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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2월 6일)

제목: "지혜 없는 빛의 자녀들"
말씀: 누가복음 16:1-8
기도: 유종성 부목사님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목사님 외), 영광찬양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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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16:1~8,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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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 없는 빛의 자녀들,,,

지난 한 주간의 삶의 여정이 많은 일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간 복잡한 마음의 창문들을 다 닫아 걸고 영광의 보좌에서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기를 소망한다. 찬양대와 회중이 찬송이 한 것처럼 주님만이 주시는 참 된 평안이 있기를 소망한다. 목감기가 있다. PCR 검사도 했더니 음성이다. 목감기로 오늘 4부까지 잘 설교하기를 바래본다. 오늘 비유는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의 제목은 아니다. 오늘 주보에 보면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다. 라고 했는데 이 제목이 그대로 좋으면 안 된다. 이 세상 사람들보다 우리는 빛의 아들들인데 더욱 지혜가 좋아야 한다. 이 말씀으로 책망과 경고와 도전과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깊이 확보하기를 바란다. 여러분 정말 인생을 지혜롭게 살기를 원하는가?
 
잘 아는 대로 지식과 지혜가 분별이 되리라 본다. 많은 지식은 우리를 교만하게 한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우리를 충만하게 하고 자신을 깊이 돌아보게 하고 성숙하게 하고 겸손하게 만든다. 오늘 말씀하는 지혜는 세상의 정보정도가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지혜를 말하는 것이다. 저는 최근에 1-2년 동안 주님이 나에게 어떤 지혜를 주셨나? 목회를 하면서 어떤 지혜를 주셨는지를 생각하면서 4가지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에너지를 남들에게 에너지를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에너자이저가 되겠다고 했다. 에너자이저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까 여러분이나 저는 누구에게가 기쁨을 주며 살기를 바란다. 그 사람을 힘을 뺏어가는 것은 안 된다.
두 번째는 이 시대 역사 앞에 역사가 어렵다고 어둠을 탓하지만 말고 어둠을 밝히는 자가 되어서 역사적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 촛불처럼 어둠을 밝혀야 한다.
세 번째는 열정처럼 믿음 보고만 하지 말고 페이스 보고를 해야 한다. 우리가 믿음 보고를 해야 한다.
네 번째는 최근에 주신 지혜는 최선을 아직 오지 않았다. ‘The best is yet to come!’
우리는 무얼 기대하고 살아야 하는가? 적어도 아무리 어려워도 지금 죽어도 천국이다. 우리도 항상 최악의 수준을 염두 해 두어야 한다. 저는 최악의 상황을 염두 해 둔다. 그런 상황을 안 두었다면 어떻게 살아왔겠는가? 디테일이 없으면 건축도 못한다. 우리 교회를 지을 때 공청회를 수없이 했다. 우리는 아직 최선이 오지 않았다. 그것을 기대해야 한다. 최선을 다 잘 준비하기를 바란다.
 
*누가복음 16:8b,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본문은 불의한 청지기의 대답이다. 한 번 읽고는 잘 모른다. 여기에는 15장에 세 가지 비유가 있다. 잃어버린 양의 비유, 열 드라크라의 비유, 돌아온 탕자의 비유, 거기에 목자의 심정을 깨닫는 것인데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네 가지 지혜도 목자의 심정으로 통해서 깨달은 저의 은혜이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목자의 심정이 너무 예수님이 아파서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바리새인들에게 내 이야기 좀 들으라고 하신다. 15장 비유를 말씀하시고 16장에 이 불의한 청지기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시고 계신다. 먼저 제자들을 타겟으로 해서 이유를 말씀하신다. 제자들 정도는 되어야 어느 정도는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크게 보면 오늘 제자들리 그랬지만 오늘 다 듣고 14절에 나온다.
 
