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예배(주후 2024년 7월 7일)-성찬식(聖餐式)
제목: "생명의 떡이신 예수 그리스도"-예수님은 누구신가? ⑮번째
말씀: 요한복음 6:33~40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사님), 영광찬양대(1부)
대표기도: 권진우 부목사님
사회: 이기호 부목사님(1부)
헌금송: 홍혜천 집사(소프라노)
 
설교자: 오정현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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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6:33~40,
33 하나님의 떡은 하늘에서 내려 세상에 생명을 주는 것이니라
34 그들이 이르되. 주여 이 떡을 항상 우리에게 주소서.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36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나를 보고도 믿지 아니하는도다 하였느니라.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38 내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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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찬식을 앞에 놓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이라는 제목으로 오늘 15번째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오늘이 7월 첫 주일이고,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되는 이 시간에 출입해 주시는 시원한 생수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들 오늘 요한복음 6장을 펼쳐 놓았는데 요한복음 6장에서 주님께서 오병이어의 사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를 가지고 5천 명을 먹이신 사건인데 누구는 그래요. 보리떡 5천 개하고 물고기 2천 마리를 가지고 5명을 먹였다고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릴 하는 사람도 많아요. 이 오병이어의 사건을 가지고 그 표적 이후에 오늘 예수님의 그 자기 선언, 제가 예수님이 누구신가? 구약을 통하여 또 지난번에 많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예수님이 나는 누구다. 라고 하는걸 ‘에고 에이미’, 헬라로 I am, 나는 누구다. 예수님 당신의 자기 선언, 예를 들어서 예수님께서 말하면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시니 그럴 때 예수님이 나는 포도나무다. 아시지요? 그것도 모르면 안 되죠. 그다음에 나는 선한 목자다 아시지요? 사랑의 교회 성도들은 목자의 심정을 다 아는 분들이니까. The Shepherd heart. 나는 선한 목자다. 그러니까 나는 생명의 빛이다. 이런 것들을 예수님의 자기 선언이라고 하는데 이제 앞으로 좀 다룰 터인데 오늘 첫 번째 주님께서 에고 에임이 자기선언하신 것이 뭐냐면, 오늘 나는 생명의 떡이다.
 
I. 나는 생명의 떡이다.
-그래서 이 생명의 떡이 예수님의 당신 자신의 강력한 선언을 하셨기 때문에 이 생명의 떡 문제를 여러분들이 해결을 잘하면, 그가 줄이지도 아니하고 오늘 35절에, 오늘 요절인데요. 뒤에 보면 뭐라고 나오느냐 하면 이렇게 나옵니다.
 
**요한복음 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아멘 생명의 떡 문제와 그다음에 목마른 문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생명의 떡의 문제는 오늘 다루게 될 것이고. 여러분 다음 7장에 가면 ‘너희 속에서 생수의 강이 흐르리라.’ 거기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거예요. 앞에 4장에서도 그 수가성 물가의 예수님과의 말씀하실 때, 생수가 곧 성령의 역사이다. 그러니까 생명의 떡의 문제와 말씀의 떡의 문제와 생수의 문제 성령의 역사가 서로 선순환이 되는 거예요. 둘 다 서로 같이 톱니바퀴처럼 같이 이어져 가는 거예요.
 
