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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지는 사랑의 낙원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이브는 낙원의 원주민들이었다. 그곳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제외한 그 어떤 법이나 윤리도 존재하지 않는 세계, 가난도 없고 겨울도 없고 슬픔도 없고 눈물도 없는 완전한 땅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곧 낙원을 잃게 된다. 유일한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창조주는 그것을 용서하지 않았다. 형벌은 가혹했다. 낙원에서 쫓아냈고, 죽음을 예감하는 유한한 존재로 전락시켰으며 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을, 여자에게는 해산의 고통을 내렸다. 그것은 그들이 범한 단 하나의 죄였지만 그 죄는 인류 모두가 유산으로 물려받아야만 하는 원죄가 되고 말았다.

나는 가끔 물끄러미 앉아 그들의 삶을 상상해보곤 한다. 낙원에서 그들의 삶은 완전했다. 알몸의 상태로 부끄러움 없이 서로를 사랑했고, 부드럽고 따뜻한 풀밭에 누워 불면 없이 잠들었으며, 한 점의 우울감도 없이 눈을 떴다. 그들은 악을 알지 못했기에 죄의식과 죄책감을 몰랐고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기에 치욕과 비참 같은 슬픈 감정도 느낄 줄 몰랐다. 하지만 낙원을 잃은 후부터 그들의 삶은 고통스러웠다. 비참했을 것이고 육체와 정신을 완전히 무너뜨린 박탈감은 그들로 하여금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을 느끼게 했을지도 모른다. 

밀턴이 지은 『실낙원』은 천국과 지옥, 천사와 악마, 인간의 원죄와 구원의 가능성을 다룬 일종의 종교 서사시다. 표면적인 서사는 아담과 이브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낙원에서 쫓겨나는 내용이다. 시간적으로 태초 이전과 종말 이후를, 공간적으로 천국과 지옥, 낙원과 실낙원까지 방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사실 이 책을 읽어내는 중요한 코드는 천상 세계에서의 싸움과 그 싸움에서 패배한 사탄이 품는 복수심에 있다. 하지만 나는 중심에서 빗겨난 부분이 마음에 걸린다. 어쩌면 서사의 구석자리를 차지하고 있을 사소한 대목일 수도 있지만 자꾸 그쪽이 신경이 쓰인다. 뭐랄까, 작은 가시가 박힌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는 심정이랄까. 선악과를 따 먹은 직후 아담과 이브에게서 나타난 이상하고 쓸쓸한 행동이 그것이다.

그들이 받은 형벌 중 가장 끔찍하고 슬픈 벌은 부끄러움을 알게 된 어떤 인식에 있다. 그들이 낙원의 법을 어기자마자 경험한 최초의 감정은 수치심이었다. 그전에는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기에 두려웠고 이 감정의 정체를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어두운 그늘로 숨었고 크고 둥근 잎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 그들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그동안 내내 허물없이 지냈던 연인으로부터 ‘부끄럽다’는 감정을 느꼈다. 원망의 마음이 생겼고 의심의 싹이 움텄으며 미움과 분노의 열기에 휩싸였다. 한 몸을 나누어 가진(창조자는 아담의 갈비뼈를 취해 이브를 만들었다) 연인을 자신과 상관없는 낯선 사람 혹은 미워하는 원수로 느끼게 된 것이다. 

낙원에서의 삶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원죄를 물려받은 나는 영원히 알 수도 느낄 수도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알고 싶다. 한 점의 죄의식도, 그 어떤 부끄러움도 없는 상태가 주는 만족감은 도대체 어떤 느낌일까? 우리들도 사랑의 문을 통과하면 낙원과 흡사한 상태로 들어갈 수 있다. 사랑의 대상을 발견하고 그와 함께 사랑에 빠질 때 우리는 원죄를 망각할 수 있고 낙원의 아담과 이브가 될 수 있다. 사랑은 인간이 갑옷처럼 두르고 있는 부끄러움을 녹이고 몸과 마음을 마비시키며 단번에 찾아온다. 나체의 상태를 서로에게 보여도 부끄럽지 않고 함께 있는 시간과 공간을 제외한 모든 세계가 무의미하게 느껴진다. 사회적 제도나 윤리의식은 사랑의 세계에서는 전적으로 무의미하다. 그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자유로운 감각 속에 누워 원초적인 느낌과 말들을 주고받는다. 그러나 이 낙원은 불완전하다. 모래로 지은 성처럼 단 한 번의 파도로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작은 바람에도 조금씩 마모된다. 우리는 곧 슬픔 속에서 깨닫게 된다. “실낙원 위에 세운 낙원은 결국 실낙원에 불과하구나.” 

