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2년 9월 7일)

제목: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말씀: 요나 2:1~10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전도사님)

설교자: 문진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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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2:1~10,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 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5 물이 나를 영혼까지 둘렀사오며 깊음이 나를 에워싸고 바다 풀이 내 머리를 감쌌나이다.
6 내가 산의 뿌리까지 내려갔사오며 땅이 그 빗장으로 나를 오래도록 막았사오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
7 내 영혼이 내 속에서 피곤할 때에 내가 여호와를 생각하였더니 내 기도가 주께 이르렀사오며 주의 성전에 미쳤나이다.
8 거짓되고 헛된 것을 숭상하는 모든 자는 자기에게 베푸신 은혜를 버렸사오나.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말씀하시매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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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둘기’라고 하는 뜻의 이름을 가진 요나는 니느웨의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보냄을 받았다. 니느웨가 구원 받는 것을 싫어하는 그는 .동쪽의 니느웨가 아닌 서쪽의 땅 끝, 스페인의 남쪽 도시 다시스로 도피했다. 지중해 큰 풍랑을 만나 물에 던져진 요나, 큰 물고기에게 삼켜져서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머물게 된 요나는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우리가 읽은 본문의 말씀 중에 2절을 보면
 
*요나 2:2,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요나 2:3,
3 주께서 나를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 던지셨으므로 큰물이 나를 둘렀고 주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내 위에 넘쳤나이다.
-스올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죽은 자들이 가는 무덤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물고기 뱃속을 죽음의 무덤에 누워있는 것으로 보았다. 라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이 만약에 요나가 물고기 뱃속과 같은 상황을 만난다면 여러분은 어떤 느낌을 갖게 되겠는가? 고난, 채찍, 징계, 우연한 불상사, 아니면 성숙의 도약대,
 
※찰스 스윈돌 목사님의 신간 중에 ‘어느 날 내게 불친절 할 때’라는 책이 있다. 원래의 제목은 “What if God has other plans.” =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른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면,
-참 요상하지 않는가? 내가 바라는 계획과 내가 원하는 그것 말고 하나님이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실 때, 결론을 보면 하나님이 나에 대해 다른 계획을 갖고 계실 때, 나는 내게 삶이 불친절 하다. 라고 느낀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어느 날 자신이 부족하다고 느껴지는 때, 갑작스런 상처를 겪었을 때, 믿었던 사람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을 때, 실패했을 때, 넘어져 있는데 누군가가 나를 발로 나를 발로 찰 때, 장애나 질병이 생겨 고통스러울 때, 불 란을 일으키는 사람 때문에 곤혹스러울 때, 그리고 마지막 챕터에서는 오늘 날 인생이 끝날 때, 삶이 어느 날 나에게 불친절하게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요나의 삶이 이와 같다. 실패를 경험한다. 사명자로 부름을 받았지만 그러나 그는 그 길을 성공적으로 걷지 못했다. 삶이 불친절해진 순간들이 그의 인생 가운데 찾아와버린 것이다. 먼저 우리가 우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그 결과 그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다. 그 물고기 뱃속은 무엇을 의미 하는 것인가? 하나님의 징계? 내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또 다른 그 계획이 있는데 그것이 요나에게는 내 고난으로 말미암아 상당히 고난과 아픔을 느끼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다.
 
*요나 1:17,
17 여호와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으므로 요나가 밤낮 삼 일을 물고기 뱃속에 있으니라.
-그러니까 이 물고기 뱃속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사 나를 물속에서 건지신 하나님의 손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물에 빠져 죽어야 마땅한데, 물고기는 그를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수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물고기 뱃속의 3일이라는 그의 시간은 매우 삶이 나에게 불친절하게 다가온 순간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3일 동안 그는 물고기 뱃속에 머물러 있어야만 했다. 그때 그는 무엇을 생각했을까? 요나가 받은 교훈은 3가지이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훈련의 장소에서 요나가 배워야 했던 교훈 3가지, 그것이 우리 모두에게 동일한 하나님의 교훈과 축복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물고기 뱃속에서 배우는 교훈 첫째이다.

