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1년 6월 27일)

제목: ''온전한 나라 사랑''
말씀: 예레미야 29:10~14
찬양인도: 이원준 부목사님
기도: 오정호 부목사님

사회: 윤하중 부목사님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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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10~14,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전 성도들이 찬양한 대로 한 평생 하나님께서 아름답게 사용하시길 소원한다. 오늘은 온전함 시리즈 18번째이자 6.25일 71주년 기념 주일이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참된 신앙인은 참된 애국자이다.
위대한 전도자 빌리 선데이(Billy Sunday)는 참된 기독교와 애국심은 동의어이다.(Christianity and Patriotism are synonymous terms)라고 말했다.
좋은 신앙인은 좋은 애국자이다. 또 좋은 애국자는 좋은 신앙인이다. 둘다 연결되어 있다. 우리들이 보는 시국과 입장들이 서로 다르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마음속에 주여, 우리 대한민국이 좋은 나라가 되게 하시고, 좋은 정부, 좋은 지도자에 대한 우리의 염원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좋은 정부, 좋은 지도자, 좋은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올바른 역사관이 필요한데, 하나는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역사관이 필요하고, 또 하나는 우리 민족에 대한 역사관이 필요하다.
 
▷하나는 하나님 나라 전체에 대한 역사관
-우리는 타종교처럼 돌고 도는 윤회의 역사관도 아니고, 창조주 하나님께서 창조의 테잎을 끊으실 때에 역사의 종착역, 역사의 마지막 마르나타,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새 하늘 새 땅을 펴놓고 이 휴머니스트가 끝이 난다는 것이다. 우리는 그래서 역사의 알파(A)포인트와 오메가(Ω)의 포인트를 믿는 역사관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인류 역사는 반드시 끝이 있는 줄로 믿는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 전체 역사도 그렇지만 개인의 역사도 그렇다. 우리 개인도 반드시 우리에게 종말이 올 것이다. 그러니까 뫼비우스 띠처럼 벗어나지 못하는 굴레 속에서 늘 반복하는 것이 아니고, 역사는 반드시 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믿는 것과 믿지 않는 사람은 세상을 보는 눈이 완전히 다르다.
 
▷두 번째는 우리 한국 민족에 대한 역사관이 분명해야 한다.
어떤 사람은 뜻으로 보는 한국 역사로 쓰는 분도 있지만, 우리는 복음을 통하여 성경의 눈을 가지고 한국 민족의 역사를 해석해야 한다. 그래서 한 번씩 이야기 하지만, 인류 역사상 수천 년에 걸쳐 내려오는 민족 종교를 백 년 만에 바꾼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민족 종교를 복음의 역사로 바꾼 나라로 유일하다. 우리는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강대국들 사이에서 러시아나, 일본 사이에서 대한민국이 살아남았는가? 많은 학자들이 해석들을 하지만, 우리는 복음 때문에 살아남은 것이다. 한국이 러시아보다 땅이 적고, 중국보다 인구도 적고, 일본보다 경제도 약해도, 한국 교회 성도들이 기도하고 강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남은 것을 확신한다. 이것을 우리 마음속에 거대한 나라 가운데 있지만, 요즘 우리나라를 걱정하는 분들이 많다. 나름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말씀을 사모하고 진정성을 가지고 주님 앞에 금향로가 올라가고 주님이 기뻐하신다면, 하나님이 필요에 따라서 신적개입(神的介入)을 하시는 것이다.

신적 개입의 근거가 무엇인가?
우선 6.25때를 보더라도 토비새를 드리면서 6.25의 기적들을 이야기 했다. 6.25의 그 미국의 투르만 대통령이 그 사우스코리아(South Korea)가 어디 있는지도 잘 몰랐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 미국을 통하여 안전보장 이사회를 보내고, 러시아(소련)가 참여하지 않은 것도 다행이고, 그렇게 미군을 보낸 것도 기적이고, 참전한 국가들을 보면, 이디오피아 황실친위대가 참여한 것도 기적이다. 우리가 상상도 못한 예상하지 못한 나라들이 참여했고, 맥아더 인천상륙작전이라든지 그 외 수많은 기적들이 나타난 것은 하나님이 개입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임하신 것이다. 흔히들 아시아의 사용, 싱가폴, 대만, 홍콩, 사우스코리아, 우리 한국 이야기를 많이 이야기 한다. 그래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 이렇게 많이 발전했다고 말을 한다. 그리고 거기에 대한 어떤 해석을 할 때, 거기에는 유교문화와 한자 문화권이 있었기에 가능하다고들 많이 한다. 그런데, 우리가 유교문화 한자문화가 있긴 하지만, 저 다른 나라사람들은 중국의 화교자본이 있었던 것이다. 그 화교자본으로 근거로 해서 그렇지만, 우리 한국은 중국 화교자본이 없었다. 단지 우리에 있었다면 신앙자본, 교회자본이 있었다. 교회가 불처럼 일어나고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하나님은 교회를 갖게 하시고 교회를 통하여 글로벌 시각을 갖게 하시고 그야말로 2차 세계대전 이후에 독립한 나라치고 모두가 다 이 원조 물자를 받는 수혜자(受惠者)였는데, 지금은 다른 나라를 돕는 유일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여기에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신적개입이 있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의 나라를 전체를 보는 역사관과 그 다음에 우리나라 민족에 대한 역사관이 분명해야 하는 것이다. 역사는 알파와 오메가에 있다. 민족의 역사는 복음의 역사로 설명되어야 하는 것이다. 자 이를 위하여 오늘 본문은 많은 것들을 시사한다. 오늘 본문에 먼저 예레미야는 정말 가지 민족을 향하여 눈물로 기도하는 애국자였다.

