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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예배:(주후 2020년 12월 30일)

제목: "삶의 퇴로(退路)가 막혔다고 느껴질 때"

말씀: 출애굽기 14:10-16절

설교자: 조철민 부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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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애굽기 14:10-16절

10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11 그들이 또 모세에게 이르되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12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

1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14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올해 생각나는 가장 의미 있는 단어가 있다. 두 가지가 떠오른다. 마음과 뇌리에 가장 남아있는 단어이다. 하나는 '돌아오면 회복된다'와' 또 하나는 '코로나 바이러스' 이다. 아마도 삶의 변화가 된 것은 맞다. 2020년 뉴노멀 시대에 가장 많이 했던 단어이다. 이 바이러스 단어로 인해 삶의 변화가 많이 일어나서이다. 한 매거진에서 본 코비드라는 단어로 이야기 하고 있다.

 

I. 코로나바이러스로 인한 삶의 변화.

첫째-Consumer trend:소비 시장의 변화.

-온 컨택트라는 비대면 시대에 이제는 사람이 마주대하는 일이 줄어든 것이다. 소비형태의 변화이다. 이 비대면 시대를 준비하지 못하면 시장에서 도태된다는 것이다.

둘째-Ongoing Crisis: 지속될 경제 위기의 사회.

-새로운 변수인 바이러스로 인해 어떻게 하면 경제극복을 위해 고려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이 변수를 속도감 있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중요한 포인트이다.

셋째-Virus outbreak: 재출혈한 신종 감염병에 대한 위협.

- 우리가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 메르스, 사스를 기억하는가? 이 감염 병의 원인은 야생동물 접촉으로 인해서 감염된 것이다. 야생동물과 접촉이 많아지고 있고 이로 인한 것은 바로 환경파괴를 볼 수 있다. 결국 계속해서 도래 할 것임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넷째-International cooperation: 국제 공조의 필요성.

- 공조의 필요성은 증가되고 있으며, 이전에도 공조가 일어나야 했다.영국에도 너무도 많이 바이러스가 감염되었다고 한다. 장벽을 넘어서 우리는 이 시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고, 세계전역에 문제가 되고 있으며 변이된 바이러스를 잡아야 할 것이다. 그것을 잡기 위해서는 한 나라에만 있는 일이 아니라 함께 공조하면서 백신 계발부터 치료에 대한 것까지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안 된다.국제 공조를 외면 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다섯째-Deperssion:우울증에 대한 부분.

-비대면 시대에 사람과의 접촉이 줄어들면서 이 같은 우울증이 발발하는 일이 많다. 우울증은 사회가 건강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뉴 노멀 시대에 어떻게 보면 편이성은 증가되고 우리에게 효율성의 가치는 계속 추구하게 되고 있지만 우리 사람이 본질적으로 누려야만 될 사람과의 접촉을 통해서 스트레스도 풀고 그리고 함께 나누고 공유하면서 함께 이겨내야 하는데 우울증으로 인해 사회 전체가 불안감을 해소하지 못한다는 사실이다. 이처럼 코로나 바이러스는 변화된 사회 안에서 우리를 우울로 몰아넣고 있다. 판단의 기준마저도 흐려지게 한다. 더 큰 문제는 우리의 시선을 하나님 앞으로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게 한다는 사실이다. 우리 성도여러분 ``!! 지금 괜찮으신가요??? 평안하신가요??? 남몰래 눈물을 흘리지는 않으신가요?? 답답함 속에서 풀고 싶었고, 이 문제들을 내놓고 풀고 싶었는데 방법을 알지 못해서 헤메이고 있지는 않는가요? 혹시 삶의 퇴로가 막혀있고 두려움을 느끼고 계신가요? 이 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통해 삶의 퇴로를 확보하고 길을 열어주실 줄 믿는다.

오늘 출애굽기 14장에서 우리의 삶의 퇴로가 막혔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길을 열어 가시고 계신지를 그 사실을 함께 나누고자 한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가 바로 애굽 군대와 홍해, 하나님의 시각을 정확하게 갖추어야 한다. 바로의 대한 시각, 애굽 군대, 그리고 홍해이며, 우리의 하나님의 대한 시각을 바로 갖추어야 함을 기억하면서 본문을 보도록 한다.

