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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12월 16일)

제목: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

말씀:시편 2:1-8절

설교자:김완기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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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2:1-8)
1 어찌하여 이방 나라들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헛된 일을 꾸미는가. 
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3 우리가 그들의 맨 것을 끊고 그의 결박을 벗어 버리자 하는도다. 
4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 
5 그 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사 그들을 놀라게 하여 이르시기를. 
6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 하시리로다. 
7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8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 나라를 네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오늘 수요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갑절의 은혜를 사모하길 원한다. 도 우리는 코로나로 인해 불 확신성이 극대화 되는 시대를 살아가도 있다. 금주 수도권을 비롯해 코로나 1일 확진 자 수가 천명이 넘어서고 있다. 급기야 거리두기 3단계를 해야 된다는 이 소식까지 지금 들려온다. 지금까지 우리는 개인위생은 물론이고 철저한 방역으로 이 코로나시대가 하루 속히 종식되길 기도하며 행동으로

옮겨왔다. 하지만 상황은 헌신적인 의료진의 수고 떠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너무나 고통 가운데 우리는 오늘 하루를 보내며 또한 내일 염려하며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 같은 상황에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더 힘들게 하는 한 가지 상황이 또한 발생하고 있다. 그동안 잠잠하던 언론들은 교회 발 코로나 확진 자 수를 매일 자세한 정보도 없이 교회 이름과 확진 자 수를 적어내고 있다. 몇몇 주의를 소홀히 했던 교회의 작은 실수가 마치 한국교회 전체의 실수의 것 인양 그리고 환경과 시설이 열악해서 정말 한순간 소홀해서 그 작은 실수를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게 한 것 인양 보도 하고 있다. 이 현실 속에 우리는 고통 속 이것만으로 힘 드는데 더 깊은 고통 속에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리스도인 들은 이중적인 고통 속에 머물고 있다. 이중적인 고통 속에 머물고 있다. 교회를 향한 이 날선 비난 앞에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가?

고난 가운데 하나님의 약속'이란 설교를 하게 되었다. 분명 우린 고난 가운데 있다. 세계적인 이 팬더믹 현상가운데 물론 우리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와 동시에 그리스도인으로 이 시간 살아가는 데에 모이지도 못하고 또한 모이면 손가락질 받고 비난 받는 이러한 이중적인 잣대 가운데 우린 또 다른 고통 속에 지나가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가슴 아프다. 최근 몇몇 성도님들께 이러한 이야기들을 들었다. 코로나 시대에 교회 가서 예배를 하고 왔다고 해서 동료들이 은근히 자신을 피한다는 소식이다. 공무원 교육기관 종사자들 특별히 의료기관 종사하는 많은 성도님들은 만약 예배에 참여했던 것이 발각이 되면 불이익을 받거나 실직까지 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집합금지업종의 직장을 가진 성도님들은 교회를 나가지 않았다고 해야 한다고 한다. 급기야 이런저런 이유들로 가슴 아픈 사연들도 들었다. 더 많은 사례들이 있지만, 분명히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고난 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 뿐만 아니다. 위에 언급된 특별한 직업군을 가진 성도님들은 예배하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여서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을 지고 있다 현장예배 참석하지 못하고 온라인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이 이 예배를 받으실까를 생각하며 교회 나오지 못함을 담당교역자나, 성도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이러다가 내 생활이 엉망이 되지는 않을까를 고민하고 있고, 이렇게 불 확신성이 극대화 되면서 하나님은 그저 침묵하고 계신 것이 보인다. 그러나 성도님들!! 하나님은 결코 이 상황을 방치하시지 않는다. 지금 하나님은 고난 속에서 약속을 믿고 의지 하는 자들을 찾고 계신다. 오늘 본문을 통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고자 하는 뜻을 함께 발견해 보기를 원한다. 우리는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시편 1편을 암송하기도 하고 친숙하게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곧 이어 나오는 시편 2편은 참 낯설고 어렵게 느껴진다. 다시 살펴보면 시편 1편과 2편의 시는 문학적인 통일성을 가지고 있다. 그 예로 1편은 복 있는 사람으로 시작한다. 그러나 2편은 맨 마지막에 가서 복 있는 사람으로 마쳐진다. 시편 1편의 처음은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한 사람을 가르쳐 복 있는 사람이라 한다. 2편은 마지막은 그 아들에게 입 맞추지 않으면 길에 망한다고 말하고 있다. 이러한 문학적 통일성을 통해 두 편은 한 편의 시였을 가능성이 크다. 특별히 우리가 시편 2편에서 눈여겨 살펴보아야 할 점이 있다. 다름 아닌 다윗언약의 핵심을 담고 있다. 비록 시편 2편에서 문자적으로 다윗, 다윗언약 표현은 등장하지 않지만, 다윗의 언약의 진수가 시편 2편이다. 다윗의 후손은 여호와의 기름 은자가 되고 시편 2편에 전체를 통해 말한다. 언약 관계 속에서 이방나라를 유업을 받는다고 약속을 받게 된다. 시편2편을 더 자세히 보면 1-2절은 분위기가 밝지 않다. 참담하고 암담하다. 하지만 놀라운 반전이 있다. 4절에 하늘에 계신이가 웃으심이여~~ 이제 하나님의 위대한 반전의 역사가 등장한다.

