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반응형

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03일)
제목: "이보다 큰일도 하리니"
말씀: 요한복음 14:12~18,
대표기도: 이민건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요한복음 14:12~18,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18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

▶어느덧 12월이 되었습니다. 오늘 같은 주일은 우리 부족함을 좀 돌아보고 또 말씀을 통하여 주님의 깊은 심정을 깨닫는 소중한 오늘 예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회복을 넘어 부흥 시리즈를 이제 오늘 30번째로, 이제 대장정의 마무리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면서 저의 소해가 있습니다. 목회자로서 이 시리즈를 마무리하는 저의 마음은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코로나 이후에 한국교회에 뭔가 비집고 들어온 게 있어요. 그게 좀 회의주의 제대로 되겠나 영적인 패배주의 또 비관주의 또 냉소주의 이게 참으로 안타까워요.

물론 이것이 코로나시기에 우리 현장 예배가 좀 많이 어려워져 가지고 그것 때문에 많은 교회들이 실제적으로 이전 상태로 회복되지 못해서 그렇기도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교회 내에 교회의 미래를 좀 이렇게 어렵게 보는 시각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이 마귀가 던져놓은 이 회의주의와 패배주의(敗北主義)의 이 올무와 덫을 부서뜨리는 철장권세의 능력을 회복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다시 한 번 한국교회 미래를 향하여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어떤 소망의 역사를 저와 여러분이 선포하고 집필할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오늘 제목이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렇게 돼 있는데 우리가 이런 일을 할 수 있으려면 먼저 우리가 생각해야할 것이 여러분과 저는 어디서부터 힘을 얻는가? 어떤 사람들은 정보가 힘이라, 그래 남보다 많이 이렇게 인포메이션 많이 하는 거? 어떤 사람은 관계가 힘이고, 위치가 힘일 수도 있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부터 힘을 얻는가? 오늘 이 12월 첫 주일날 저와 여러분이 또 우리 교회가 어디서부터 힘을 얻어야 할 것인가? 아니 지금까지 어디서부터 힘을 얻고 있는가? 오늘 16절에 보니까 뭐라고 나와 있습니까?

*요한복음 14:16,
16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겠다...쉽게 말하면 또 다른 보혜사는 본래 오리지널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맞습니까? 주님이 이 땅에 공생애 계시는 동안에 우리와 함께 계시고 제자들을 섬기시고 훈련하시고, 또 치유하시고, 회복시키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데 그 오리지널 보혜사죠. 보혜사란 말은 우리를 돕는 분, 우리를 돕는 분, 우리와 함께하셔서 돕는 분. 그런데 또 다른 보혜사, 어느 아들 헬플(helple) 오리지널 보혜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신데, 예수님께서 내가 이제 승천하겠다. 승천하고 난 다음에 너희들에게 또 다른 보혜사를 주겠다. 그리고 또 다른 보혜사를 주면 그다음에 뭐가 나오냐면 영원토록 너희와 어떻게 하겠다고요? 함께 있게 하겠다.

오늘 이것이 요한복음은 정말 신비한 말씀인데 이 말씀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확인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보혜사, 보혜사가 너희와 함께 함께, 라는 말이 헬라어로 “파라” 이래 되는데, 이게 위드(with) 우리와 함께하시는 보혜사 성령님, 그리고 함께만 있는 것이 아니라 17절에 보니까,
*요한복음 14:17,
17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너희와 함께 거하시고 그다음에 너희 뭐에 소원을 거시겠다. 헬라어로 엔이(ne)라고 돼 있는데 영어로는 인(IN)이에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거하시는 것이에요. 그리고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면서 뭐 하시냐 바울이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고린도후서 3장에 보면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뭐 하시는가 먼저 고린도후서 3장 6절에 보니까,

*고린도후서 3:6,
6 주의 영은 우리를 뭐 한다고요? 살리는 영이다.
-참 이거 소중한 거예요. 절망 중이라도, 비참한 상황이라도, 인생길에서 넘어져 죽게 되었을 때, 성령님과 접촉하고 교통하는 사람들마다 성령님의 빛을 받아 새롭게 되고 힘이 생겨서 다시 살아나는 것이에요. 소위 살리는 일이 또 성령님은 아까 고린도 3장 살리고 그다음에 뒤에 17절에 뭐라고 나오냐 하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17,
17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뭐가 있느니라? 자유가 있느니라. 억눌리고 침체되어 있는 일들이 우울하고 피곤하게 되는 일들이 그런 일들이에요. 보혜사 성령께서 우리 속에 계실 때, 심지어 중독된 상황에서도 우리를 자유케 하시는 은혜를 찬양합니다. 이걸 이제 결정적으로 살리는 영, 자유케 하는 영. 이걸 결정적으로 아주 강력하게 아주 심도 있게 바울 사도는 로마서 8장 11절 우리가 암송하는 것인데 다 함께 우리 보겠습니다.

