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겁쟁이들의 이야기



슈테판 츠바이크는 겁이 많았다.

정신적으로 늘 절망 직전의 상태였다고 전해진다. 문제는 그가 너무 유명한 사람이었다는 사실이다.

주변의 기대가 컸고 그만큼 요구도 많았다.

하지만 그는 결코 참여적인 작가가 아니었다.

츠바이크의 삶을 소설로 쓴 로랑 세크직에 의하면 그는 문학을 통해 메시지를 전한 적이 없었다.

그 때문에 비난을 받을 만큼 받았다.

그는 인물들의 광기 어린 열정 외에는 세상에 달리 말하고자 할 것이 없었다.

그래서였을까. 슈테판 츠바이크는 소설도 소설이지만 대단히 많은 인물들에 대해 쓴 전기 작가이기도 하다.

에라스무스, 메리 스튜어트, 발자크, 두루두루… 그건 타인을 관찰하고 이해하는 데 능하다는 사실을 의미할 것이다.

 사람은 실제로 타인의 마음 상태를 흉내 낼 수 있고, 자신 안에 있는 감정들을 통해 타인의 감정을 이해할 수 있다.

 마치 자기 자신의 행동인 양 뇌 속에서 체험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는 그 이입을 참 잘한 작가였다.

그는 그렇게 사람의 영혼을 깊게 파고들고 오래 붙들면서 쉬지 않고 글을 썼다.하지만 그는 센 사람이 아니었다.

전쟁에, 유명세에, 기대치에, 의무에 시달리면서 그는 자신이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더이상 목소리를 낼 만한 힘이 없었고, 그의 정신 어디에서도 중대한 진실이 솟아날 구석을 찾을 수 없었으며, 아직도 비밀로 남아 있는 출구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했다.

사람의 뇌는 지속적으로 고통에 노출이 되면 손상된다.

술이 그렇게 만드는 것처럼. 처음부터 행복할 줄 몰랐던 그는 마지막까지도 행복해지는 데 실패했다.

결론은 자살이었다.영혼의 반려자였던 ‘강한’ 첫번째 아내가 아니라 늘 아프고 흔들렸던 ‘약한’ 두번째 아내와 함께.

약물 과다복용이었다.

책을 좋아해도 슈테판 츠바이크를 모르는 독자들은 많다.

나도 그랬다. 역사는 중재하고 화해하는 자들을, 인간적인 인간을 사랑하지 않는다.

그는 나름대로 조용히 봉사했지만 뛰어드는 대신 도망쳤기 때문에 경멸당하고 무시당했다. 혹시 그것이 이유일까?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에도 겁쟁이가 나온다.

물론 이 두 이야기를 화살로 꿰뚫는다면 촉에 묻어나올 단어는 ‘겁’이 아니라 ‘몰입’이다.

츠바이크에 의하면, 한 인간은 자신의 모든 힘을 작동시키는 순간에만 자기 자신에게나 다른 사람에게 참으로 살아 있는 존재가 된다.

내면에서 영혼이 불타오르는 순간에만 외면적으로도 형상이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바로 몰입의 때이리라.

체스 이야기에서 체스 챔피언은 본능적으로 몰입을 소유하고 있고, 그 몰입을 통해 살아나기 시작한다.

반면 B박사는 살아남기 위해 투쟁해서 몰입을 얻어내지만, 실제적으로는 죽어간다.

낯선 여인의 편지에서 여인은 상대방에게서 몰입의 대상이 되고자 희망하지만 수동성에서 벗어나지 못해 절망에 이르고 만다.

반면 소설가 R는 상대방에게서 처음부터 몰입의 기회를 박탈당해 자신의 능동성을 발휘해보지도 못한다.

하지만 인간의 역사는 외적인 사건들이나 우연에 따라서 의미와 형식을 만들어내지 않는다.

언제나 자기가 타고난 가장 근본적인 천성과 기질이 삶을 형성하고, 또 파괴하는 것이다.

슈테판 츠바이크처럼, 또 나처럼 겁이 많은 것도 그 한 예다.

두 이야기에서 겁쟁이는 B박사와 여인이다.

