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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3월 20일)

제목: "왜 죽은 정통? 왜 예수 생명?"
말씀: 요한복음 10:10, 에베소서 3:8
대표기도: 임병영 부목사님
찬양인도: 쉐키나, 영광찬양대
 
설교자: 권성수 목사님(대구 동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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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10:10,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3:8,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현장예배와 영상 예배에 동참하신 모든 분들께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이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시길 주님의 은혜를 축원한다. 제가 예전에 총신대 교수로 있을 때에 사랑의 교회에서 일 년 정도 사역을 격주로 했다. 그렇게 사랑의 교회에서 지내는데 어떤 기자가 인터뷰를 하자고 했다. 그 내용 중에는 “교수님, 성경 구절 중에 교수님이 좋아하시는 성경구절이 있으면 소개를 해주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제가 질문을 받고 나서 한 구절인데 오늘 이 자리에서 함께 읽은 요한복음 10:10과 에베소서 3:8절이다.
 

*요한복음 10:10,

10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에베소서 3:8,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이 두 구절을 제가 인터뷰에서 언급했다. 제가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계속 도망을 치고 도망을 치고 도망을 쳤는데 아버님의 서원기도로 은혜를 받고 목사가 되었다. 너무 감격했다. 하나님이 이 쓸데 없는 자를 왜 구속하여 주시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찬송을 애창곡으로 할 만큼 감격했다. 아버님이 목회하신 것을 힘들어 하심을 보고 저는 절대로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의 은혜와 생명의 은혜로 인도하셨을 때 제 자신이 없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제가 이 두 구절을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그렇게 언급하고 나서도 제 마음 속에 약간의 갈등과 고민이 있었다. 예수님께서는 엄연히 영으로 생명을 얻는데 풍성히 얻게 하도록 오셨다고 약속하시는 것이다.
 
▷고백+갈등 ➔ 회복부흥
풍성한 은혜를 체험을 해야 하는데 내가 그 정도의 체험을 하고 있는지를 고민했다. 이런 고민스런 고백이 제 속에 있었다. 여러분은 어떠한가? 예수를 믿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풍성한 은혜를 어느 정도 체험하고 있는가? 그 은혜가 너무 커서 삶의 현장에서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에 고백을 할 수 있는가? 특별히 고난 중에도 고백을 할 수 있는가? 저는 신학대학 시절부터 계속해서 갈등이 있었다. 분명히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생명은 체험하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약속하신만큼 체험하고 있는가이다. 바울이 감옥소에서 체험한 것만큼 감격스럽게 체험하고 있는가? 그런 갈등이었다. 보통 신학교에 들어가면 지금도 신학생들에게 들릴 것이다. 신학교에 들어가면 뜨거운 신앙이 식는다. 신학교는 뜨거운 신앙의 불을 끄는 곳이다. 신학교는 찬물을 끼얹는 소방차이다. 왜 이런 말이 나오는가? 성경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자유주의 신학을 할 때 나올 수 있다. 그런데 분명히 성경을 그대로 믿고 그대로 연구하고 그대로 전파하고 가르치는 신학교에서 왜 이런 고민이 나오는가이다. 미국 유학을 갔을 때 다른 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는 친구는 학교에 가면 독주사를 맞고 집에 오면 해독주사를 맞는다고 말했다. 학교에 가면 성경을 비판하는 교수를 통해서 독주사를 맞고 집에 와서는 기도하면서 그 독을 다 빼는 해독주사를 맞는다고 말한다. 제가 그 말을 들으면서 한 편은 이해가 되면서 한편으로는 왜 독주사를 맞고 해독주사를 맞으려고 돈 들어서 유학을 하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왜 성경을 연구하고 성경을 가르치는데, 왜 이런 말이 나오고 갈등이 있는 걸까? 이것이 과연 신학교에서만이 아니라 교회에서도 놓고 보면 예배 시간에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를 어느 정도 체험하고 싶다. 찬송이 얼마나 살아서 위로가 되는가? 말씀이 생생하게 영혼의 양식으로 우리의 흡족하게 들어오고 있는가? 제자훈련과 훈련에서 얼마나 하나님이 풍성한 은혜를 체험하고 있는가? 이 문제가 교회 전체에서 문제가 발생했던 것이 사실이다.
 
