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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저녁기도회(주후 2021년 10월6일)

제목: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드러나려면''
말씀: (고린도전서 4:14~21)
설교자: 강대인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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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 4:14~21)
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야 할 고린도 교인들은 서로를 구별하였고 또 자신이 남보다 낫다고 여기 있었다. 하지만 그 실상을 바라보면 실제로 우월하다는 그 의식만 가지고 있었지 당을 지었고, 서로 나누면서 분쟁했다. 서로 헐뜯고 분쟁을 일으키는 모습이 그들의 실상이라는 것이다. 이에 바울은 아비의 심정을 담아서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 호소하고 있는 말씀을 전하고 있다. 바울은 오늘 본문을 읽기 전에 앞서서 그들에게 먼저 책망하고 또 왜 이렇게 교만하고 서로 분쟁하느냐고 계속 질책하였다. 하지만 오늘 본문에서는 좀 다르다. 앞서 질책하는 것과는 다르게 사랑이 넘치는 그러한 마음을 담아서 권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바른 신앙의 본보기로 살아가야 된다. 그렇게 이끌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랑의 권면으로 그들을 안아주고 또 품어주겠다는 것을 계속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가 그랬던 것은 고린도교회를 설립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실제로는 고린도 교인들에 대한 마음이 너무나 사랑의 마음으로 믿음의 자녀나 내 자식처럼 생각하는 그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사랑으로 그들에게 권면하는 것이다. 그들을 위해서 바울은 날마다 기도하고 날마다 말씀으로 양욱하면서 그들이 하나님나라의 길을 걸어가도록 간절히 원했다.

 
여러분들의 자녀가 혹시 곁길로 새나간다고 한 번 생각해보라. 자녀가 없다면 부모님께서 나를 어떻게 양육했는지 한 번 생각해보면 알 것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혹여 라도 좀 잘못된 길로 가거나 그것이 바르지 않다 라고 여겨지면 바로 부모님께서는 책망하거나 혹은 우리에게 잘 가르쳐주신다. 그 부모의 마음이 오늘 바울의 마음이었다. 때로는 혼내보기도 하고 때로는 당근을 주면서 이렇게 하면 하나님나아의 놀라움을 맛볼 것임을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왜 이렇게 바울은 그의 자녀도 아니면서 이렇게 안타까운 심정, 아비의 심정을 담아서 고린도교인들을 향하여서 말씀을 전했을까? 그만큼 사랑했기 때문에 진정성 있는 그 목자의 심정, 그 한 영혼을 바라보는 안타까운 심정이 이었기 때문에 바울은 그들을 향해서 아주 간절한 심정으로 권면하고 있다. 이런 바울이 권면은 또 우리를 향한 권면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의 모습을 한 번 바라보자.
 
우리도 고린도교인들처럼 서로를 바라볼 때 구별하고 있지 않는가?
다른 사람에 대하여서 우리가 판단하고 있지 않는가?
그리고 삶으로 우리를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말이 앞서는 그러한 인생이 되지 않는가?
우리는 교회 안에서 서로 믿음을 교제를 나누고 또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서도 자칫 잘못하면 자기도취에 빠지기 쉽다. 그때 영적 교만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고린도전서 4:20,
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않다. 바로 능력에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는 주님께서 다시 재림하는 그날에 도래할 그러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님께서 초림하시고 예수님께서 오신 이후에 성도들에게 구현되는 그 하나님의 나라를 이야기 하고 있다. 즉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성도님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그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직접적 바로 개입 하셔서 펼쳐지는 그 나라, 그곳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인 것이다. 그곳에 능력을 나타내 보이시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야 한다는 것이다. 최종적으로 완성될 그날을 고대하고 기다리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온전하게 이루어 나아가야 한다. 그런 하나님의 나라는 말이 아니고 능력이라고 오늘 본문을 말씀한다.
 