 

출애굽기 14:1-4절을 보면,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3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4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하나님의 계획이 잘 보여 진다. 이스라엘 자손이 가던 길을 돌이켜 장막을 치면 바로가 그들을 따라가서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계획하심을 알 수 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가던 길을 어떻게 하는가? 돌이켰다는 것이다. 오던 길로 되돌아갔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좀 과격하게 인도하시는 부분이 아닌가를 생각하게 한다. 왜냐면, 행군에서 가장 싫어한 부분이 무엇이지 아는가? 바로 걸어가다가, 빽(back)이다. 돌이키라는 순간 어깨가 처진다. 이것은 군대만이 아니다. 지장도 마찬가지다. 다시 처음부터 새로 하라고 하면 어떤 기분인가? 모든 것을 준비했는데 가던 길 다시 가면 되는 것이 아닌가? 이대로 가면 좋은데 왜 뒤로 돌아오고 새로 처음부터 새로 하라고 하면 기분이 어떤가요? 불평불만이 마음속에 맴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후진을 명령하시고 계속해서 무엇을 하시길 원하시는가? 바로와 바로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나를 여호와인줄을 알게 하시려고 하신다. 현실은 이스라엘 백성이 장막 친 곳까지 도달하게 되었다. 거기 눈앞에 보인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떻게 된 것인지를 보면,

10절에 바로가 가까이 올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눈을 들어 본즉 애굽 사람들이 자기들 뒤에 이른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고.

-그들은 이 같은 삶을 원하지 않았다. 두려움 없이 평안하게 가나안에 입성하고 싶었을 것이다. 두려움이 엄습한 다음에는 불평과 불만이 따르게 된 것이다. 우리를 왜 이끌어내서 이 광야에서 죽게 하시는지를 불평과 불만을 모세에게 하는 것이다. 우리도 이런 경우가 많다. 하나님은 왜 내게 때와 장소에 맞는 복을 주시지 않느냐고 불평한다. 왜 내게는 솟아날 구멍이 없고 형편이 어렵게 되었는지를 하나님께서 이대로 두시는지, 누누나 두렵다고 하면서 퇴로가 막혀있고, 길도 보이지 않는다고 죽이시고 내버려 두실 것인지를 원망한다. 이런 불편불만은 다 한다.

내일이면 2020년 송구영신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런데 우리 앞에 두려움이 찾아왔다.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불평불만이 생겼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하나님께 토로하고 싶다. 중요한 사실은 이 코로라 바이러스로 잠식되어 있는 이 사실을 통해서 우리가 계속 이대로 있을 수만은 없다. 분명 하나님께서는 퇴로까지 막혀있는 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서 길을 보여주셨다. 오늘 우리는 그 길을 찾아갈 것이다. 본문에 세 가지로 정리를 했다.

II.그 퇴로를 찾아가는 하나님의 방법.

첫째-가만히 굳게 서서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을 봐야 한다.

13절에 -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보라-라흐이다. 가만히 보고 있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믿음을 무모함으로 오해한다. 눈앞에 수많은 대적이 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서 있냐고 호들갑을 떠들 수 있는 게 당연하다. 굳게 선다는 것, 믿음은 무모한 것이 아니다. 믿음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뜻을 기억하는 것이며, 믿음은 살아계셔서 여사하시는 하나님께서 앞으로 행하실 일을 기대하는 것이다.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이다. 그것이 믿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만히 굳게 서서 구원을 기다리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닐 수 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나를 위해서 도우심을 기억하고 나아가고 앞으로 도우실 일을 기대한다면, 그 자리에서 분명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때에 열 가지 재앙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것을 이미 보았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렇게 도우심을 기억한다면 이 상황을 해결해 주실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것, 그것이 가만히 서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지금도 일하실 것을 기억하고 기대하는 것이 믿음이다. 가만히 굳게 선다는 표현이란....