그런데 오늘 생명의 떡을 위하여 주님 먼저 영적 시각 교정을 해주시는데, 뭐라고 교정을 해주시는가 하면 사람들이 오늘 이 주님이 이 말씀을 하기 전에 배경은 뭐냐 앞에 배경이 이래 나와 있어요. 주님께서 떡을 가지고 5천명을 먹이신 기적 같은 사건이라니까, 우리가 주님만 제대로 따르면 이 삶의 방해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떡의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이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뭐가 해결된다고요. 떡의 문제 빵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떡의 문제가 해결되겠구나. 그래서 주님만 따르면 무한정 먹을 수 있겠구나, 그래서 주님을 무료 급식소 소장으로, 그렇게 생각을 한 거예요. 영의 눈을 못 뜬 거죠. 왜냐하면, 떡을 자꾸 먹어도 더 배고프니까, 그런데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야 하루 종일 굶었는데 주님 이렇게 우리의 굶음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니, 배고픔을 해결해 주시니, 우리 예수님을 임금으로 삼자. 그리고 제 얘기가 아니고 오늘 본문에 15절에 뭐라고 나왔냐면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요한복음 6:15,
15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들이 와서 자기를 억지로 붙들어 임금으로 삼으려는 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가시니라.
-육신의 떡 문제, 우리 주님은 육신의 떡 문제를 오늘 해결해 주세요. 육신의 떡 문제 등한시하지 않으시고 주님은 저와 여러분의 경제의 문제도 주님은 관심이 있으세요. 여러분 주님을 잘 따르면 특별한 훈련을 위하여 아주 고단수의 아주 바울 같은 이런 사람들 제외하고는 웬만하고는 하나님 여러분들의 경제 문제, 떡 문제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무슨 뜻이냐 저는 어릴 때 가난한 개척교회 목사 아들이었기 때문에 저희 제 부친교회 근처 개척교회 옆에 보면 다 하루살이 노동자들 정말 못 사는 사람들만 살았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고 나니까, 삶이 맨날 술 마시고 그냥 가족들 폭력 행사하고 이런 남편들이 정신을 바짝 차려가지고 삶이 정리가 되니까, 반듯하게 사니까 경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에요.
 
그게 참 보험의 능력이에요. 그런데 주님 우리 떡 문제도 해결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영적인 생명의 떡을 해결해야 되는데, 무슨 예수님을 요술방망이처럼 삼아가지고, 잘못된 시각 교정을 가진 사람들에게 주님께서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26절의 앞에 뭐라고 하시냐면,
 
*요한복음 6:26,
26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잘못된 시각을 고쳐주시는 거예요. 그러면서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뭐하지 아니할 것이오. 줄이지 않을 것이다.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뭐예요? 목마르지 않는다.’ 근데 주님은 하루 먹고 또 배고프고 이런 것 정도 문제가 아니라 주님은 생명의 떡의 문제를 해결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진짜 영적인 고갈 상태를 해결해 주시기를 원하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제자 훈련하는 교회고, 점점 예수님의 온전한 제자 되기를 우리가 소원하는 교회인데 주님의 제자가 되어 가는 이런 과정을 신학적으로는 성화의 과정이라고 그래서 성화예요. sanctification, 성화의 과정이라고 그러는데 이 성화의 과정에 대해서 저 나름 또 다른 정의를 내린다면 성화라는 것은 육신의 떡을 의지하는 수준에서 점점 더 생명의 떡을 의지하는 과정이다.
 
“성화는 육신의 떡을 의지하는 수준에서 점점 더 생명의 떡을 의지하는 과정이다.”
-육신의 떡 정도가 아니라 생명의 떡은 그래서 여러분, 참 이 인류의 역사는 아담이 불순종을 선악을 알게 한 나무를 먹는 걸 따먹는 걸 가지고 문제가 시작돼 가지고 영원한 파멸로 갔어요. 그러니까 제일 첫 번째 아담을 통하여 먹는 것이 잘못돼 가지고 파멸로 갔는데, 제2의 아담 되시는 예수 그리스께서 오늘 생명의 떡이 되시므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보장하실 것이에요. 떡의 문제를 진짜 떡의 문제로 해결해 주시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우리 시각 교정을 해야 되는데 오늘 꼭 필요한 거처럼 우리가 하나 생각할 것이 뭐냐 하면 주님이 생명의 떡이 되셨다. 하는 그 말은 어떤 뜻인가 오늘 37절에 중요한 말씀이 나와요.
 
*요한복음 6:37,
37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내가 결코 내 쫓지 아니하리라. 오늘 성찬을 앞에 놓고 오늘 생명의 떡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가 무엇일까? 오늘 이것입니다.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다.”
-오는 자는 결코 내가 내쫓지 아니하리라. 거절하지 아니하리라. 주님의 초청 우리 주님은 초청하시고 용납하시고 받아주시고, 이끌어주시는 선한 목자이세요. 근데 사탄은 내 쫓고 참수하고, 거절하고 밟아버리고 아주 못돼먹었어요. 그래서 저와 여러분 오늘의 성찬에 참여하면서 거절하시지 않으시는 주님의 그 복음 중에 복음 앞에 우리가 눈물이 나고, 감사가 되고, 정말 치밀어 오른 은혜가 우리 속에 새로워져야 되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이 시대는요 거절의 사회에요.
 