여기에 말이라는 것은 로고스, 즉 말씀인 것이다. 말씀이 없이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날 수 있는가? 불가능하다. 말씀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가 나타난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계시해 주셨기 때문에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라는 것을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나라가 계시되어야 그 하나님 나라가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즉 말씀은 우리에게 위대한 스승이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21절의 말씀은, 하나님 나라가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고 한다. 왜 그런가? 이 시대도 만찬가지이다. 여러분 이 시대에 말씀이 없어서 문제가 되는가? 아니다. 말씀은 넘치지만 능력이 없는 것이 비극이다. 말씀은 너무나 많은데도 불구하고 그 말씀이 살아 역사하지 못하는 것이 비극이라는 것이다. 정말 말씀대로 살아가는 사람, 말씀이 우리 삶을 인도하는 그런 사람이 없다는 것이 비극이라는 것이다. 그렇게 말씀을 따르는 모범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사람을 찾기가 힘들어졌다. 머리로만 안다고 하여서 그것이 진리가 된다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신앙을 생활이다. 어떤 활동이 아니다. 신앙이 인격이 되어야 한다. 우리 주님께서 먼저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따라서 살아가야 하는데, 이런 모범적인 신앙인이 없다는 것이 가장 안타까운 것이다. 지나간 시대를 바라보면 왜 교회가 정체 되었고, 또 선교가 밥보 상태가 되었겠는가? 그것은 바로 능력이 없고 신뢰가 사라졌기 때문이다.
 
복음은 그럴듯하게 이야기 하고 있지만 그에 상응하는 능력이 따라주지 못하니까 사람들이 교회를 불신하고 또 복음에서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운데 나타나야 할 것은 바로 능력인 것이다. 가시적으로 실체가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우리 인격과 우리의 삶이 변해야 되고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그렇게 하나님의 나라가 능력으로 우리 가운데 드러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를 체험하기 위해서 몇 가지 살펴보자.

▷하나님 나라에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I. 겸손해야 한다.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다 거져 받았다. 우리가 날 때부터 우리가 뭔가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없지 않는가? 지금 내가 한 것은 내가 한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도록 해주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을 주셨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런데 오히려 우리는 가진 것을 가지고 남들에게 자랑을 한다. 나는 이런 은사를 주셨다.~~그것을 가졌다고 남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스스로 우월하게 생각하며 자가당착에 빠진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바로 영적으로 교만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을 직접 보여주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주셨다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자랑할 것이 전혀 없다. 왜? 우리에게 은혜를 선물로 주셨기 때문이다. 그렇다. 그래서 바울은
 
*고전 4:7,
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 3가지이다. 이렇게 세 가지 질문을 하고 있다.
첫째는 누가 당신을 남과 구별하여 구별하였나?
둘째는 당신이 가지고 있는 것 중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 있는가?
셋째는 그 모든 것을 받았다면 왜 받지 아니 한 것을 자랑하고 있는가?
 
어떤 사람은 이렇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적게 받았고, 어떤 사람은 누구는 너무 많이 받았다. 그래서 이것은 불공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우리가 영적 교만에 빠지게 되면 뭔가 내가 낫다고 우월의식을 갖게 된다. 이 우월의식이 무섭다. 왜? 남들과 비교하면서 남을 대적한다. 저런 사람은 만나서 안 된다. 라고 판단하는 것이다. 이런 비교의식을 타파해야 한다. 하나님 주신 것에 그저 감사해야 함으로 겸손히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난 그래도 넘 작게 받았고, 나는 흙 수저인데, 다른 사람에게는 저렇게 많이 줄까라고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달란트의 비유를 보면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이런 생각을 했다. 자기 주인에 대해서 말한 것은 저 주인은 ‘굳은자’이다. 라고 말한다. 무슨 뜻인가? 악한 인격을 소유했다는 것이다. 노동을 착취했다는 것이며 종들의 노동력을 착취해서 불노소득을 얻는 아주 파렴치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데 여러분, 이 달란트도 한 달란트 비유도 어마어마한 것이다. 우리 주인은 마음이 그렇게 굳은자가 아니다. 오히려 우리 가운데 후히 주시길 원하고 흔들어 넘치도록 주시길 원하신다. 그래서 우리가 주신 것에 감사해야 한다. 감사함으로 비교의식을 타파할 때 그때에 겸손해 질 수 있다.
 