호주에 유명한 신학자인 ‘그레엄 골드워드’라는 분이 있는데 이 그레엄 골드워드가 있는데 그가 복음 중심의 책을 썼다. 지금 신학교 강의 시간이 아니라 설교시간이기에 깊이 들어가지 않지만, 신학자로서 교회 전체를 꿰뚫어 보면서 핵심적인 문제를 직시하고 지적하고 있다. 그레엄 골드워드는 교회 역사 전체를 놓고 봤을 때 초대교회, 중세교회 넘어서 계몽사조시대 교회, 근세교회, 현대교회로 넘어오면서 계속해서 교회역사에서 학자들과 교인들이 성경을 해석하고 연구했는데 다루면서도 그리스도 예수의 풍성한 생명을 체험하지 못한 현상이 나타났다고 한다. 분명히 성경을 성경대로 믿고 다루는 정통인데도 불구하고 약한 정통내지 죽은 정통의 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제시했다. 그가 복음 중심의 해석인데 복음의 주인인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 예수의 풍성한 측량할 수 없는 풍성함을 체험할 수 있다고 그렇게 제시를 했다. 학자 중에서도 내가 고민하고 있는 문제를 자기의 고민으로 삼아서 교회역사의 2천의 역사를 다 훑어낸 사람도 있어서 고맙기도 하고 공감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시에 제 마음에 질문이 던져졌다.
 
또한 신학교 박사하위 마칠 때 신학생들의 졸업식에서 그들의 가족들과 함께 할 때 그날 세계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설교가가 설교를 했다. 저 자신부터 설교의 내용을 들어도 마음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그 설교는 그리스도의 중심의 설교를 하고 있었다. 듣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고 은혜를 많이 받아야 할텐데 설교의 감동이 와 닿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저만 그러나 했다. 제가 얼굴을 돌려서 쭈욱 훑어보니 ⅔가 졸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에 가격해서 이렇게 하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그리스도 중심의 해석을 하는데 이렇게 약한 정통이 있을 수 있는가? 좀 심하게 이야기 하면 죽은 정통이 있는 것인가? 왜 예수의 생명을 체험하지 못할까?
 
특별히 18세기에 계몽사조시대에 이성을 만물의 기준으로 삼았다. 우리의 워리에 합리적으로 판단해서 맞는 것이다. 우리가 이성적으로 판단해 볼 때 옳지 않는 것은 맞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재로 경험할 수 있는 것은 사실이고 경험할 수 없는 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과 경험의 기준에서 성경을 비판하게 되는데 그런 성경을 읽고 나서 성경에 나오는 모든 기적들을 계몽사조시대에 성경의 200년간 교회 역사를 지배했다.
 
*고린도전서 4:20,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화려한 인간 지혜의 레토릭, 수사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성경을 문법적으로 역사적으로 문학적으로 담화 분석적으로 연구해서 가르친다고 해서 그게 생명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그것도 필요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레토릭, 말에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성령의 능력, 예수의 사랑이 약동하게 하고 예수의 생명이 흘러가게 만드신 성령의 능력에 있다. 그런데 교회 역사 전체에 체험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들을 어떻게 체험하게 할 수 있느냐이다. 오늘 본문에 9장과 10장을 연결해 보면 상당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예수께서 내가 온 것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더욱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한다. 여기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명’, 이 생명이 어떤 생명이냐는 것이다. 우리가 고통과 세상을 겪으면서 한 백 여 년 사는 생명을 말하는 것인가? 그 생명이 좀 풍성한 것, 그것을 말씀하시는가? 아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생명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생명과 접속된 생명이다. 하나님의 생명, 영원한 주관자이신 하나님의 생명과 접속된 생명을 말하는 것이다.
 
