있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자이신데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그들이 과학을 자랑해도 우리는 자랑할 것은 십자가 밖에 없다. 십자가가 최고의 자랑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만 당시의 로마의 십자가는 수치의 어떤 상징이었다. 로마시대 최고의 상징은 강력한 부대가 행진하는 것이었고, 전쟁개선식이고 원형 경기장에서 식민지 사람들을 짓밟는 것이고, 거기에 사람들은 감동받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독특한 방법으로 십자가를 지신 주님이 수치와 두려움이 최고의 도구가 되셨다.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이다. 
 
*사사기 6:34,
34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라 부름을 받으니라.
 
*히브리서 11:29~31,
29 믿음으로 그들은 홍해를 육지 같이 건넜으나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으며. 
30 믿음으로 칠 일 동안 여리고를 도니 성이 무너졌으며. 
31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꾼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하지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하지 아니하였도다. 
32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다윗 및 사무엘과 선지자들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쳇GPT시대에 모든 사람들은 다 나그네처럼 갈 바를 알지 못한다. 그러나 우리는 쳇GPT시대에 인공지능 챗팅 서비스 시대에 우리는 돌아갈 본향이 있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우리가 어떻게 제자가 되어야 할지, 마지막 남는 자로서의 사명을 주시고, 그리고 질그릇 같은 우리를 어떻게 혁신적으로 쓰시는지를 우리 모두가 다 하나님의 진실한 종들이 되기를 바란다. 135000×하나님의 영이 없는 사람은 0이다. 그러나 300명x3=900명이다. 아직도 이해가 안 되는가? 
 
*잠언21:31,
31 싸울 날을 위하여 마병을 예비하거니와 이김은 여호와께 있느니라.
-오늘 이런 은혜가 여러분들에게 사명이 되기를 바란다. 마지막 일화를 하나 말씀드리겠다. 
 
※일화하우드 핸드릭스가 비행기를 탔는데 그날 사람들로 붐볐고 아이들이 타고 다 칭얼대고 울었다.비행기에서 난기류를 만나서 기내식을 못주는 난항이었는데 그 중 여승무원 안내를 하면서도 친절하게도 웃으면서 섬긴다. 사람들이 욕도하고 짜증을 내는데도 그녀는 상냥하게 안내하고 섬겼다. 목적지에 다다라서는 핸드릭스 목사님이 여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당신처럼 충성된 사람처럼 일하는 이 항공사는 무척 운이 좋은 것 같다. 럭키하다.”고 하니까, 대답이 그녀가 하는 말이 "예수님을 일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고 한다. 
 
 
♧요약
하나님 없는 13만 5천명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300명이 더 강함을 믿으며 주님이 함께 하시는 큰 용사가 되어서 성령이 없는 챗GPT 시대를 이겨내어, 벼랑 끝에서도 주님의 보리떡 특공대로 사용되는 기적을 맛보며, 세상의 모든 잡음을 뛰어넘은 자로, 온전한 제자로 새봄, 새 호흡, 새로운 은혜가 충만하여서 주님이 기뻐하시는 기드온의 큰 용사가 되어야 한다. 
 
-본문에서는 기드온의 군대 숫자가 처음의 32,000명에서 10,000명, 300명으로 점차 줄어드는 모습을 보여준다. 먼저 일차로 돌아간 22,000명은 두려워하는 자들이었고, 그 다음에 돌아간 9,700명은 부주의한 자들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군사의 수를 줄이라고 하신 이유는, 이스라엘이 전쟁에서 이겼을 때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고 교만해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인간 생활의 승리는 외적인 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역사를 통해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신다.
 
하나님께서는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 자들을 제외한, 손으로 움켜 핥아 먹은 300명을 선택하셨다. 이는 하나님께서는 민첩하게 행동하는 자를 쓰신다는 것을 보여준다. 하나님의 사람은 민첩해야 한다. 이는 또한 하나님께서 소수를 들어 쓰신다는 것을 보여주기도 한다. 우리는 스스로 연약하다고 생각할 때에 온전히 하나님게 의존하게 된다. 본문이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300명의 군사적 자질보다, 하나님께서 소수를 통하여 승리케 하셨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두려워하는 기드온에게 부라라는 부하를 붙여 주신다. 서로에게 격려가 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동역자를 주신다. 성경에서 둘, 즉 ‘2’라는 수는 도움을 주는 경우와 확실한 증거를 확증할 때 주로 사용되는 숫자이다. 또한 예수님은 제자 파송을 하실 때 둘 씩 보내셨다. 이는 지치기 쉬운 전도 여행 중에 서로를 격려하게 하려는 의도에서였다.
 
미디안의 진에 숨어 들어 병사들의 꿈 이야기를 듣고 용기백배한 기드온은 300의 용사를 지휘하여 본격적인 전투를 시작한다. 전투 방법은 병사들을 3개 조로 하여 기습하는 것이었는데 결과는 기드온의 통쾌한 승리였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중요한 사실은 기드온이 승리하게 된 것은 그가 끝까지 견디었고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이다.





















영상은 2부 예배입니다.  본문은 1부 예배여서 내용이 좀 상이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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