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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7월 17일)
제목:  "다시 복음으로"
말씀: 로마서 1:16~17
찬양인도: 쉐키나,  이다니엘 부목사님
대표기도: 한재준 부목사님(1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정성욱 목사님(덴버신학대 교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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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1:16~17,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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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렐루야, 아멘!!

오늘 이 아침에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여러분의 형제와 자매 여러분들에게 하늘의 소망과 신령한 기쁨과 평강이 넘치시길 바란다. 기도.
 
-코로나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 우리의 마음에 참 피곤함과 어떻게 보면 지친 느낌이며 계속해서 이 터널을 우리가 통과하여 가면서 이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우리의 삶 속에 어려움과 고난과 이 현실을 한 방에 해결 할 수 있는 그 무엇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냥 한 순간에 이것을 종식시키고, 모든 것을 완전히 창조하시는 하나님의 한 방은 없는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를 우리가 질문을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저는 우리 한국 교회가 지난 2년 반 동안 코로나 상황을 잘 견디어 왔는데, 앞으로 이 상황을 극복하고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가기 위해서는 ‘다시 복음으로’ 돌아가야 한다. “다시 복음으로”!!! 아멘....
 
 
다시 복음으로 가야만, 다시 복음으로 우리가 올인 해야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놀라운 권능과 지혜와 능력을 회복하고, 다시 한 번 새롭게 부흥하고,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게 될 줄로 믿는다. 복음만이 우리의 힘이요, 우리 희망이요, 우리의 능력이요, 우리의 지혜요, 우리의 영광인줄로 믿는다. 오늘 사도 바울은 로마서 1장 16절 말씀을 통해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한다고 말씀한다.
 
*로마서 1:16,
16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여기서 바울은 내가 복음을 자랑한다. 나는 복음을 찬양한다. 나는 복음을 예찬한다. 복음만이 나의 소망이다. 복음만이 나의 능력이다. 이렇게 이야기 하지 않고 왜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부정어법을 사용하고 있는가? ‘내가 복음을 자랑한다.’라고 긍정적인 말로 했으면 되는데, 왜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는가? 그것은 사도 바울이 전하는 복음이 사도바울이 생명을 걸고 전하는 복음이 십자가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십자가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십자가는 우리의 목걸이로 만들어서 메고 다니고 십자가로 우리의 옷을 장식해서 다니고, 십자가로 우리의 영광스러움을, 우리의 정말 놀라운 희망을 주는 것으로 우리가 받아들이고 있지만, 사실 1세기에 사도 바울이 살았던 그 시대에 십자가는 가장 치욕적이었다. 가장 수치스러운 것이다. 가장 치욕이자 수치스러운 것이 십자가였다. 십자가는 드러내놓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막 자랑하면서 내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십자가는 숨겨야만 했던 것이고 덮어야만 했던 것이고 결코 사람들이 알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왜 그랬을까? 그 당시 십자가는 가장 극악한 범죄자, 가장 치욕적인 가장 천륜의 범죄, 가장 악한 범죄를 저질렀던 사람들을 처형하는 틀이다. 가장 악한 사람들을 처형하는 처형 틀인 십자가는 결코 자랑할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사람이, 내 가족 중에 십자가에 처형되었다면 또 어떤 사람이 십자가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하는 순간, 나는 매우 수치스러운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다. 그러나 사랑하는 여러분, 바울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복음을 수치스러워하지 않는다. 내가 십자가의 복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의 형틀에 달려 죽으셨다는 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나는 결코 부끄럽지 아니하고 수치스럽게 여기지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한다.”고 성토하고 예찬하고 바울은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하고 복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바울이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는 것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여기서 두나미스, 능력은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두나미스’에서 오늘의 ‘다이나마이트’라는 단어가 나왔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폭탄이다. 이것을 영적인 것으로 말하면 복음은 하나님의 영적인 ‘핵폭탄’이다. 모든 문제를 일발에 일소해버리고 모든 문제를 정리하고 모든 부정적인 것들을 다 덮어버리고 하나님의 능력과 영광과 지혜를 드러내는 하나님의 영적인 핵폭탄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무한하신 능력이 고도로 응축되어서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 하나님의 무한하신 권능이 드러나 최고도의 강도로 드러나는 것이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인줄로 믿는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며, 하나님의 핵폭탄이다. 자 그러면 복음이 하나님의 능력이고 하나님의 핵폭탄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는데 왜 복음의 능력인가?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그 사람이 헬라인이든 유대인이든, 그 사람이 한국이든 미국이든, 그 사람이 콩고이든 인도사람이든, 그 사람이 브라질 사람이든 캐나다 사람이든, 누구든지 간에 모든 믿는 자에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힘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사람의 배경이 무엇이든지, 그 사람의 삶의 어떤 경험을 했든지, 그 사람이 어떤 성품이 가지든지, 그 사람이 피부색깔이 어떠하든지, 그 사람이 속한 종족이 무엇이든지 간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그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이다. 아멘~^^
 