여러분 하나님의 생명이 얼마나 대단함인가와 얼마나 위대하시냐를 깨달으면 감히 다가오게 된다. 하나님이 얼마나 위대하냐고 깨닫고 싶으면 밤에 맑은 밤하늘을 쳐다보시면 어느 정도 감이 올 것이다. 측량할 수 없는 생명이다. 밤하늘을 인간의 눈으로 쳐다보면 별이 1600개 정도 보게 된다고 한다. 인간의 눈으로 확인이 안 되는 별이 너무나 엄청난 별이 있다. 별이 700해 정도가 된다니 감이 안 올 수 있다. 억조경해해~~
지구도 하나의 별이듯이 지구의 있는 모든 모래 알 들, 사막에 있는 모든 모래알들을 전부 모아놓은 숫자보다 더 많은 숫자가 그게 700해 정도가 될 것이다. 이렇게 많은 별들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셔서 우주 공간에 띄어 놓으시고 운행하신 줄 믿는다. 하나님은 우주의 대통령, 우주의 통치자이시고 위대하시고 크신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이 얼마나 정교하시고 대단하신가? 지구촌에 있는 80억 가까이 되는 모든 사람의 생각과 표정과 행동이 교만하고 겸손한지를 정확하게 동시에 아시고 모든 교만한 자를 낮추시고 모든 겸손한자를 높이실 정도로 정확하시고 정교하신 하나님이시다. 얼마나 정교하신 분이시냐, 여러분의 몸 속에 인체 속에 세포가 백 조개 정도 있다. 100조개 중에 하나의 세포, 0.02mm, 굉장히 작다. 그 세포 속에 얼마나 많은 부품이 들어있냐면 보잉 747기가 그 안에 600만개가 들어있는 셈이다. 그런데 보잉 747기 15만 6천대 이상의 부품이 0.02mm 안에 들어있게 만드시고 그 세포 속에 있는 부품들이 정확하게 작용을 하면서 움직이게 하시는 정교하신 하나님이시다. 신음소리도 다 듣고 계시고 이 하나님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믿는다. 대단히 크신 하나님, 측량할 수 없이 정교하시고 크신 하나님이시다. 그 하나님이 죄와 고통과 사망까지 이기는 생명, 이것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이 생명을 주시려고 바로 오셨다고 선언하신 것이다.
 
※박효진 장로님의 간증을 여러 번 들어본 적이 있다. 한 번은 이런 간증을 하셨다. 자신의 친구가 고교친구인데 영안실에 있는데 예수님을 안 믿었다. 그러다가 그 친구를 예수 믿게 만드려고 친구에게 예수를 믿어야지 하면서 권면했다. 예수를 안 믿으면 벌을 받으니 한 번 믿어보라고 했더니 그 친구의 답변이 “지금은 안 믿어 언젠가는 반드시 예수님을 믿을 거야, 내가 예수를 안 믿지만 영안실에서 시신을 수도 없이 다루어 보았는데 시신을 보면 내가 예수를 안 믿어도 이분은 천당, 지옥을 구별한다.”고 했다. 정확하게 아는 것은 예수 믿는 시신은 불치병을 오랫동안 앓았어도 평온하다. 예수 안 믿는 시신은 평생 동안 건강하고 떵떵거리고 살았어도 오만상을 찌 뿌리고 있고 거품을 물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나도 천당 가고 싶지 지옥가고 싶지 않다고 했고 그러니 언젠가는 예수를 믿겠다고 했다고 한다. 여러분 누가복음에 16장에 분명히 나와있다.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에 보면,
 