*로마서 8:11,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할렐루야 오늘 이 예배드리면서 정말 힘든 분들 그냥 이 말씀을 주께서 주시는 신비한 말씀으로 받아들이세요. 그러면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우리가 알지 못하는 영적인 차원에서 놀라운 일이 벌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그의 영이 성령의 영으로만 어느 아들 보혜사에서 또 다른 보혜사를 통하여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오늘 우리 가운데 말도 안 되는 상황 가운데서 다 엎어진 분들을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이걸 위하여 오늘 요한복음 14장 오늘 요절이요.

*요한복음 14:12,
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라.
-여기서 요절이 14장 12절인데 이게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이해가 잘 안 될 때가 있어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예수님은 독특한 언어 방식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 하면 정말 중요한 걸 말씀할 때는, 트루리, 트루리 아이 세이 투 유(Truly truly I say to you)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른다. 영어 헬라어로 말하면 아멘, 아멘, 진실로, 아멘 아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주님이 하는 일도 그도 할 것이오. 또한 그보다 큰 일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전에 개혁 판에서는 이보다 큰일도 한다. 그런 게 있고, 옛날 관주에는 뭐냐 하면 나보다 큰일도 하는 이건 놀라운 말씀이에요. 어떻게 보면 이해가 안 되는 말씀이에요. 다시 한 번 이 본문은 무슨 복음이라고요? 요한복음이에요. 요한복음은 언어 하나하나가 단순한 말이 아니고 단순한 글도 아니에요. 요한복음 말씀 자체가 신비한 말씀이고 영의 말씀이에요. 어떤 말씀이라고요? 육의 말이에요. 영의 말씀이에요. 오늘날 이 깊은 영의 세계를 모르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요한복음의 언어는 어떻게 보면 낯설 수가 있어요. 심지어 요한복음을 연구하는 학자들이라 할지라도 헬라어 원전을 깊이 연구한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언어와 이 영의 깊은 세계에 이 측정할 수 없는 깊이를 다 이해할 수 없어요.

이 영어의 언어, 어떻게 보면 낯선 이 언어가 성령께서 보혜사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우리 속에 계시면서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능력을 주실 때, 우리의 영안이 밝아져서 이 말씀이 뜻하는 바를 우리가 깨우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이 말씀은 영적 세계의 어떻게 보면 소중한 반지에 박힌 다이아몬드와 같이 중요한 말씀이라고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 말씀을 들으면 우리 입장에서 야 내가 뭐 이거 할 수 있냐? 내가 주님보다 더 큰일 할 수 있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는데 그게 핵심이 아니에요. 이 질문의 핵심은 뭐냐 내가 큰일을 할 수 있느냐 안 할 수 있느냐, 이게 핵심이 아니고 주의 영이 우리와 함께하시면 주님보다 큰일 할 수 있느냐 없냐, 그게 key라 이렇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들이 못 알아들어갖고 아직까지 무슨 말인지, 사실 어떻게 보면 우리가 어떻게 주님보다 큰일을 할 수 있습니까? 황망하고도 황송한 말씀이죠. 기가 막힌 말씀이죠. 그런데 이 말씀이 영의 말씀으로 신비한 세계 언어의 세계의 말씀으로 오늘 다 상황을 우리가 다 설명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여시고, 여러분들 각자에게 필요한 꼭 필요한 말씀으로 다가오게 될 때에, 이 말씀이 현실 가운데서 우리 가운데 있는 회의주의와, 패배주의와, 비관주의와, 냉소주의에 젖어 있는 어떤 우리 상황과 한국교회 앞에 이 말씀이 폭탄이 되는 말씀이 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강력한 선포가 될 수 있는 것이 그러니까 내가 일을 한다, 못한다, 하는 그것이 아니라, 이 말씀이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깨닫게 하여 주셔서 주의 영이 우리 속에 우리와 함께 위로부터 부어주실 때 성령이 하시는 세 가지거든요.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고, 위로부터 부어주시고, 이렇게 될 때에 우리가 상상도 못할 삶의 차원이 펼쳐지게 되는 겁니다. 그럼 좀 더 구체적으로 이 주님보다 더 큰일 난다는 게 도대체 무슨 말인가 세 가지가 있는데요.