*누가복음 16: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이 모든 비유를 듣고 비웃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었지만 15장에 그 세 가지 비유를 들었던 사람들이 대상인 바리새인들이 이 비유를 듣고 깨닫기를 원하셨다.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우리 모두에게는 바리새인 속성이 있다. 누가 바리새인이냐고 물으면 우리는 다 아니라고 이야기 할 것이다.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는 이 바리새인과 같은 속성이 있다. 그래서 주님은 오늘 제자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하시냐면 내가 제자들에게 비유로 말씀을 하지만 오늘 이 비유를 통하여 너희 속에 있는 바리새인의 속성을 이야기 하시면서 성숙하라고 하신다. 그리고 너희 속에는 바리새인적인 속성을 해결하는 지혜를 가진 자가 되라고 하신다.
 
그래서 이 세상의 아들들도 똑똑하게 구는데 빛에 자녀들인 너희가 지혜가 없어서는 안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제자들을 통하여 지혜롭게 바리새인 속성을 제거하고 정리하면서 지혜로운 청지지가 되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속에 있는 바리새인적 속성은 무엇인가?
바리새인적 가장 대표적인 것은 자기 의이다. 이것은 한 번씩 강조하지만 너무 중요하다. 자기 의는 self rechusness. 셀프 레처스니스. 바리새인들의 특징은 자기중심이다. 자기이익이 충만하니까 자기이익을 가지고 남을 판단하고 남을 비난하게 되는 그런 독특한 속성이 있는 것이다. 우리도 그런 비슷한 일이 있지 않는가? 그리고 자기 의는 자기애와 연결된다. 자기의와 자기애는 동전의 양면과 같닥. 자기의가 있다는 것은 자기애가 있는 것이다. 물론 자기를 사랑해야 하지만 잘못된 자기 의는 자기애와 연결이 되어 있다. 우리가 이 말세를 살아가는데 바울 사도는 디모데후서 3장에서 말세를 살아가는 너희들은 정말 심각하게 생각할 것이 있다고 말한다. 말세에 나타난 모든 죄악들, 말세에 나타나는 모든 좋지 않은 것들이 한 29여 가지가 있는데 그 모든 이십여 가지가 어떻게 시작이 되고 어떻게 출발이 되는가? 라고 한다.
 
*디모데후서 3:1~2,
1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2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가지를 사랑한다. 말세에 특징이 뭐냐면 자기 의와 자기애가 연결이 되어 자기를 사랑해가지고 돈을 사랑한다. 자기 의와 자기애가 돈 사랑과 아주 직결 되어 있는 것이다. 이런 내용들을 앞에 서론 격으로 두면서 자기 의와 자기애, 그러면 자기의의 문제가 왜 심각한가? 자기중심적인 자기 애, 자기의가 있을 때 자기 사랑의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이 뭐냐면 하나님의 주권이 스며들 여지가 없어지는 것이다. 자기 의와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통치와 역사할 장소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것을 자기중심으로 생각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기애가 충만한 사람은 하나님의 주권이 스며들 여지가 없다는 것은 재정의 문제 돈의 문제이다.
 
그리고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은 리플리 증후군에 사로잡힌 자이다. 리플리 증후군은 허구의 세계를 설정하고 그것을 진실이라고 믿는 증상을 말한다. 요즘 말세에 영적인 저 리플리 증후군이 얼마나 심각한지 모른다. 자기가 정해놓은 세계에서 그 틀 속에서 자기가 생각한 것이 허구라도 그것을 믿으면서 다른 사람을 비판하게 되는 것이다. 신앙생활 오래 했다는 분들 가운데도 이러한 영적인 리플리 증후군을 가진 자들이 많다. 자기 생각과 자기 판단만 옳다는 인식으로 가득차서 다른 사람의 의견이나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이 없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주권의식, 하나님이 내 삶을 통치하신다는 하나님의 통치의식이 너무 부재한 것이다.
 
