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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2023년 6월 4일)
제목: "기쁨의 부흥을 갈망함"
말씀: 느혜미야 8:9~12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강건우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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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혜미야 8:9~12,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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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찬양합니다. 아멘!!! 교우들 섬겨주신 분들 하늘에 참 놀라운 은혜가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70프로는 준비하고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해 주십시오. 했다. 제 마음에 오늘의 기도가 향후 10년의 한국교회의 부흥과 기름부음을 주실 것입니다. 한국교회의 부흥과 영광과 기쁨의 촛대를 옮기지 말아주십시오. 우리가 다 무릎 꿇고 기도하니까 간절한 마음이 들었다. 서울시장, 경기도지사, 환경부장관 등 한국 정치지도자들도 다 무릎 꿇고 하나님께 기도하니 참으로 축복을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민족을 이끌어 주실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번 6.3 상암 집회 이후에 여러분 개인의 가정과 삶에도 회복을 넘어 부흥의 실체를 경험하기를 소망합니다. 강단이 바귀었습니다. 청소년들 만 명 이상 모여서 3시간을 여기서 방방 뛰었으며 이것이 실체입니다. 회복을 넘어 부흥 시리즈 절정인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사람이 이 기쁨이나 부흥을 체험이 있게 하기 위해서는 삶의 변화의 센스가 있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오래 믿어도 별 변화가 없는 사람이 많아요. 그래서...
 
세 종류의 그리스도인이 있는데,
첫 번째-Informed Christian.
-이 그리스도인은 많이 아는 그리스도인, 모태신아이며, 성경에 대해서 많이 아는 것이에요. 성경의 신구약은 1189장이고, 성경에 제일 길게 된 책이 어디냐고 물으면 시편 119편이고, 그리고 성경에서 제일 비참하게 죽은 자가 누구냐? 압살롬, 성경의 백인들만 사는 동네는? 흰 놈의 골짜기, 성경에서 제일 빨리 왕 된 사람이 누구냐? 바로 왕, 이런 것은 잘 알면서 교회에 어릴 때부터 많이 알아요. 그런데 삶의 변화는 없는 것이에요. 30년 40년 예배를 드렸다고 하지만 보통일이 아니에요. 만약에 낚시를 30년 쯤 했다면 고수가 될까요? 안 될까요? 여기 낚시 10년만 해도 고수가 됩니다. 벌써 밑밥이 다르고 낚시 하는 게 달라요. 테니스 30년을 해도 변화가 되는데 예배 30년을 드려도 아무런 변화가 없는 거에요. 이건 아니잖아요? 뭔가 있어야 되는 것 아니에요? 그 안타까운 일이죠.
 
두 번째는 conformed Christian.
-소위 동화된 그리스도인이다. 동화적 그리스도라는 것은 뭐냐 하면, 이 사람들은 교회의 어떤 문화 교회 전통 교단 이런 거, 우리 우리는 대한예수교 장교의 동서 우리가 보수주의 교회 신앙과 전통을 지키려고 하는 개혁주의 적 사상을 가지고 절대적으로 마음이며 귀한 것이에요. 그런데 교회 교인들에게 안 믿는 분들을 전도하려고 그러면 벌벌 떠는 것이에요. 많아요. 뭔가 없어요. 진짜는 뭐냐면 변화된 그리스도인입니다. 많이 아는 것도, 어떤 교단에 동화된 것도 필요할지 모르지만 변화된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될 줄로 믿습니다.
 