저만 하더라도요. 중학교를 시험 봐가 들어갔다니까 중학교 입시가 3대1, 4대1, 5대1, 이었어요. 그러면 하나만 남고, 나머지 3대1, 4대1, 이면 나머지 3배, 4배가 다 거절당한 것 아니에요. 고등학교 입시는 더 치열했죠. 대학입시도 치열했죠. 요즘도 대학입시 어떤 과는 10대1, 20대1, 되는 거예요. 뭐 하나 들어가면 나머지 9, 하나 들어가면 나머지 19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그리고 제대로 된 회사는 다 안 받잖아요. 그러니까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가지고 중등, 고등학교 대학, 회사에서 거절당하는, 내가 이러니까 목사님 영업 사원은 매일 거절당합니다. 우리가 태신자를 품고 전도할 때도 거절당할 때가 있죠.
 
어떤 형제가 마음을 먹고 어떤 자매에 대해서 필이 꽂혀갖고 유아마이 선샤인(You are my sunshine) 그러면서 꽃다발을 들고 자매에게, 자매 나를 받아주소서. 라고 했는데 그 자매가 나는 형제와는 인연이 없는 것 같애요. 이러면서 단칼에 거절하는 거예요. SNS를 통해서 수많은 사람이 거절당한 경험 있죠. 단톡 방에 있는데, 혼자 남겨주고 다른 방을 만들어 가지고 거절시키는 거예요. 차단을 해 가지고 거절당한 경험입니다. 남편으로부터 거절을 당하고, 아내로부터 거절당하고 그래서 이 사회가 소사이어티 오브 거절, 이런 말이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거절의 사회 그리고 한국 사회는 상처가 너무 많고 천년, 2천년, 이 한반도에서 내려오면서 너무 경쟁 하다 보니까, 30프로는 무조건 있죠. 30프로는 무조건 이쪽 누가 말해도 들어먹질 않고 서로가 그냥 뭐 몸과 뜻과 정성과 목숨을 다해 싸우고 있어요. 한국 사회는 상처가 많아서, 누가 뭐래도 말을 안 듣는 30프로, 30프로 의심과 불신과 거절의 트라우마가 많은 사유가 오늘 생명의 떡의 역사를 체험하면 이 성찬회를 받으면 거절로부터 자유로워질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오늘 뭐라고 말씀하느냐 하면 39절에 눈물이 핑 돌아요. 뭐라고 말씀하시는가? 39절 본문에,
 
*요한복음 6:39,
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요한복음 6장에, 말씀의 바다에 나를 풍덩 던져 보니까, 39절을 깨닫게 하시는데 나를 보내신 주님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것이니라. 주님의 부활의 몸으로 같이 살도록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고, 그래서 주님으로 지금 한번 뒤에 보니, 요한복음 6장 28절에,
 
*요한복음 10:28,
28 내가 그들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또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II. 생명의 떡으로 먹으라고 하신다.
 
-오늘 이 자리에 오신 여러분들을 하나도 잃어버리지 않으시는 주님이심을 믿으셔야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건물을 지을 때, 남쪽 타워, 북쪽 타워 중간에 요셉 브릿지가 있는데, 주님의 손을 안아 가지고 여러분 멀리 봐야 보여요. 그게 루버로 해 가지고 예수님의 손으로 이거 안았어요. 남쪽 타워, 북쪽 타워 건물을 안았어요. 그리고 그 안을 때 거기에 루버에 십자가가 많이 들어있어요. 그리고 안아주시는 본당 자체가 그러고, 여기서 사랑 글로벌 광장에 천여 평이 다 사람들이 거절한 누구든지 올 수 있도록, 그리고 거기에 안영남 작가의 포에버 러브라고 거기에 소나무 옆에 여기 있어요. 붉은 심장이 있어요. 24시간 내내 벌떡벌떡 LED가, 또 어떤 사람은 목사님 전기 값 갖고 가난한 사람을 도와야죠. 똑같애. LED라서 비싸지도 않어요. 예 LED 할 돈 따로 있고, 구제할 돈 따로 있는 거예요. 제발 좀 편협하지 말고, 큰 그림을 보고 제발 좀 비판하지 말고, 거절하지 말고, 우리 주님이 교회 누구든지 거절 감을 느끼지 말게 하시고, 교회 와서 패배감을 느끼지 않고, 은혜를 받게 하여 주시옵소서.
 