 

고난 속에서 하나님은 침묵하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을 이어나가시며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언약을 완성시켜 나가시는 하나님의 위대한 이 언약의 계승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시편 2편이다. 힘들고 어려운 상황 속에서 복 있는 사람은 고난 가운데 신실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해서 희망을 기대하고 바라보고 있어야 된다는 신학적 메시지를 우리에게 던져 주신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서곡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서곡으로 받아야 한다. 원래 서곡은 오페라나 연극이 시작되기 전에 막이 내려진 채 오케스트라가 연주하는 것을 말한다. 이 서곡은 단순히 분위기를 띄우려는 목적이 아니다. 이 서곡만 들으면 이 내용이 어떻게 전재될지 이 내용의 마지막은 어떻게 될지를 듣기에 암시의 역할을 한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도 마찬가지이다. 에피타이저도 우리의 입맛을 돋우기 위해서 먹는다. 에피타이저를 통해서 앞으로 어떤 메인 요리가 나올지를

알게 되기도 하고 상상할 수 있다. 결국 이 고난이라는 것은 장차 있을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의 위대한 선물의 에피타이저, 서곡과 같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란다. 지금 이 그리스도인의 고난이 극심함과 최절정에 다다랐을 때에 이 초대 교회의 시절이다. 시대적 정황을 엿볼 수 있는 것은 사도행전 4장 25-26절이다. 시편1-2편과 그대로 담겨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잘 알았다. 일찍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시편 2편 1-2절의 예언이 예수님의 고난을 통해 성취되었음을 이들은 고백한 것이다. 시편2편의 고백이 그들에게 하나님의 이러한 약속 성취의 서곡과 같았다. 그래서 초대교회 성도들은 지금 받은 이 고난을 바로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는 그 처음 출입문 서곡과도 같았기에 이 고난을 결코 두려워하거나, 도망하지 않고 그들은 고난 한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교회 성도들은 시편 2편에서 지금 자신을 통해서 온전히 이루어지기를 원했다. 그리고 그들은 인정했다.