오늘 저는 ‘구원’이란 말에 포커스를 맞추려고 한다. 교회 와서 신앙생활을 하다보면, 우리가 예배를 하다보면 ‘구원’이라는 단어를 자주 듣는다. 찬양 속에도 구원이 나오고, 성경에도 구원이 나온다. 제자훈련 받을 때도 구원이 연속되고, 여러 가지 상황에서 구원이라는 말을 접하기 때문에 구원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그 생동 력, 구원이라는 말이 그 능력, 그 신선함, 구원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그 포괄적이고 총체적인 하나님의 기쁜 소식을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자주 잊어버린다. 그래서 우리가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에게 주시는 그 구원이 무엇인지를 몇 가지로 정리하겠다. 다시 한 번 복음으로 돌아가야만 우리 개인의 삶이 우리 가정이, 우리 교회가, 우리 민족이, 우리나라가, 전 세계가 다시 회복되고, 복음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해 보여 드리겠다. 우리에게 구원 받는 의미가 무엇인가?
 
 
I. 구원은 죄 사함이다.

-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고 의지할 때, 주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구원을 선물로 받는다.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선물로 받을 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의 첫 번째는 무엇인가? 그것은 죄 사함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하실 때, 찔끔찔끔 사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의지 할 때, 주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우리의 과거의 죄와 우리의 현재의 죄와 미래의 죄까지도 완전히 덮어주시는 줄로 믿는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과거의 죄만이 아니라, 예수님의 보혈은 우리의 현재의 죄, 우리가 싸우고 있는 죄, 장차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 성으로 인하여 우리가 미래에 짓게 될 그 죄까지도 과거와 현재와 미래의 모든 죄를 그리스도의 보혈의 완전히 덮으시고, 사하여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라고 하셨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함을 얻고, 이제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고 너는 내 앞에서 완전한 의인이라고 선언을 받은 줄로 믿는다. 완전한 죄 사함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우리의 죄를 멀리 던져 버리시고 깊은 바다의 심연으로 우리의 죄를 던져 버리신 줄로 믿는다. 더 나아가 뭐라고 하시는가? “내가 너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놀라운 역설이다. 우리 안에 죄 성이 남아 있다. 우리 안에 죄가 남아 있다. 우리는 계속해서 죄와 싸워야 한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아내기 위해 날마다 성령과 동행하며 살아가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너는 더 이상 죄인이 아니다.” “너는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의로운 자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거룩한 자가 된다고 우리를 서원해 주시고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의의에 옷을 입혀 주시는 줄로 믿는다. 그게 죄 사함이다. 그게 구원을 받는다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 다는 것은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이다. 완전한 죄에서 해방 되는 것이다. 그리고 복음적인 죄 의식, 이제는 두려움의 죄 의식이 아니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안타까움의 죄 의식을 갖는다는 것이다. 구원은 죄 사함이다.
 
II.구원은 거듭남이다.

