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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엔 꽃이 있을지도…

어쩌면 이 고백은 하지 않는 편이 나을까요.

그러나 하지 않고서는,개인적으로 나쓰메 소세키에 관해 말하기 어렵습니다.

 나쓰메 소세키는 나를 소설가의 길로 이끈 소수의 작가들 중 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헌책방의 순례자였던 학창시절부터,그의 책들을 읽어왔습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쓰메 소세키의 책들을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었을까,운명이었을까 생각해볼 때가 있습니다.

글을 써보고 싶다,소설이라는 것을 써보고 싶다는 마음이 든 것은.

지금까지도 일본의 국민작가라고 불리는 나쓰메 소세키가 평생에 걸쳐 소설을 쓴 기간은 말년의 십 년 남짓한 시간뿐이었습니다.

그가 사망한 때가 1916년,오십 세였으니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사십 세가 다 되어서였습니다.

그러나 소설을 쓰기 이전부터 나쓰메 소세키는 영문학자이자 하이쿠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1900년,일본 문부성이 임명한 최초의 유학생이기도 해 일찍부터 영국 런던으로 유학을 가 서양문물을 접하고 오기도 했습니다.

그 2년 동안의,다소 충격적이며 고독했던 체류 경험을 통해 그는 일본,동양의 '문학예술론'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게 됩니다.

일본문학에 대해 흔히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소설(私小說)'입니다.

주로 자신의 체험,경험을 적극적으로 소재로 삼은 소설을 뜻합니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쓴 가라타니 고진에 의하면 이 '사적인 것'이 나쓰메 소세키의 경우엔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문제 삼은 것이라고 합니다.

아닌 게 아니라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문학을 '인식적 요소와 정서적 요소의 결합'이라고 생각한 그의 문학론이 이해가 될 듯도 합니다.

지금도 널리 읽히는 그의 많은 대표작들이 있습니다.

첫 소설이자 화자를 '고양이'로 내세워 세태를 풍자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비롯해 「산시로」 「그 후」 「문」 「행인」 「마음」 등.

그중 「한눈팔기」라는 제목으로 번역된 이 책은 그가 사망하기 일 년 전 아사히신문에 연재했던,자전적 색채가 가장 강한 소설입니다.

원제 道草는 '길가에 난 풀' 혹은 '한눈팔다,해찰하다'라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 소설에서는 후자의 의미로 쓰였다고 합니다.

한눈을 파는 것.이 소설의 주인공인 겐조가 어떤 문제에 직면했을 때,어려운 것을 만났을 때,가능한 해답을 회피하려고 택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한눈팔기」는 대학교 선생이자 한 여자의 남편인 겐조가 돈을 요구하는 양부를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나쓰메 소세키가 산문집 「유리문 안에서」에서 회고했듯,그가 태어나자마자 다른 집 수양아들로 보내진 사실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모든 작가에게는 쓰지 않으면 안 되는,필연적으로 느껴지는 한 편의 소설이 있게 마련입니다.

「한눈팔기」는 작가가 죽음을 예측하고 쓴,자신의 반생을 돌아본 소설입니다. 나쓰메 소세키라는 희귀한 문학의 문(門)을 열고 들어가려 할 때, 빼놓고 읽을 수 없는.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이 나에게 예외적이고 특별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가 근대문학의 새로운 길을 제시했다든가 지성을 바탕으로 한 에고이즘의 글쓰기를 보여주었다든가 하는 점이 아닙니다.

그가 끊임없이 던진 "나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라는 질문 때문입니다.

그의 글쓰기는 그 질문에 대한 고뇌의 결과물,성숙과 발전의 고찰이라고 해도 지나치진 않습니다.

그런 질문이 없다면 자기 상대화를 통해 타자성을 발견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입니다.

그러한 발견을 보여주는,거의 마지막 소설이 바로 「한눈팔기」입니다.

당시 지배적이었던 자연주의적 문단에서 나쓰메 소세키를 처음으로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던 소설.