그래서 온 교회가 헤롯과 빌라도의 위협적인 세력이 유대 지도자들을 통해 우리에게 다가올 때 하나님께서 이 상황을 아시고, 조치를 취해 달라고 간절하게 이 사도행전 4:25-26절, 시편 2편 1-2절의 기도를 하나님께 올려드린 것이다. 하나님의 위로, 하나님의 영광의 서곡의 신앙을 이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렇게 온전히 살아갔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 하나님의 약속 성취의 통로가 되어야 한다. 통로란 무엇인가? - 오늘도 우리가 물을 마실 수 있는 것은 바로 한강에 있는 수도관이란 통로를 통해 지금 우리가 사는 곳까지 끌어올 수 있기 때문이다. 통로는 자기 자신에게 어떠한 이그넘과 같다. 시간이 지나면 닳고 닳아지는 것이다. 이천 년 전 초대교회 성도들도 이 통로의 역할에 충실했다. 교회 안팎으로 교회가 핍박 가운데 놓여 있을 때에 그들 자신에게 유익은 없었을 것이다. 그들은 아는 사실이 있다. 우리가 통로가 되었을 때에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언약, 그 약속은 온전히 세상 가운데 전파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고난 받는 그 장면을 생생히 목격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고난에서 그친 것이 아니라 사흘 만에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승천하시는 영광스런 모습을 그들은 직접 목격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지상 대위임 명령인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하는 이 명령을 주셨다. 이들은 철저하게 통로의 인생을 살았다. 어떤 통로인가? 하나님의 약속, 하나님의 언약이 성취되는 통로의 역할이었던 것이다. 그들은 기억했다. 이렇게 시편 2편의 예언이 이미 예수님 자신이 그 고난을 통해 성취하셔다는 것을, 그리고 이제 그 고난의 주인공이 우리들 즉 그들이 주인공이 되어 있다라는 사실이다. 2020년 12월 지금 우리의 상황도 이때와 비교 한다면, 사실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사탄은 세상의 군왕들과 관원들을 통해 여화와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고 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행동이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러한 위협 앞에, 핍박 앞에 대항하지 않았다. 그들 스스로 예수님처럼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 주었다. 예수님은 그 털 깎는 자 앞에 순한 양처럼, 도살 창에 끌려가는 어린양의 모습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에 이들도 온갖 핍박앞에 반응하지 않고, 대항하지 않고, 그 고난을 스스로 받아들였다. 마치 예수님처럼,... 그들은 예수님의 순종하는 그 모습이 하나님의 언약의 길임을 알았다.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방법임을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하게 주님을 붙잡고, 더 매달려 나아갔다. 우리 성도님들도 이 어려운 이때에 철저한 협조와 희생을 하고 있지 않는가?? 방역지침의 우리는 선제적으로 협조하고 대응해 오고 있다. 또한 안성수양관을 코로나 병상으로 지원했다. 그뿐만이 아니라, 코로나로 힘든데 수해를 입은 구례를 방문해서 우리의 사랑을 전달했다. 지금도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온전히 전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통로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흘러 보내는 아름다운 이 모습을 지금 보여주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의 고난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는가?

하나님의 약속성취를 위해 갈망하며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힘들 때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힘들고 지쳐있다. 그 때 필요한 것은 위로와 격려의 말 한 마디이다. 어떠한 선물이나 보상도 좋지만, 그 순간 수고 했어 많이 힘들지를 하면 그 한 마디가 그 들에게 큰 힘이 된다는 사실을 살면서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우리가 힘든 순간을 보내면서 위로받고 싶고 격려 받고 싶다. 이럴 때 우리도 사람의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지만 그보다 더 큰 하나님의 위로와 격려가 정말 필요할 것이다. 이러한 위로와 격려를 하나님이 그냥 주시는가? 아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로하시며, 우리에게 새 힘으로 격려해 주신다. 예루살렘 교회와 초대교회는 고난당하는 가운데 이 시편 2편의 기도를 자기 자신의 기도로 승화시켰다. 그들은 왜 고난을 당하는지 시편 2편을 통해 분명히 깨달았다. 예수님의 고난, 이 고난은 자발적 순종의 고난이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 자신이 유익이 아니라 하늘 아버지, 성부 하나님의 뜻을 순종하고 이루기 위한 자발적 고난에 순종의 고난이었다는 것을 몸소 받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 자신은 이제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우리를 억누르는 고난을 회피하고 도망가는 것이 아니라. 그 고난 앞에 우리가 당당히 맞서면서 내가 오늘 당하는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언약이 흘러나가고 하나님의 그 언약이 성취되어 기쁨과 감격이 있었던 것이다. 바로 그 기도를 올려드린 것이다. 그래서 시편 2편에 말씀에 비추어 그들은 기도했고, 하나님의 언약 약속의 성취를 이에 대한 근거로 간절히 간절히 매달려 온 것이다. 놀라운 것은 이렇게 기도했더니 그 결과가 있더라는 것이다.