베드로전서 5:6-7, 12절을 보면,

6절-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 하라 때가 되면 너희를 높이리라.
7절-너희 염려를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12절-내가 신실한 형제로 아는 실루아노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간단히 써서 권하고 이것이 하나님의 참된 은혜임을 증언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베드로는 어디에 굳게 서라고 하는가? 은혜에 굳게 서라고 한다. 여기서 은혜란 감정적 표현만이 아니다. 바로 사망에서 생명으로 건지시고 값없이 받았을 때 사용하는 단어이다. 하나님의 능하신 손아래에서 겸손히 있을 때에 모든 것을 믿는 것이다. 우리가 마음속에 새기는 것이 바로 은혜이다. 실체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우리를 건져내신다는 것이기에 사망으로부터 살리시기에 실체가 있다. 그 은혜위에 있는 것은 모든 일이 해결 된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이라는 은혜를 이미 경험했다. 죽을 뻔 했다. 종살이 하다가 끝날 뻔 했다. 살려주셨다. 사망에서 살려주셨고, 자유를 주시고 은혜를 이미 경험한 민족이다. 지금 이 베드로전서에는 하나님 앞에 겸손하면, 하나님은 때가 되면 높이신다고 하신다. 겸손하라고 하신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주님은 놓이신다고 하시고 움직여 주신다고

말씀해 주신다. 올 한 해 동안 참으로 많이 답답했을 것이다. 사회적 거리로 힘들기도 하다. 우리는 하나님과 예배하고 거리를 좁히며 영적 거리를 좁혀서 하나님께 가만히 그 자리에서 서서 하나님의 구원역사를 보는 것이다. 예배하는 자야말로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보는 것이 참으로 우리에게 복된 일이다. 한 번 은혜에 대해서 궁금하면 이번 특새에 기록한 글들을 찾아서 보도록 하자.

우리 사랑의 교회는 이번 특새 때도 은혜 주셔서 그 마음속에서 어려운 가운데 집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기회를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성도들의 간증을 통해서도 풍성하게 하셨다. 여러 강사 목사님으로 인해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국내외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심을 보여주셨다. 그 은혜들을 고스란히 은혜게시판에 있다. 힘들 때 다시 읽어보고 그 은혜를 느끼고 새기며 나누어야 한다.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서서일하시는 일들을 다시금 경험하게 될 것이다. 매일 큐티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는 말씀이 있다.

오늘도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도 힘과 능력이 있다. 그 말씀을 자신만의 고백이 되게 적어보라. 그러면 그 은혜를 적고 나무면 내 마음속에 찾아와 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역사하시고 마음속의 답답한 문제도 완전히 해결하실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법이다. 이것이 무모함이 아니기에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묵상하고 그것대로 살아가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믿음의 유일한 방법이다. 가만히 굳게 서서 주님이 행하시는 이들을 한 번 보기를 바란다. 그러면 퇴로가 자연스럽게 열릴 것이다. 우리가 삶의 퇴로가 막혀있다고 생각이 들 때에 우리가 방법을 모르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마음이 계속 곤란하고 요동이 일어난다. 그게 굳게 서는 것이 안 된다. 그러나 말씀 위헤 서면, 마음을 붙들고 나아가면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둘째- 홍해에 대한 인식을 바뿨야 한다.

14장 15-16절에 - 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이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행하리라.

-모세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고 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셔서 애굽 군으로 하여금 턱밑까지 쫓아오게 하신 것이다. 그가 해야 할 행동은 말씀하신대로 홍해로 나아가야 한다. 앞에로 홍해가 막혀있고, 뒤에는 바로가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냥 나아가라고 하신다. 모세에게 지팡이로 홍해를 향해 그것을 갈라지게 하라고 하신다. 그렇게 하면 바다가 마른 땅으로 행하신다는 것이다. 분명 우리의 홍채처럼 삶 가운데 앞을 가로막을 때가 있다.

시편 106편 7절을 보면 홍해를 보면서 두려워하는 자들이 어떤 반응을 보였는지를 알 수 있다.

- 그들은 홍해에서 기억하지 않았고 명령을 거역한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것은 애굽 사람들이 나를 알게 하리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계획은 단순히 이스라엘 백성을 구출하는 것만이 아닌 이 땅에 통치자가 누구이시며, 참신이 누구이신지를 그것을 알리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표이셨다. 클라스가 다르시다. 자기 백성만이 구출이 아니라 아직도 참 하나님이 누구인지 모르는 애굽 백성들에게 그가 여호와였다는 사실을, 그가 이스라엘을 돕는 자였다는 것을 알리게 하신 것이다. 이 모습은 십자가상에서 예수님께서 돌아가실 때에 백부장의 고백과 동일하다.