자 그런데 그래서 사랑의 교회는 이 사회에서 거절당하고, 왕따 당하고, 추방당하고 단톡방에서 차단당하는 모든 사람들을 환영하는 교인 줄 믿습니다. 문제는 그런데 문제가 되죠. 그건 뭐냐 하면 예수님은 우리를 거절하지 않으시는데 세상의 떡에 취한 우리가 예수님을 거절하고 있는 것이에요. 참, 아이러니한 것은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은 그에게 나오는 사람은 누구도 거절하지 않으시는데, 세상의 떡에 길들여진 사람들이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거절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주님이 이 말씀을 설교를 하셨거든요. 오늘 요한복음 6장에 설교하셨는데 요한복음 6장, 예수님이 하신 말씀은 보포면 빨간 글씨로 돼 여기 빨개요 아 한 페이지가 다 빨개요. 계속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셔서 그런데 주님이 이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 많은 사람들이 66절에 보니까 예수님을 거절하고 다 떠나가 버렸어요.
 
*요한복음 6:66,
66 그 때부터 그의 제자 중에서 많은 사람이 떠나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예수님은 거절하지 않는다. 우리가 거절하면 되겠어요? 우리가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도 세상 떡에 취해 가지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외면함으로 영혼의 굶주림과 귀가를 계속 갖는다면 되겠습니까? 심지어 배신한 사람들 있어요. 7절이라고 하니까, 가롯 유다 같이, 그래서 예수님이 생명의 떡이라는 것은 거절하지 않으신 주님을 믿습니다. 다 거절당한 경험을 가지고 상처와 트라우마가 있는 우리 삶의 현상 가운데서 주님 오늘 우리를 거절하신 주님의 품으로 나를 던집니다. 그다음 또 하나 깨달을 것은 예수님이 우리를 거절하지 않는다는 것은 어떤 뜻인가? 우리로 하여금 생명의 떡을 먹게 하시므로 거절하지 않으시는 거예요.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예수님의 생명이라고만 말씀하지 않으시고, 생명의 떡이라고 말씀하시는 거 뭐냐면 생명은 좀 추상적인 용어예요.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이 무슨 뜻인가?”
-어떤 이론적인 것이에요. 철학적인 것이에요. 그런데 생명의 떡은 먹어야 되는 거예요. 생명의 떡은 체험해야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오늘 성찬을 통하여 생명의 떡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아주 중요합니다. 삶의 현장에서 구체적인 체험이 필요하다는 거죠. 그래서 생명의 떡을 구체적으로 체험한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오늘 본문 뒤에 53절에 보니까, 여러분 읽었습니다마는
 
*요한복음 6:53,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말은 인자의 살을 먹고 인자의 피를 마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에요. 그게 좀 54절에 보니까,
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주님의 부활의 몸으로 다시 살리겠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것을 말씀하고 그러니까 이제 55절에 다 같이 시작,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내 살은, 내 피는 놀라운 기가 막힌 말씀입니다. 이런 말씀을 하는데, 60절에 보니까, 제자들이 뭐라고 그러냐,
60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 대.
- 야 이 말씀이 어렵도다 누가 이걸 깨달을 수가 있겠는가? 오늘 이 말씀이 어렵도다. 생각하는 분들은 이제부터 여러분들의 귀를 쫑긋 세우고 제 말씀 앞에 같이 요한복음 6장의 세계에 다시 우리가 뛰어들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오늘도 비슷한 느낌이 있을 수 있는 분들은 어떻게 주름에 살과 피를 먹고 마실 수 있는지 제자들처럼 오늘 어리버리하게 못 알아듣지 말고, 생명의 떡이신 예수님을 깨닫는 영적 시각 교정, 영안을 열어주시기를 원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물리적으로 예수님의 피지컬 예수님의 바디와 예수님의 피를 먹는가, 그 정도 아니에요. 영적으로 먹고 마셔야 되는 것이에요. 이런 뜻입니다. 어느 날 엘리야가 선지자가 로뎀나무 밑에서 이제 번 아웃 돼 가지고 나의 생명을 취해 달라고 완전히 고갈 상태가 됐어요. 그때 누가 보냈었어요. 그 로뎀나무 밑에서 천사를 보내 가지고 천사가 준 떡과 물을 먹고 마셨는데요.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로뎀나무가 아니라, 예수님의 나무 십자가 밑에서 오늘 생명의 떡 대신 예수님을 깨닫고 생수를 먹고 다시 회복해야 하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성만찬을 통하여 생명의 떡을 체험해야 된다. 라는 말은 예수님의 몸과 피를 기념해야 되는 것인데, 그것이 무슨 뜻인가 하면 바울이 이걸 잘 깨닫고 난 다음 고전 11장 26절에,
 