 
I. 좋은 신앙인은 좋은 애국자이다.
 
*9장 1절에 보면, 예레미야가 이렇게 말하고 있다.
1 어찌하면 내 머리는 물이 되고 내 눈은 눈물 근원이 될꼬 죽임을 당한 딸 내 백성을 위하여 주야로 울리로다.
-나라를 위햐여 간절하게 눈물로 기도하고 있다. 이걸 현대인의 성경에도 말한다. 눈물의 기도이다. 예레미야는 백척간두의 나라를 보면서 한탄이 아니라 나라사랑이 눈물이다. 오죽하면 뒤에 예레미야애가인 눈물의 애가, 눈물의 성경이다(라멘테이션).
 
*예레미야 3:48:49절에,
48 딸 내 백성의 파멸로 말미암아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49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진정한 나라사랑 애국자는 눈물로 기도를 하는 사람이다. 오늘 이 마음속에 우리 민족을 하나님이 사랑하여 이 분단된 이 상황을 향하여 진정한 눈물을 주시길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기도의 방향대로 이나라의 역사의 방향도 흘러가는 줄로 믿는다. 그리고 이렇게 눈물로 기도하는 애국이 어떤 애국인가? 이 애국자는 내 민족 내 나라만이 아닌 국수주의 배타주의적이 아닌 예수님의 제자중에서 변화되기 전에 애국당원들, 열심당원들 가운데 시몬이라고 있다. 자기 중심당원이다. 그 열심 당원 젤롯(시몬)과 진짜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바울 사도의 진정한 애국은 차이가 있었다. 열심당원의 애국과 바울사도의 애국은 배타주의적, 자기중심적, 민족주의적, 그런 애국이 아니라, 성경적 애국, 글로벌 애국은 성경중심, 자기 민족의 사랑을 통하여 온 세계를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 민족만 잘되면 뭐합니까? 잘 되어서 다른 나라가 잘 되어야 한다. 이것이 땅 끝까지의 비전과 연결이 된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오늘 말씀은 신앙인의 애국은 일반 사람들이 말하는, 민족주의자들이 말하는 애국과는 결이 다른 것이다.

 
▷어떻게 깊이와 결이 다른가?
-신앙인의 애국은 이념이나 사상을 뛰어 넘는 것이다.
 
*잠언 14:34절에 보면,
4 공의는 나라를 영화롭게 하고 죄는 백성을 욕되게 하느니라.
-신앙인으로서 진정으로 나라가 잘되게 하는 것은 공의가 세워짐으로 말미암아 국가와 개인의 죄가 처리되는 것이 진정한 일이다. 우리가 나라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에 1인당 GDP가 높아지고 과학기술이 첨단을 달리고 스포츠, 문화, 강국이 되는 것도 나름 일리가 있다. 그러나 그것을 뛰어 넘는 것이다. 이것도 나름 민족적 애국이라고 할 수 있지만, 국가의 죄가 여전한 상태로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애국의 길로 갈 수 없다. 진정한 애국은,,,
 