마가복음 15:39절에 보면, -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백부장은 십자가에서 예수님이 죽는 장면을 보고서야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한다. 백부장이 이 같은 고백을 듣기 위해서라도 십자가는 필요했다. 애굽 사람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반드시 홍해는 필요했다는 것이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이 같은 계획까지 하신 것을 알 수 없었던 것이다. 내 앞에 있는 홍해는 나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 아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더욱 빛내기 위해 준비 된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준비물이다. 십자가가 하나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서 준비하신 것이라면 홍해 역시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대하심을 드러내기 위해 준비하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홍해를 장애물로 여긴다는 것이다. 그래서 장애물에 사로잡혀 살기에 집중한 나머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본질을 잊고 산다. 이 땅을 사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홍해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벗어나야 한다.

홍해를 장애물로 여기는 순간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선하신 계획들을 잊어버리게 된다. 하지만 홍해를 장애물이 아닌 하나님의 준비물로 여기는 순간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되어있다. 홍해는 하나님께서 가르실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홍해의 운명이다. 만일 코로나 바이러스가 우리에게 홍해라고 생각해 보자. 코로나 바이러스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하실 것인지를 들어야 한다. 그것도 홍해처럼 언젠가는 종식된다. 오히려 그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서 발견된 자신만의 문제와 공동체의 문제들을 점검하라. 나의 신앙을 點檢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있는지 홍해에 붙잡혀서 또한 두려워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라. 문제에 사로잡혀서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는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 앞에 순종하는 백성이라면, 홍해에 대한 두려움은 사라지게 될 것이며, 하나님만 보게 될 것이다.

▶셋째- 우리가 두려워야 할 대상은 퇴로를 지키는 바로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한다.

10절에 바로가 가까이 올 때, 이스라엘 백성이 두려워했다고 말씀하고 있다.

31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더라.

여기 보면 10절에 쓰였던 두려워하다와 31절에 쓰여 있는 경외하며와 같은 동사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움이 경외함으로 바뀐 것이다. 이제는 더 이상 애굽 사람들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두려움의 대상이 바뀐 순간 우리는 문제들은 해결할 수 있다. 우리가 바로를 두려워하는 것이 무엇인가? 우리의 퇴로를 막고 있는 것은, 그가 가진 권력과 힘 때문이다. 눈에 보이는 엄청난 군대와 바로의 권세 때문에 우리가 기가 눌린 채로 살아가는데 그렇게 되면 어떻게 되는가?

시편 106편 13-15절에 보면 - 행한 것을 곧 잊어버리고 가르침을 기다리지 못한 결과는 결국 하나님께서 요구는 들어주셨을지 모르지만, 영혼은 쇠약하게 되었다고 말한다. 하나님의 일을 잊었고 가르침을 기다리지 못했다고 말한다. 영혼이 메말랐다는 것이다. 영혼이 건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세상의 힘에 기가 눌린 체로 살다보니까 계속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없어서 영혼이 메말라버려진 것이다. 그러다보니 세상 사람들처럼 뭔가 돌파구를 마련해 보려고 한다. 그렇게 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가? 세상 사람들의 방식으로 해결하려 하니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것이다. 바로와 같이 그 권력을 손에 쥐려거나 물질을 만들려고 하면 그것을 대항할 수 있는가? 그래서 영혼은 지속적으로 쇠약해진다. 불량식품을 먹으면서 건강해질 수 없다. 권력, 돈에 맛을 들여서 우리가 대항하려하면 우리는 절대로 회복할 수가 없다. 영혼이 건강해지지 않는다. 바로를 바로의 방식으로 대항하다가는 영혼이 쇠약해진다.