-구원은 중생하며 거듭남이다. 니고데모가 찾아왔다. 가장 유명하고 걸출한 사람인데 율법학자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랍비여 제가 어떻게 하여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했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셨는가? “네가 거듭나야 한다.”고 하신다. 그 말을 듣고 니고데모는 “제가 모태에 다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인가요?”라고 한다. “네가 이스라엘의 선생이 되어서도 그것을 알지 못하느냐? 네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볼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라고 하신다. 왜 거듭나고 중생해야 하는가? 저와 여러분이 태어날 때, 모든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살아서 태어나지만 영적으로 죽어서 태어난다. 우리의 죄와 허물로 우리의 영이 죽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영적으로 깨져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나야만 하나님과 인격적인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고 그 분 앞에 무릎을 꿇을 때에 우리의 죽은 영혼을 다시 살려 주시는 줄로 믿는다. 우리의 영혼이 다시 거듭날 때, 새로운 생명을 얻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새로운 사람이 되고, 새로운 마음을 갖게 되고, 새로운 목적과 삶을 갖게 되고, 우리는 삶의 방향을 갖게 되고 새로운 인종, 새로운 존재가 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줄로 믿는다.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아멘, 우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에 새로운 줄로 믿는다. “당신은 새로운 피조물입니다.”!!!~우리가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고 새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거듭나고 중생해서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을 얻게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는 것이다.
 
III. 구원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다.

*요한복음 1:12,
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을 때, 우리의 인격에 무릎을 꿇을 때에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의 아들과 딸들이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며 더 이상 종의 영을 받지 않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아들과 딸들이 된 것이다. 이것을 문자 그대로 믿어야 한다. 이것을 수사학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이것을 그대로 믿어야 한다. 내가 하나님의 아들이구나, 하나님의 딸이구나, 여러분의 아빠 아버지, 하나님이시다. 믿는가? 여러분 그런데 왜 그렇게 재미가 없는가? 왜 힘이 없는가? 왜 그렇게 인생이 무미건조한가? 드라이하고 삶의 패션(passion)이 없고, 하나님이 내 아버지라고 정말 믿는다면, 정말 여러분의 삶은 반드시 달라진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의 아버지, 아빠인가? 아멘, 여러분, 자녀의 특권을 사용하기 바란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나님 앞에 무시로 돌아가서 하나님 앞에 우리 사정을 말하고 하나님, 아빠, 이렇게 표현해야 한다. 오늘 하나님 아빠, 저를 좀 도와주세요. 무시로 하나님께 돌아가서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해야 하고 친밀한 교제를 하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의 특권인 줄 믿는다. 특권을 부리시길 바란다. 하나님의 아들, 딸이라고 부른다. 그냥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과 딸이 되었다는 특권을 사용하기 바란다. 그 특권을 사용하면 무얼 받느냐면, 하나님 아버지께 무시로 나아가면 담대하게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보혈의 힘입어 우리는 담대하고 확신을 가지고 자신 있게 하나님의 지성소 앞으로 들어가서 그 하나님 앞에서 모든 사정을 낱낱이 보고해야 한다. 하나님의 용서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위로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안수하심을 경험하고, 하나님의 우리를 안아주심을 경험하게 된다. 또 우리의 자녀가 됨을 모든 부요함이 우리의 것이 되었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요, 만물의 주인이시다. 모든 우주를 창조하시고 지금도 운영하시고 우주에 있는 모든 것에 주인이시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이 저와 여러분의 것이 되었다. 그러면 이 땅에서 가장 부요한 존재는 누구인가? 이 땅에서 가장 부유한 존재는 빌 게이트도 아니고 일론 머스크도 아니고 이 땅에서 한국 땅에서 가장 부요한 자가 이재용도 아니다. 가장 중요한 존재는 저와 여러분이다. 왜냐면 하나님이 우리의 아빠이고 나의 아버지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상속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하나님의 부요함뿐만이 아니라, 하나님이 어떠하심을 본받는 자이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부모의 겉모습이라도 닮았다고 하면 기분이 좋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 하나님도 마찬가지이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우리가 아들과 딸이 되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본받고 닮은 자가 되기를 원하는데, 그것을 어떻게 원하시는가? 우리 안에 성령을 통해 이루어 가시는 줄로 믿는다. 무엇을 담게 되는가? 하나님의 사랑을 담게 되고,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과 하나님 신실하심과 진심하심과 하나님의 온유하심,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과 하나님의 지혜와 하나님의 깊은 통찰과 사람을 이해하는 능력과 사람을 품어주는 능력,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어떠하심을 저와 우리가 닮아가고 그것의 놀라운 특권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인 우리에게 주신 줄로 믿는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갖고 계시는 기본적인 이미지가 하나님이 그냥 아무런 표정도 없이 바라보고 있다가 우리가 잘못하면 꿈 밤이나 때리고 채찍이나 때리고 우리가 잘못하는 순간 징계하시는 분은 아니시다.
 