I. 첫째는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난다.
 
*요나 2:1~2,
1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
2 이르되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
-무엇이라고 기도하는가? 물고기 뱃속은 잠들어 있던 요나의 기도가 특별히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나는 자리였다는 것이다.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비로소 기도하기 시작한다. 요나에게 물고기 뱃속이라는 난데없는 불친절한 순간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나는 은혜의 장소였다는 것이다. 요나는 니느웨를 향해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받았지만 기도하지 않았다. 그리고 폭풍이 불고 그리고 그 가운데 그는 기도하지 않았다. 죽음의 위기 앞에서 그는 기도하지 않은 결과는 무엇인가? 사람들의 손에 들려져서 물에 빠지는 것이었다. 기도하지 요나를 꼬집는 매우 흥미로운 일화가 앞장에 묘사되고 있다. 앞장에 보니까 폭풍을 만나 선상 공동체에 있던 전원, 그 안에 배 안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예외 없이 동분서주 하며 각자의 방식으로 구원 받기 위해 애썼다는 것이다. 그런데 요나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가? 배 밑에 들어가 깊은 잠을 청했다. 이 잠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가 경험하는 잠이 아니었다. 그런 요나를 향해 선장이 한 마디 한다. 일침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1장 6절에 보니까,
 
*요나1:6,일어나서 네 하나님께 구하라
6 선장이 그에게 가서 이르되 자는 자여 어찌함이냐 혹시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사 망하지 아니하게 하시리라 하니라.
-깨어서 선상 공동체 위기 때에 기도하고 천지를 지으시고 정말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해야 할 하나님의 사람이 자는 자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에게 이방인 선장의 일침은 이것이다. “왜 기도하여 하나님께 구원을 구하지 않는가?”이다. 뒤집혔다. 위기의 때에 “우리 함께 힘을 내어서 기도하고 하늘의 하나님이 주시는 구원을 경험하자.” 믿음의 사람, 사명의 사람, 부름 받은 사람, 하나님의 자녀들이 마땅히 해야 될 일이 아닌가? 깊이 잠들어버린 것이다. 방관자가 되어 버렸다. 무감각한 자가 되어버렸다. 오히려 이방인이 그에게 도전한다. ‘왜 기도하여 너의 하나님께 구원을 요청하지 아니하는가?’ 기도하지 않는 자는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것이다. 한국 사회가 코로나로 전대미문의 위기를 만났다. 절망할 때, 사회 모두가 희망의 복음을 전하며 그들로 살게 해야 될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 예배를 잃어버린 성도들에게 현장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성령 충만한 은혜를 예배를 준비하여 그들로 하여금 와라!!~, 이 현장에서만 누릴 수 있는 은혜와 감격을 누리며 함께 나아가자.!~~ 이렇게 도전해야 될 사람이 누구인가? 경제위기, 외환위기, 국제 공급 망 위기, 위기가 너무 많다. 뉴스로 보기가 참 두려울 만큼 매일 매일 보면 정말 그 원 달러 환율이 매일 올라가고 이율이 매일이 올라가는 그런 어떤 경제위기라고 말하는 지금의 상황 가운데 살 길이 있다고 세상이 무너져도 흔들리지 않는 진짜 나라가 존재한다고 복음을 선포해야 될 사람들이 누구인가? 위기와 공포 앞에서 담대히 살아계신 하나님께 기도하며 문제의 해결 자 되신 하나님의 개입을 마침내 끌어낼 사람이 누구인가? 하나님의 사람들이다. 사명 받은 사람들이다. 저와 여러분과 같은 하나님의 백성들 아니겠는가? 요나는 잠들어 있는 것이다. 무감각하고 방관자가 되어 있는 것이다. 만약 우리의 기도가 잠들어 있다면 다시 깨어나야 될 줄로 믿는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물고기 뱃속은 잠자던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나는 자리였다.
 
