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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3년 01월 17일)
제목: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라"
말씀: 디도서 2:11-14
찬양인도: 쉐키나(오준석 부목사님)
사회: 김대규 부목사님

설교자: 김기완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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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도서 2: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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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은혜가 가득한 수요 저녁 기도회에 참여하신 모든 성도님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환영하고 축복합니다. 오늘 수요 저녁 기도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풍성히 누리는 복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디도서 2장 11절부터 14절까지의 말씀입니다. 디도서 2장 11절에서 14절 말씀을 교독하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여러 가지 목표를 세웁니다. 그중 많은 이가 공감할 수 있는 것을 하나 꼽자면 건강관리입니다. 몸에 적절한 체중을 맞추어서 보기 좋은 외모를 얻기 위해, 각종 수치를 정상으로 돌려서 질병으로부터 자유를 얻기 위해, 혹은 젊음과 활력을 오래 유지하여서 인생을 평안하게 살기 위해, 운동, 다이어트, 식습관 개선 등 방법은 각자 다르지만 건강이라는 목표를 세우기도 합니다. 그렇게 세운 목표 열심히 실천합니다. 그나마 몸의 변화는 눈에 잘 보이고 알아채기 쉬운 편입니다. 습관이나 생각, 성품과 변화 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떻습니까? 잘 쉽사리 드러나지가 않습니다. 오랜 시간 애쓰고 노력해도 이것이 변화가 있는 것인지 진짜 나에게 적용된 것인지 알아차리는 것은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다면 신앙의 성장과 성숙은 어떻습니까? 성숙한 신앙을 원하지 않는 성도는 없습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기 때문에 자가 평가가 너무 어렵고 막연하게 느껴집니다. 여러 선한 결단들을 시도하지만 예전으로 되돌아가기 일쑤입니다. 과연 우리에게는 영적으로 성장하고 변화할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우리는 온전한 그리스도인을 향해서 더 나아갈 수 있을까요? 디도서에는 바울의 뒤를 이어서 그레데 교회를 섬기는 디도가 등장합니다. 그 디도에게 보낸 바울의 편지이고 그 내용은 목양의 권면입니다. 바울은 나이와 신분과 직업을 불문하고 그레데 교회의 모든 성도들의 변화와 성장을 꿈꾸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성장하고 변화되어서 교회의 일꾼이 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그레데 사람들의 상태는 어떠합니까? 우리 함께 디도서 1장 12절을 읽겠습니다.

*디도서 1:12,
12 그레데인 중의 어떤 선지자가 말하되 그레데인들은 항상 거짓말쟁이며 악한 짐승이며 배만 위하는 게으름뱅이라 하니.
-사도 바울은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그레데 사람들의 특징을 세 가지로 요약합니다. 거짓말쟁이, 악한 짐승, 게으름뱅이, 이런 사람들이 지금까지 자신이 행해왔던 잘못된 행실을 완전히 끊어낼 수 있을까요? 거기에 더해서 변화하고 성장해서 교회 일꾼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그것이 가능하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성숙의 방법을 제시합니다. 이 시간 함께 나눌 말씀을 통해서 나의 상태와 주변의 상황을 뛰어넘어, 영적 성장과 변화를 실현하고 하나님의 귀한 일꾼으로 서는 모든 성도님들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디도서 2장 11절, 12절 상반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 디도서 2:11-14,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서 우리를 양육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그레데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성숙하고 변화할 수 있는 이유로 이것을 꼽은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기 때문에 우리의 성장과 변화의 가능성이 열렸다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은혜 무엇이 있습니까? 단 하나밖에 없습니다. 바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완성시키신 십자가 구원입니다. 이 십자가 구원은 자기 백성을 살리기 위한 하나님의 계획과 약속입니다. 이 하나님의 약속은 오랫동안 준비되어 왔습니다. 여기서 11절에 ‘나타나’ 라고 번역된 원문은 지금까지 보이지 않던 것이 드러났을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헬라 문헌 중에 이 단어가 언제 사용되는지 살펴보니까, 아침에 수평선에서 태양이 솟아오를 때, 밤에 구름이 흘러가는 중에 달의 모습이 나타났을 때 이 단어를 사용했습니다. 즉 감추어져 있던 것이 드러나 보이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부터 준비하신 구원의 계획이 때가 임함에 드러났습니다. 예수를 믿는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이 놀라운 은혜는 나의 성별, 사회적 위치나 혈통에 관계없이 주어집니다. 12절에서는 드디어 나타난 이 은혜가 우리를 양육하신다고 말합니다. ‘양육하다.’ 무슨 뜻일까요? 이 양육하다. 라고 번역된 원문은 지적인 학습이 아니라 실생활 훈련에 가까운 단어입니다. 우리나라 말에 가까운 의미를 찾으면 징계하다, 가르치다, 훈련하다 등의 의미로 번역이 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서 양육은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양육을 받으면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게 됩니다. 우리가 복음으로 말미암아 고난을 받는 것도 은혜고, 말씀을 깨닫도록 가르침을 받는 것도 은혜이며, 잘 하지 못하는 것을 잘 하도록 훈련받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을 받는 모습입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것, 그 자체가 은혜의 양육을 받는 것이지요. 이 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가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는 이유도 이 은혜에 근거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양육합니다. 우리는 믿는 자들의 모임 교회이지 않습니까? 은혜 공동체 교회에서 은혜의 양육이 이루어집니다. 말씀을 배우는 기회는 물론이고 실생활 훈련도 이루어집니다. 돌아보면 우리가 모였던 그 수많은 공동체들이 큰 훈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가 행하시는 이 양육을 받은 사람은 무엇이 다른 겁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어떤 모습으로 변화시킬까요? 우리 화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키시는지 읽겠습니다. 디도서 2장 12절 말씀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I. 하나님의 은혜는 과거의 잘못을 버리게 합니다.