*고린도전서 11:26,
26 너희가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아멘. 자, 오늘 주님의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은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것인데 이 뜻은 조금 더 깊이 들어가면 뭐라고 얘기하느냐 바울이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그가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니라. 무슨 말이냐? 주의 죽으심의 십자가의 사건을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깊은 신비와 비의를 오늘 이 자리에서 더 깊이 깨달을 때 예수님의 살과 피를 먹는다고 말할 수가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저는 예수님의 십자를 더 깊이 묵상한다. 할 때, 이번 주에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제가 에드워즈 테일러라는 18세기 청교도 목사님이시자 시인이었던 그분이 생명의 떡에 대해서 깨닫는 거에서 아 너무 마음에 와 닿았어요. 마음에 그냥 막 그냥 전율이 일어나는 거예요. 그가 뭐라고 말씀했는가, 이렇게 말씀했어요.
 
“하나님은 그의 사랑스러운 아들을 갈고 반죽해서 생명의 떡을 만들었다.”-에드워즈 테일러-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갈고 반죽해 가지고 이 생명의 떡을 만들었다. 예수님의 몸을 십자가에서 으깨고 반죽해서 만들어진 떡이 생명의 떡인 줄 믿습니다. 그리 생명의 떡을 먹으라는 것은 이 십사가의 깊은 은혜와 신비를 오늘도 기억하고 확인하고 묵상하면서, 우리가 성찬에 참여할 때, 우리 모두는 생명의 떡을 먹게 되는 것이고, 거절의 상처로부터 자유롭게 되는 날이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53절에 다시 한 번 ,
 
*요한복음 6:53,
5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인자의 살을 먹지 아니하고 인자의 피를 마시지 아니하면 너희 속에 생명이 없느니라.
-오늘 우리 가운데 수많은 상처 입은 분들, 슬픔 당한 분들, 극한 거절로 고통당하는 분들, 이분들 계시면 십자가를 통하여 아들을 갈고 반죽해서 몸을 으깨어져 떡을 만드시고 그걸 통하여 생명의 떡 되신 예수님을 우리가 묵상하고 체험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저는 우리 가운데 상처가 치유되고, 거절이 해결되고, 슬픔이 극복되고, 우리 가운데 수없이 거절당하고, 공고한 인생이고, 먹어도 배고픈 인생이고, 어려움의 파도가 몰려올 때는 숨을 자리가 없고, 슬픔에 강이 범람(汎濫)할 때는 안전하게 있을 데가 없고 실패할 때마다 가슴을 쉬는데도 쉴 데가 없는 그런 우리 삶의 상황이 있다면, 오늘 생명의 떡을 먹고 소생하시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리고 생명의 떡을 먹는다는 것은 십자가의 깊은 신비를 깨닫는 것이에요. 제가 젊을 때,
 
♬ 주님 가신 길 십자가의 길 외롭고 무거웠던 길 골고다의 지친 언덕길 오 나의 주님 나를 용서하여 주십시오. 죄인 위해 권한 받으셨네. 이 세상에 생명주시기를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우리의 생명 죽게드리네. 나의 자랑 십자가일세. 나의 생애 주님까지 나의 영광 나타내 주소서 이 세상에 생명주시기를 그렇게도 원하셨던 길!~~,
 