*로마서12:2,
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세 번째는 tranformed Christian.
-변화를 받는 것이에요. 이 세상 사람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기쁨과 생명의 능력으로 제대로 변화된 것을 보기를 원하는 것이에요. 뭐가 진짜 변화인가? 예수 믿는 사람들의 큰 변화가 무엇인가? 변화의 실체중에 하나가 바로 12절에 나오니 다 같이 보겠습니다.
*느헤미야 8:12,
12 모든 백성이 곧 가서 먹고 마시며 나누어 주고 크게 즐거워하니 이는 그들이 그 읽어 들려 준 말을 밝히 앎이라.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 말씀이 너무 귀해가지고 그 말씀으로 즐거워하고 기뻐하는 변화가 이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졌다는 것입니다. 오늘 보니까 하나님 말씀을 읽을 때, 그 당시 포로가 되어 돌아왔을 때에 이 사람들이 아람어를 많이 쓰고 있었는데 그게 성경은 히브리어로 쓰여 있으니까 물론 비슷한 점은 많기는 하지만, 에스라가 이것을 히브리어로 잘 풀어주니까 백성들이 너무 말씀에 대한 깨달음에 대한 기쁨이 있기도 하고 감사도 있지만 말씀에 대한 태도가 많이 달아졌습니다. 책을 펼때에 벌떡 일어났어요.
 
*느헤미야 8:5,
5 에스라가 모든 백성 위에 서서 그들 목전에 책을 펴니 책을 펼 때에 모든 백성이 일어서니라.
 
*느헤미야 8:6,
6 에스라가 위대하신 하나님 여호와를 송축하매 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하반 절에 보면,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에요. 하나님 말씀을 존귀하게 여기는 자세에요. 3절에 보면
*느헤미야 8:3,
3 수문 앞 광장에서 새벽부터 정오까지 남자나 여자나 알아들을 만한 모든 사람 앞에서 읽으매 뭇 백성이 그 율법 책에 귀를 기울였는데.
-새벽부터 정오까지 여섯 시간 동안 줄기차게 말씀을 들었어요. 만약 우리 한국교회가 아침 여섯 시부터 12시까지 말씀을 계속하면 다 졸았을 것이에요. 엎어질 것입니다. 아니면 나갔을 것이에요. 저는 6.3 상암 집회 이후에 우리교회가 앞으로 말씀을 더 높이는 교회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일주일 하루 목요일 저녁 같을 때, 시간이 되면 우리 대한민국 교회 안에 정말 말씀에 은사를 받은 분들 가운데 말씀 자체만 그대로 깊이 있게 해석하고 강의 하는 그런 시간을 사랑의 교회가 목요일에 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봅니다. 그런 날이 오지 않겠나 합니다.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잘 풀어나가는 과정을 말입니다. 이것은 어느 종교에도 없으며 이것은 영광스런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 그러면 이 말씀이 우리에게 주어질 때 기쁨이 있는데 기쁨이 있기 전에 전제하는 것이 있어요. 먼저 오는 것은 말씀을 통하여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8절에 보니까,
 
*느헤미야 8:8,
8 하나님의 율법 책을 낭독하고 그 뜻을 해석하여 백성에게 그 낭독하는 것을 다 깨닫게 하니.
*느헤미야 8:9,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왜 우는가? 히브리서 4장에 보면 말씀은 만물 앞에서 우리를 벌거벗긴다고 했어요. 말씀은 살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깨달아지니까 기쁨이 전에 먼저 눈물이 나고, 말씀 앞에 자신을 비춰보니까 눈물을 보지 않을 수 없는 것이에요. 나의 어떤 연약함과 나의 부족함 더더구나 우리의 마음이 맑을수록 눈물이 나는 것이에요.
 