*디도서 2:12,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버린다. 라고 번역된 원문은 아니라고 말한다. 포기(抛棄)한다는 뜻입니다. 누가복음 9장 23절 말씀처럼

*누가복음 9:23,
23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부인하고, 와 같은 단어입니다. 버린다, 라는 말은 부인하는 것입니다.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내려놓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거부하는 것입니다. 온전론에서 오정현 담임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듯이 십자가를 지는 삶과 자기 부인은 뗄 래야 뗄 수가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는 하나님의 은혜를 회복하는 핵심이자 시작이 됩니다. 그래서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 가신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들을 자기 의지로 포기할 수 있습니다. 경건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이나 뜻을 거스르는 삶입니다. 여기서 불경건과 정욕은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불경건과 정욕을 따로 두었지만 그 둘은 아주 밀접합니다. 세상에 속한 정욕들이 경건하지 않은 곳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멀어지면 자연스럽게 죄 성이 드러나고 이 죄 성이 온갖 세상 정욕들을 다 일으킵니다. 정욕은 인간의 본능적 욕구에서 비롯됩니다. 생리적 욕구뿐만 아니라 안전의 욕구, 인정받고 싶은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등은 배우거나 경험하지 않아도 모든 사람들이 원하는 것들입니다. 이러한 이 세상의 욕구가 나의 목표가 될 때, 이 세상의 욕구가 내가 정말 추구해야 하는 것 위에 올라설 때, 그것은 ‘정욕’이라고 하는 왜곡된 욕망이 됩니다. 정욕을 채우기 위해서 재정과 시간을 낭비하게 되고요. 스스로 합리화하면서 잘못된 방법을 찾고 죄를 짓습니다. 남의 이야기 같지만 누구나 본능적 욕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정욕으로부터 자유하다고 장담할 수가 없습니다.

여리고성 전투를 이기고 재물의 마음을 빼앗겨서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던 아간, 남편이 있는 여인을 자신의 침상으로 불렀던 다윗을 돌아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하고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아는 사람도 순식간에 정욕으로 빠지게 됩니다. 사람을 순식간에 판단력 흐리게 만드는 이 정욕, 본능적 욕구에서 비롯되는 정욕을 자의로 포기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반복되는 잘못이 죄책감이 되어버리지는 않습니다. 이 정욕을 정말 끊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은혜를 매일같이 채우고 경험하면 이 정욕으로부터 자유 함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 로마서 6장 15절 말씀 화면 보면서 함께 읽겠습니다.