▷하나님 나라에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II. 위탁해야 한다.
 
-맡겨드려야 한다. 위탁한다. 라는 것은 위탁한다는 것은 좀 다르다. 위탁한다는 것은 맡길 수도 있고 나중에 때가 되면 다시 찾을 수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데 위탁은 전적으로 다 맡기는 것이다. 나중에 찾을 수도 없다. 한 번 맡기면 그 다음에는 찾지 못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위탁이다. 우리의 삶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 그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삶에 드러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 전적으로 위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런데 위탁이 안 된다. 내 판단대로 나갈 때가 참 많다. 문제는 내 판단의 기준이 내 유익에 따라 바뀌어 진다. 언제는 이렇게 판단했다가 언제는 또 이렇게 판단 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의 판단인 것이다. 그것은 바른 판단이 아니다. 우리를 의롭다 여겨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판단할 것이 전혀 없고 그리스도의 판단에 맡겨드려야 한다. 내가 판단하겠다는 것은 오히려 내가 심판하겠다는 것과 같다. 그것은 하나님의 권위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인간은 언제나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부족하다. 우리의 생각은 온전치 못한다. 그렇게 맞을 수도 있고 틀릴 수도 있다. 그래서 내가 판단하면 그것은 잘못된 판단이 될 수 있다. 판단하려면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겨드리자. 하나님께서 감찰하시고 판단하시도록 맡겨드려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위탁인 것이다.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도록 우리는 맡겨드려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의 때가 우리들 가운데 분명히 있을 것이다. 하나님, 언제, 어떠한 것입니까? 라고 묻는 그때에 하나님은 그 카이로스의 때가 온다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언제이냐? 우리의 한계를 인정할 때, 우리가 연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탁하고 나아갈 때 하나님의 나라에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이 일하실 수 있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에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III. 충성해야 한다.
 
*고전 4:1-2,
1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2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복음의 비밀을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하나님 나라의 계시를 비밀로 맡은 자들이 구할 것이 있다면 충성이다. 우리가 위이 받은 것이 있다.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이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서 일하시고자 맡겨주신 분명한 것이 있다. 그 맡겨주신 것을 가지고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 충성되이 섬겨야 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비교하고 있다. 나에게 이런 것이 있지, 나에게는 저런 것이 없어, 그렇게 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저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최선을 다하여서 맡겨주신 것이 아닌가? 그래서 우리의 삶은 청지기적인 인생이 되어야 한다. 맡겨진 것에 대하여서 묵묵히 감당하는 삶, 주인의 의도를 잘 따라서 그 사명대로 걸어가는 인생길, 그것이 바로 청지기적인 삶이다. 주인은 어떤 것을 기뻐하시는가? 맡겨진 것을 잘 감당할 때, 적극적으로 그것을 감당함으로 살아갈 때, 그때 주인이 기뻐하신다. 우리가 정말 청지기라면 주인이 맡겨주신 것에 대하여서 그저 충성되이 섬기면 되는 것이다. 그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다. 각각 은혜를 맡은 청지기 같이 쓰임 받을 때, 그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우리 가운데 나타나는 것이다.
 
※장깔벵은 이렇게 청지기를 정의하고 있다.
‘건전하고 지혜로운 생각으로 양심의 순결성을 지켜 나가는 자다.’ 무슨 말인가? 세상의 여러 가지 압력이 있다 할지라도 우리 가운데 많은 압박이 있다 할지라도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우리에게 주신 양심의 그 순결성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그렇게 청지로서 하나님 앞에 소신 있게 나아가는 그러한 삶이 나타날 때, 그때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중에 드러나게 된다.