십여 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이 작가처럼 다양한 글쓰기를 시도하고 써낸 작가는 일본뿐만 아니라 외국에도 드물 거라고 합니다.

그건 가라타니 고진의 말처럼 그가 글쓰기에 재능이 뛰어나서가 아니라 근대소설이라는 고전적 관점에서 보면 일부러 거기에 적응하려 하지 않았던 작가의 '적극적 의지'를 의미할지도 모릅니다.

소설은 진흙 속에서 태어난다고 합니다.

또한 소설은 호기심과 갈증 속에서 태어납니다.

그리고 한눈팔기라는 숙고의 시간과 질문 속에서 태어납니다.

보고 느낀 모든 것을 문학으로 끌어올 수 있는 힘은 언어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물리적인 법칙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일도 묘사하고 그릴 수 있는 것도 언어 때문입니다. 그것은 '문학'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언어가,소설이 진화해왔다는 자명한 사실은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구나 다 자신만의 글을 쓸 수 있습니다.

이럴 때 한 가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게 있다고 나쓰메 소세키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가감 없이 진솔하게.'

이 글의 제목 '거기엔 꽃이 있을지도'는 나쓰메 소세키가 영국 유학에서 돌아온 지 얼마 안돼 쓴 영시의 일부분입니다.

 그 다음 구절은 이렇게 이어집니다. '아름다운 게 많이 있겠지.그러나 꿈속에서조차 나는 거기에 가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어.

나의 장소는 여기이지 거기가 아니니까.

' 작가,소설가의 장소는 아름다운 무엇이 많이 있는 데가 아니라 바로 지금 '여기'여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고 써야 합니다.

가감 없이 진솔하게.

거기엔 반드시 꽃이 있을 거라는 희망으로.

그것이 이야기의 출발이자 소설의 기원입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경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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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고 살던 養父가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데…


일본의 대문호 나쓰메 소세키는 186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도쿄 제국대학 영문과를 졸업하고 국비장학생으로 영국에서 유학한 소세키는 당시 런던 노동자들의 열악한 생활환경을 목격하고 도시인의 불안과 고뇌를 체험했다.


이 시기에 형성된 인생관과 문명관은 이후 그의 작품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귀국 후 대학 강사로 활동하면서 발표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크게 호평을 받으면서 전업 작가의 길로 들어섰고,많은 작품에서 변화의 시기를 살아가는 인간의 내면을 섬세하게 묘사하며 일본 근대문학의 지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00년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지난 천 년간 일본인이 가장 사랑한 작가' 1위에 오르며 일본의 국민작가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한눈팔기」의 주인공 '겐조'는 외국에서 공부를 하고 돌아온 소위 엘리트 지식인이다. 그러나 고향에 돌아와 보니 가족들의 생활은 형편없다.


아내와 아이들은 가난에 허덕이고,경제적으로 풍족했던 장인은 주식으로 재산을 탕진해 겐조에게까지 손을 벌리는 처지가 되었다.


잊고 살았던 양부가 갑자기 나타나 돈을 요구하는가 하면 불쾌한 기억만 남아 있는 양모까지 찾아온다.


고지식한 겐조는 사람들이 찾아와 이런저런 부탁을 하면 거절하지 못하고 전부 받아들인다.


그러고는 혼자 끙끙거리면서 애꿎은 아내에게 화풀이를 한다.


그는 아무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생각하며 괴로워하지만,아내의 눈에는 남편이야말로 스스로 담을 쌓고 우유부단하며 편협한 인간이다.


양부가 요구한 돈을 마련해준 다음,일이 일단락되었다고 생각하는 아내에게 겐조는 토해내듯 씁쓸하게 말한다. "이 세상에 진짜로 끝나는 일은 거의 없다고.


일단 한 번 일어난 일은 언제까지고 계속되지.


다만 다양한 형태로 계속 변하니까 남도 나도 느끼지 못할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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