하지만 『실낙원』의 연인들의 사랑이 완전히 망가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사랑을 지키기 위해 새로운 형식을 만들어냈다. ‘상대방이 변했음을 깨달았지만 열렬히 사랑하는 마음에서 상대방과 함께 멸망하기로 결심했다.’

“그러나 나는 그대와 운명을 같이하고 형벌을 같이하련다. 만일 죽음이 그대와 짝짓는다면 죽음은 내게 생명이리라. 그대는 나의 것이기에, 우리 몸을 가를 수 없다. 우리는 하나, 한 살. 그대를 잃음은 나 자신을 잃는 것. 그대와 같이 죽으려는 것이 나의 확실한 결심이니.”

낙원을 잃은 아담과 이브 이후의 세계는 영원한 실낙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와 당신은 여전히 낙원을 꿈꾼다. 무너질 것을 알면서도 쌓고, 죽음을 예감하면서도 살며, 사랑으로 인해 자신의 삶이 멸망할 것을 알면서도 이 사랑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어리석음이 아닌 어쩔 수 없음일 것이다. 나는 이런 문제에 대해 오랫동안 고민해왔다. 결론은 다음과 같다. 어쩔 수 없는 것은 정말 어쩔 수 없다.

생각해보라. ‘낙원’이라는 말보다 ‘실낙원’이라는 말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지지 않는가? 원래 희열과 고통은 쉽게 구분되지 않는 법이다. 그러니 당신, 낙원을 향한 꿈을 절대 포기하지 말라. 영원을 모르는 인생에게 순간보다 소중한 가치는 없으니.

정용준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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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악과 따먹고  쫓겨나는 아담과 하와

'실낙원'줄거

세계문학사에 길이 남을 종교 서사시 『실낙원』은 구약성서의 ‘낙원상실 모티프’를 토대로 한 대서사시로 1만565행에 달한다. 고전 언어와 고전 문학, 기독교 정전에 박학다식했던 밀턴은 서사시라는 일정한 형식에 격조 높은 문장과 아름다운 시적 언어로 17세기 정신세계와 인문적 교양을 작품 속에 훌륭히 담아냈다. 고전 서사시의 전통을 그대로 이어받으면서도, 그것을 초월하여 인문주의적이고 기독교적인 가치와 미덕을 내세우는 새로운 서사시를 완성한 것이다. 이 작품으로 밀턴은 셰익스피어 다음가는 대시인이라는 지위를 얻었고, 『실낙원』은 종교적 통찰을 보여주는 최고 고전의 반열에 올랐다. 

실낙원』은 최초의 인간 아담과 하와가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에서 쫓겨나는 이야기이다. 시간적으로는 아담 이전의 영원한 과거부터 아담 이후 그리스도의 재림까지, 공간적으로는 에덴을 사이에 둔 천국과 지옥까지,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이야기가 장중한 문체로 화려하게 노래되고 있다. 사탄군과 천사군이 하늘에서 벌이는 전쟁 장면, 하나님의 천지창조 장면, 지구를 겹겹이 둘러싼 프톨레마이오스식 우주관에 입각한 천체의 화려한 운동 장면, 천국과 지옥 사이의 심연의 공간 ‘혼돈’의 모습, 에덴 낙원의 환상적인 묘사 등을 담은 『실낙원』은 성서에 대한 청교도적 명상의 결실이자 그리스 로마 신화를 비롯한 온갖 이교 신화에 준거한 탁월한 문학적 상상력의 소산으로 평가받고 있다.

원제: Paradise Lost

저자: John Milton(1608~1774)

발표: 1667년

분야: 영미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실낙원

옮긴이: 조신권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34(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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