이런 사람이 세상 적으로는 강하게 보이고 멋있게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자기 의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마치 황무지와 같다. 황무지는 폐허이고 거기에는 성장이 없고 거기는 열매가 없고 성장이 없다. 봄에 씨를 뿌리고 생명이 약동하고 하는 그 시기를 모른다. 여름에 초록의 정원으로 성장하고 성숙하는 것도 모르고 가을에 추수 밭의 알곡을 모른다. 황무지는 그냥 황무지일 뿐이다. 씨앗이 움트는 경이로움과 열매가 익어가는 것을 찾을 수가 없다. 자기 의와 자기애에 사로잡혀서 성장하지 못한 그런 사람들의 현주소이다.
 
내가 바리새적인 속성이 있다고 하면 내가 무슨 바리새적인 속성이 있냐고 대항하면 바로 바리새적인 속성이 있는 것이다. 다 그런 문제들이 있는 것이다. 자기 의와 자기애의 바이러스가 침투하지 않도록 정말 경계하고 애를 써야 한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잘 모른다. 똑똑한 지성인들도 잘 모른다. 제가 존경하는 알레이토레이 이분은 닥터토레이 박사이다. 지금 소천하셨지만 그분에게 어떤 똑똑한 불신자가 찾아오셔서 말한다. “박사님, 저는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그러나 나는 기독교인보다도 나는 더 도덕적이고 더 정직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당신은 나를 불신자라고 불인정하고 나를 적대시 하시는 이유를 알고 싶습니다.” 라고 했다. 그때 닥터 토레이 박사님의 대답이 “선생님,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제가 당신을 불신하는 이유는 당신이 지금 예수 믿는 사람보다도 더 도덕적이라 하더라도 당신은 지그 하늘에 계신 왕에게 대항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오늘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이해한 말로 설명을 하면 자기의의 중독이 되어있는 것이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들 중에 정말 괜찮은 사람들이 이유는 아버지를 아버지로 하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을 하나님이라고 못하는 이유가 뭐냐면 자기 의에 중독이 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들, 동의하십니까?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깊이 있게 들어가지 못하는 경우는 영적인 리플리 증후군 때문이다. 자기 의에 중독되어 이것 때문에 물질 중독도 같이 연결 된다. 그래서 여러분 자기 의는 하나님의 주권, 은혜를 대적하고 결국은 하나님 왕으로서 통치하시는 것을 반역하기 때문에 우리는 다시 한 번 자기 의의 바이러스가 우리 속에 침투하지 않도록 결사적으로 항쟁을 해야 하고 눈을 부릅뜨고 막아야 한다. 이것이 인생의 진정한 지혜이다.
여러분, 사람이 자기의의 중독이란 여기서 해독되지 않으면 지혜를 얻을 수 없다. 참 지혜가 없다. 그래서 제가 정리를 했다.
 

※ 자기의가 해독되는 지혜가 있으면 ‘소유권’과 ‘사용권’을 구별하는 지혜를 갖는다.
 

-자기 의에 중독이 되어 있는 사람은 결코 소유권과 사용권을 구별하는 지혜를 가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기의가 해독되는 지혜가 있으면 소유권과 사용권을 구별하는 것이다. 아담과 하와에게 에덴 동산의 사용권을 주셨다. 아담 하와 사용권을 주신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사용권을 주시면서 동산을 관리하고 동물들을 기르고 사용하라고 활용하게 하셨다. 그런데 여러분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하기 전에 에덴동산에서 잘 사용하는 그 때가 아담과 하와(인류)가 최고로 행복할 때였다. 그런데 자기가 소유권을 주장하고 자기가 맘대로 하려고 할 때부터 인생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하고 여기서 지성인들은 중요하게 생각할 것은 칼 막스가 자본론에서 국가독점 자본권을 강조하는데, 칼 막스가 목사님의 아들인데 잘못되게 오용한 것이다. 그래서 공산주의 사회주의가 된 것이다. 천안문 앞 열병식, 붉은 광장 앞에서의 열병식, 대단하다. 잘못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정말 제대로 영적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소유권을 인정하고 내가 사용권을 제대로 잘 사용하면 공산주의와 비교가 안 되는 이 땅에서 맛볼 수 없는 천국을 맛볼 수가 있는 것이다.
 