▷하나님 나라에 능력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IV. 십자가를 져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정말 높은 자리를 예비한 자들, 영광의 면류관을 예비한 자들, 그런 자들에게 땅에서는 낮추어 주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왕 노릇하지 않는다. 오히려 낮아지고 섬기며 나아간다. 그 영광의 면류관을 쓰려면 십자가의 수고와 고난을 감내해야 한다. 그 피와 그 땀과 눈물 없이 그 영광과 기쁨으로 나아갈 수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서 우리가 함께 받아야 할 것은 바로 고난이다. 생명의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 세상에서는 죄송하지만 가시 면류관을 쓰고 싶지 않지만 바라보아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가장 비참한 자리로 몰고 가실 때가 있다. 참 끔찍하고 난감하다. 믿음의 선진들은 어떠했는가? 그분들은 이 땅에서 영광 된 삶을 살지 않았다. 예수님의 사도들을 바라보면 대부분 순교했다. 순교하지 않는 요한도 심한 박해를 당하였다. 하나님 나라의 능력은 이 땅을 살아갈 때, 자신을 기꺼이 주님 앞에 희생할 그 때에 드러나게 된다. 우리의 전적인 희생, 그래서 우리가 높은 자리에 있다 할지라도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서, 그의 이름을, 그의 뜻을 위하여서 헌신하고 희행하며 나아가야 한다. 이 중에 누가 고난을 바라고 그 고난 가운데 살기를 원하겠는가? 그리스도와 믿음의 선진들은 많은 고난도 당하고 또 수모(受侮)도 당하였지만 우리는 그저 은혜를 받기를 원하고, 축복을 받기를 원하고 있다. 그래서 나의 배부름과 안락을 위해서 마치 은혜를 모르는 자처럼 살 때도 많이 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고 있는 은혜와 또 축복은 선조들이 우리를 위하여서 피 흘리고 땀 흘리고 눈물을 흘렸기 때문이다. 그 결과로 우리가 이렇게 편하게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고 믿음으로 말미암는 놀라운 은헤의 축복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여러분, 양화진에 가보면, 우리 민족을 위해서 일생을 바친 외국 선교사님들, 그분들의 묘가 있다. 또한 그 가족들이 안장되어 있다. 당시 선교사님들은 정말 잘 알지도 못하는 변방이라는 코리아 한국에 가서 복음의 빛을 위해서 헌신했다. 자가 목숨까지 바친 것이다. 오죽하면 언더우드 기도문에 처음에 어떻게 시작하고 있는지 아는가? 기도 처음에 이렇게 나오고 있다.
-“주여,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그저 어둡습니다. 막막합니다. 한 걸음을 걸을 만한 빛도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조선의 마음도 보이지 않고 해야 할 일도 보이지 않습니다. 주님 부르셔서 이곳 가운데 왔는데 무얼 해야 합니까?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더우드 선교사는 끝까지 순종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았지만 그 메마르고 가난한 땅에 복음의 씨앗을 심기 위하여서 그저 순종했다. 그들이 사는 인생길에 고통이 고통인 줄도 모르고 그 삶이 저주로 온 줄도 모르고 그 삶이 그 인생길을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그 복음의 씨앗을 되살리고자 헌신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도 어떤 선교사님은 끝까지 주님께서 펼쳐주실 미래를 기대하고 소망한 것이다. 믿음의 보고들 드린 것이다. 그 분은 십자가의 길임을 당연히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가고 순종하였던 것이다. 그러면서 예배당도 없고, 학교도 없고, 병원도 없는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계속적으로 심기 시작하였다. 여러분 그런 선교사님들의 희생이 없었더라면 우리가 어찌 편하게 예배를 드리고 은혜 가운데 만족함을 누릴 수 있겠는가? 그렇게 우리도 세상에서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주변의 이웃이 있다면, 죽어가는 자가 우리 주변에 있다면 그들을 위하여서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헌신하며 세상으로 나아가야 한다. 여러분 지금 이 시대는 복음을 전하기가 힘들다 라고 많이들 이야기 한다. 하지만 분명히 나아갈 길이 있다. 미래의 보고서를 써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써 나아갈 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가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실체가 드러나기 위하여서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드러나기 위하여서 우리가 기꺼이 헌신해야 되는 것이다.
 