*시편 50:15,
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환난 날에 주님이 부를 때, 주님이 반드시 응답하시는 줄로 믿는다.
*예레미야 33:3,
3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부르짖어 기도하기만 하면 살아계신 하나님이 천지를 지금도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이 반드시 응답하실 줄로 믿는다. 부르짖는 기도가 무엇인가? 복음서에 보면 맹인이 예수님을 만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구원하소서.” 사람들이 제지하지만 끝까지 주님의 응답을 들을 때까지 그는 부르짖었다는 것이다. 주님 아니고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한다. 나는 주님을 만나야 된다고 주님 아니면 나는 해결책이 없다고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 끝까지 기도하는 것, 부르짖는 줄로 믿는다. 또 과부는 불의한 자 앞에 재판장에게 밤낮으로 부르짖는다. 당시 고아와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장 약한 자 계층이 과부 아니겠는가? 스스로 힘으로는 이 왜곡된 풀어낼 상황이 전혀 없는 자가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것, 부르짖는 기도이다.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벼랑 끝에서 끝까지 기도하는 것, 그것이 부르짖는 기도이다.
 
요약해보면, 부르짖는 기도는 인생의 벼랑 끝에서 문제가 해결 될 때까지 이 문제의 해답이 되시고 해결자 되시는 응답자 되시는 주님께 기도하는 것, 부르짖는 기도이다. 여러분, 지금이야말로 이 부르짖는 기도가 필요하지 않는가? 여러분 아시는 것처럼 제가 수요저녁기도회를 인도할 때마다 부르짖어 기도한다. 절박함 때문이다.
 
저도 장로교 전통에서 자라고, 대학생 시절에는 지성소회 복음화라고 하는 선교 단체에서 책을 많이 읽고, 성경 많이 읽고 성경공부하고 묵상으로 기도하고, 그런 전통에서 훈련 받았다. 저도 묵상기도가 편한 사람이다. 그런데 제가 목사가 될 때, 저를 안수하시는 목사님이 이렇게 기도하시는 것이다. “지금의 시대가 너무 악한데, 목회하기가 우리 시대보다 너무나 힘든 시대가 되어버렸는데 안수 받는 지금 이 사역자들에게 갑절의 은혜를 주옵소서!” 의 기도가 저는 대게 위기감으로 찾아왔다. ‘그래요, 하나님 은혜 없이는 이 목회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라고 답했다. 하나 같이 안수 받고 축사하시는 목사님이 이 시대가 악한데, 우리보다 더 힘든데, 라고 하셨다. 제가 속으로 ‘시대를 잘못 태어났구나. 20년 목회를 먼저 했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을 했다. 근데 막상 지난 15년 동안 목회 현장에 있다 보니까 진짜 기도 없이 부르짖지 않고서는 감당할 수 없는 상황들이 너무 많았다. 앞으로 더 심하게 악화 될 것을 염려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들 때면 부르짖어 기도하지 않을 수가 없다. 라는 것이다. 풍랑을 만난 이 한국교회가 이 위기 상황을 돌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부르짖는 기도의 회복인줄 믿는다.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 물고기 뱃속이라고 저는 확신한다. 5000명의 목회자가 모여 한국교회를 위한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나는 시간일 줄 믿는다. 또한 사랑의 교회에도 이 기회는 물고기 뱃속인 것이다. 우리의 능력으로는 감당키 어려운 섬김의 무게감을 날마다 느끼기 때문에 그렇다. 오늘까지 4천여 분의 목사님이 등록하셨다. 할렐루야!! 우리가 기도하고 있지 않는가? 날마다 강단에 올라와서 기도하고 계시기에, 부르짖고 계시기에 그렇다. 이 잔치를 마련해 놓았는데, 손님이 안 오면 어찌할까? 그런 절박한 심령을 가지고 기도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께서 오천(5,000)분을 넘어 500명을 더 초청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조금 더 기도해야 될 것 같다. 여러분 몇 명이 모이시고 어떤 섬김을 하느냐, 형식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진짜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 내용적으로 볼 때, 초대 받은 목회자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고 복음의 능력을 다시 힘입어 부흥의 단초를 마련해야 하고 용기를 얻고, 다시 목회지로 돌아가서 힘 있게 맡겨주신 사명의 길을 요나가 아닌, 부르짖는 기도로 다시 복음의 능력으로, 섬길 수 있게 되어지는 것, 여러분 이런 기도가 아니겠는가? 주님은 이 사역을 실해하기에 앞서서 청계산의 구름을 밀어내시며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셨다. 부르짖게 하셨다. 하나님이 우리 기도를 받을 준비를 미리 갖추시고 우리를 기도하게 하셨다. 는 생각이 들만큼, 우리를 쏟아 붇는 하나님의 응답의 역사와 축복을 다 준비해놓으시고 “기도만 해라, 기도만 해라, 기도만 해라” 기다리고 계시는 것이다. 얼마나 주님이 우리가 합심하여 하나님 앞에 부르짖기를 원하셨던가? 우리는 그 청계산을 통해서 확인하는 것 아니겠는가? 한국교회가 물고기 뱃속에 들어왔다. 부르짖지 아니하고서는 예배가 회복되기가 어렵다. 부르짖지 않고서는 한 명의 영혼도 주님께 돌아오게 하기가 어려운 시대이다. 그래서 강단에 올라와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위해 하나님의 시대를 향한 구원의 새 판짜기를 허락해 주옵소서.”라고 간절히 부르짖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여러분, 개인적으로도 물고기 뱃속에 들어와 계신 분들이 많은 줄로 안다. 사방에 길이 없다. 벼랑 끝에 서 있다. 부르짖어 기도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의 기도가 깨어날 수 있기를 바란다. 물고기 뱃속으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짖는 기도를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초청의 자리인 줄로 믿는다.
 