*히브리서 4:12~13,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 앞에 서면 회개의 눈물이 나오고 회개의 눈물이 나오게 되는 것이에요. 그러나 그것이 끝이 아니고 그것이 부정적인 눈물이 아니라, 어떤 눈물이냐면 이것은 내가 부족해도 하나님이 오늘까지 내 삶을 인도하셨구나!! 하나님의 말씀의 밝은 빛 앞에서 내 삶이 완전히 드러나기 때문에 늘 죄송하고 풍성한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함으로 나의 연약함을 돌아볼 때에 어떻게 보면 나의 연약함과 부족함을 죄악이 가슴에 다가와 가지고, 죄송함과 회개 안으로 눈물이 나는 것이 그 눈물을 기초로 해가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바벨론 포로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오게 하신 하나님의 그 은혜와 그 눈물 앞에 감격해가지고 감사의 눈물로 따라 나오기 시작한 것이에요. 이 두 가지가 울음은 울음인데 하나는 정말 죄송함과 참 회개의 눈물이고 또 하나는 감사의 눈물이에요. 모든 일들이 그래요. 우리의 죄악을 드러내므로 회개의 눈물이 나고 그럼에도 우리를 붙잡으시고 인도하시는 그 은혜에 감사함으로 뜨거운 눈물이 나오는 것이에요. 소위 말씀 앞에서 자시느이 주제파악이 되는 것이에요. 자신의 어떤 실존을 정확하게 알게 될 때에 하나님 앞에 눈물이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라가 다실 말씀합니다. 다 같이 보겠습니다.
 
*에스라 10:1,
1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여 죄를 자복할 때에 많은 백성이 크게 통곡하매 이스라엘 중에서 백성의 남녀와 어린 아이의 큰 무리가 그 앞에 모인지라.
-모든 남녀노소가 다 우는 것이에요. 여러분 에스라 10장 1절에 보면 비슷한 이 배경인데 에스라 10장 1절에 보면 에스라가 하나님의 성전 앞에 엎드려 울며 기도하며 죄를 잡아갈 때 그 다음 주 많은 백성이 크게 어디겠습니까? 말씀 앞에서 통곡한 것이 우리는 남에게 할 수가 없는 거예요. 하나님 말씀 앞에 자신이 들어오면 되는 것이고 남의 들보를 보는 것이 아니에요. 은혜 받으면 눈물이 나는 거예요. 그런데 은혜가 없으면 은혜 받지 못하면 말씀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자기를 들어보고 동의를 하는데 은혜를 못 받은 자는 맨날 남에게 하는 거예요. 남들이 어떻다 남의 교회가 어떻다 뭐 어떻다. 여러분 우리가 우리를 심판으로 삼았어요. 말씀에 진정한 거룩함이 있으면 자기를 돌아보게 되는 것입니다. 거룩한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동시에 감사의 눈물이 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는데 지난 2주간 동안에 도전 받고 찔림 받고 아이구야, 내가 잘못했구나!! 뭔가 나에게 말씀이 나에게 닿지 않는다면 그것은 신앙이 문제가 있다는 것이에요. 저나 여러분이나 모두가 하나님 말씀 안에서 깊이 나를 돌아보면서 자신을 성찰하는 그런 축복된 시간이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거룩한 눈물이며 이것이 전제에요. 그런데 그 눈물이 있을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를 보면,
 
*느헤미야 8:9-11,
9 백성이 율법의 말씀을 듣고 다 우는지라 총독 느헤미야와 제사장 겸 학사 에스라와 백성을 가르치는 레위 사람들이 모든 백성에게 이르기를 오늘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성일이니 슬퍼하지 말며 울지 말라 하고.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11 레위 사람들도 모든 백성을 정숙하게 하여 이르기를 오늘은 성일이니 마땅히 조용하고 근심하지 말라 하니.
-성일이니, 이 말씀이 나오는데 오늘은 상암 집회 끝나고 난 다음에 영광스런 귀한 날인줄 믿습니다. 오늘은 이 귀한 주일예배가 되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거룩한 성입니다. 여러분 마음에 자녀들과 부모님과 마음에 소원을 하고 함께 예배에 와서 말씀을 듣는 특별한 날인 줄 믿습니다. 그럴 때,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느헤미야 8:10,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이 축복된 말씀을 깨달아가지고 자신을 돌아보며 자신을 어떤 간절하고도 통한을 하고 감사의 눈물이 있는 거기에 더러운 것이 다 닦여지는 기쁨의 빛이 환하게 들어올 줄로 믿습니다. 다른 말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위하여 예비하신 기쁨이에요. 오늘 이 은혜가 이 성도님들에게 충만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내가 구원 받은 것이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여기 뭐라고요? 축복된 말씀의 창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보고 눈물을 통하여 더러운 것이 닦여질 때 나도 모르게 기쁨과 감격의 빛이 들어오는 것이 통해하고 죄책감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주님의 보혈의 능력으로 적셔주신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가 되게 하여 주실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35장 10절에 보니까
 
