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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예배(주후 2021년 9월 22일) 제목: ''윗샘과 아랫샘의 복'' 말씀: (여호수아 15:13~19) 찬양인도: 이다니엘 부목사님 사회: 김도훈 부목사님 설교자: 김완기 부목사님 ----------------------------- (여호수아 15:13~19) 13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여호수아가 기럇 아르바 곧 헤브론을 유다 자손 중에서 분깃으로 여분네의 아들 갈렙에게 주었으니 아르바는 아낙의 아버지였더라. 14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그 세 아들 곧 세새와 아히만과 달매를 쫓아내었고. 15 거기서 올라가서 드빌 주민을 쳤는데 드빌의 본 이름은 기럇 세벨이라. 16 갈렙이 말하기를 기럇 세벨을 쳐서 그것을 점령하는 자에게는 내가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주리라 하였더니. 17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점령함으로 갈렙이 자기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18 악사가 출가할 때에 그에게 청하여 자기 아버지에게 밭을 구하자 하고 나귀에서 내리매 갈렙이 그에게 묻되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 하니. 19 이르되 내게 복을 주소서 아버지께서 나를 네겝 땅으로 보내시오니 샘물도 내게 주소서 하매 갈렙이 위샘과 아래랫 샘을 그에게 주었더라. ------------------------------- ▶명절 연휴가 끝나는 날이다. 코로나로 인해 비록 우리가 자유롭게 모이지 못하는 환경 때문에 예기지 못한 명절을 보냈겠지만 오랜만에 가족과 친지들이 대면하고 기쁨을 나눴으리라 여겨진다. 이제 다시 일상으로 복귀하는 바로 그 사명의 시간이 되었다. 일터 선교사로 살아가는 귀한 사명, 그리고 가정에 맡긴 귀한 사명 등등 오늘 수요저녁기도회를 통해서 더욱 더 사명자로 살아가길 결단하는 귀한 시간되길 원한다. 이번 명절 보내면서 가족과 친지들 간에 어떤 덕담을 주고받았는가? 아니 어떤 신앙의 간증들을 했는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너무나 어려운 상황과 형편 때문에 오히려 하나님께 간구하는 이것저것 간증들을 했으리라 여겨진다. 오늘 말씀을 전하면서 우리 나라 초대교회 당시 어려운 가운데서도 일어났던 한 유행적인 사건을 소개하고자 한다. 지금으로부터 약 130년 전, 1890년대에 강화도에도 복음이 전해진다. 강화도 북쪽에 위치한 홍의마을이라는 곳에 훈장으로 있던 ‘박능일’ 이라는 사람이 마을 최초로 주님을 영접한다. 이 사람은 훈장이었기에 자신이 가르치던 훈장을 예배당으로 봉헌한다. 그러자 훈장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을 영접하겠다고 하면서 한 명 두 명 예수를 영접하기 시작한다. 이 일이 있는 후부터 한 가지 유행적인 일이 이 마을에 벌어진다. 이른 바 돌림자 개명이다. 돌림자 개명, 많은 분들이 본인의 이름을 잘 보면 친족간의 촌수와 돌림자를 알려주는 사용하고 있다. 제 이름은 ‘김완기’ 목사이다. 저는 그리 유명한 성씨는 아니다. 저는 끝 자를 돌림자로 쓴다. 저희 아버지는 빛날 휘, 아들대인 32대손은 끝자리에 ‘건’자를 사용한다. 그래서 아들 이름을 경건이와 예건이로 지었다. 이렇게 한 친족 간에 항렬이나 촌수를 드러낸다. 돌림자가 어느 하루 아침에 없어지고 신앙적인 이름으로 바꾸기를 시작했다. 이 때 가장 먼저 시작했던 그 박능일이라는 훈장이 이렇게 이야기 한다. 우리가 비록 집안이 각기 다르지만 한 날 한 시에 세례를 받아 한 형제가 되었다. 그리고 ‘우리 모두 이 마을에서 예수를 처음 믿었으니 모두 끝자리에 한 일자로 하여 돌림자로 이름을 바꿉시다.’ 성이야 물려받은 조상에게서 받은 자이니 어쩔 수 없지만, 마지막 자는 우리 모두가 한 일자로 바꾸고 이제 이 시간 가운데 자를 무얼로 할지를 제비뽑기를 했다. 