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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間無罪罪有貧/사람이 무슨 죄겠소. 가난이 죄지요.
사당동 강좌수 집에서 거절을 당한 김삿갓은 발길 닫는 대로 걷다가 길가의 아무 집으로나
찾아 들 수밖에 없었다. 퍽 가난해 보이는 오두막집이었지만 다행하게도 주인은
어서 들어오라고 기꺼이 맞으면서 불편할 잠자리와 입에 맞지
않을 음식만을 걱정하고 있었다.
이윽고 저녁상이 나왔는데 밥상 위에 놓인 것은 삶은 감자 한 바가지와 호박찌개 한 그릇이
전부였다. 자기들은 이렇게 감자만 먹고 산지가 퍽 오래 됐다면서 손님에게까지
이렇게 대접해서 미안하다고 무척 민망스러워 하는 기색이었다.
인정이란 마음 쓰기에 달인 것이지, 돈이 있고 없는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다는
사실을 김삿갓은 이날 더욱 절실하게 깨달았다.
그러기에 그는 그날 밤 새우잠을 자고 다음날 아침 그 집을 떠나면서
주인에게 다음과 같은 위로의 시를 한 수 써 주었다.
돈이 많으면 신선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사람이 무슨 죄겠소. 가난이 죄지요.
빈부의 종자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니
부자와 가난은 돌고 도는 것이라오.
地上有仙仙見富
人間無罪罪有貧
莫道貧富別有種
貧者還富富還貧
김좌수 집에서 진수성찬을 얻어먹은 것보다도 이 댁에서 감자를 대접 받은 것이 얼마나
고마운지 모르는 김삿갓은 주인에게 감사와 위로의 말을 누누이 전하고,
전날 九天閣 아래에서 만났던 기생 가련과의 약속을 지키려고
만세교를 향하여 다시 발길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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