첫 번째로는 사역의 규모와 기간 기간을 가지고 볼 때,
두 번째로는 사역의 대상을 볼 때,
세 번째로는 사역의 방식을 볼 때,
-예를 들어서 사역의 규모와 기간을 얘기한다면 예수님의 이 땅에서의 지상 사역은 유대나라와 그 근처에서 사역하셨죠. 그런데 우리는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땅 끝까지 전 세계적으로 사역하는 시기가 되잖아요. 5대양 6대주로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마가복음 16장에서 얘기한 것처럼 온 천하에 다니며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33년간 공생애 3년, 반공생애 하셨지만 우리는 더 많은 시간들 70년 80년 100살까지 주님이 재림하실 때까지 일할 수 있는 것이 사역의 규모와 범위 가운데서, 둘째로 사역의 대상은 예수님은 제자들을 키우시는데 또 그 당시에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그 팔레스타인 지역의 사람들은 거기에 국한되었지만, 오늘날 우리는 훨씬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사역을 할 수 있는 것이에요. 나중에 사도 베드로는 수천 명을 한꺼번에 회심하는 역사를 감당하게 하여 주시고, 빌리그레암 목사님 같은 경우는 50만 명 100만 명에게 복음을 전하게 했을 때 수만 명이 한꺼번에 돌아오는 역사가 일어나는 거예요. 그러니까 사역의 대상이 달라지는 거 그리고 한 부류만이 아니라 노예부터 시작해가지고 왕과 총독까지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에요.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사역의 범위와 사역의 대상 가운데 우리나라만 하더라도 수천 년 내려오는 민족 종교를 100년 만에 바꿀 수 있는 이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게 된 거예요. 전 세계에 이런 케이스가 별로 없잖아요. 그리고 사역의 방식에 있어 갖고 예수님 시대의 사역의 방식은 그저 이렇게 전달을 해야 되고 또 그 당시에는 도로와 파발마 정도였는데, 지금은 뭡니까? 인터넷이 있고, SNS가 있고, 우리가 스마트폰을 다 갖고 다니니까, 사역의 방식이 완전히 시대가 달라진 것이에요. 그러니까 주님이 하신 구원 사역과 질적인 사역과 그 놀라운 주님의 구속 사역 이걸 말하는 게 아니라, 다시 사역의 규모, 사역의 대상, 사역의 방식에 있어가지고 양적으로 더 커지는 사역을 감당하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누가 이 일을 할 것인가? 다시 12절에 보니까 누가 일을 할 것인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노니 나를 뭐 하는 자는 믿는 자라” 구약에는 어떤 특정한 사람들, 성령의 역사가 특정한 사람들, 다윗이라든지 삼손이라든지 어떤 주의 영이 많은 특정한 사람들에게 있다가 잘못하면 떠나가기도 했지만 신약에서는 보혜사 성령께서 소위 보편적인 성령의 역사가 우리에게 주어졌을 때, 성령님을 통하여 예수님을 구세주와 주님을 믿고 이 말씀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으로 정확무오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는 순전한 그 순종의 마음을 갖고 있는 자에게는 누구든지 믿는 자는 이 역사가 일어나게 되리라 이것이에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자는, 그래서 나를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고백하고, 우리 식으로 말하면 회복과 부흥을 지난 30주 동안 믿고, 갈망하는 자는 누구든지, 가 되는 줄로 확신합니다. 이 말이 그리고 여러분들에게 오늘 이 말씀이 다 이해가 안 되어도 성령께서 여러분들을 깨닫게 해주신 은혜 가운데서 이 말씀이 여러분의 말씀으로, 여러분의 언어로 영의 언어로, 신비한 언어로 여러분들이 고백하고 선포하게 될 때, 여러분 우리 앞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릅니다.

저는 청년 시절부터 이 말씀을 제가 받고 나는 뭐 부족하기 짝이 없지만 어떻게 이 말이 기가 막힌 이 말씀이 저에게는 신비한 언어로 다가왔어요. 그리고 이 말씀을 제가 그대로 받고 이 말씀을 주장하고 이 말씀을 붙잡고 이 말씀 앞에 무릎 꿇을 때에 삶의 수많은 파도들을 극복할 수가 있었어요. 이 말씀이 제게 고백되어질 때, 수많은 간난신고(艱難辛苦)를 극복할 수가 있었으니 제가 이 시간 묻고 싶은 게 있어요. 여러분이나 저나, 오늘날 제일 큰 문제가 뭡니까? 세상의 수많은 파도 속에서 침몰되지 않을 생애의 선포, 확신, 말씀, 어떤 삶의 지진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만세반사 같은 확신, 말씀. 그래서 저에게는 이 말씀이, “내가 하는 일을 그도 할 것이요. 또한 그보다 큰일을 하리니,” 오늘 이 말씀을 여러분의 말씀으로 받으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말씀을 제가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여러분들에게 주신 말씀으로 받아야 되는 것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내가 예수님보다 어떻게 더 큰일을 할 수 있겠는가? 이런 황숙한 질문이 아니에요. 나 자신에게 초점을 맞춘 잘못된 질문을 하지 말고 나는 부족하지만, 이 말씀을 하신 그분이 주님이시기 때문에, 성령님을 통하여 이 말씀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기 때문에, 예를 들어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우리가 어떻게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습니까? 그 앞에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아니하고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지 아니하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 그러니까 힘의 근원이 뭐냐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신 하나님이시라 주님이시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이 12절의 구절 속에는 구절 속에는 ‘너희가 나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준비하신 모든 신령한 자원을 삶으로 경험하라.’는 뜻이 담겨 있는 것이, 다시 너희가 나보다 큰일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해 성령님을 통해 준비하신 모든 신령한 자원을 삶으로 지금 체험하라 그 말이에요. 다른 말로 하면 여러분 지금까지 생애를 살아오면서 내가 목숨을 걸만한 일,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신령한 자원인 보혜사 성령과 기도의 능력을 우리가 한 번도 사용하지 못하고 적당하게 평생 사는 가운데 적당하게 물에 물탄 듯, 무례 감을 가지고 살았다면 그거는 너무나 안타깝다 안타깝다는 뜻이에요. 제가 말씀드렸죠? 지난번에 우리의 삶에 왜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가? 성경에 나타난 모든 기적은 생명과 복음의 역사에 연결될 때 기적이 일어난 줄로 믿습니다.