제비를 뽑았는데 어떤 사람은 사랑 애, 어떤 사람은 신, 어떤 사람은 추성 춘, 거룩한 성, 착할 선, 애일, 신일, 춘일, 성일, 선일, 이렇게 그들의 이름을 개명한다. 이 소문이 강화도 곳곳에 퍼진다. 강화도에 복음이 확장 될수록 개명하는 일이 계속 일어났다. 하나의 유행이 된 것이다. 그런데 한 가지 복잡한 일이 생긴다. 세례를 받는 날, 아버지와 아들, 삼촌과 조카가 한 날 한 시에 세례를 받는데 당시 이 돌림자, 당시 서열인 상하관계가 분명한 것이 바로 돌림자인데, 선대 사용하는 돌림자를 후대가 사용할 수 없다. 한 마디로 촌수와 항렬이 무너지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날 한 시에 세례 받던 이 하나로 이들은 그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린다. 이 현상을 지켜 본 강화도 불신자들은 이 교인들을 보고 다음과 같이 별명을 부르며 손가락질을 시작한다. 저 사람들은 ’검정개‘이다. 왜 검정개라고 불렀겠는가? 당시에 우리는 흰옷을 입고 있었다. 기독교인들은 실용적인 면을 강조해서 검정색을 염색해서 입고 다녔다. 그래서 검정개라고 했다. ’개‘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왜 개라고 했는지는 잘 알 것이다. 전통을 혼란시키고 전통적 돌림자를 질서를 파괴하고, 무례하고 몰상식하게 만들었다고 해서 검둥개라고 불렀던 것이다. 이 손가락질 속에서 우리가 세속적으로는 부자간, 숙질간이라 할지라도 신앙적으로 하나님의 같은 자녀일 뿐이다. 우리는 육적인 질서를 쫓기보다는 영적인 질서를 따르기로 했다. 우리를 향해 검정개, 검둥개라고 불러도 게의 치 않았다. 오히려 신앙으로 하나가 되게 하신 것에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고 이 마을 신앙인과 교인들은 그렇게 고백하고 다녔다. 강화도 홍의마을에서 비롯한 이 복음의 사람들의 돌림자 개명, 이것은 주위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촌수와 항렬을 뛰어넘어 오히려 복음 안에 있는 것에 감사한 130년 전의 우리 한국교회의 아름다운 유산이다. 그들은 신앙의 경주를 완수해 나가기 위해서 즉 사명을 계승하기 위해서 돌림자 개명을 사용했다. 오늘 돌림자 개명에서 하나님의 사명, 그 끝나지 않는 경주를 이어가고자 한 구심점, 마치 돌림자 개명처럼 한 구심점 삼은 사건을 여러분과 이제 나누려고 한다. 그것이 바로 위샘과 아래 샘이다. -윗샘, 아랫샘,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 하면 헤브론, 땅 가까이에 있는 세일과 드빌의 샘으로 추측되는 윗샘과 아랫샘이다. 먼저 윗샘과 아랫샘에 등장하는 여호수아 15장의 배경을 우리는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이 시기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가나안 족속들을 몰아내고 그 땅을 차지해 나가는 초창기 시기이다. 이 시기에 하나님은 신명기 12장에서 이 가나안 정복을 출 애굽한 1세대가 아니라 2세대에게 맡긴 것을 우리는 살펴볼 수 있다. 그렇게 된 이유는 이른 ‘가데스 바네야’ 사건이 결정적이다. ‘가데스 바네야’ 사건, 모세를 따라 애굽으로 나온 출애굽 1세대, 이 사람들이 광야를 헤맨지 약 2년이 시간이 흐른다. 이 때 이들은 가데스 바네야란 곳에 이른다. 이곳은 그 가나안 땅과 매우 가까운 접경지역에 위치해 있다. 하나님은 주저하지 말고, 두려워하지 말고, 약속한 그 땅을 차지하라고 명령하신다. 약속한 그 땅은 바로 가나안 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1세대들은 마음이 심히 두려웠다. 그래서 모세에게 건의 한다. 우리가 무작정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는 위험하다고 한다. 그들이 어떤 상황에 있는지 먼저 우리가 정탐을 해야 되지 않겠냐며, 그래야 어느 성을 먼저 칠 것인지, 군사들을 어떻게 배칠 할 것인지를 우리가 전력을 든든히 세워서 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좀 더 효율적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허락한다. 