이같이 사도행전 4:31절에 - 그들이 모여 기도했더니 하나님은 침묵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진동하여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 말씀을 전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여기서 진동은 모세가 시내 산에서 하나님의 강림하실 때 느꼈던 그 장면을 말한다. 또한 사도 베드로에게 임했던 성령이 임해서 그들 가운데 충만해져서 사도 베드로처럼 말씀을 선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강력한 성령 충만의 임재를 느낀 현장이었을 것이다. 하나님은 기도하는 그들에게 응답하는 역사를 친히 보여 주셨고, 이들은 하나님의 역사의 산 증인들이 되어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로 그들이 인생을 살아간다. 하나님은 결코 침묵하지 않으신다. 우리기도 가운데 즉각적으로 반응 하신다. 2020년 12월 지금 우리는 그러므로 더욱더 간절히 기도해야 할 때이다. 어떤 성도님은 교회를 향한 이러한 정부의 대응에 불편해 하는 분도 있다. 또 어떤 성도님은 우리가 스스로 더 조심해야 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생각과 우리의 의견들은 모두 다르다. 하지만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할 것은 세상을 대항하는 무력과 폭력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역사적으로 세상은 항상 하나님을 대적해 왔다. 그리고 그의 제자들과도 맞섰다. 하지만 주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성화 앞에 대항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이 자기 자신을 온전히 내어놓고 고난당하는 것이 바로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으로 이해했다. 그렇다면 우리도 이와 같은 온전한 제자로서 이러한 길로 나아가야 한다. 각자의 목소리와 의견을 내기보다는 이런 저런 불만을 표출하기 보다는 우리가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기도를 통하여 만약 고난을 주신다면 받고 이를 통해 다른 사람들이 주님을 알아 갈수만 있다면 흘러 내려져 가는 그 통로가 될 수 있다면 이러한 고난은 달게 받겠다는 각오가 되어야 한다. 이러한 기도가 우리 가운데 흘러 넘쳐야 되지 않겠는지요?? 우리는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하나님의 어린양, 바로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이다. 우리 다 함께 2편 8절을 합독하자. “내게 구하라, 내가 이방나라를 네게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주리라.”- 내게 구하라고 하신 것은 하나님께 기도하라고 하는 것이다. 기도하기 힘드신가? 주님을 더욱 의지하라, 예수님은 기도하라고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이 땅에서 순종하셨고, 지금도 하나님 우편의 천상에서 기도하고 계신다. 우리의 보존을 위해 기도하고 계시는 예수님을 위해 온전히 기도를 주님께 맡겨야 한다. 시편 2편 12절 하반에는 이렇게 말씀한다. 고난을 허락하신 분도 하나님이시고 이 고난을 해결 하실 분도 오직 하나님이시다. 그러니 이 고난, 고난이 극심할수록 우리는 다른 사람을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늘 이 말씀 여호와께 피하는 모든 사람은 다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 말씀을 기억해서 우리도 돌아와야 한다. 시편 1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시작했다. 주야로 묵상 하는 자에게 복이 있다라고 시편1편은 말씀하신다. 시편 2편에서는 힘들고 어려울수록 결국 하나님이 반전의 역사를 이루어 주시기에 주님 품으로 돌아오라, 주님 품으로 안겨라 하고 말씀을 하신다. 예수님도 고난 가운데 하나님께 기도했다. 이 때 하나님은 너 내 아들이라 하시며 온 열방을 예수님께 주셨다. 지금 이 교회 밖에는 성탄목이 비추어 밝히고 있다. 성탄목을 보면서 감동을 못 느꼈었다. 그런데 올해 바라보는 성탄목이 더 다르게 보인다. 캄캄할수록, 별은 더 밝게 빛난다. 지금 한국 교회의 분위기가 힘들다. 그래서 어떤 교회들은 성탄목조차 설치를 못했다고 들었다. 사회적 분위기 자체가 많이 힘들고 어둡고 어렵다. 이런 상황가운데 우리 교회 성탄목은 그 어느 때보다도 밝게 비치고 있다. 이 성탄목이 예수님의 보혈을 상징한다.