그거예요. 그는 오늘날 우리 오늘 주님보다 더 큰일 한다는 이 영광스러운 놀라운 말씀을 우리가 받았을 때 이걸 우리가 왜 체험하지 못하는가? 하나님이 이미 우리에게 이 신령한 자원을 다 주셨는데, 여기에 대해서 우리가 신뢰가 눈이 열리지 못하고 아니 이 말씀을 가지고 죽자 사자 어떤 삶의 파도와 고난 앞에서도 한 결 같이 이걸 지켜나가는 힘이 없으니까, 예수님보다 큰일을 하겠다는 마음의 소망을 가지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주님이 주신 이 말씀을 그대로 믿고 성령님을 통하여 이걸 내가 한번 해봐야 되겠다는 이런 마음의 자세가 약하니까,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에요. 이걸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제 이 귀한 시간에 12월 첫 주일인데 연말연시, 마음에 다시 소원을 하면서 여러분과 저는 누구나 거룩한 가능성을 가진 줄로 믿습니다. 제가 무슨 뭐 적극적으로 누구 힘내라 이 뜻이 아니에요.

그건 인간이 하는 거고 무슨 긍정적인 그건 인간이 하는 거고 우리는 우리가 하는 게 아니라 성령께서 주시는 사명과 신비한 영적인 언어를 우리가 깨달아서 거기에 마음을 모으는 것이에요. 그래서 이런 뜻이에요. 자유 말씀을 준비하다가 왜 사람들이 주님보다 더 큰일 한다. 이보다 더 큰일 한다. 그보다 더 큰일 한다. 여기에 마음이 탁, 접목이 되어가지고 가슴이 뛰지 않을까? 신앙생활도 왜 물에 물 탄듯 무력할까? 왜 한국교회는 근대 미문의 코로나 이후의 가운데서 회의주의와 비관주의와 패배주의와 냉소주의가 이렇게 만연할까? 신앙생활을 적당히, 적당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놀랍고 영광스러운 큰일을 허락해 주셨는데 이걸 왜 내 것으로 삼지 못할까? 그러면서 제가 열왕기하 13장을 읽다가 그런 이게 안 됐구나!!!~ 여기 13장 18절 이런 말씀이 있어요. 무슨 말씀이 있냐면 같이 한번 읽어보겠습니다.

*열왕기하 13:18,
18 또 이르되 화살들을 집으소서 곧 집으매 엘리사가 또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땅을 치소서 하는지라 이에 세 번 치고 그친지라.
-이게 뭐냐 하면 엘리사가 구약의 북쪽 이스라엘 그 나라의 왕국에, 진짜 선지자였어요. 그때 왕이 요하스라는 왕이었는데 남쪽에도 요하스가 있었고 북쪽에 요아스라는 왕이 있었는데, 이 요아스가 엘리사를 진짜 의존했어요. 근데 엘리사가 지금 죽을병에 걸렸어요. 거의 이제 힘들었어요. 그래가지고 요아스 왕이 엘리사에게 찾아와 가지고 눈물을 흘리면서 이스라엘의 병가와 마병이여, 기억나시죠? 이스라엘의 병가와 마병이여 막 막 애통해 하는 거예요. 그리고 북쪽 이스라엘은 남쪽도 그렇지만 아람왕이라는 아람국이라는 어마어마하게 큰 태국의 폭력과 그다음 공격과 침입을 받아서 늘 나라가 풍선 등화 같은 거야. 그나마 엘리사가 있어가지고 막아줬는데 엘리사가 만약에 죽으면 자기가 어떻게 될까 생각하니까 요아스왕이 기가 막혀가지고 이스라엘의 병과 마병이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그러니까 엘리사가 뭐라고 했냐면 화살을 가지고 활의 이 화살은 구원의 화살이다. 이 구원의 화살을 가지고 땅을 치라고 그러니까 요아스 왕이 땅을 몇 번 쳤어요? 세 번을 쳤어요. 엘리사가 너무 너무 안타까워가지고 왕이여 하나님의 사람이 노예 같고 엘리사가 노예 같고 왕이 대여섯 번을 쳐야 되는데 그러하였다면 왕이 아람을 진멸하기까지 쳤습니다.