▷‘진정한 애국’은 살아계신 하나님께 인정받는 나라와 민족이 되게 하는 것이다.
-그게 국수주적인 애국과 바울 사도가 갖고 있는 나라사랑의 차이이다. 하나님은 늘 그 시대와 국가를 하나님은 공의의 저울로 달아보시는 것이다.
지금 G2, 거대한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러시아-일본 사이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가? 많은 걱정이 되겠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 앞에 돌아보면서 우리의 기도의 무게, 하나님이 공의의 저울로 달아보실 때에, 우리의 예배의 무게, 말씀의 무게, 선교의 무게가 더 무게가 나갈 수 있다면 하나님은 이 민족의 역사를 인도하시는 것이다. 얼마나 중요한가? 코로나 펜데믹 상황 가운데서도 이렇게 열심히 모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사모하는 예배의 무게, 기도의 무게, 말씀의 무게를 하나님의 저울로 달아 보시고 이 민족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러니 우리 마음속의 기도와 말씀의 무게를 하나님이 달아보시며 이 민족을 지켜 주시길 원한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를 해야 한다. 좋은 애국자는 눈물로 기도하는 신앙인이다. 눈물로 기도하는 신앙인은 좋은 애국자들이다. 여기에 우리가 다 동의가 있기를 소망한다.
 
 
 
II.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으라.
 
예레미야 29:11절에 보면,
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여기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심정은 평안이다. 평안은 히브리어로 샬롬이다. 우리는 온전함 시리즈를 하고 있다. 나라 사랑도 온전함으로 더 성숙해져야하고 다듬어져야 한다. 나라 사랑에 대한 것을 더 기억해야 할 것은 여기서 우리가 적극적인 생각이나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 포커스가 미래의 희망의 포커스가 아니라, 미래에 희망을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이 포커스이다.


▷‘희망의 미래보다 중요한 것은 ’희망의 미래를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믿어야 한다.
 
예레미야 상황이 지금 어떤 상황인가? 망한 상황이다. 포로상황이다.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없는 상황이다. 낙관주의를 감히 꿈꿀 수 없는 그런 환경이었다. 그런데도 선하신 하나님으로 평강과 희망을 믿으라고 말씀한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눈물로 기도할 때, 선하심과 목자 되심을 통하여 이 민족을 인도하실 것이니 그것을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6.25, 71주년이다. 이 상황은 너무 가슴아프로 한탄스럽고 비극적이다. 그러나 포로시대 이런 고백을 했으니 우리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한다. 무슨 적극적인 사고방식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시니 믿어보면 된다. 예를 들어서 너무나 분단된 상황이 큰 상처였다. 거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 때에 없었겠는가? 분단 이전에는 북한 교회가 이북이 남한 교회보다 더 힘이 있었다. 북한에 삼천 교회들이 이삼 천 명이 모이는 큰 교회들이었다. 북한의 있는 교회들이 공산주의가 되었으니 그 신앙을 지키려고 남쪽으로 내려왔다. 부산 국제시장에 모여서 거기에 평양 교회를 세웠다. 서울에는 남대문에는 영락교회를 세웠다. 충현교회 등, 많이 있다. 다 이북 출신들이시다. 그분들이 한국 교회들을 세운 것이다. 그분들이 역할을 해왔기에 교회가 강력하게 한국교회에 부흥의 힘을 준 것이며 감당했다. 그 아픔 속에서도 그랬다. 지금 북한의 지하교회가 처참함이 있다. 남북교회가 하루속히 온다면, 순결성을 지킨 그 지하교회 사람들이 오히려 남한 교회들을 정화할 것으로 여겨진다. 우리는 다 알 수 없다. 지성호의원도 북한 꽃제비였다. 그러나 지금 열심히 해서 그것을 본 영국 성도들이 보고 충격을 받았다. 영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충격을 받은 거기에도 하나님의 선하심이 계시는 것이다. 다시 한 번 우리가 다짐해야 한다. 좋은 신앙인은 눈물의 기도가 좋은 애국자이며, 우리의 모두의 마음속에 다짐은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선하심과 하나님의 인도를 믿어야 한다. 이것은 개인도 마찬가지다. 우리가운데도 고통 속에서 있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한다.

내 삶의 어려움을 쳐다보면, 죄의 횡포 앞에서, 삶이 부서질지의 조차 하나님의 선하심이 있겠는가를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러나 진짜 어렵고 힘들때에 하나님의 선하심 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그래서 우리는 이 현재의 엄중한 상황과 개인적인 상황 앞에서 어떤 경우에도 하나님의 영안을 열어주시길 바란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처절한 상황이다. 그러나 그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바라본다. 다른 길이 없다. I have no the other ways.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길 외에는 다른 길이 없는 것이다. 맛보는 것은 지식은 다른 사람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지만, 맛보는 것은 절대 누가 대신 할 수 없다. 오늘 나라사랑도 맛보아 아는 사랑이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일상의 음식을 맛보듯이 매일매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고, 하나님의 온전하신 고봉도 올라가는 하나님의 축복이 있기를 소원한다. 하나님을 더 깊이 인격적으로 체험하길 바란다.