*누가 16:22
22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이 비유에서 여러분 육체 안에 영혼이 있으니까 지금 살아있다. 이 육체는 영혼이 떠나가는 순간에 그것이 바로 죽음인데 이 말씀을 보면 천사들에게 떠 받들렸다고 말씀한다. 한 번 생각해 보자. 700해 정도의 별들이 우주 공간에 떠 있는데 영혼이 육체를 떠나서 어떻게 해서 천당까지 스스로 갈 수 있는가? 절대로 못 간다. 그러나 예수 믿는 사람의 영혼은 천사들이 떠받들린다. 천국 우주선에 천사들이 예수 믿는 사람들의 영혼을 탑승시켜서 그 영혼이 천국으로 정확하게 올라갈 수 있도록 에스코트하고 주님 앞에 가게 하시며 주님의 품에 안기게 하신 줄 믿는다. 이것이 예수님이 약속하신 생명이다. 하나님의 생명과 접속된 영원한 복된 생명, 죄와 사망과 죽음까지 이기는 생명이다. 엄청난 생명이다. 이 어마어마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다고 약속하셨고 바울은 체험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본문에 9장과 10장을 보면 9장에는 날 때부터 시각장애인이 나온다. 생내적 시각장애인이 예수님을 만나서 침 바른 흙을 눈에 바르라고 해서 발라주시고 실로암 물에 가서 씻으라고 하신다. 씻었더니 눈이 환하게 되었다. 여러분이 그런 경험을 했다면 어떻게 되었겠는가? 앞을 못 보는 상태에서 실로암 연못까지 어떻게 갔는데 거기서 씻었더니 훤하게 보였으니 너무도 감격했을 것이다. 눈을 뜨는 개안의 기적을 체험한 것이다. 그날이 안식이다. 안식일이니까 태생적 시각장애인이 눈을 뜨는 기적을 체험했는데도 바리새인들은 예수를 죄인이라고 정죄한다. 왜 안식일에 노동하면 안 되는데 노동을 했기 때문이라고 그런 것이다. 이러면서 예수님하고 이 시각장애인 사이에 지금은 눈을 떴지만 논쟁이 붙은 것이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은 죄인이다. 그 시각장애인은 아니라고 한다. 나는 죄인인지 아닌지 모르지만 내가 분명히 아는 것은 내가 못 보다가 이제는 본다는 것이다. 그것이 분명하다고 말한다.
여러분 영어를 쓰지 않지만 쓰고 싶다. 양해하길 바란다.
 
※“One thing I do know, I was blind but now I see.”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절하는지라.”(9:38)
-창세 이후에 없었던 초유의 기적을 나는 체험했다고 말한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나 나는 분명히 이런 기적을 체험했다고 확실한 간증이 있는 것이다. 이후에 이 시각장애인은 출교 당했다. 회당에서 쫓겨나는 것인데 유대인 회당에서 쫓겨나면 인생에서 쫓겨나는 것이다. 살 수 없고 그렇게 힘들다. 그렇게 되었을 때 예수님을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인자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자신이 인자, 하나님께서 보내신 천국 왕 메시아임을 밝히신다. 그 때 시각장애인이 보고 주여, 내가 믿나이다. 하고 외쳤다. 예수를 믿을 뿐만 아니라 그 앞에 꿇어 엎드려서 경배했다고 한다. 놀라운 영적 개안까지 체험했다. 육적 개안에 영적개안까지 체험했으니 엄청난ㅁ 변화를 체험하고 엄청난 간증을 하게 된 거싱다. 여러분 똑 같은 사건이다. 예수가 나오고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이 나온다. 날 때부터 못 보던 사람이 보는 기적이 나온다. 똑 같은 사건을 놓고 예수님을 바리새인들은 죄인이라고 부른다. 이 눈뜬 사람은 나중에 분명히 발견한대로 예수님을 천국의 왕 메시아, 하나님이라고 부르며 고백한다. 핵심이 무엇인가? 예수님이 누구이신가? 이다. 예수가 누구인가? 나를 믿지 못하면 내가 행한 기적을 보고 믿으라고 하신다. 창세 이후에 못 보던 사람이 없었으니 보았으니, 창조 이후의 초유의 기적이다. 그 정도라면 하나님이 보내신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것도 못 믿겠거든 나의 부활의 기적을 믿으라고 하신다. 10장에 보면 예수님은 양의 문, 선한 목자의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은 내가 양의 문이며 나를 통해서 들어오지 않으면 구원의 문으로 들어오지 못한다고 하신다. 나의 양들은 내 음성을 듣는다. 내 음성을 듣고 들어오며 나가면서 꼴을 먹는다. 예수께서 선한 목자라고 하시면서 예수님은 생명을 내려놓을 권세도 있고 다시 찾을 권세도 있다고 하신다. 여러분 생명을 내려놓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그러나 절대로 하지 말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러나 내 목숨을 다시 도로 가져오는 것도 아무도 못한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절대로 못한다. 구원의 능력을 행하실 수 없다. 예수께서 나의 개안기적과 부활 기적을 믿고 내가 하나님이 보내신 자임을 믿으라고 하신다. 이렇게 10장에서 말씀하신다.