*로마서 6:15,
15 그런즉 어찌하리오 우리가 법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아멘, 하나님의 은혜, 십자가의 사랑은 내 몸과 정신을 지배하던 정욕을 버리게 합니다. 스스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먼저 구하게 합니다. 내 삶을 좌지우지하던 잘못된 가치관과 목표를 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불경건한 것들을 떠날 수 있게 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에서 자유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 대신 지셨던 그 십자가의 무게, 그 죄의 무게는 우리가 가늠할 수가 없습니다. 누가 대신 질 수 있겠습니까? 오직 흠 없으신 어린 양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값없이 주신 그 은혜를 우리가 받은 것은 말 그대로 기적입니다. 은혜 회복의 시작, 예수님의 십자가 은혜에 감격하는 이 밤 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눈 뜨면 찾아오는 정욕과 죄책감으로부터 자유 함을 누리고, 과거의 잘못을 끊고 경건으로 2024년을 무장하는 저와 여러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같이 읽겠습니다.

II. 하나님의 은혜는 현재 필요한 것을 취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의 정욕을 버린 사람, 과거의 과오를 떠난 사람이 새로운 현재를 살 수 있도록 양육합니다. 창세기 12장 1절을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창세기 12:1,
1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내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고향인 갈대와 우르와 아버지의 집 하란을 떠나라고 말씀하셨고,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떠나라는 명령과 가라는 명령이 동시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우리가 세상의 것을 끊는 것과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것은 동시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과거의 잘못을 버린 성도는, 부인한 성도는, 떠난 성도는 자연스럽게 지금 현재 자신에게 필요한 것을 발견하고 취하게 됩니다. 사람이 어떻게 다른 이의 됨됨이를 완전히 바꿀 수 있겠습니까? 사람은 사람을 바꾸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도 할 수 없는 것, 하나님의 은혜로는 가능합니다. 사는 환경은 동일하더라도 은혜는 우리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하고, 듣지 못했던 것을 듣게 합니다. 그래서 말과 행동과 생각과 태도를 변화시킵니다. 그렇다면 은혜는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붙들고 살게 만듭니까? 디도서 2장 12절 말씀 우리 함께 읽겠습니다.

*디도서 2:12,
12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아멘, 은혜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을 가르쳐줍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버리고 나서 따라가게 될 것은 바로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덕목들은 본문에서 읽지는 않았지만, 디도서 2장 1절부터 10절에서 설명하고 있는 성도들에게 기대하는 내용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⓵신중함은 자신을 대하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신중한 사람은 어떤 일에도 침착하고 단정하지, 섣불리 결정하지 않고 진정으로 자신을 위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판단을 내립니다. 은혜의 양육을 받은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돌아보는 신중함이 있어서 시간을 허투로 보내지 않고 자신이 있어야 할 곳에 자리합니다. 그곳을 떠나야 한다면 신중한 판단 가운데 떠나고, 그곳에 남아야 한다면 신중한 판단으로 남게 됩니다. 자신의 본분을 지켜서 은혜와 예배의 자리, 봉사의 자리를 사수합니다.

⓶ 의로움은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서 드러납니다.
-의로운 사람은 올곧고 바른 삶을 살아서 공정(公正)하고 흠(欠)이 없습니다. 남에게 폐를 끼치거나 악하게 변질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유지함이 사람의 관계에도 드러나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고, 교회와 지체를 섬기는 데 아낌이 없습니다.