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영혼을 살찌워야 한다. 그것은 바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다. 올 한해 우리가 함께 불렀던 찬양 중에 보면

-주 여기 함께 하시네, 나 예배해 나 예배해~~이곳에 운행하시네, 나 예배해 나예배해, 새 길을 만드시는 주, 큰 기적을 행하시는 주, 그는 나의 하나님 약속을 이루시는 주, 어둠 속에 빛이 되시네~ 그는 나의 하나님, ~~~

내가 바로가 아닌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길을 여실 것이다. 내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하면 삶의 퇴로가 확보 되는 것이 아니라 그 길을 여신다는 것이며 그 사실을 믿어야 한다. 생명을 누리고 싶다면,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부터 열어야 한다. 그래야 문제가 풀리며, 나의 퇴로를 지키고 서있는 대상은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기에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오늘 미가서 7장10절 큐티에 내 하나님이 어디 있냐고 말하는 자들이 거리에 진흙 같이 밟힌다는 것이 나온다. 하나님을 모른다는 자는 종말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여호와와 하나님이 어디 있는지 아는 백성, 하나님이 누구인지를 아는 백성, 바로를 겁내하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이라면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들을 진흙에 밟히는 인생이 아닌 큰 길을 여시며 홍해를 가르시며, 홍해를 마른 땅으로 변하시게 하시며, 그길 가운데로 인도 하시는 그런 역사를 우리 가운데 허락해 주실 것이다. 우리는 분명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수많은 바로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교회 밖에서 수많은 대적들을 만나게 된다. 그 때마다 바로와 같은 방법을 이기려 하지 말라. 많은 군대와 끝판 왕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내 퇴로가 막혀있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그것을 못 얻었기 때문에 아니라 내가 온전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느냐, 나의 두려움의 대상이 애굽 군대 바로가 아닌 하나님에서부터 시작됨을 믿어야 한다.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백성은 길을 열어 가신다. 그렇기에 바로 앞에 무릎 꿇는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만을 온전히 경외하고 그 신앙으로 참 예배 자가 되면, 우리의 퇴로가 확보되며 앞길이 열리게 되는 하나님의 역사를 만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내가 하나님을 경배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두려움을 해결하신다. 그것을 믿고 나아가라.

삶의 퇴로가 막혔다고 느껴질 때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될 것이다. 인간적인 생각이 앞설 때 마다, 우리에게 주셨던 Way Maker를 부르면서 길을 열어주시는 주님만을 의지하면서 살아가다 보면,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인도해 주셨다. 우리 사회와 공동체도,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두 참 힘들었고 퇴로까지 막혀있다는 느낌을 받았던 한 해이다. 하지만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한다. 기대하고 하나님께서 열어줄 미래를 기대하길 바란다. 새 길을 만드시는 분이 누구신가!!~ 그분을 믿고 나아갈 때, 막힌 퇴로로 두려워하는 것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에 하나님 나라에 모두는 소망으로 늘 기쁨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삶의 모든 자리에 퇴로가 막혀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막혀 있다고 생각할 때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역사하시고 길을 열어주시기에 우리는 이 땅의 모든 홍해와 퇴로를 만나더라도 은혜에 굳게 서서 여호와 하나님만을 경외하는 자 되어야 한다.

♣요약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아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었지만 어려움이 닥치자 하나님을 원망하는 불신앙적인 태도를 보였다. 우리는 이런 태도에서 근본적으로 돌이켜 하나님을 굳게 신뢰하고 하나님께 신실해야 할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두려워하는 백성을 보고 모세는 두려워 말고 여호와의 구원을 보라고 말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위해 싸우시리라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홍해가 갈라지기 이전에 이스라엘 자손으로 하여금 앞으로 나아가도록 명령함으로써 모든 어려움이 해결되리라고 믿고 행동한 것이다. 이처럼 참된 신앙인은 불가능한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는 믿음을 가져야 한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상황 속에서도 여호와의 구원을 진정으로 보아야 하겠으며, 삶의 퇴로가 막혔다고 느껴지는 상황 속에서도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은혜위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바로 볼 수 있는 믿음을 가지고, 내 앞에 놓인 홍해를 보고 장애물이 아닌 하나님의 백성으로 준비시키기 위한 준비물로 생각의 전환을 이루게 해주시길 소망하며 홍해를 두려워하지 말고 담대히 주님께 나아갈 수 있어야 한다. 퇴로를 지키는 바로가 아닌 하나님이심을 기억하고 큰 길을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기억하여 기대하면서 2021년을 맞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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