“나는 하나님과 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신다. 이 말을 듣고 나서 유대인들이 돌을 들어서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다.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말하니 인간인데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라고 하면 신성모독이라며 유대인들은 돌을 던졌다.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예수님은 분명히 하나님과 하나이다. 라고 말씀하시고 그리고 그것을 증거 하는 것으로서 개인기적, 창조이후의 초유의 기적을 보여 주신 것이다. 그리고 부활 기적까지 언급하신 것이다. 이런 예수님에 대해서 예수님을 여러분은 분명히 믿고 계신다. 성경대로 믿고 계신데 문제는 얼마나 풍성한 체험을 하는데 있다. 여러분이 얼마나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생명의 은혜를 체험하고 간증하고 전달하느냐가 문제이다. 이문제가 무엇으로 해결되는가? 이다.지금 이렇게 이야기 할 때 알고 있어야 한다. 해드 날리지(head knowledge)-머리지식은 다 가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이 하트 날리지(heart knowledge)가 되느냐이다. 하트 날리지는 가슴지식이다. 꿀이 달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머리지식이며 예수님이 풍성한 은혜를 주신다는 것을 안다는 것은 머리지식이다. 여러분 꿀이 달다는 말만이 아니라 꿀이 달다는 것을 달다는 것을 체험하는 것이다. 먹어보니 달더라. 꿀을 먹어보니 달더라. “One thing I do know, I was blind but now I see.” -예수를 믿고 나서 눈에 보이지 아니하고 들리지 아니하고 손으로 만질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가 살아계시면서 우주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인간세계를 창조하시고 다스리시고 나의 삶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신 줄 믿습니다. 체험이 있고 간증이 있느냐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 영적인 진리가 가슴진리로 다가오는가? 머리지식으로 하면 교만해진다. 머리지식으로 머물면 정죄하고 손가락질 한다. 그러나 가슴지식은 다르다. 예수 그리스도를 여러분이 머리만이 아니라 가슴으로 체험하길 축원한다. 온유하고 정직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가슴으로 체험해야 한다. 사람이 근본적으로 변화된다. 머리지식이 가슴지식이 되면 생활지식이 될 것이다. 이 말씀을 놓고 실재 점검해 보자.
 