⓷ 경건함은 하나님을 향한 태도입니다.
-경건한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며, 기도로 친밀하게 교제하고 경건한 삶, 정결한 삶, 진실 된 삶을 살아갑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를 신중하고 의롭고 경건하게 살도록 만들어줍니다. 그 누구도 스스로의 능력으로 스스로의 힘으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은혜로 말미암아 받았고, 은혜로 말미암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은혜는 이렇게 사람의 인격도 바꾸고 인생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의 삶은 쉬이 변하지 않습니까? 왜 성장했다가도 후퇴합니까? 과거의 삶을 끊지 못하고 현재를 살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를 양육하는 은혜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느 정도 수준에 이르렀으니 은혜 없이 내 열심만으로도 신앙생활해도 상관없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내 힘을 다하여 살면 살수록 교만한 의인에 가까워지기 때문에 누구나 늘 새로운 은혜를 채우면서 살아야 합니다. 은혜는 한 번 받으면 일정 시간을 유지해 주는 회원권이 아닙니다. 한 번의 강력한 체험으로 반영구적 영구적인 자격을 얻는 것도 결단코 아닙니다. 은혜를 받는 방법으로 주신 말씀과 기도로서 새로운 은혜를 늘 내가 채우지 않는다면, 매주 매일의 은혜를 받지 못한다면 은혜를 망각하고 내가 떠났던 그 길을 향해서 다시 돌아가게 됩니다.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은혜의 자리에 나가면 그렇다면 어떻게 됩니까? 선하신 주님께서 다시 합당한 은혜를 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 거하는 삶을 회복함으로 신중함, 의로움, 경건함뿐만 아니라 덤으로 주시는 복들도 풍성히 받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는 우리는 어떻게 변화합니까?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킵니까? 함께 읽겠습니다. 디도서 2장 13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⓸ 하나님의 은혜는 미래의 소망을 기다리게 합니다.
*디도서 2:13,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아멘 은혜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소망을 품게 합니다. 소망의 역할이 무엇입니까? 이후에 이루어졌으면 하는 우리의 바람이 현재의 삶에 영향을 미쳐서 그것을 준비하게 만듭니다. 그것이 소망의 역할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망이 있는 사람과 소망이 없는 사람은 확연히 다른 삶을 살아갑니다. 좋은 소망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삶의 모습을 바꿉니다. 그런데 본문은 우리가 기다리는 소망에 대해서 복되다. 라고 설명합니다. 복스러운 소망이라고 기록하고 있죠. 예수님께서 복이 있나니 복이 있으리라 하시던 그 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복이 되는 소망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읽은 성경은 복스러운 소망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 이 두 가지를 우리가 기다리는 것처럼 기록해 놓았지만 원문에 정확한 번역을 옮기자면 복스러운 소망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즉 복스러운 소망, 즉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우리가 기다린다. 그 말을 풀어쓴 것입니다. 은혜의 양육을 받은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을 소망하면서 살아갑니다. 은혜의 양육을 받은 사람의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 영광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서두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다는 말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을 의미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미래에 나타나실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은 바로 예수님의 다시 오심입니다. 이것은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아닙니다.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다시 돌아오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22장 20절 말씀 함께 읽겠습니다.

*요한계시록 22:20,
20 이것을 증언하시니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아멘 지금도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기도하시는 예수님께서는 반드시 이 땅에 오십니다. 영광으로 나타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뜻과 구원의 계획이며, 우리의 남은 인생을 디자인하고 이끌어가는 소망은 이것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소망이 되면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게 되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게 됩니다. 미래의 소망을 기다리는 것은 수동적인 상태가 아닙니다. 능동적으로 움직입니다. 그렇다면 은혜의 양육을 받은 사람은 어떻게 능동적으로 움직일까요? 디도서 2장 14절,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디도서 2:14,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아멘, 선한 일을 열심히 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소망에 가득 찬 사람은 예수님께서 왜 나타나셨는지,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를 지셨는지, 하나님의 은혜가 나를 왜 양육하는지를 알아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면서 살아갑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한다는 말은 하나님의 사역과 교회를 위해서 시간과 힘과 물질로 헌신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망으로 품고 사는 사람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할 수밖에 없습니다.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도록 주님이 의도하셨다고 기록하지 않습니까? 그 의도에 그 뜻에 걸맞게 살아갑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라는 사실을 알게 된 성도는 가만히 있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의 생명, 자신의 물질, 자신의 재능, 자신의 경험, 모든 부분에 있어서 감사한 마음이 가득 차 견딜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받은 은혜를 삶으로 드러냅니다. 누가 인정해 주지 않아도 담담하게 충성을 다합니다. 디도서 말씀을 기록한 바울이 그 모범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 말씀 다 함께 읽겠습니다.