체스 챔피언에게 한 방 먹였음에도 B박사는 남은 인생 동안 꾸준히 겁을 생산하며 불안하게 살아갈 것이고, 끝내 ‘낯선’으로 남기로 결정한 여인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겁을 모조리 소비하고 비참하게 죽는다는 차이가 있다면 있달까.

나는 자주 잘못한다. 잘못되고 있다는 것을, 잘못하고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러하다.

내게 ‘잘못’은 언제나 현재진행형이다. 털어버리고 닦아내도 자꾸 되앉는 먼지처럼 나는 자꾸만 잘못한다.

왜냐하면 겁이 나니까 변하지 못하는 것이다.그래서 참 자주 절망한다. 그리고 오래 좌절한다.

그렇다고 마음 놓고 그럴 수 있다는 건 아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징징거릴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

씩씩하게, 불평 없이 살라고 충고할 뿐이다. ‘모질다’를 ‘단호하다’로, ‘참견’을 ‘관심’으로 착각하고 닦달도 한다.

 하지만 난 여전히 징징거리는 하나의 겁쟁이로 살고 있다. 다만 황폐해지지는 않으리라, 한계를 긋는 것으로 위안한다.

그 또한 겁이 나서다. 징징거리다가 징징거리는 채로 죽을까봐.

이런 진짜배기 겁쟁이 같으니라고.

나는 모든 작가들을 좋아하고, 그중의 몇몇은 사랑한다.

한데 겁쟁이의 가장 큰 성질은 대놓고 잘 표현하지 못한다는 거다. 그래서 난 내가 사랑하는 작가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봬주지 않는다.

사랑의 조건은 단순하다. 읽어도 또 읽고 싶어야 한다는 것, 다른 것도 더 읽고 싶어야 한다는 것.그런데 내가 지금 슈테판 츠바이크의 책들을 모으고 있다. 그런데, 그가 겁쟁이가 아닌 거면 어쩌지?

--------------------------------------------------------------

첸토비치와  B박사의 체스 대결

▶ '체스이야기···' 줄거리

세계 3대 전기 작가 중 한 사람이자 탁월한 이야기꾼으로 평가받는 슈테판 츠바이크는 1881년 오스트리아 빈의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유복한 가정환경에서 자라며 일찍이 문학적 재능을 보였고 스무 살 되던 해 첫 시집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프로이트의 영향을 받아 인간 내면을 깊이 탐색하고 인간관계에서의 심리작용을 예리하게 포착해낸 소설을 다수 발표했다.

하지만 1, 2차 세계대전의 암울함을 견뎌내지 못하고 1942년 끝내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그가 죽기 직전 완성한 ‘체스 이야기’는 비상한 능력으로 체스 챔피언의 자리에 오른 첸토비치와 B박사의 체스 대결을 그린 작품이다.

화자인 ‘나’는 부에노스아이레스로 가는 배 안에서 첸토비치를 만나 그와의 체스 게임에 휘말리게 된다.

냉혹한 첸토비치의 공격에 밀리고 있을 때, B박사가 나타나 조언을 해주고 게임은 무승부로 끝나게 된다.

이후 B박사를 찾아간 ‘나’는 그가 게슈타포에게 체포되어 극심한 고문과 극한의 고독 속에 있을 때 체스 교본을 손에 얻어 체스에 미치도록 빠져들게 된 사연을 듣게 된다.

츠바이크가 1922년에 발표한 ‘낯선 여인의 편지’ 또한 열세 살 때부터 평생 한 남자만을 사랑해온 여자의 내밀한 고백이 탁월한 작품이다.

유명 소설가 R는 발신인이 나와 있지 않은 낯선 필체의 두툼한 편지 한 통을 받고 호기심에 이끌려 편지를 읽기 시작한다.

 “제 아이가 어제 죽었습니다”라고 시작하는 편지는 R가 기억하지 못하는 어느 여인이 쓴 것으로, 여인은 아이의 죽음과 더불어 자신도 죽음을 맞게 되는 순간 자신의 삶과 R를 향한 평생의 사랑을 편지에 담아낸 것이다.

 

원제: Schachnovelle Brief einer Unbekannten

저자: Stefan Zweig(1881~1942)

발표: 1941년, 1922년

분야: 오스트리아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체스 이야기·낯선 여인의 편지

옮긴이: 김연수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21(2010년)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