여러분 핵심인 이 질문을 다시 한 번 던져보라. 예수님이 누구인가? 예수가 누구냐고 했을 때 기독교 사상가인 C.S 루이스 3자 택일이다. 라고 했다. 하나만 택하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유명한 성인군자가 아니다. 오직 하나님, 거짓말쟁이, 미친 사람, -예수께서 나는 하나님이라고 했는데 자신이 하나님이 아닌데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다면 거짓말쟁이다. 자신이 하나님인지 아닌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말을 했다면 정신 나간 사람이다. 그러니까 예수는 거짓말쟁이나 미치광이나 주님, 셋 중에 하나이다. 중간이 있을 수 없다. 예수님을 성인군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예수를 보고 체험한 사람들 중에 예수가 거짓말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예수가 거짓말쟁이나 미친 사람도 아니시다. 예수님을 받들려고 자신들의 지혜를 모르려고 집중했다. 예수님은 한 번도 함정에 빠지지 않았다. 예수님은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지혜와 지식을 가지고 계시니 예수님을 미쳤다는 것은 더욱 말이 안 된다. 그럼 거짓말쟁이도 미친 사람도 아니면 예수님은 주인이시다. 우주를 창조하시고 인간을 창조하시고 우주와 인간을 다스리시는 우리의 구원자이심을 믿는다. 아멘, 그런데 구체적으로 얼마나 풍성한 생명인가를 체험하는 것이 중요하다. 점점 더 체험해 가야 한다. 어떻게 하면 점점 더 깊이 체험을 할 수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밀착이다.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으면 포도나무로부터 생명의 수액을 받아서 힘이 된다. 바깥으로 그 힘을 분출하기에 그래서 꽃으로 된다.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와 매순간 밀착 접속되어 있으면 예수 생명의 수액이 우리 속에 들어와서 우리 속에 약동하게 된다. 여러분 속에 약동하면 그 힘으로 바깥으로 분출될 줄 믿는다. 여기에 사랑의열매가 된다. 예수의 생명이 분출하는 것이 사랑의 열매이다. 이웃과 친척에게 약동하는 생명이 분출하면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된다. 그것이 예수님과 밀착 접속이다. 어떻게 밀착 접속하는가? 미국의 존 파이퍼 목사님이 하신 말씀이 있다. 다섯 가지이다
 
◆존파이퍼 목사님-인기신행감(認祈信行感-A.P.T.A.T.)
1.인식하라(Admit)-(요한복음 15:5)-내가 예수가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인식하라.
2.기도하라 (Pray)-(로마서 4:18)-그러니까 주님께 기도하라.
3.신뢰하라(Trust)-(로마서 4:18)-한 마디 말씀을 붙들고 신뢰하라.
4.행동하라(Act)-(마가복음 3:5)-그대로 행동해라.
5.감사하라Thank)-(에베소서 5:20)-과정과 결과는 주님께 맡기고 되던 못되던 맡기고 미리 감사하고 범사에도 감사하고 안 될 때로 감사하고 항상 감사하라.
 
※주님과 최고의 인기 신혼여행을 감.
인식하여서 기도하고 신뢰하고 행동하고 감사하라. 수십 년간 붙잡고 지내온 것이다. 그대로 믿고 행동하라. 삶의 현장에서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그대로 믿고 행동하라. 손 마른 사람이 손을 내밀었더니 손이 치유된 것처럼, 반드시 해 주실 것이다. 예수님의 풍성함을 체험해야 하며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책이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야 한다. 묵상하고 기도하고 무릎을 칠 정도로 다가오니 성령의 감동으로 깨달아서 생명을 체험을 해서 동시에 삶이 변화가 된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지금도 일하시니 성령으로 변화시켜 주시니 생명의 역사가 나타나심을 믿는다. 예수님과 밀착 접속을 통해서 들어오고 나가면서 꼴을 먹어서 회복으로 부흥으로 뻗어나갈 것이다. 맛보니 정말 달기를 원한다. 모든 주변의 친척과 이웃에게
 
♣요약
우리 모든 성도들 속에 깊이 새겨져서 예수님의 풍성한 은혜를 체험해서 많은 생명을 인도하며 죽은 정통이 아니라 놀라운 주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는 길은 오직 예수님과 밀착된 접속이니 우리는 항상 주님 앞에 집중하고 예수님의 은혜를 풍성히 체험하여 은혜와 감격으로 믿지 않는 영혼들을 살리는 자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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