▷물고기 뱃속에서 배우는 교훈 두 번째이다.
II. 둘째는 –주의 성전을 바라보는 시선이 회복 됩니다.
 
요나 2:4,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요나가 다시스라는 사명의 자리, 정반대로 도망간 이유가 앞에 장 3절에 보면 드러나고 있다.
 
*요나 1:3,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일어나 다시스로 도망하려 하여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여 그들과 함께 다시스로 가려고 배삯을 주고 배에 올랐더라.
-이게 하나님의 낯을 피한다는 것이 죄 지은 자의 전형적인 표현이다. 아담이 선악과를 따 먹고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나무 뒤에 숨었다.
 
*에스라 9:6,
6 말하기를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끄럽고 낯이 뜨거워서 감히 나의 하나님을 향하여 얼굴을 들지 못하오니 이는 우리 죄악이 많아 정수리에 넘치고 우리 허물이 커서 하늘에 미침이니이다.
-죄를 지은자의 자연스런 반응이 하나님의 낯을 피하는 것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 죄악을 하나님 앞에 돌이키고는 내가 다시 하나님의 성소를 향하여 바라봅니다. 그의 믿음의 시선이 다시 회복되고 있다는 것이며 이것은 예배가 회복되는 것을 말하는 것을 말한다. 앞서 기도가 회복된 뒤에 예배가 회복되고 있는 것이다.
 
*요나 2:4,
4 내가 말하기를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 하였나이다.
-여러분 여기서 중요한 것이 ‘다시’ 이다. 물고기 뱃속이 낙심케 하여 때로는 넘어지게 할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어, 라고 하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을 돌이켜 그 고난과 그 레슨의 현장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서는 칠흙 같은 그 어두움을 돌파할 수 없다고 하는 그 상황 속에서 그는 낯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예배 회복이 없이는 우리는 소망이 없는 것이다. 주님을 다시 바라보고 주의 임재가운데 들어가지 아니하고서는 우리는 한 걸음도 앞으로 나아갈 수 없는 존재인 줄로 믿는다. 다시 주님을 바라볼 믿음을 회복할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다시 시작할 힘을, 다시 일어설 용기를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다시 기름 부으심과 눈물이 있는 예배를 회복하게 될 수 있기를 바란다. 고난의 자리, 엎어진 자리, 눈물로 가득 적신 그곳에서 우리는 다시 시작할 수 있다. 이것이 물고기 뱃속이 주는 교훈이다. 주님의 임재 안에서 비록 그 자리가 물고기 뱃속이라도 주님이 함께 하신다면 그 자리는 성소가 되는 줄로 믿는다. 우리의 삶이 자리, 때로는 눈물겹고 힘들고 마음 아프고 상처 받고 그래서 팔삭 주저앉아 주님 앞에 눈물로 나가는 기도하는 자리, 홀로 예배하는 그 자리가 거룩한 성소가 되는 줄로 믿는다.
 