세 번만 치니까 적당하게 아람을 적당하게 맞고 겨우겨우 맞고 대 여섯 번을 치면 아람 왕을 다 이렇게 패퇴시켰을 것인데, 그것이 너무 마음이 아파가지고 그러면 이것이 오늘 요한복음의 신비한 말씀과 어떻게 연관이 될 것인가 이 말씀을 듣고 여러분 그렇게 되겠나, 또 나는 뭐 적당히 그래도 은혜로 사네. 한 번 두 번 세 번 치는 거예요. 근데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돼가지고 힘들고 어려워도 이 말씀이 내 말씀이 돼가지고 이 말씀을 가지고 내 생에 어렵고 부족한 게 많아도 다섯 번 치고 여섯 번 치고 됐으면 7번도 치고 연말연시에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음성이 있을 것이에요. 포기하지 말고 내 힘이 아니라, 내 속에서, 위로부터 나와 함께 하시는 성령의 힘을 가지고, 펴 보라는 것이에요. 저는 이 말씀이 저는 늘 부족했지만 이 말씀이 저에게는 큰 약속의 말씀 중에 하나가 되었어요. 내가 뭔데 난 아무것도 아니지만, 뒤에 이제 내 이름으로 구할 때, 주님 앞에 기도하고 성령의 힘을 의지하여 주님 앞에 기도할 때, 그보다 큰일을 하리니,

제가 좀 조심스럽지만 제가 이제 청년 대학생 사역을 하는데, 진짜 나는 그 당시에 신학교를 다니는 사람도 아니었고, 그런데도 불구하고 대학부를 맡아가지고 그 당시에 우리 교단에서 제일 큰 대학부를 맡았어요. 나는 너무 아닌 거야. 나는 너무 부족한 거야. 그리고 나도 청년의 약점도 있고, 다 부정함이 있는데, 그러나 그 모든 것들 가운데서도 어떻게 하면 적당히가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저희 대학부에 주보가 있었는데, 주보 이름이 ‘정인들’이라는 주보가 있었어요. 그 당시에 이제 한국교회 유명한 주보였는데 주보를 2천부를 발행했어요. 그 당시에 2천부를 발행하는데, 그 2천부가 1년 반 동안 하나님을 향한 열망과 그 응답들이라는 연재를 제가 했어요. 매 주일마다, 82년 3월 1일 결혼식이었는데 결혼하는 날 앞에 놓고, 그 주부 담당자가 연재 계속 안 하면 잠깐 못 간다. 그러는 거예요. 결혼식 하는 날 당일 날, 그래가 지금도 선연하기는 결혼식 하는 날 당일 날 3월 1일 아침 새벽 2시까지 그 원고를 쓰고 있었어요. 결혼식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런데 결혼은 잠깐 갔다 오는 거예요. 그냥 난 지금도 그래서 이제 신부 측에서 저한테, 이제 셔츠를 이렇게 마련해 줬는데 한 번도 안 입어봤어요. 내게 안 맞아가지고 그날 결혼생활 계속 안 맞아가지고 있잖아요. 한 번도 안 입어봤으니까 지금 제가 그 글을 한번 읽어보니까요. 지금도 보니까 뜨거워요. 지금도 보니까 야 이거 어떻게 그때가 만 26이었는데 26살 때, 어떻게 그걸 쓸 수 있었나 그러면서 제가 그게 82년 3월 1일이었는데 82년 3월 1일부터 한 10년간 한국교회가 어마어마하게 부흥을 한 거예요. 사람들은 이런 얘기를 하면 이게 내가 될까 안 될까? 이걸 고민한다니까, 그게 아니고 오늘 나와 함께 계시고 내 속에 계시고 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그분이 역사하시면, 그걸 믿는 자는 신비한 언어의 영 안에 눈이 열리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에요.

“나를 믿는 자는 내가 하는 일을 할 것이요. 그보다 큰 것도 하리니” 사역의 대상, 사역의 범위, 사역의 기간, 놀라운 일들이 벌어지는 것이 여러분, 이런 말씀을 통해 다시 한 번 한국교회에 임한 잘못된 이 회의주의와 패배주의가 극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80년도 이후에 10년 동안 80년대 중반에 누가 나한테 말했어요? 한국교회가 워낙 당시에 강남은요. 80년대 중반 후반 강남에 유행어가 있어요. 그게 뭔지 알아요? 아직까지 교회에 안 나가나? 이게 유행어였어요. 어느 순간 좀 부족함이 생겼는데 어제 다시 마음 다 해가지고 다시 새롭게 해가지고, 6번 7번을 내리칠 수 있는 우리에게 주신 사명의 화살을 내리칠 수 있는 은혜를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걸 적용하겠습니다.