 
*이사야 35:10,
10 여호와의 속량함을 받은 자들이 돌아오되 노래하며 시온에 이르러 그들의 머리 위에 영영한 희락을 띠고 기쁨과 즐거움을 얻으리니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리로다.
-구원의 감격이 있고 속량을 받은 내 문제가 해결된 그 순간, 우리의 머리에 희락의 관이 씌워지는 것이에요. 기쁨과 즐거움을 얻게 되는 것이며 슬픔과 탄식이 사라지는 것이에요. 이 용서의 기쁨을 통한 희락을 우리가 누릴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 수 없는 정말 성령님을 통해 깨닫게 하시는 이 진정한 속제의 기쁨이 있기 때문에 희락이 필요하게 되고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지 않는 축복을 주실 줄 확신합니다.
 
*이사야 11:3,
3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진짜 찐 기쁨을 누리는 것이에요. 진정한 기쁨, 확고하고 정중한 기쁨을 수많은 어려운 환경과 고난 가운데서도 누릴 수 있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키는 내 환경과 내 주위에 것으로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하십니다. 오늘 이 자리에 들어오는 자마다 우리 구원 받은 하나님 백성의 증표로 기쁨의 깃발을 그의 가정과 그의 삶에 대해서 다 올리게 하여 주십시오!! 라고 기도합니다. 진짜 은혜는 뭐냐면요? 내가 은혜 받으면 기뻐하는 것이 아니구요. 기뻐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아멘!!! 내가 은혜 받으면 기뻐하는 것이 아니고 내가 기뻐하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 차원을 올라가서 여러분의 마음과 소원과 비전과 우리의 어떤 마음의 간절함이 있어요. 여러분 소원이 먼저입니까? 기쁨이 먼저입니까? 자, 이것을 해결하기 위하여 시편 37편 4절을 보겠습니다.
 
*시편 37:4,
또 여호와를 기뻐하라 그가 네 마음의 소원을 네게 이루어 주시리로다.
-기쁨이 먼저인가요? 소원이 먼저인가요? 소원이 먼저가 아니라, 기쁨이 먼저입니다. 그러니까 기쁨이 먼저이고 소원은 자연스런 열매가 되는 것입니다. 기쁨이 뿌리이고 소원은 열매가 되는 것이에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라, 그것이 너희에게 힘이 되는 것이니라. 하십니다.
*느헤미야 8:10,
10 느헤미야가 또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가서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되 준비하지 못한 자에게는 나누어 주라 이 날은 우리 주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라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하고.
-힘이 되는 것입니다. The joy of the Lord is your strength. 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여호와를 기뻐하고 그것이 힘이라고 했는데 뭐냐면, 힘이라는 단어를 보면 히브리어로 마오즈라고 하는 단어인데 이 단어가 오늘 구약에 37번 나온다. 오늘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라고 했는데 힘이라고 할 때, 힘이라고 한 번, 성곽이라고 번역된 것이 14번, 피난처라고 번역된 것이 7번, 요새로 번역된 것이 7번, 보호로 번역 된 것이 3번, 심지어 투구로 번역된 것이 헬멧, 이라고 합니다. ‘마오즈’ 라고 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고 했을 때, 이것이 투구, 헬멧, 요새, 보호, 피난처, 성곽이 되는 것이에요.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짐도 있고 두려움도 있고 앞으로 장래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이런 연약함이 다 있어요. 그런데 한 가지만 분명하면 되느 것이에요. 그것은 하나님을 기뻐하면 그 기쁨이 여러분들의 성곽이 된다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기뻐하면 여러분의 요새요, 안식처요. 보호막이 되는 것이에요. 누가 우리를 보호해 줄까? 돈이 나를 보호하나? 아니면 어떤 세상의 권력이 우리를 보호하나? 우리의 그것이 성곽이 되는 것인가? 그것은 다 지나가는 것이에요. 여기 20년을 있으면서 수많은 권력자들, 수많은 힘 있는 자라고 하는 사람들 다 보았는데, 다 지나가는 것이에요.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의 성곽이 되는 것이에요. 보호자자 되는 것입니다. 요새가 되고 전쟁터에서 헬멧으로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것이 너희의 힘이니라. 우리가 투구, 헬멧, 요새, 보호, 피난처, 성곽을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데에서부터 찾으면 됩니다.
 