그래서 열 두 지파인 즉 각 지파에 한 명씩인 열두 명의 정탐꾼을 모아서 가나안 땅에 보낸다. 이들은 약 40일 정도 그 땅을 정탐한다. 최남단 신 광야에서부터 최북단 경계인 하맛과 르홋까지 정탐했고, 또 중간 지역인 헤브론, 특별히 에스론 골짜기에서는 각종 과일들도 채집을 한다. 정말 말 그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다. 목축을 하기에도 충분한 땅이었다. 거기에는 열두 명의 의견이 전혀 다를 바가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나안 땅에 거주하는 거민들, 바로 그것이 문제가 된다. 남쪽에는 아말렉 족속이 있다. 그리고 산간 지역에는 헷, 여부스, 아모리 족속이 있다. 그리고 해안가, 이 요단에는 가나안 족속이 있다. 그런데 이들 모두 그 등치가 체격이 얼마나 장대한지, 성경의 기록에 의하면 이스라엘은 이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았다고 말한다. 메뚜기 같은 것은 상대가 안 된다는 것이다. 당시는 청동기 시대이다. 그러다보니 오늘날처럼 잘 가공해서 상대를 무너뜨리는 무기 아니었다. 무딘 돌을 좀 깎아내고 청동으로 만든 무기로 상대방의 급소를 가격한다. 그러다보니 어떤 신체적인 요건이 너무도 중요했던 시기이다. 신체적 요건이 맞추어지지 않으면 전쟁에서 백전백패였다. 그래서 바로 가나안에 거하는 그 족속들이 우리 이스라엘은 그들에 비하면 메뚜기 같이 형편없었다는 것이다. 가나안 땅에 거하는 이 외적인 신체를 보고 이 열두 명의 정탐꾼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게 된다. 가나안인이 이긴다. 아니라 우리가 이긴다로 나뉜다. 열 명의 정탐꾼이 이기지 못한다고 한다. 그 말에 이스라엘 온 족속들이 동요되고 그날 밤 아우성을 치며 밤새 통곡한다. 차라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자고 하면서 왜 우리를 여기까지 끌고 와서 죽게 하고 이 고생을 시키냐고 한다. 급기야 모세를 죽이려고까지 한다. 하나님이 이 사건을 계기로 어찌 보면 2년 만에 가나안 땅에 갈 수 있었는데, 그 이후 38년이라는 시간을 이 광야에서 유리하게 하신다. 그뿐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한 이 출애굽 1세대, 이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가는 것을 허락지 않으셨다. 이 가데스 바네야 사건으로 38년의 시간이 지났다. 바로 그리고 요단강을 건너 이 가나안 땅에 입성한 이 출애굽 2세대, 그들은 바로 이러한 가나안 땅을 정복해 나가는 놀라운 사명으로 부어진 새로운 세대였다. 그래서 출애굽 2세대는 사명이 매우 컸다. 가나안 종교 자체를 파괴시켜야만 했고, 가나안의 이 다산 종교를 신봉하는 사제들, 그 사람들을 모두 죽여야 하는 사명을 그들은 이행해야만 했다. 하늘의 통치권을 가지고 계신 하나님, 정의와 진리를 이 땅에 증거하기 위해 출애굽 2세대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도구로 사용되어야 했다. 본문에 보면, 지금 이 배경 하에서 유다족속은 이 헤브론 남서쪽 약 100킬로 정도에 위치한 드빌, 기럇세벨을 눈 앞에 두고 있다. 이 드빌, 기럇 세벨이 어떤 곳인지 잠시 설명한다. 이곳은 광야의 종착지이다. 그래서 가자와 브엘세바의 이 한 가운데 있는 전략적 중요한 성읍이었다. 이 드빌의 또 다른 별명은 ‘책들의 도시’ 그리고 ‘장교의 도시’라는 이름이 있었다. 책들의 도시는 많은 문서들이 보관되어 있고, 책들이 많다는 것은 하찮은 도시가 아니다. 그리고 장교의 도시는 군사적으로 그리고 정치적으로 요충지였다는 것이다. 일찍이 여호수아가 드빌을 한 차례 정탐한 적이 있다. 그런데 그곳에 이스라엘 주민이 거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곳에 가나안 족속이 거하게 되었다. 이 드빌을 앞장서서 지금은 정복하고 있는 자가 누구인가? 갈렙이다. 