※박연성 목사님은 ‘실패도 실력이다.’라고 어느 땐가 하셨다. 참 인상 깊게 들었다. 실패가 왜 실력이 될 수 있는가? 가만히 그분의 말씀을 들어보니까 실패를 통해 자책과 실패감에 무너져 주저 앉아버리지 않고 그 실패를 통해 나보다, 그리고 내 상황보다 훨씬 더 크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다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면, 그 자리는 믿음의 실력이 되는 것이다. 때로는 그래서 ‘실패가 실력이 될 수 있구나!’ 라고 생각했다. 물고기 뱃속이 우리에게 레슨이 되어서, 교훈이 되어서 그 하나님의 그 크심과 하나님의 임재의 영광을 경험할 수 있게 된다면 여러분 그것은 축복의 자리인 것이다. 권면하고 싶다. “다시 사랑하십시오. 다시 용서하십시오. 다시 도전 하십시오. 다시 예배하십시오. 다시 기도하십시오. 다시 섬기십시오. 다시 주님을 바라보고 주님을 향해 나아가는 힘찬 발걸음을 회복할 수 있기를 바란다.”
 
▷물고기 뱃속에서 배우는 교훈 셋째이다.
 
III. 셋째는 구원이 ‘주께 속해 있음’을 감사로 고백하게 됩니다.
-구원이 누구에게 있다는 것인가? 하나님께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것이다. 9절에 보면
 
*요나 2:9,
9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구원이, 여호와께 속했다. 이렇게 믿는 사람은 구체적으로 삶에서 어떻게 나타는 줄 아는가? 감사가 나타난다. 하나님이 구원하실 것이니까, 하나님이 공급하실 거니까, 하나님이 기도응답을 하실 것이니까, 내 손에 당장 쥐고 있는 것 없지만, 하나님이 구원하시고, 공급하시고, 응답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믿음 보고의 최선의 모습은 감사이다. 내 손에 없는데 감사하는 사람은 진짜 믿음 좋은 사람이다. 여러분 그것이 물고기 뱃속에서 배웠던 요나의 세 번째 교훈이라는 것이다. 아니 상황이 열려야!!! 서원을 갚아도, 여러분, 물고기 뱃속에서 나아가 다시 사명의 자리에 서고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그 은혜를 따라 다시 믿음의 길을 걸어갈 수 있지 않은가? 여전히 물고기 뱃속이다. 저는 이것이 요나의 믿음 보고라고 믿는다. 여전히 물고기 뱃속이다. 그 어떤 것도 식별할 수 없을 만큼 칠 흙 같이 어두움 한 가운데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을 믿고 그는 믿음 보고하며 감사로 서원을 갚겠다고 하는 결단을 하나님 앞에 올려드리게 되었다는 것이다.
 
여러분, 이와 같은 믿음 보고가 저와 여러분의 삶 가운데 있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여러분의 삶에 감사를 드리라. 왜? 축복 받기 위해서, 물론 그것도 맞기도 하지만 구원은 주님께 속한 줄로 믿는다. 여러분 이것이 감사로 나타나야 한다. 앞으로 주실 구원의 감격을 미리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대한 큰 믿음을 표현하게 것, 그래서 감사는 내 인생을 향해 하나님의 도우심과 건지심과 공급하심을 믿음으로써 하나님께 올려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가 되는 줄로 믿는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드리는 세 가지가 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이것이 너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중에서 제가 특별히 ‘범사에 감사하라’에 주목하는 것은 무엇이냐면, 내 손에 들려졌기 때문에 감사한다. 라기 보다는 내 인생을 향한 하나님의 구원의 완성과 공급하심에 대해서 구원을 미리 맛보며 사는 삶이 그 방법이 감사이기 때문이다.
 