우리 안에 있는 중독된 자기 의는 말씀과 복음의 능력으로만 변할 수 있다. 복음 외에는 능력 외에는 자기 의를 빼내는 데는 약이 무효험이다. 어떤 약도 소용이 없다. 구약과 신약만이 가능하다. 사실 오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들은 재능, 오케스트라, 시간, 소유, 우리의 손도 발도 이 공간도 다 주님의 것이다. 어떻게 에덴동산에 창조된 것이 아담의 것이 되겠느냐? 아담의 몸도 아담의 것이 아니고 아담은 사용권만을 가지고 있었고, 그 사용권을 잘 발휘했을 때 피조물인 인생이 최고로 행복한 것이다. 그래서 이 예수님의 심정을 깨달은 사도 요한은 놀라운 고백을 한다.
 
*요한복음 1:3,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 소유 시간 공간 재능, 모든 것이 주님의 손에 지은 바 되었고 그 분이 소유권을 가지고 계신다. 우리의 사용권만 가지고 있다. 소유권 없다. 그래서 빛의 아들들로서 지혜롭게 사는 자들로서 우리의 인생의 소유권과 사용권을 잘 구별해서 소유권을 주님께 드리고 소유권인 주님의 주권으로 말미암아 자기 의의 중독을 해결하여 사용권을 잘 사용할 때 그것이 주님 앞에 참으로 영광이 되는 줄 믿는다. 여러분, 어떻게 여러분 인생이 여러분 것인가? 젊을 때 내 맘대로 내거라도 살았지만 사실은 우리가 인생 전체로 보면 결코 내 것이 아니다. 우리가 몸도 아프면 내 것이 아니듯이 어떻게 세상이 이렇게 잘 나가는데 코로나 하나를 해결 못하는 미련 방통이들이다. 그 똑똑하다는 사람들이 해결을 못하고 있다. 우리는 아프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우리는 어려움이 일어났을 때, 앞일은 도저히 우리가 모른다. 그래서 오늘 이 땅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그 소유권을 주님께 드리는 것을 인정하고 내가 사용권을 지혜롭게 잘 사용하면 우리는 평생 지혜롭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청지기 사용권은 소유권을 가지신 주님의 창조 매뉴얼에 잘 따라 살면 놀라운 일이 일어나는 것이다. 내 인생의 중심이 소유권이 아니라 사용권으로, 자기의가 아니라 주님의 사랑으로 살게 되면 우리 인생을 낭비하지 아니하고 지혜 없는 빛의 자녀들이 되지 아니하고 지혜 있는 빛의 자녀들이 될 수 있는 것이다.
 
나는 사용권자인데 내가 소유권자라고 착각하는 순간부터 문제가 심각하게 된다. 오늘 다시 한 번 우리가 빛의 아들로서 이 세대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롭게 살아야 할 줄로 믿는다.
 
누가복음 16:8,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오늘 이 본문이 해석이 쉽지 않다. 자유주의 신학주의 불트만 같은 신학자는 이 내용을 해석을 못하겠다고 했다. 현장 목회자로서 40여년을 목회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로 여러분과 나누기를 바란다. 오늘 이 비유의 핵심은 무엇인가? 불의한 청지기의 비유이다. 불의한 청지기...
 
*누가복음 16:1,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요즘으로 말하면 금융자산관리자이다. 그런데 그 청지기가 그 부자의 소유를 낭비하는 것이다. 주인이 그것을 알고 부른다.
 
*누가복음 16:2,
2 주인이 그를 불러 이르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찌 됨이냐 네가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너 잘못 된 것이니, 청지기 직무를 계속하지 말고 잘 정리하라는 것이다. 소위 해고 통지를 말한다.
 
