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流頭(유두) -어계(漁溪) 조려(趙旅)
유두날 
  

一帶長川抱隴頭  일대장천포롱두   
好將塵髮俯淸流  호장진발부청류
常懷事業偏多誤  상회사업편다오     
却恨光陰不少留  각한광음부소유

沐後彈冠心更淨  목후탄관심경정
醉餘揮筆興難收  취여휘필흥난수
回看蕩蕩乾坤裏  회간탕탕건곤리  
物我俱新淡若秋  물아구신담약추

  

한 줄기 긴 시내가 언덕 머리 감고 도니
티끌 묻은 머리칼 청류에 씻어 보내려네.
늘 하는 일이 유독 그릇됨을 생각하였고,
시간은 조금도 쉬어주지 않음을 한탄하네.

머리 감고 갓에 먼지 터니 마음 깨끗한데
술 취해, 금치 못한 흥취 붓으로 휘두르네.
끝없이 넒은 이 세상천지를 두루 돌아보니,
물건과 내가 모두 새로워져 맑은 가을 같네.



조려(趙旅 1420년(세종 2)∼1489년(성종 20).

조선 초기 단종을 위하여 수절한 생육신의 한 사람.

본관은 함안(咸安). 자는 주옹(主翁), 호는 어계(漁溪).

경상남도 함안 출신. 고려 공조전서(工曹典書) 조열(趙悅)의 손자로,

증사복시정(贈司僕寺正) 조안(趙安)의 아들이다.1453년(단종 1)

성균관진사가 되어 당시의 사림 사이에 명망이 높았으나,

1455년 단종이 세조에게 선위(禪位)하자 성균관에 있다가

함안으로 돌아와서 서산(西山)아래에 살았는데, 이 서산을

후세 사람들이 백이산(伯夷山)이라고 불렀다.그는 벼슬을 하지 않고,

다만 시냇가에서 낚시질로 여생을 보냈기 때문에 스스로 어계라 칭호하였다.

1698년(숙종 24)에 노산군(魯山君)이 단종으로 추복(追復)되자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1703년 경상도 유생 곽억령(郭億齡) 등이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 사육신의 예에 따라 생육신인

조려도 사당을 세워 제향하도록 건의하였던바,

1706년에 그대로 시행되었다.고향인 함안의 서산서원(西山書院)에는

그를 비롯하여 김시습(金時習)‧이맹전(李孟專)‧원호(元昊)‧

남효온(南孝溫)‧성담수(成聃壽) 등이 제향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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