우리는 너무도 잘 아는 인물이다. 그는 가데스 바네야에서 여호수아와 갈렙만이 그 정탐을 마치고 우리가 능히 가나안을 이길 수 있다고 한 사람이며, 하나님 편에 선 자이다. 이 갈렙은 당시 정탐꾼으로 파견될 때가 나이가 바로 마흔이었다. 정말 많은 나이였다. 그리고 정말 현상 그대로 하나님 편에, 하나님의 뜻에 서고자 노력했던 인물이 바로 이 갈렙이다. 그래서 이 고백 때문에 그는 출애굽 1세대 등 모세를 비롯해서 단 한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지만, 여호수아, 갈렙, 이 두 사람만은 가나안 땅에 들어간다. 이제 갈렙은 시간이 흘러 유다지파의 족장이 되어져 있다. 그리고 그의 나이 85세가 되었음에도 이 많은 나이를 무색할 정도로 하나님의 사명을 완수하고 있다. 그것이 본문 초반부에 일이다. 그는 헤브론 땅에 방대한 자들인 아낙 자손들을 정복했다. 아낙의 세 아들 세세, 아이만, 갈멜을 쫓아내었다고 본문은 기록한다. 이렇게 성경은 갈렙을 가리켜서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한 사람이라고 평가한다. 기록 그의 동역자였던 여호수아는 그를 그르켜서 하나님을 온전히 좇은 자로 또한 평가한다. 지난 4월 특새에서 유니온 신학교 총장이신 마이클 리브스가 우리에게 말씀하시면서 말씀 중간에 갈렙을 평가했던 바로 그 말씀이 기억이 났다. 이 마이클 리브스는 갈렙을 이렇게 평가한다. 그는 원래 이방이었고, 여분네의 아들인 갈렙은 이 여분네는 이방인이다. 갈렙 역시 이방인이다. 그가 후에 즉 출애급 당시에 이방인으로 합류를 하는데 그때 합류했고 이방인이 아니라 이스라엘 족속이 되는 것이다. 그런데 갈렙의 이름 자체가 개다. 그래서 이방인의 개가 이스라엘 족속, 특이 이방인이 왕족이 되었다고 말씀한다. 그리고 가나안 족속을 몰아내고 하나님의 위대한 용사가 되었다고 마이클 리브스는 이 갈렙을 이렇게 평가했다. 이제 갈렙이 자신의 사명을 후대에 넘겨주기로 한다. 헤브론 땅에 아낙 자손을 쫓아낸 후에 이 여세를 몰아서 드빌을 정복하고자 한다. 그런데 이 일을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 누구든지 이 기럇세벨에 올라가서 정복하는 자에게 내 딸, 악사를 아내로 준다고 말한다. 이같이 전공을 세운 자들에게 상을 주는 것은 고대 전쟁에서 흔한 일이었다. 그런데 이 일에 갈렙의 조카 웃니엘이 나섰다. 결과적으로 드빌 정복에 성공했고 갈렙의 딸인 악사를 아내로 맞이하고 그이 사위가 된다. 이 옷니엘이 이스라엘의 사사시대를 여는 첫 번째 사사가 되는 인물이다. 본문은 웃니엘의 아내가 된 악사를 집중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전 오늘 이 부분을 집중해서 살펴보겠다. 그들은 웃니엘이 점령한 이 드빌이 메마른 땅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 메마른 땅, 이것은 좋은 땅이 아니다. 척박하다. 메마른 땅에는 물이 필요하다. 물이 없으면 그 어떤 것도 못한다. 경작도, 목축도 못한다. 그러니 악사와 웃니엘이 필요했던 최고의 것은 바로 물이었다. 샘이었다. 자신이 시집을 가서 평생을 살아가야 했던 악사는 아버지 갈렙에게 구한다. 샘물이 있는 땅을 요청한 것이다. 여기서 그녀의 태도를 잘 살펴보라. 이 본문과 사사기 1장에도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둘 다 이 악사가 아버지께 나아갈 때 어떻게 나아갔는지를 말하고 있다. ‘내게 복을 주소서.’라고 공손하게 나아간다. 내게 복을 주소서, 자신과 웃니엘의 미래에 대한 일에 아버지의 축복, 이것을 먼저 간구했다. 그 후에 아버지께 요청한다. 아버지가 자신과 남편에게 준 그 땅, 메마른 땅을 위해서 샘을 달라고 한다. 갈렘은 딸에게 위샘과 아래 심을 두 개의 샘을 다 준다. 여기서 우리는 두 가지 모습에 각각 집중할 필요가 있다. 먼저 악사의 간청, 다음으로 갈렙의 응답, 이 두 가지를 각각 살펴보자. I.악사는 아버지께 샘물을 요청하기에 앞서서 공손하게 접근하여 아버지의 축복을 간구했다. -이 모습을 우리는 하늘에 계신 우리 하나님께 아빠 아버지의 이 기도생활에 우리는 비추어봐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할 때, 간구와 간청이 상당수 많다. 