미국의 기독교 변증가이며 신학시절 신학자인, 프레티카는 영국의 지하감옥을 소개했다. 그 감방에는 한 줄기 빛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벽면에는 그 갈증에 시달리는 그 죄수가 갈증 가운데 갈라진 벽에서 작은 수분을 핥아 먹느라 작은 구멍이 생겨서 닳았다고 한다. 그 죄수가 절망적인 상황에서 벽을 보니 누군가 써놓은 글귀가 보였다고 한다. ‘여호와께서 여기에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도저히 희망과 평안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기대할 수 없는 상황 가운데서도 영안을 여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된 것이다. 야곱의 고백이다. 우리는 국가적으로 우리 민족이 분단되어 이 처한 상황을 다 이해할 수 없다. 북한 주민들은 더할 것이다. 개인적으로 피눈물로 힘들지도 모른다. 여호와께서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하나님의 선하심의 빛이 되어 우리의 찬송, 간증이 되어야 한다. 우리의 삶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눈물의 애국자, 눈물의 신앙인, 하나님의 선하심을 기대해야 한다. 그것을 기대하면 때에 대한 하나님의 때에 민감함을 주신다. 카이로스에 대한 안목을 주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게 되면 하나님의 때에 민감하게 된다.
 
*예레미야 29:10,14절,
1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바벨론에서 칠십 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돌보고 나의 선한 말을 너희에게 성취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4절에 보면,
14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나는 너희들을 만날 것이며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 사로잡혀 떠났던 그 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이것은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 본문이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이라는 포로 중에 다시 돌아온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대해서 예레미야가 선포하는 것이다. 오늘 이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니엘 9:2,3에 보면,
2 곧 그 통치 원년에 나 다니엘이 책을 통해 여호와께서 말씀으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알려 주신 그 연수를 깨달았나니 곧 예루살렘의 황폐함이 칠십 년만에 그치리라 하신 것이니라.
-이것은 마치 구약 성경이 예언서가 잘 엮어져 있는 것이다. 다니엘이 예레미야 서책인 29:11절을 깨달은 것이다. 지금 다니엘 선지자가 뭘 통하여 깨달았냐면, 선지자 예레미야를 보고 깨닫고, 그대로 이루어져서 우리 민족을 해방하실 것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리고 나서 다니엘은 다시

*다니엘 9:3절에 말한다.
3 내가 금식하며 베옷을 입고 재를 덮어쓰고 주 하나님께 기도하며 간구하기를 결심하고.
-다니엘은 아무 흠이 없는 사람이었다. 구약에 완벽한 사람 세 사람이 있는데, 요셉, 사무엘, 다니엘이다. 그중에 두 사람은 약간의 흠이 있었지만 다니엘은 가장 완벽했다. 아무 흠이 없었다. 그러나 다니엘은 민족의 죄를 자기의 죄로 알고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한다. 민족의 죄를 자기의 죄로 여기고 하나님의 때를 알고 회개의 기도를 전심으로 한다. 하나님의 때에 대해서 통찰력을 가져야 한다. 나름 방향을 잡아야 한다. 전 세계의 기독교 복음주의 신학자 중에 Mark Knoll이라는 신학자가 있다. 그가 이렇게 말한다. 역사의 주기는 거의 500년 마다 큰 일이 일어난다고 말했다. 예수님의 탄생을 기점으로 해서 탄생 500년 전에, 에스라 성전 재건이 있었고, 예수님 탄생 500년 이후에 무슨 일이 있는가? 그 당시 로마 기독교가 서서히 부패하게 되었는데, 베네딕트 수도원을 통하여 기독교를 구축한다. 그런 이후에 천 년에, 동서방 교회가 분열이 된다. 그리고 오백년 뒤에 종교개혁이 일어난다. 이제 오백년 지금 2000년, 지금 코로나 펜데믹이 왔다. 뭔가가 일어날 것이다.

이 세계 역사의 흐름이지만,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는 40년 주기로 큰 일이 일어난다. 1917년 평양에서 부흥이 일어났다. 건국이후에 48년정도에 우리나라 기독교 국가가 일어나야 하는 때에 체플린 제도 등이 성공하면서 40년이 지나서 88년도에 대한민국이 폭발적인 기독교 부흥이 일어났다. 전 세계 기독교 앞에(김준곤목사님이) 선포할 때에 한국 교회는 2백만의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이 있다고 말했다. 한국 교회는 헌신하는 10만명이 정식으로 선교자로 나선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전 세계가 깜짝 놀랐다. 또 40년 동안에 앞으로 6-7년이 남았는데, 2027년 평양 대 부흥에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우리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백성들이 깨달은 예레미야 70년, 다니엘이 깨달은 70년, 문자적으로 말할 수 없지만 2028년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의 모든 생각과 하나님 앞에서 높아진 것을 다 내려 버리고, 무너뜨리고, 하나님의 때를 예배한 우리 믿음의 성도가 되길 바란다.