여러분, 감사하면, 하나님의 구원이 따라온다. 축복이 따라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감사하며 그것을 이웃들과 함께 잘 표현한 사람들이 더 부유함을 얻게 되는 것을 우리가 현실의 삶에서 자주 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미리 감사했더니, ‘하나님이 더 많은 것들로 채우시더라.’ 여러분, 이런 고백들을 듣지 않는가?
 
※작금 프뢰벨이라는 '유리 장수'라는 노래에서 이렇게 이야기 한다. ‘나는 나에게 맡겨진 한 모퉁이에 이 작은 사명을 성실하게 감사함을 감당했을 뿐인데 그 일이 세상 모든 사람을 행복하게 하더라.’ 여러분 한 번 들어보라. “이 세상 모든 사람을 즐겁게 해주렴, 모든 사람들에게 그의 새를 나누어주는 새 장수의 머리를 깎아 주는, 이발사의 가위를 갈아주는, 칼 장수의 신발을 닦아주는, 신발 종류 장사가 가죽 구두를 수선하면서 똑똑히 볼 수 있게 해주는, 저녁마다 가로등의 불을 켜는, 가로들을 켜는 사람과 곧 결혼할 꽃 파는 어린 아가씨를 위해서, 커다란 침대를 만들어야 하는 목수를 위해, 널빤지를 만들어야 하는 저기 멀리서 나무를 하는 나무꾼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무꾼은 열심히 자기에게 주어진 사명, 나무를 베어서 널빤지 만드는 것, 그 일을 감사함으로 했는데 그 일 때문에 세상 모든 사람이 행복하게 되어 지더라. 는 것이다.
 
여러분,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들이 지구가 넓디넓지만 그 지구 한 모퉁이에 나에게 맡기신 하나님의 사명이 있는 줄로 믿는다. 가정주부는 가정주부대로, 사업하는 자는 사업하는 자로, 자영업 하는 자는 자영업 하는 자로 학생은 학생대로 우리 각자의 모습대로 주어지 영역 가운데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앞으로 베푸실 공급하심을 기대하고 믿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보라. 그러면 하나님의 놀라우신 그 채워주시는 은혜가 임하게 된다. 내가 했던 그 작은 일을 통하여 세상을 아름답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가,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놀라운 은혜의 수단으로 우리에게 그 작은 감사를 쓰신다.
 
여러분, 물고기 뱃속은 일상이 멈추어진 공간에서 요나가 그 일상에서 고백하는 감사의 마음을 새롭게 깨닫게 해주는 선물과도 같은 시간이다. 어두워보니까 불이 귀하듯, 내가 갇혀보니까 자유롭게 걷고 내가 마음껏 해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다는 게 감사이다. 고난을 당해보니까, 건강을 잃어보니까, 그 시간들, 그 이전에 누렸던 것들이 너무나 귀하더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시간인 것이다. 물고기 뱃속은 감사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감사할 때, 지금, 혹은, 언젠가는 우리의 기도의 반드시 응답하시므로 하나님이 구원하시므로 확실히 믿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는 그 힘을 새롭게 가질 수 있는 축복의 시간이다. 너무 어렵게 이야기 했는가? 하나님이 주실 구원을 미리 당겨쓰는 것이다. 하나님이 주실 그 자원을 미리 가져다 쓰는 것, 그것이 감사이다. 믿음보고 자만이 할 수 있는 감사의 축복된 삶이라는 것이다.
 