그런데 우리는 이것저것 주시라고 때를 쓰는 기도가 많다. 하지만 우리가 중요한 것은 기도요청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아버지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에 나의 삶을 돌아볼 필요가 있어야 한다. 우리가 기도하면서 착각한다. 무조건 하나님께 내어 맡겨드린다고 한다. 그것이 아닌데, 우리가 어디서 알 수 있냐면, 우리 기도의 모델 되시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통해 알 수 있다. 누가복음서는 예수님의 기도생활을 가장 많은 분량, 상세 기록하고 있다. 이 누가복음서에 드러난 예수님의 기도생활은 다름이 아니라 항상 하나님 중심이 기도를 구했다. 좀 더 쉽게 이야기 하면 내 생각과 내 뜻을 놓고 하나님께 간청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정하신 뜻을 구하고 그 뜻대로 실천하는 기도를 예수님이 하셨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서 예수님은 기도 응답을 받을 때까지 끈질기게 기도하신다. 응답이 있을 때까지, 초저녁부터 다음날 해가 밝을 때까지, 그렇게도 응답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다음날도 반복해서 하셨다. 예수님은 끈질기고 인내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에 매달렸다. 하늘에 계시는 아빠 아버지가 기도의 모습으로 여겨진다. 그럼 우리가 아빠 아버지께 기도하고 간청할 때에 어떠한 모습으로 나아가야 하는가?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 끈질기게 나아갈 때, 모습으로 기도의 자리에 나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끈질기게, 인내력을 가지고 나아갈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넘치는 복으로 우리에게 채워주실 줄 믿는다. 이 때 바로 갈렙이 악사에게 준 윗샘과 아랫샘을 살펴보자. 갈렙은 악사의 필요를 미리 알았을 것이다. 그 땅을 이미 벌써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딸이 자신에게 나아와 공손하게 필요를 간청하고 아름다운 자세로 간구했을 때, 아마 아버지로서 큰 감동을 받았을 것이다. 그래서 샘 하나를 구한 그녀에게 윗 샘, 아랫 샘을 다 준다. 갑절의 은혜를 베풀어준다. 출가하는 딸에게 자신의 사명도 계승하게 된다. 일찍이 아브라함의 소명은 궁극적으로 땅을 소유하는데 있지 않았다. *창세기 12;3, 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신지라 -모든 족속이 복을 받는데 아브라함의 소명이 있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출애굽 2세대들에게 있어서 여호수아, 갈렙 이 두 사람은 최고의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자들이었다. 한 평생 하나님을 따랐던 인생, 그 인생의 마지막에 안락과 평안을 충분히 추구했을 수도 있다. 윗 샘과 아랫 샘은 어찌 면 갈렙의 인생을 보상받는 전부였을지도 모른다. 그 모든 것을 자신의 딸, 그리고 사사시대의 첫 번째 사사로 세움 받은 사위 옷니엘에게 아낌없이 내어준다. 즉 사명을 계승시키고자 하는 갈렙의 축복이었던 것이다. 내게 복을 주소서, 라는 아브라함의 간구하는 악사의 모습을 보고 그는 땅을 소유하기 보다는 아브라함의 언약을 계승시켜 나갈 이 다음 세대인 자신이 딸과 그 사위에게 그 전부를 내어 놓을 수 있었던 것이며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기하며 윗 샘과 아랫 샘의 복으로 응답한 것이다. 사랑하는 성도님들, 윗 샘과 아랫샘은 거저 주어진 것이 아니다. 드빌을 점령하라는 갈렙의 요청에 순종한 옷니엘의 행동이 먼저 있었다. 그리고 아버지께 아브라함의 언약을 상기 시키며 공손하게 축복을 구한 이 악사의 지혜가 또한 있었다. 