방울마다 달려있고 방울마다 285여개의 북한 교회들의 명단이다. 남북으로 나누어지기 전에 그 교회들의 이름이 성탄목에 달려있다. 어두워진 북한 땅을 우리의 기도로 밝혀야 한다. 우리 한국교회 속에도 우리의 눈물 씨앗을 뿌리며 더욱 밝게 비추어야 할 것이다. 우리가 앞으로 이 교회 앞마당을 다니면서 기도하는 심정, 이 성탄목이 더욱 더 이 어두운 세상을 밝히는 영적 등대의 역할을 해야 하는 간절한 기도를 해야 한다. 예수님은 시편 2편을 기도하셨고, 초대교회 성도들도 시편2편으로 기도했다. 주님 된 제자의 우리도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하겠는가? 더 높은 차원의 기도 시편 2편의 기도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불 확신성인 극대화 된 이 시대에 확실한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신앙을 통해 온 열방에 하나님의 뜻대로 퍼져 나갈 것이다. 간절히 믿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이 더욱 어두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세상을 더욱 밝히는 영적 등대가 되길 기도해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는 줄 믿는다.


♧ 요약

메시아의 우주적인 통치와 그것을 반대하는 세속 권력자들의 어리석은 저항을 묘사하고 있다. 행 4:25-26에 인용된 대로 헤롯과 빌라도에게 고난당하신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시이다.

시편 2편은 메시아 예언시이다. 1-3절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의 심리를 증거하고, 4-6절은 그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을 증거 한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온 땅과 거기 있는 왕들을 통치하시며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를 대적하는 자들을 보고 웃으신다. 주님)이신 그는 그들을 비웃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때에 분을 발하며 진노하셔서 그들을 놀라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긍휼과 사랑이 풍성하신 자이지만, 또한 그를 대적하고 악을 행하는 자들에게 분노하시는 자이시다. 그가 노하시면 모든 사람은 다 놀라며 두려워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놀라게 하시며, “내가 나의 왕을 내 거룩한 산 시온에 세웠다”고 말씀하실 것이다. 원문에는 ‘내가’라는 말이 강조되어 있다. 그것은 메시아를 거절하고 대적하는 땅의 왕들과 하나님을 대조시킨다. 또 ‘나의 왕’이라는 말은 사람들에 의해서나 사람들의 혈통에 따라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특별한 작정과 뜻에 따라 세움을 받은 왕이라는 뜻이다. 메시아는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행할 왕이시다.

‘내 거룩한 산 시온’은 하나님께서 구별하신 예루살렘을 가리킨다. 하나님께서는 거기에 거하신다. 하나님께서 그의 왕 메시아를 그 곳에 세우신다는 것은 메시아께서 그 곳에 오실 것을 가리킨다. 그는 육체로 그 곳에 오셨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을 주와 그리스도로 확증하셨고(행 2:36), 그의 복음이 예루살렘으로부터 온 땅에 전파될 것이며 장차 재림하심으로 온 세상을 심판하실 것이다. 하나님의 언약은 우리의 신앙을 통해 온 열방에 하나님의 뜻대로 퍼져 나갈 것이다. 
우리는 이제 간절히 믿고 기도해야 한다. 세상이 더욱 어두울수록 하나님을 의지하고 이 세상을 더욱 밝히는 영적 등대가 되길 기도해야 한다.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약속의 통로가 되어 하나님의 온전한 제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웃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선한 사마리아인이 되어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이 땅에 온전히 전하고자 애쓰고 있는 것이다. 어느 곳에서 인정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통로가 되어서 하나님의 언약의 통로로 하나님의 약속 성취를 흘러 보내는 아름다운 이 모습을 믿고 실천하여 그리스도인에게는 본이되게 살아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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