*누가복음 16:3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앞으로 어떠할까를 생각한다.
 
*누가복음 16:4-5,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일일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빚졌느냐.
 
*누가복음 6~7,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빚졌느냐 이르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소위 빌어먹자니 부끄럽고, 땅을 파자니 힘이 없는데 잔머리를 굴리는 것이다. JQ지수를 발휘한다. 이 이야기가 주인에게 들어갔다. 주인이 듣고서 8절에 다시 주인이 말한다.
 
*누가복음 16:8,
16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잔머리 지수 청지기가 일을 지혜롭게 했다고 칭찬한다. 그러면서 뭐라고 하냐면 이 세대의 아들들(불의한 청지기) 이 자기 세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라고 말한다. 예수님이 불의한 청지기의 행동을 판단하시는 것은 불신자들은 자기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성도들보다 더 야무지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삶의 현장에서 위기를 만났을 때, 빛의 아들들보다 세상 사람들이 더 지혜롭다고 한다. 그러니 정신 좀 차리라고 하신다. 그러면서 경고하시고 책망하신다. 사용권 자로서 제발 정신 좀 차리라는 것이다. 먼저 주님께서는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말씀하시면서 행동자체는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시는 것이다. 그러나 그 불의한 청지기가 자기 자신을 위해 사리판단을 하고 자신이 갖고 있는 머리로 신속하게 대처하는 행동이, 자기 살길 찾는 것의 행동은 빛의 아들들보다 더 똑똑하다는 것이다. 소위 그것을 예수님께서 불의한 행동을 칭찬하는 것이 아니라 불의한 사람도 미래를 준비하는 자세가 철저하다는 것을 강조한다. 현장 목회자 입장에서 말씀드린다.
 
기회를 잘 활용한다는 것이라 한다. 불의한 아들이 지혜로운 게 아니다. 신앙이 좋은데 능력이 따라가지 않는다. 예수를 잘 믿는다면서 실력이 부족한 사람도 많아서 안타까워서 하는 이야기이다. 고시공부 전력투구 고시 공부하듯이 성경에 집중한다면 뚫어지고 기적이 될 것이다. 영혼들을 위해 애를 써야한다는 것이다. 핵심은 빛의 아들들인 우리가 영원한 곳이 있다고 믿는다면 그 미래를 위해 제대로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가 잘하는 것이 아니라 빛의 아들들에게 경고하는 것이다. 자녀들을 영원한 세계를 위해 지혜롭게 가르쳐야 한다. 성경에 집중하고 믿음의 확신을 갖도록 교육해야 한다.
 
바리새인 속성인 제자들에게 제대로 선포하신다. 그랬을 때 이 주제를 듣고 바리새인들이 충격을 받는다. 그리고 이 메시지의 핵심은 모든 성도들에게 도전을 주고 어떻게 보면 마음의 불편을 드릴 것이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주제는 핵심은
 