이 행동과 지혜가 있었고 그 결과 갈렙은 사명의 계승을 위해 윗 샘과 아랫 샘을 이 복을 딸과 사위에게 허락해 준 것이다. 우리가 추석 명절을 보내면서 우리가 친지들엑게 윗 샘과 아랫 샘의 복을 나누는 자가 되어야 되지 않겠는가? 그러기 위해서는 ▷첫 번째로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순종하는 우리의 행동이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의 귀를 막고 주권적인 말씀에 관심이 없다면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없다. 날마다 그 말씀을 내가 행동하고자 그대로 살아가고자 노력하는 그 모습을 하나님은 아주 기뻐여기실 것이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뜻을 끈질기고 인내를 가지고 간구하는 그 지혜가 필요하다. -하나님은 먼저 그 의와 나라를 구하는 자에게 모든 필요를 채워주신다고 약속하셨다. 우리가 먼저 체험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면 자연스럽게 하나님은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신다. 그 약속을 신뢰해야 한다. 때로는 조급하고 성급하게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어떻게 이루어질까의 기대하는 마음으로 인내하며 끈질기게 기도하는 그 지혜가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렇게 될 때에 ▷세 번째로 이 두 가지가 한 데 어우러지면 아빠 아버지는 반드시 복을 주신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축복의 후사, 언약의 후사로 우리 인생을 믿음과 신앙의 계승자로 살아가야 한다. 그래서 우리의 가족, 친지들이 우리의 모습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모습의 삶을 살게 되면 이것이야말로 주님이 주신 윗 샘과 아랫 샘의 복이다. 서두에 강화도 신앙인들을 검둥개, 검정개라고 말씀 드렸다. 이들은 동네에서 검둥개라고 불러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자랑스러워했다고 한다. 갈렙은 그 자신의 이름이 개였다. 이방인의 개가 이스라엘의 왕족이 되는 놀라운 반전의 역사를 써내려 간다. 이것이 왜 그렇게 되었는가? 이것은 사명 때문에 주신 하나님의 은혜였기 때문이다. 이제 사명 계승을 위해 갈렙은 윗 샘과 아랫 샘의 복을 후대에 넘겨주었다. 이처럼 아무것도 아닌 인생, 어쩌면 버림받았던 인생이 하나님 앞에 사용되면 복을 나누는 인생이 된다.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인생이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면, 빛나는 인생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우리도 이 사명 자가 되어 살아가는 우리 영 가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원한다. ♣요약 이방인이었던 갈렙이 유다 왕족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은헤를 더욱 사모하여 인생의 새판짜기가 시작되고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아버지의 뜻대로 인내로 기도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수선대후의 사명을 감당하여 윗샘과 아랫 샘을 누리며 나누는 자로서 사명 계승의 소중함을 깨닫고 우리도 하나님 앞에 복을 간구하여 우리의 목마른 우리 영혼을 채우시기를 원하시는 주님을 찬양하며 가족과 친지에 복음자로 살기를 실천해야 한다. -본 서 기자는 갈렙에 대해서 기록할 때마다 매우 즐거워하는 듯이 보인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기 때문이었다. (1) 여호수아가 갈렙에게 헤브론을 기업으로 준 것이 여기 반복되고 있다(13절). (2) 우리는 여기서 갈렙이 그 분깃을 취하는데 다음과 같이 행동하였음을 보게 된다. 1)헤브론을 정복할 때 그는 자신의 용기를 나타내었다(14절). 