*고린도전서 15:10,
10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오, 오직 나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아멘 바울이 다른 사도들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이야기한 이유는 다른 사도들을 낮추거나 폄하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자신이 정말로 더 많이 수고했다고 자신을 드러내는 말도 아닙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 동안 그보다 더 최선이 없도록 사역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에서 자신이 받은 시간으로 자신이 받은 달란트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쉬지 않고 애써서 쏟아 부었기 때문에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과 역량을 온전히 사용하여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내게 주신 그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받은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주신 사역에 모든 것을 다 바쳐 충성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바울의 수고와 충성을 보면서 바울이 진짜 은혜를 아는 사람이었구나, 라는 명제에 동의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주신 비전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눈앞에 보여진 비전도 있지 않습니까? 우리 교회가 한국교회를 섬기고 ‘2033-50 비전’의 천병이 되어서 앞장서는 것도 미래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기다리는 우리의 최선입니다. 정말 버거운 사역처럼 보이지만, 정말 어려운 사역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사랑의 교회에 나에게 주신 목표이기 때문에 비전이기 때문에 바울처럼 모든 것을 다하여 수고하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열매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은혜의 감격에 몸부림치면서 더 많이 수고하면서도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우리가 고백할 때,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그 열매를 허락하실 것입니다. 우리 한국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것을 섬기는 우리를 변화시켜 주실 줄 확신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양육을 받는 저와 여러분들의 모습인 줄을 확신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이 우리의 유일한 소망이신 것을 믿으십니까? 그 소망을 아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수고합니다. 아무리 공로를 쌓는다고 해도 그 은혜는 갚을 수가 없기 때문에 은혜를 갚기 위해 수고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목적,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 수고합니다. 각자 섬기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담담하게 충성하는 저와 여러분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

정리하면,
오늘의 본문은 하나의 문장이며 한 덩어리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났고, 그 은혜가 우리를 양육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불경건과 세속적인 욕망을 버리고, 신중하고 올바르며 경건하게 사는 것을 취하고, 복스러운 소망,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며 살게 합니다. 혹시라도 나의 삶에서 부족한 모습을 어느 정도의 타협점이나 자체적인 경계를 정해서 합리화하고 있다면, 아직 옛사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불경건한 습관에 발목을 잡히고 있다면, 섬기고 있으나 예전의 뜨거움과는 다르다는 것을 자각하고 있다면 그때야말로 우리는 하나님의 강력한 은혜를 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양육에 다시 한 번 나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성장과 변화가 가능할까요? 하나님은 가능케 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에게 완벽한 선물입니다.그 은혜가 친히 우리를 양육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통한 성장과 변화를 묵상하니 다시 시작하고 싶은 마음이 들고, 이전보다 더 은혜를 사모하며 은혜를 회복하시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더 간절히 은혜를 구하며 나아갑시다. 은혜가 나를 양육하고 다스리도록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합시다. 그러면 모든 것이 가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이 나를 다스려서 자기를 부인하고 예수님의 십자가 능력만 붙들게 하십니다. 의식적으로 반복적으로 은혜와 예배의 자리에 우리가 나아갈 때 넘치는 은혜를 주실 줄을 믿습니다. 맡겨주신 비전과 사역의 기쁨으로 충성할 때 풍성한 열매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사랑의 교회 영가족,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그 주인공 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요약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한시도 바로 살아갈 수가 없는 자들임을 알고,. 세상에 경건치 않은 것과 정욕에서 자유 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 십자가의 능력을 의지하며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는 삶을 사모해야 한다. 우리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를 주님의 손에 올려드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양육 받는 삶을 구하며, 은혜의 양육으로 우리의 모습이 성숙한 하나님의 백성으로 변화되어야 한다. 선한 열심으로 담담하게 충성하는 주의 일꾼들이 되어 충만한 은혜를 받는 복스러운 소망, 예수님의 다시 오심을 준비하며 살아가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허락하신 은혜의 자리를 사모하고 사수하여 예비하신 은혜를 놓치지 않으므로 변화하고 성장하는 삶이 되고, 받은 은혜에 감사하고 받을 은혜를 소망함으로 은혜의 양육을 받을 때, 더 온전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야 한다. 오직 주의 은혜만을 바라고 소망하면서 하나님 은혜가 우리의 삶을 지배할 때에 우리의 모든 악한 본성과 우리의 죄악된 것과 게으르고 하나님 앞에 나약한 것들이 정말로 드러나며 하나님께서 우리의 은혜를 채우실 때에 주의 거룩함과 주의 은혜와 주의 사랑으로 우리를 덧입는 주의 용사로 하나님의 거룩한 찬양, 아름다운 자녀로 날마다 만들어 감을 기억하며, 우리가 날마다 자신을 포기하지 아니하며 주님 앞에 우리의 삶을 드려서. 그래서 늘 하나님의 은혜 안에 거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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