*스바냐 3:17,
17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하리라.
-하나님이 저와 우리를 바라보실 때, 예수 그리스도처럼 아들과 딸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을 우리를 바라보실 때에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고 하신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잠잠히 우리를 사랑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신다고 하신다. 우리를 향하신 기본적인 자세는 바로 기쁨과 즐거움과 행복이다.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바라볼 때, 우리를 향해 웃으시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향해 웃으시면서 즐거워하시고, 기뻐하신다. 기쁨을 이기지 못하신다. 우리를 바라보시며 춤추시고 신나하신다. 하나님을 향하여 즐거이 기뻐하시는 그 놀라운 복음의 말씀을 오늘 진심으로 여러분 신뢰하기를 바란다.
 
 
Ⅳ. 구원은 성령님을 받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님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에 우리는 성령을 선물로 주시는 분이시다. 성령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에 성령님은 어디에 계신가? 우리에게도 온 우주 만물에게도 존재하시고 계신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곳이 없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을 때에 예수님은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으로 우리를 인치시고 성령으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심령 속에 우리의 영혼 속에 자리하시고 성령 가운데 내주해 계신 줄로 믿는다. 성령님은 우리의 마음 안에 계신다. 이것을 믿어야 한다. 말로만이 아닌, 지식적으로도 아닌 정말 성령님이 내 안에 계심을 믿어야 한다. 나의 마음 안에 성령님이 계신다. 성령님이 내 마음 안에서 무엇을 하시는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그 말씀을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를 조명해 주시는 줄로 믿는다. 우리 하나님은 말씀을 접할 때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상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악들을 우리로 하여금 확인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성령님이시다. 성령님이 인도하시면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깨닫게 해서 그 진리를 따라 살게 하시는,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하시는 순종의 영이시다. 우리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하시며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성령님이 우리로 하여금 사명을 따라서 살아갈 수 있는 능력과 힘을 주시는 분이신 줄로 믿는다. 때로 우리가 범죄 할 때에, 우리는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고 성령님의 마음을 나쁘게 할 수 있다. 그렇다고 성령님이 우리를 떠나시는가?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신다.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님은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하신 줄로 믿는다. 때로는 하나님의 성령님은 우리의 죄악으로 마음 아파하시고 때론 근심하실 수 있다. 그러나 성령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시고 성령을 통하여 인 치심을 받고 그리스도의 사람, 하나님의 사람이 된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우리가 날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라.” 무슨 말인가? 이미 내 안에 계셔서 내주하신 성령님을 인정하고 성령님이 내 안에 계셔서 “오늘도 나와 함께 하여 주시옵소서. 내 삶을 주관하시고, 인도하시고, 지배하시고, 내 삶을 지도하여 주시옵소서. 내 삶을 주님 앞에 온전히 의탁하오니 나를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이 기도를 하기 바란다. 이렇게 기도드릴 때, 우리는 성령의 충만함을 받게 될 줄로 믿는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성령을 받는 것이다.
 
Ⅴ. 구원을 받는다는 자유케 되는 것이다.
 