*누가복음 16:14,
14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 오늘 주제는 돈에 관한 재물에 관한 주제이다. 예수님의 이 비유의 핵심은 돈 문제를 말씀도 하신다. 세상 사람보다 지혜롭게 하는 것인가에 대해서이다. 돈 문제와 사용에 대해서 이 세대의 사람들보다 지혜로운가를 보신다. 돈 문제는 삶의 현장에서 바리새인들은 겉으로는 엄청 거룩하고 엄청 영적인 사람들이었다. 그런데 오늘 14절을 보니까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한다고 말한다. 아마 우리 속에서도 우리도 속성이 바리새적일 것이다. 돈문제가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주님이 요구하는 것은 빛의 아들들이 더 지혜롭기를 원하신다. 재정에 관한 제자의 돈, 파이낸션 디사이플(Financial Disciple)이다. 재정에 관해서, 공동체 재자 양육을 하기를 원한다. 저는 앞으로 2-3주간 이야기를 할 예정이다. 우리 교회 본당을 딛는 성도님들은 돈 문제에서는 승리가 되기를 원한다. 주님 앞에서 돈 문제로 고통 받지 않아야 한다. 가난한 사람이 없기를 바란다. 주님의 통찰력을 가지고 하늘에 쌓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누가복음 16:11,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도 충성하지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더 큰 영적인 문제는 어떻게 맡기겠냐고 하신다. 돈 문제가 해결이 안 되는데 어떻게 영광스런 하늘의 일을 하냐고 하신다. 적은 것에 충성하라. 그리고 두 주인을 섬길 수가 없다. 성경은 인생의 실체를 다룬다. 예수님의 비유를 다할 수는 없지만 38개 가운데 여섯 개가 돈과 소유에 관한 것이다. 신약 성경에 보면 25%가 돈과 청지기에 관한 말씀이다. 복음서에도 한 구절이 있다. 성경에는 재정에 관한 2천 개가 훨씬 넘는다. 믿음과 기도보다 많은 듯하다. 신앙의 선배들은 당신의 지갑을 내게 보여 달라고 한다. 그럼 내가 어떤 종류의 신앙인인지를 알게 하겠다고 했다. Show me a pocket. I can tell you What kind of Christian. ~ 왜 인가? 돈과 영성이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이다. 어떤 분들은 돈이 세속적인데 어떻게 돈과 영성이 밀접하냐고 할 것이다. 그러나 돈은 영성의 토양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돈의 행위는 예배 행위라고 했다.
 
※ 돈의 사용은 예배 행위이다. -존 파이퍼-
※ 돈은 우리가 ‘누구’를 진심으로 섬기고 예배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분명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하나의 예배행위이다. 이처럼 돈과 영생을 정확하게 표현하고 있다. 왜 이유가 그런가? 예배의 본질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다. 그래서 돈은 우리가 누구를 진심으로 섬기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중요한 리트머스 시험지이다. 누구를 위해 돈을 사용하는지를 보여주는 시험지이다.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 가장 가치 있게 여기는 것을 보여준다. 좋은 예배 자는 예배에 대한 섬김에서 물질의 섬김도 따라간다. 그래서 영성과 연결해서 예배설교는 엄청 했다. 가계부를 봐야 한다. 우리는 이제 사용처를 새 판짜기를 하기를 바란다. 빛의 자녀로서 철저하게 거룩하게 사용하기를 바란다. 재정문제에서 사용권자로서 평생 행복하기를 바란다. 지혜로운 빛의 자녀로 살아가기를 소망한다.
 
♣요약
바리새적인 자기 의와 자기애를 회개하고 복음으로 나의 소유권 중독을 해독하여서 청지기적인 사용권의 행복을 누려야 한다. 영원한 세계를 온전히 바라보고 전력투구하여 미래를 철저히 주님이 주시는 사용권으로 준비해야 하고 돈을 선용하는 지혜로운 빛의 자녀들로 살아가서 믿음보고를 주님 앞에 신실하게 드리기를 실천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 주시는 것에 사용권자이며, 내 인생도 내것이 아니다. 돈 쓰는 것에도 예배가 먼저이다. 어디에 돈을 바르게 쓰는가가 자신의 목적이 어디이며 자신의 신앙을 판단할 수 있다. 

-불성실한 청지기는 미래를 대비했기 때문에 칭찬을 받았다. 그렇지만 이 청지기는 실직한 후의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현재의 기회를 이용했다는 점에서 지혜롭다는 평가를 얻은 것이지 이로 인해 부정직과 사기술을 인정받은 것은 아니다. 그는 악한 세대에 속한 자로서 악한 지혜를 사용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렇게 할 때 세상에서는 잘 살지 모르나 하나님 나라에는 이를 수 없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미래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 현재를 충실히 활용하되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도록 힘써야 할 것이다. 성도는 하나님의 소유물을 맡아 관리하는 청지기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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