 
아브라함을 75세에 하나님이 부르셔서 백세에 이삭을 주셨는데, 25년간이라는 기간이 인간이라면, 만약에 아브라함에게 50년 뒤에 이삭을 준다면 못 견뎠을 것이다. 그런데 25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면 아니 5년 뒤에로 약속하셨다면 아브라함이 교만했을 것이다. 우리 민족 교회와 한국 교회의 25년이 언제일까? 역사의 40년, 역사의 500년, 우리가 이런 말씀안에서 하나님의 때에 영적으로 쓰임 받기를 바라는 것이다.
 
▶적용,
눈물의 신앙인은 애국자이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은 때에 대한 민감함을 주신다.
 
*예레미야 29:12절을 보면,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내게 와서 기도하면 내가 너희들의 기도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하나님 앞에 부르짖는 기도의 일이다.


 
III. 온 마음으로 부르짖는 기도를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

- 이 부르짖는다는 말은 다윗이 아주 많이 사용하는 말이다. 표현을 보면 30편, 55편, 57편, 86편, 왜 이리 부르짖는가? 하나님께 전적위탁이 되니 부르짖는 것이다. 다윗은 17세, 30세, 37세, 이스라엘 통일왕국의 왕이 되어서도, 70세 죽을 때도 하나님께 그가 부르짖는다. 이 말씀은 한국교회 지성인들이 하나님 앞에서 부르짖는 것을 하지 않는다. 품격 있게 기도한다고 하면서 안 한다. 잘나가고 배경 좋고 안정된 사람들이 그렇게 기도한다. 진정으로 뒤가 타보면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오물통에 빠져보면, 그렇게 부르짖게 되어 있다. 우리는 지금 다른 것은 몰라도 남북문제에 있어서는 점잖은 기도를 할 수 없다. 지금은 많이 형편이 나아졌다. 정말 우리나라가 가난 했을 때, 부르짖는 기도가 너무 많았다. 주말에는 산의 기도를 했다. 명당을 만들어 놓고 기도를 수없이 했다. 지금은 선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데 없네가 되었다. 기도원들이 차고 넘쳐서 부르짖고 온 마음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했다.
 
*예레미야 33:3절에 보면,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어야 한다. 이런 마음을 가지고 해야 한다. 링컨 대통령도 그렇게 기도했다. 국가기도 일을 정해서 기도한 것이다. 구국기도를 지금도 미국 복음주의 목사님들과 성도님들은 국가 기도의 날을 기념한다. 우리도 나라 사랑한다면, 온전하게 부르짖어야 한다. 나라를 위하여 부르짖고 기도하여야 한다. 그래서 믿음으로 마음으로 북한을 향하여 우리 한국교회와 북한교회를 불쌍히 여겨서 손을 잡고 동서남북에 부흥의 불길 타오르길 기도하여야 한다. 맞춤형으로 인도하시는 선하신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를 하자. 참된 신앙인은 참된 애국자이다.
 
♣요약
우리가 진정한 애국을 위해서는 눈물로 부르짖어 기도해야 한다. 눈물로 기도를 한다면, 방향대로 열방과 우리 민족이 복을 받게 되니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끝까지 간구하고 기도하여야 한다. 그렇게 부르짖을 때에 하나님의 때에 민감함과 카이로스의 대한 안목을 주실 것이니 우리는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인정하고 믿어서 우리 민족을 위해, 세계를 위해 전심으로 기도해야 한다.
 
-유다의 바벨론 포로 기간은 70년으로, 이는 바벨론의 지배력이 3대 동안 계속되리라는 말씀의 성취였다.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의 멸망에서 바벨론 멸망까지는 73년이며, 느부갓네살이 즉위하던 해부터 바벨론 멸망까지는 66년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으셨고 우리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우리의 미래를 계획해 놓으셨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뜻은 재앙이 아니요 평안이며, 장래에 소망을 두려는 것이다. 우리를 향한 주의 생각은 참으로 깊고 크시니, 전심으로 찾아야 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전심으로 찾는 것은 단순히 감정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의지와 힘을 다하는 것이다. 즉, 목숨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처럼,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찾고 찾으면 만나게 되리라는 뜻이며 돌아오게 하신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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