‘사랑의 전도단’을 섬기면서 코로나 기간에 어떻게 전도해야 할지를 많이 고민했다. 그리고 기도했다. 하나님,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동안 해왔던 사역지가 다 막혔습니다. 병원에, 부대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여기에 들어가서 전도하려고 하면 자꾸 쫓아냅니다. 전도하려고 하는 그 모든 현장마다 우리를 받아주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그렇게 부를 때 하나님께서 오히려 길을 열어 주셨다. 전도자들의 마음을 열어주셨다. 그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복음의 능력으로 복음의 씨앗을 지금도 계속적으로 심고 있는 것이다. 각각 자신의 처소에서 만나는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하나님께서는 놀랍게도 열매로 거두어 주셨다. 지금도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이 부르심에 응답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 길이 비록 십자가의 길이라 할지라도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우리가 믿고 따르며 미래의 보고서를 써 나가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드러나려면 우리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한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다.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려면 우리 가운데 능력이 나타나야 한다. 실체가 나타나야 한다. 이 시대를 변혁하는 그 길은 말이 아니다. 언변이 아니다. 무엇인가?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위탁하고 맡겨드리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사명을 충성되이 감당할 그때에 하나님의 나라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 길이 비록 천하고 낮은 길일지라도 기꺼이 십자가를 지고 갈 때, 하나님 나라의 능력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다 들어주시는구나, 어디에서? 우리의 가정에서, 우리의 일터에서, 우리가 가는 그 공동체 안에서, 우리가 혼자 있을 그 때에도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가 있어야 한다. 그 하나님의 통치권을 인정하게 되면 그때부터 우리는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담임 목사님께서 이 어둑한 시국 가운데 새로운 시대를 견인하는 그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 시리즈를 계속하시고 계시지 않는가? 여러분 이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고 누리고 있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면 어떻게 되는가? 이 겨자씨 같은 인생길에도 산을 옮길만한 그러한 믿음을 허락해 주신다. 그 능력이 우리들 가운데 생기게 되는 것이다. 할렐루야!!!~~
 
여러분, 얼마나 진흙과 같은 인생길을 걸어가고 있는가? 그 인생길을 바로 진주와 같은 인생길로 바꾸어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인도하신다는 것을 날마다 믿고 성령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는 말로만 아멘이라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여기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삶으로 실체가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처럼 되고 예수님처럼 사는 인생, 정말 어떻게 그 길을 걸어가셨는지 매순간 바라보면서 살아가는 인생이 되어야 한다. 그래서 말로만 고백하지 말고 정말 하나님 나라의 능력을 드러낼 수 있는 우리 모두가 되면 좋겠다. 모든 성도들 가운데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성령 충만한 인생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소망한다.
 
♣요약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여 주시고 친 백성 삼아주셔서 그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 누리는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 살아감에 감사하고 연약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지만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의 능력으로 우리를 해결해 주셨으니 우리는 주님의 은혜로 늘 살아가며 은혜 없이는 하루도 살수가 없듯이 우리 가운데 주님이 개입하셔서 내 뜻대로 살지 말고 교만하지 않도록 인도해 주실 것을 믿고 비록 힘든 길일지라도 전적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통치권 앞에 위탁 드리며 주님을 인정하며 사는 삶을 살아야 한다. 충성되게 십자가의 길을 끝까지 걸어가서 우리의 삶에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서 어디서든 하나님 나라의 능력만을 드러나게 살아야한다. 우리의 연약함이 드러내는 것이 아닌 말씀을 좇아 겸손하게 주님께 맡기고 충성되고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통해 드러나고 주님의 온전한 제자로서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겨드리며 충성스럽게 주어진 사명 잘 감당하고 어려운 순간에도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며 기꺼이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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