※이효준 목사님이 쓰신 최근 책에서 제가 읽은 하나의 일화이다(‘국밥 한 그릇). ‘작은 섬김이 가져다 준 기적’이라고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일화를 이야기를 들으면서 제 마음 속에 눈물이 흘렀다. 이번 9.26 한국교회 섬김은 물고기 뱃속과 같다.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나고, 예배가 회복되고, 하나님이 미리 앞서 주실, 앞으로 장차 주실, 그 구원의 놀라운 공급하심을 미리 감사로 올려드리는 그 기적이 체험되는 현장, 이런 것들을 우리가 정리하면서 작은 일이지만, 정말 작은 일화 하나이지만, ‘우리에게 이런 섬김이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국밥 한 그릇’(이효준 목사 저(著))이라는 글이었다. 읽어 드리겠다.
오십 년도 넘은 이야기이다. 아직도 생생하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가 백혈병으로 돌아가셨다. 가세가 기울어 생활이 힘들어졌다. 등록금은 종종, 차비조차 없었다. 그럴 때면 할 수 없이 서울시청으로 발길을 돌렸다. 시청에서 일하던 막내 외삼촌을 뵙기 위해서였다. 사실 밥 한 끼와 약간의 차비가 고팠다. 가는 내내 마음이 불편하고 불안했다. 시청운전사였던 삼촌도 무척 살았기 때문이었다. 조카가 오면 언제나 친절하게 대해 주셨지만 마음은 언제나 안절부절 못하셨을 터, 찾아간 시간은 대부분 저녁이었다. 얼마 있다가 가까운 식당으로 데리고 가셨다. 우거지 탕 한 그릇을 시켜주시고 “어서 먹어”하신다. 그 짧은 말에 갑자기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우거지 탕 한 그릇을 해치웠다. 그사이 삼촌은 잠시 자리를 뜨셨다. 주머니가 비어있었으니 할 수 없이 자리를 뜬 것이다. 나중에야 알았다. 다른 동료 운전사에게 돈을 빌리기 위해서였다. 조금 있다가 삼촌이 들어오신다. 멋쩍게 앉아 있던 나는 쑥스럽게 용돈을 받았다. 시청 앞 정류장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걸었다. 차마 삼촌 모습을 볼 수 없었다. 눈물로 범벅된 얼굴을 씻고 하늘을 우러러 올려 보았다. 그 다음에 고백이 참 제 마음이 와 닿았다. 왠지 용기가 났다. 힘이 났다. 씩씩하게 걸었다. 한 그릇 우거지 탕과 손에 든 용돈 때문만은 아니었다. 식탁에서 보여준 외삼촌의 소박한 사랑덕분이었다. 돌이켜보니 그곳에는 어렴풋이 신성한 사랑의 흔적이 있었다. 고등학교 1학년 학생에게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삼촌, 한 명이 신학자로, 한 명의 목회자로, 지금 우리 시대 앞에 작지만 혹은 의미 있는 족적을 내딛을 수 있도록 그 힘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동력의 원천이 무엇이었을까? 돌아보니까 그 외삼촌의 ‘국밥 한 그릇’에 담겨진 사랑이었다는 저는 한국교회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따뜻하게 말아 드리는 국밥 한 그릇의 온기와 사랑 같은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를 생각을 해보았다. 코로나의 광풍으로 인해 물고기 뱃속에 들어앉게 된 교회들, 수많은 목회자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이 다시 부르짖는 기도, 다시 주님을 향한 시선을 회복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갈 힘과 용기를 회복하는 신성한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요약
코로나로 인해 인생의 광풍을 만날지라도 주님이 주시는 물고기 뱃속에서도 부르짖는 기도가 깨어나 시대에 난관을 믿음으로 이기고 돌파하며, 물고기 뱃속에서 주의 성전을 향한 시선을 가지고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회복하고 힘과 용기를 갖고 인생에 구원이 주께 속하여 있음을 깨달아 믿는 자의 고백이 감사함을 주님께 올려드리는 것이 사명임을 일상의 자리에서 신성한 사랑의 흔적을 남기는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 9.26 섬김의 날을 맡겨진 사명으로 지혜롭고 정성되게 헌신하여서 주님이 기뻐하는 한국교회를 만들어 가는 자가 되어야 한다.
-물고기 뱃속에서 그는 구원이 오직 하나님께만 있음을 고백하고 자신을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며 소명을 감당할 것을 결단했다. 이와 같은 요나의 결단을 통하여, 인간의 불순종과 실패까지도 선하게 사용하시어 자신이 계획하신 것을 결국 성취하시는 하나님의 예정된 섭리를 깨닫게 된다. 사람이 회개하게 되는 동기는 다양하다. 우리는 요나를 거울삼아 하나님의 부르심에 충실하도록 힘써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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