이번 상암경기장 전도집회에서 많은 것들을 느꼈지만 성령 안에서 기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해서 여러분들의 생애와 한국교회에 앞으로 10년 이상을 부흥으로 하나님이 보호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이제 제가 부탁하는 것은, 육신적으로나 또 삶에 있어서 여러 가지 짐들도 있고 기도의 적도 있지만 그 모든 것들은 던져두고 오늘 기쁨의 성공 안으로 들어오세요. 기쁨의 집 안으로 들어오시기 밖에서 왔다 갔다 하지 말고, 기쁨의 요새 안으로 들어오시길 바랍니다. 그럴 때 우리의 주님은 우리의 기쁨의 피난처가 되시고, 성곽이 되시고, 요새가 되시고, 헬멧이 되어 주실 것입니다. 뭔가 아프기도 하고 어떨 때는 우리의 욕심의 연약함도 생기고 다 그래요. 그러면 연세 드신 분들은 물리적으로 육신적으로 휴식하기 젊은 분들과 비교해서 게임이 안 되는데 여러분들의 힘과 능력은 뭘로 대체할 것인가?
바울이 말씀합니다. 겉 사람은 후퇴하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했습니다. 불로초를 먹은 것도 아닙니다. 이게 아닙니다. 속사람이 기쁨을 유지하고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기쁨을 유지해야 합니다. 이 기쁨이 여러분들의 것으로 확인되어져야 합니다. 기쁨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고, 기쁨을 위하여 마음도 쓰고, 건강을 지키고, 기쁨의 보약과 기쁨의 약을 드시기 바라는 것입니다. 나이가 들면 더욱 배가 시키는 것을 배워야 합니다. 그래야 육신이 약해도 기쁨의 보호막을 통하여 강건해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제가 육체적으로 좀 힘든 건 있지만, 그럴지 모르지만 제 마음이 메마르지 않도록 주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제가 힘들고 어렵고 헤매고 그런 거 보셨어요? 저도 약할 때가 있고, 저도 육신적으로 부족할 때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제가 한 가지 좋아하는 건 뭐냐면 내가 젊은 젊은이들보다도 욕심 적으로나 이런 면에서 내가 다 이렇게 부족하게 많이 있지만, 한 마디에 대해 분명합니다. 그게 뭐냐면, 기쁨의 능력과 기쁨의 실체와 기쁨의 의가 더 크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 육신의 힘, 자연의 힘 정도만 갖고 살면 안 되고, 영적인 즐거움으로부터 참된 힘을 얻는 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을 기뻐하는 것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자원이 되도록, 나이가 들면 들수록 이렇게 하게 될 때에 연세 되신 분들은 진정한 영적 보호막과 방패를 받는 줄로 믿습니다. 기쁨주의자, 크리스찬 헤도니스트, 제가 한 가지 말씀 안 했는데 사실은 제 마음속에 근본적인 기쁨을 놓치지 않도록 은혜 주신 것이 사역의 비밀입니다. 기쁨의 강이 흐르고 있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그 은혜로 항상 예배에 그 기쁨의 신학을 가지고 늘 기쁨의 부활절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주일 날 모두가 다 예배드리고 나서 기쁨의 대관식을 하는 것입니다. 나가실 때 기쁨의 면류관을 하나씩 쓰고 나가셔야 하는 것입니다. 매 주일이 은혜의 잔치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매일매일 삶에도 이 영적 대관식, 작은 부활절, 기쁨의 잔치가 스며들게 되는 것이에요. 또한 바울은 이걸 깨닫고 난 다음에 교인들에게 뭐라고 말합니까? 로마서 5장 3절에 바울이 뭐라고 했어요?
 