여러분 다시 내 힘으로 내리치는 것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말씀에 의지하여 내리치는 것이고, 우리에게 주신 말씀의 화살 사명의 화살을 내려치는데 이 말씀이 우리의 중앙선이에요. 그걸 가지고 내려치는데 어떻게 하느냐,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이 강남에 사시는 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여기 상위 1%도 계실 거예요. 사회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여러 가지 면에서의 상위 1%가 계실 거예요. 그러나 우리 대부분 99%는 평범한 사람들이에요. 근데 평범한 우리가 남들이 보기에 아무것 아닌 것 같아도, 오늘 이 말씀을 내게 주신 말씀으로 받고, 여러분들의 생애에 말씀의 화살을 6번 7번 내리치는 순간 뭔가 달라지게 될 것이에요. 그럴 때 평범한 부부가 인생을 낭비하지 않게 되고, 그리고 평범한 부부가 사명을 가지고 자녀들을 믿음으로 키우게 되고, 자녀들을 토요일 이전 새벽 예배에 데리고 나가지고 한 번 두 번 6번 내려칠 때에, 그 아이들을 통하여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에요. 내 인생에 내 인생을 위하여 여섯 번의 화살을 내리칠 때에 하나님이 일하실 것이에요. 그러면서 제가 지난 주간에 더 생각해 봤냐면 저희 아파트 문에다가 뭐가 딱 되냐면, ‘사랑의 교회’라는 교패가 있어요. 이게 어떤 의미에서 우리의 아이덴티티(identity)가 된 거예요. 제가 그 교회 붙이고 위에 층간 소음 있을 때 밑에서 쿵쿵 할 수 있겠어요? 저 조심조심하지요... 그래서 저는 하나의 어떻게 보면 상징이에요. 우리가 너희가 나를 믿는 자는 성령님이 함께 계시고, 우리 속에 계시고, 위로부터 부어주실 때, 이걸 믿을 때에 그리고 청년 시절에 질풍노독하던 시대에 아무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이 말씀 붙잡고 그 모든 과정들을 겪었다 할 때에, 한국교회 처음에 아무것도 아니었지만 하나님이 10년, 20년 동안 역사하는 그런 현장에 있었다고 말할 텐데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내가 볼 때 우리 교회 교우들 가운데 대부분은 사랑의 교회 교패 붙이고 있는 걸로 제가 알고 있습니다만, 또 상황이 안 돼가지고 못 붙인 분도 있고 이사 가 못 붙인 분도 이제 많이 있을 거예요. 오늘부터 교표 붙이세요. 제가요. 제가 밖에다가 많이 준비해 놓았어요.

나가실 때 하실 다 갖고 나가시라고 이게요. 이게 그럼 교회를 어떻게 붙이는지 모르는 분들이 떼 가지고 붙이면 돼, 이렇게 이게 여러분들에게 굉장한 아이덴티티(identity)를 갖게 할 거예요. 단순한 사랑의 교의 문제가 아니에요. 한국교회 성도로서의 자긍심과 여러분들이 갖는 정체성이 문제예요. 나보다 큰일을 하리니 어떤 경우에도 이 사명을 놓치지 않겠다는 그런 마음의 자세를 가지고 아마 여러분 제 말씀 듣고 순전하게 여러분들 그걸 적용하면서 교회 없는 분들 들고 나와 가지고 집에다가 붙일 때 그게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여러분들을 변화시킬 거예요. 한국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좀 이렇게 야성이 약해졌어요. 이런 일들을 통하여 다시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나갈 때 두세 개는 갖고 가지 말고 하나만 갖고 가세요.

이런 은혜를 받으면 우겨 쌈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하고, 웬만한 사람들은 쓰러지지만,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할 수 있다는 말씀을 붙잡고 부흥에 대한 희망을 갖고 있으면 쓰러지지 않는 것이에요. 남이 알아주든 안 알아주든 묵묵하게 주님 앞에 헌신하고 섬기고 아이들을 제대로 키우고 하나님께서 그 인생을 책임져 주시는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 지난 1년간 우리는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줄기차게 우리가 소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 그 결과로 작년에 처음으로, 9월 23일,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 5,500여 명의 목사님들을 우리가 모시고 1박 2일 동안 집회를 하고, 이번 10월 23일은 우리가 7천여 명의 목사님들을 모시고 그래서 두 집회를 보니까 7,500교회 거의 7천 교회가 되는 교회들을 저희들이 섬기게 된 거예요.