-구원을 받는다는 것은 자유케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뭐라고 하시는가? “진리를 알지니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하리라.”라고 하신다. ‘자유’는 너무나 좋은 것이 자유이다. 너무나 아름답고 너무나 좋은 것이 자유이다. 여러분이 자유가 없다면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함께 모여서 찬양하고, 말씀을 묵상하고 서로를 격려할 수가 없다. 자유가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처음 창조하시고 뭐라고 하시는가? “이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실과는 너희가 임으로 먹되” 무슨 말이냐면, 동산에 있는 모든 것은 너의 자유롭게 먹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당신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신 가장 첫 번째 주신 것이 자유이다. 그런데 우리가 범죄 함을 그 자유를 상실하고 잃어버렸다. 그래서 우리가 마귀의 종이 되고, 죄의 종이 되고, 사망의 종이 되고, 거짓의 종이 되고, 노예가 종이 된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와 구주로 믿을 때에 예수님은 우리를 자유케 하신 줄로 믿는다. 무엇보다 마귀로부터 자유 함을 얻었다. 마귀는 우리를 지배하고 우리를 노예 삼아서 우리를 범죄 함을 살게 한다.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마귀는 계속해서 우리를 지배했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주님으로 모셔 들이는 순간, 마귀의 주도권과 마귀의 지배권은 파괴된다. 우리는 마귀로부터 자유케 된 줄로 믿는다. 그러므로 마귀를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마귀를 대적하라고 하신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마귀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마귀가 역사한다고 하면 “예수 그리스도로 명하노니 모든 사탄과 마귀는 물러갈 지어다. 아멘” 이렇게 물러가도록 우리는 마귀로부터 자유 해야 한다. 또한 우리는 죽음을 두려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 하는 사람이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내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삶과 죽음을 초월하는 것이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삶과 죽음을 초월한다. 빌립보서 1장에서 바울은 말한다.
 
*빌립보서 1ㅣ23,
23 내가 그 둘 사이에 끼었으니 차라리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일이라 그렇게 하고 싶으나
-그러나 바울은 이 몸 안에 남아 있어야 되고 이 땅에 살아 있어야 한다면 그것은 오직 너희를 위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맡겨주신 하나님의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오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나 혼자만 생각하면 나는 내가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은 선택이라고 말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영생을 얻었다. 믿는가?
 
*요한복음 3:16,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영생을 얻은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두려움으로부터 자유케 된 자 인줄 믿는다. 마귀로부터 죽음으로부터,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다. 물질이 최고라고 세상은 말한다. 황금이 최고라고 한다. 뭐니뭐니해도 세상의 가치관이다. 물질을 숭상하는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어서 우리는 물질을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잘 사용한 사람인 줄로 믿는다. 물질의 종이 되지 아니하고 지배하고 다스리고 통치하고 잘 관리하고 사용하는 하나님의 청지기가 되어야 한다. “항상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의 의의 밑에 있는 것이다.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고 하신다. 세상의 가치관으로부터 우리는 자유케 되어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의와 그리스도의 나라를 위해서 살아가기를 믿는다. 우리가 자유케 된다는 것은 부정적으로부터 자유케 되는 것이 아니라, 긍정적인 어떤 것을 향해서 나아가는, 이제는 자유롭게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게 된다는 것이다. 자유로운 순종, 하나님께 자발적 순종, 감사의 순종이다. 그리스도와 그의 나라를 위해 함께 살겠다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 삶으로 우리는 자발적으로 우리의 마음 속 깊이 자유 함으로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선한 일을 행하는 자유를 얻게 될 줄로 믿는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안에서 주신 구원의 놀라운 영광은 제가 다섯 가지로 설명한 그거보다 훨씬 더 크고 놀라운 것이다. 오늘 제가 다섯 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것이다.
복음은 우리에게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핵폭탄인줄로 믿는다. 그 구원의 감격을 가지고, 우리의 현실은 어떻게 보면 회색처럼 보이고, 어두워 보이지만 모든 현실 속에서 이미 우리에게 구원을 주셨고 우리 안에 성령을 통하여 우리를 날마다 그리스도를 닮은 자로, 그리스도의 형상을 본받는 자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우리를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를 기대하면서 날마다 성소에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으로 살기를 바란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다른 사람을 세워주고 붙들어주고 그들을 견인해 주는 영광스런 삶의 주인공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의 교회를 통하여 한국교회가 새 날을 열어가는 것을 확신하고 축복한다.
 
♣요약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능력인 복음을 찬양하고 복음의 능력을 머리로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우리의 심령으로 온전히 우리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경험하고 실천하는 살아가는 자가 되어서 회복을 넘어 부흥으로 나아가야 한다. 복음의 권능을 회복하고 다시 복음으로 다시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복음으로 우리가 무장하여 성령의 권능으로 복음의 산 증인이 되길 소망한다.
 


















이 영상은 2부 예배 영상이므로 1부예배 내용과 다소 약간의 차이가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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