-여기에 주님의 십자가에 대한 깊은 신비가 우리 모두에게 눈이 열리기를 바라는 겁니다. 그래서 여러분 자빠져도 십자가 앞에서 자빠져야 됩니다. 생명의 떡을 오늘 먹는다는 것은 으깨어진 예수님의 십자가 깊이를 묵상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게 복음의 진리예요. 그리고 생명의 떡이신 이 예수님은 2천 년 전에 이 땅에 초림으로 오셨지만 앞으로 그 어느 날 완벽한 모습으로 다시 오실 것입니다. 그게 주님의 재림입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해서 너무 마음에 와 닿는 것이 있어요. 요한계시록 7장 15절-16절에 우리 크게 또박또박 같이 합동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7:15~16,
15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또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아니하며 목마르지도 아니하고 해나 아무 뜨거운 기운에 상하지도 아니하리니.
-요한계시록에서 우리에게 다시 확인한 생명의 떡을 너희들이 제대로 먹게 될 때, 결국은 다시는 영적으로 주리지도 아니하고 목마르지 않은 축복을 허락해 주실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생각과 계산으로만 확인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생명의 떡의 문제는 수학적이거나 계산 정도가 아니라, 이건 생명적이고 하나님 적이고 천국적의 차원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이제 성찰 앞에 놓고 적용하겠습니다.
 
적용.
35절 요절 말씀을 다시 한 번 크게 우리가 읽고 고백하겠습니다.
*요한복음 6:35,
35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할렐루야! 내게 뭐에요? 오는 자는, 주님은 용납하고 받아들이고 초청의 전문가라 그러셨죠. 주님께 가는 자는 상처받아갖고 도망가지 아니하고 생명의 떡 되시는 주님 오라 그러시는데 세상의 떡에 취해 가지고 우리가 주님을 거절하는 우리의 마음이 있다면 그런 부분이 있다면 주님 주님께 내가 나아가겠습니다. 성찬을 통하여 주님 앞에 나아가겠습니다.
 
내게로 오라. 주님 앞에 나간다는 이 말씀은 마치 불이 난 집의 창가에서 이제 불타 죽기 직전에 겁에 질린 자식에게 밖에 있던 아버지가 그 아들을 살리려고 밑에다가 안전장치를 다하고 얘야 뛰어내려라. 뛰어내려라. 뛰어내리라고 애절하게 외치는 그 부모의 심정과 같아요. 여러 나라를 사막에서 헤맨 후에 탈진해서 거의 죽어가고 있는 자를 발견한 구조대가 이거 마시세요. 탈진해 죽어가기 직전인 사람에게 이거 마시세요. 라고 말하면서 물을 주는 거와 같아요. 불타는 집에서 뛰어내리지 않으면 죽는 거예요. 물마시라고 하는데도 안마시면 갈증으로 죽는 것이에요. 오늘 주님의 안타까운 심정을 깨닫고 오라하시는 주님의 심정을 깨닫고, 주님께서 십자가를 통하여 그의 몸을 갈고 으깨고 이렇게 하신 것, 그분 앞에 우리가 마음의 소원을 가지고 내 생애를 통하여 주님 앞에 생명의 떡을 먹고 주님 앞에 쓰임받기를 원합니다. 이런 마음으로 성찬에 참여할 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하여 으깨어 주셨으니 우리도 헌신하고 우리의 삶을 들일 때 그게 진짜 축복이요. 그게 진짜 은혜가 되는 겁니다.
 
♣요약
우리는 목마를 수밖에 없는 떡의 전쟁터에서 돌아와 ‘거룩한 성찬’을 받을 때, 예수님의 영원한 생명으로 모든 영적 굶주림을 해결하여 주셔서 참된 만족을 누리며 예수님께서 친히 갈리고 으깨어진 생명의 떡이 되어 주셨사오니 거절 사회에서 받은 패배감을 온전히 치유 받아야 한다. 우리도 가정과 일터에서 으깨어진 생명의 떡이 되어 예수님의 피의 복음의 능력에 의지하여 ‘2033-50 비전’을 올려 드릴 때, 한국교회와 세계 복음주의 교회와 함께 강력한 하나님의 군대로 일어나는 믿음의 교회가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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