우리가 잘해서 많아서 그게 아니라 주님보다 주님이 하는 일을 우리도 감당하게 해 주십시오. 이런 소원을 가지고 그래서 앞으로 7천여 교회가 플랫폼으로 내년쯤 하면 만교회가 되겠죠. 만 교회 플랫폼으로 올라오면 우리는 부족하지만, 그래도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귀한 것들이 많이 있잖아요. 특새를 하면 특세를 같이 하고, 그다음에 부활절에 품은 생명, 대각성에 추수하자! 그래가지고 부활절에 우리가 태신자를 작정하면 같이 태신자를 작정하고 그리고 제가 마음속에 소원했어요. 내년도 부활절에는 계란을 몇 개를 준비할까요? 100만 개, 그래갖고 같이 마음먹은 교회에 같이 내려다 보내는 것이 같이 태신자를 같이 작정하고 6개월 동안 같이 기도하고, 그래서 만 교회가 7천 교회가 같이 마음을 먹고 우리는 올해 4만 명 태신자를 작정했지만, 내년에는 우리가 마음먹어 가지고 적어도 10만 명을 작정하고 그다음에는 20만 명을 작정하고 40만 명을 작정하고 100만 명을 작정하면 하나님이 반드시 은혜 주시리라고 믿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그게 그냥, 그냥 뜬구름 잡는 얘기가 아니에요. 한국교회 아무리 어려워도 80년도 초반 중반 70년대 후반에 비하면 지금 환경이 더 나아요? 못해요? 훨씬 더 나아요. 70년대 후반 80년대 초반에는요. 사랑의 교회는 짜장면 집 2층에 있었어요. 예배드릴 때마다 짜장면 냄새가 나가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유혹을 받고, ㅋㅋㅋ 뭘 먹어야 할 것인가? 말씀을 먹어야지, 말씀을, ‘나보다 큰일을 하는 걸 먹어야’ 돼요. 그걸 생각해 지금이 안아주심의 본당, 전 세계에 다 찾아오잖아요. 환경이 말도 못하게 좋아진 거예요.

그런데 토비새를 안 나와요? 제가 토요일 이전 새벽 예배를 강조하는 것이 아니에요. 화살을 내리치는 시간이에요. 그 시간이 우리가 지금 기도하는 가운데 ‘7천기도 용사’를 가지고 우리가 7천 명 우리가 하잖아요. 근데 우리가 기도하는 가운데 무슨 생각이 들었냐면 야 7천 명 어른들만 하면 되겠나 다음 세대에도 7천기도 용사가 나오게 하여 주십시오. 이 교회를 위한 기도의 제목이에요. 그리고 하다 보니까 더 은혜가 생기는 거예요. 하나님, 우리가 믿음의 4세대가 우리가 이런 기도를 해야 되는데 하나님 아버지 믿음의 4세대 가운데 포에버 이상 60대 이상은 60대 이상도 7천 기도의 용사, 지금 제일 좀 이렇게 막 이념적인 갈등을 가지고 고통 하는 40~50대 40~50대도 7천기도 용사, 대학 청년부 20~30대도 7천기도 용사, 10대하고 어린아이들도 7천기도 용사, 합계 몇 명이에요? 계산이 안 돼요. 7천, 7천, 7천, 7천, 2만 8천 명, 사랑의 교회 2만 8천 명의 기도의 용사들이 생기기 시작하면, 우리나라 부흥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그리고 내년까지 만 교회가 같이 합류해가지고 우리도 부족하지만 섬기는 마음으로 그 교회들 교회들마다 기도 용사들이 생기면 한국교회 부흥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여러분 대답을 이렇게밖에 못합니까? 일만 교회가 같이 마음을 먹고 나보다 큰일을 하리니, 아니 주님이 할 일을 할 것이오. 이걸 믿고 마음을 같이 하면 되겠습니까? 안 되겠습니까? 이게 우리가 믿음이 되는 것이에요. 다시요. 내가 할 수 있느냐, 없느냐? 가 키가 아니라니까요. 82년도에 그 아무것도 없을 때, 아까 정말 결혼식이 주가 아니고, 결혼식은 잠깐 갔다 오는 거라니까요. 갔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가 전력투구를 할 때 하나님은 어떻게 역사하실까? 전 세계 교회에 미국 교회의 힘이 있지만 여러분 전 세교에 정치 경제 사회 경제 문화 모든 영역에서 자리가 잡힌 교회 그래도 대한민국 교회가 넘버2가 되는 거예요. 한국 사회가 그래서 우리 한국이 한국 교회가 바로 가면 이 민족도 바로 가는 것이에요. 우리 민족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개인도, 교회도, 우리 민족도 저는 기도하고 있습니다. 주여 2030년에는 통일되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도 못합니까? 7년 내에 평양에서 특별새벽기도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그렇게 기도하는 것이에요. 하나님께서 필요하면 역사해 주실 것입니다.