갈렙이 거기서 아낙의 소생 곧 그 세 아들을 쫓아내었고. 그와 그를 도와주는 자들이 함께 이 일을 행하였다. 2)드빌을 정복할 때 그는 그와 함께 싸우는 이들의 용기를 북돋아 주었다(15절 이하). 한때 여호수아가 직접 드빌을 정복했었으나(10:39) 이스라엘 군대가 없는 틈을 타서 가나안 사람들이 다시 그곳을 차지했던 것 같다. 그래서 다시 그곳을 정복해야 했다. 갈렙은 자신과 자신의 가족을 위해서 헤브론을 완전히 정복했을 때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만큼이나 전체를 위한 열심히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서 드빌로 진군해 나아갔다. 갈렙은 그 성읍을 정복하는 자에게 자기 딸과 좋은 분깃을 주겠다고 제안을 하였다. 갈렙의 집안은 단지 영광이 높거나 부유할 뿐만 아니라 신앙적인 집안이었다. 그 곳은 갈렙의 조카인 옷니엘에 의해서 정복되었다. 아마도 갈렙도 처음 제안할 때부터 옷니엘을 염두에 두었던 것 같다(17절). 옷니엘은 갈렙의 딸이자 사촌인 악사와 결혼을 하였다. 기자는 우리에게 악사의 분깃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다. 그녀는 갈렙의 기업 중에서 한 땅을 얻었다. 갈렙은 그녀에게 남방 땅을 주었다(19절). 그러나 사실 '남방 땅'은 건조하고 가뭄이 잘 드는 곳이었다. 악사는 그녀의 요청보다 더 많은 것을 얻었다. 갈렙이 그녀를 그 남편 될 사람에게로 출가시킬 때 그녀는 아버지에 대한 공경의 표시로 '나귀에게 내렸다'. 그녀는 자신이 아버지의 허락뿐만 아니라 그의 명에 의해서 결혼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축복하는 것을 거절치 않으리라고 확신하였다. 그녀는 단지 샘만을 구하였다. 샘이 없이는 그녀가 가지고 있는 땅은 농경지건 목축이건 아무 짝에도 쓸모가 없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녀의 요구가 의미하는 것은 샘이 있는 밭이었다. 악사는 자신이 바라던 것을 얻었다. 즉 그녀의 아버지는 그녀에게, 요구한 대로 아니 어쩌면 그보다 더 주었던 듯싶다. 이는 갈렙이 '위샘과 아래 샘'을 그녀에게 주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보통 위 밭과 아래 밭을 구분하는 것처럼 그 밭에 있는 샘으로 그와 같이 땅을 구분하여 불렀다고 볼 때에 이는 두 밭을 준 것이다. 우리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정당하고 올바른 방법으로 이생의 평안과 안락을 얻고자 애쓰는 것을 배우게 된다. 남편과 아내는 가족을 위해서, 그리고 공동의 유익을 위해서 서로 권면하고 긴밀하게 협력할 수 있어야 한다. 부모는 자식들에게 참된 유익을 위해 베풀어 주는 것을 결코 손해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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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9월 25일)''기도의 공공성''(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1.09.25 |
☆ 주일예배(주후 2021년 9월 18일)“보물찾기”(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1.09.19 |
☆ 토요비전새벽예배(주후 2021년 9월 18일) “주신 은혜 어떻게 보답할까?”(오정현 담임 목사님)-사랑의교회 ☆ (0) | 2021.09.18 |
☆ 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9월 15일)"다윗의 간구에 주께서 행하신 일"(권진우 부목사님) ☆ (0) | 2021.09.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