*로마서 5:3,
3 내가 환란 중에도 즐거워하니 이는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적어도 환난 중에서도 적어도 내게 주어진 것이 인내와 연단과 소망을 획득하니까 내가 어찌 기뻐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놀라운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인내와 연단과 소망이 뭐냐면, 다 십자가에요. 그러니까 어려움을 당해도,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하나님의 십자가의 신비를 깨닫고 나니까, 나도 모르게 십자가를 통한 부활의 기쁨이 내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진정한 마음으로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기쁨의 생수가 가득 채워지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깊은 신비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그러니까 오늘도 힘들어도 내가 십자가의 깊은 신비를 깨닫게 되니까 내 마음에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희락의 생수가 흐르는 것이에요. 십자가 십대를 깨달으니까 십자가 뒤에 따라오는 부활의 영광을 우리가 이 땅에서 영생으로 맛보게 되는 것이죠. 할렐루야!!!~
Love one another!!!! Rejoys in the LORD!!! 주님 안에서 기뻐해야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기쁨의 강수가 여러분들의 심령 속에 가득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떻게 서로 사랑합니까? 그리스도인에게는 기쁨이 비전보다도 우선한다. 이게 여러분이 와 닿으려면 제가 질문 하나입니다. 여러분 기쁨이 먼저입니까? 소원이 먼저입니까? 세상은 소원이 기쁨보다 앞서지만 성경은 기쁨이 소원보다 선행한다는 것입니다. 소원이 기쁨보다 앞선다는 것입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지니까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은 내가 합격하니까 내가 기뻐하고 내가 승진하니까 기뻐하고 잘 되니까 기뻐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주님 안에서의 순전한 기쁨이 소원을 결정한다는 것이 그래서 제가 자막을 만들었습니다. 시작.
 
내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 안에서 얼마나 기뻐하느냐가 내 소원이 얼마나 이루어지느냐를 결정한다.
-내가 예수님 안에서 얼마나 기뻐하느냐가 내 소원이 얼마나 이루어지느냐를 결정한다. 여러분 오늘 이 평생 여러분들의 영적인 슬로건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주님을 기뻐하는 수준이 여러분들의 인생의 수준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이 시간 여러분 어떻습니까? 2년 만에 하는 것 같은데 그렇죠? 진짜 한 번 해보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이 자리에 참석하신 여러분들 오늘이 기쁨에 관한 말씀을 드렸는데 오늘 이 말씀 때문에, 오늘 예배 때문에, 예수님 때문에, 오늘 이 시간 어떻습니까? ---기쁘고 좋습니다!!!~~.
 
♣요약
30년 묵은 신앙을 말씀을 통해서 통곡의 눈물로 회개하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는 힘을 가지고 걱정과 근심과 환난에서도 기쁨의 요새를 든든히 마음에 세워서 십자가를 바라보는 평생이 되어서, 기쁨으로 주님을 전하고 기쁨으로 가정과 이웃을 섬기는 자가 되고 희락과 부흥이 넘치는 은혜를 누려야 한다. 항상 기쁨이 선제되어 미래를 새롭게 열어가는 자가되고 주님을 기쁘게 하는 헌신된 삶을 살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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