다시요. 7천기도 용사 정도가 아니라 7천, 7천, 7천, 7천기도 용사, 이 일을 위하여 우리가 뭘 할 수 있습니까? 오늘 13절 14절에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14:13~14,
1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14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라.
-너무나 신비한 말씀이에요. 이 말씀을 여러분 파서빌리티 딩킹크 그런 개념이 아니에요. 보혜사 성령의 역사가 있을 때, “너희가 내 이름으로 주님의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구하면 내가 신임하리니.” 구약에는 아까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받는 성령의 역사였지만, 신약은 보편적 성령의 역사에 있어가지고 우리가 이게 마음을 열고, 지금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우리가 신뢰하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이에요.

구약에서는 성막에 등불을 끄지 말라고 그랬어요. 사무엘이 성막에 등불을 끄지 않는 것이 그의 사명이었어요. 사무엘에게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사무엘의 등불을 끄지 않을 때, 그가 할 역할을 했을 때, 하나님이 사무엘에게 역사하시고 다윗 왕국을 세우는 역할을 감당하게 되었어요. 오늘 우리의 삶에 우리 인생에 등불을 끄지 않는 것이 뭡니까? 그게 기도예요. 7천, 7천, 7천, 7천기도의 용사가 될 때, 우리의 삶의 등불이 꺼지지 않는 것이에요. 이런 비전이 약화되지 않는 것이 모라비안 교도들은 이거 깨닫고, 100년 동안 기도의 불을 꺼지지 않게 해가지고, 세계 선교의 문을 여는 영광스러운 역할을 진전도로 백작과 함께 했고, 디엘 무디와 함께 일했던 아레이토레이 박사는 시카고 무디 신학교와 그다음에 LA에 있는 바이올라대학교 같이 해서, 3년 동안 토요일마다 기도의 재단을 쌓았더니, 그 은혜가 영국의 케직 사교가 케직 사경의 5천여 명의 1902년도 7월달에 5천여 명의 사역자들을 모여 기도할 때, 그 기도의 능력이 인도로 갔다가 그다음에 평양으로 갔다가 한국교회의 부흥으로 이어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기도의 불을 꺼지지 말라.’ 하나님의 임재와 하나님의 인도가 있는 이 기도의 불을 꺼뜨리지 말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래서 오늘 이 시간 때문에 저와 여러분 한국교회가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는 은혜의 초석을 든든히 내리는 놀라운 축복을 한 분 한 분 맞춤의 은혜로 허락해 주시기를 축원합니다.두 손을 펼치시고 주의 용서된 나에게 주의 일을 맡겨주십시오. 한 번이 아니라, 세 번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세 번이 아니라, 다섯 번, 여섯 번, 7번을, 기도의 말씀의 화살을 가지고 내려치는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요약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보혜사 성령이 우리의 참된 힘이 되어서, 우리의 마음속에 비집고 들어온 모든 회의주의, 패배주의, 비관주의를 완전히 무너뜨려 주심을 믿고, 말씀 가지고 다시 한 번 한국교회 회복을 넘어 부흥을 위한 말씀의 화살을 6번, 7번을 치는 능력을 체험하게 하여야 한다. 생명을 걸만한 믿음과 충성과 열정을 회복하여서 겉으로 드러난 한국교회의 6만 교회뿐만 아니라, 보이지 않는 무형 교회인 우리 자신도 바로 서서 이 민족의 방향이 참으로 새롭게 집필될 수 있도록 은혜 위에 은혜를 간구하며, 오늘 엎어지고 답답한 그런 힘든 환경에 처했어도, 말씀으로 완전히 회복하게 하여야 한다. 힘의 원천이신 성령님께서 ‘예수님보다 더 큰일’을 행하게 하실 때, 교회를 어둡게 하는 모든 회의주의, 패배주의, 냉소주의, 비관주의를 ‘주님의 철장권세’(鐵仗權勢)로 다 깨뜨려 주시니, 고난의 파도 앞에서 무력감에 빠질 때, ‘불처럼 뜨거운 사명의 화살’을 들어 여섯 번, 일곱 번을 내려치며 7천 교회와 함께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완전히 비상하게 하기를 소원하자.
-제자들은 주님과의 이별의 슬픔과 주님이 떠나가시면 그들을 누가 돌보아 줄 것인가 하는 염려로 가득 찼다. 주님이 그들을 떠나가시면 제자들은 목자 잃은 양같이 될 것이다. 그리스도는 제자들에게 그들이 어려운 일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의 옷을 입게 될 것이라고 확신 시켜 주시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기서 그의 제자들에게 성령을 보내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성령은 위로 자이시며, 이 모든 일들을 제자들에게 온전히 이루어 주실 분이다.













728x90
반응형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