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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2년 10월 9일)
제목: "코로나 이후 새판짜기"
말씀: 누가복음 21:29-36
대표기도: 김건 부목사님(1부)
찬양인도: 쉐키나(이원준 부목사님), 영광찬양대
사회: 장광천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졍한 담임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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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복음 21:29-36,
29 이에 비유로 이르시되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를 보라. 
30 싹이 나면 너희가 보고 여름이 가까운 줄을 자연히 아나니.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34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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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이후 새 판짜기"(오정현 담임 목사님)
주님의 이름을 찬양한다! 알파와 오메가가 되시고 또 우리의 삶의 선한 목자 되시는 하나님께서 주님의 그 고결한 피를 머리 끝 부터 발끝까지 덮어주셔 가지고 능력을 회복하게 하시고 치유 받을 자 치유 받게 하시고 많은 분들이 말씀의 부요의 바다에 풍덩 빠지시길 바란다. 오늘 권세 있는 찬양을 축복한다. 오늘 무화과나무 비유이다. 오늘 19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말한다. The Kingdom of God.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원 중에 하나는 말씀대로 목회하고 싶다
 
오늘 예수님의 비유를 통하여 새 판 자기의 말씀이 오늘 대단원의 마지막 시간이다. 마지막 방점을 찍는데 이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오늘 29절에 이렇게 나와 있다.
 
*누가복음 21:29,
29b 이에 비유에 이르시되
-주님께서는 많은 비유를 말씀하시는데 비유의 핵심은 하나님의 나라, 그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에게 도래하는 것, 그래서 오늘 마지막 시간 때, 우리가 종말의 때, 하나님의 나라에 눈을 열고 하나님의 종말을 잘 준비하라는 뜻이다. 그래서 마음이 복잡한 거 다 닫아걸고 지금 이 시간 정말 말씀이 뭐라 하는지 저는 부족함이 있지만 '말씀대로 목회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이게 마음의 소원이다. 여러분들도 말씀대로 살아보게 해주십시오! 이런 기도할 수 있는 거 아닌가? 오늘 핵심이 뭐냐 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준비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인데 주님의 재림과 종말의 때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그러니까 그걸 준비하는 방법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 오늘 이 내용이 마태복음이나 마가복음이나 다 나오는데 누가복음에는 기도하라는 말씀이 더 들어있다. 다른 곳은 깨어 있으라만 들어있다. 누가는 성령이 충만했다. 사도행전도 썼기 때문에 한 번씩 말씀 드렸듯이 사도행전은 누가 썼는가? 사도행전을 바울이 썼다고 하면 돌아가고 싶다. 사도행전은 누가가 썼고 사도행전 성령서이고 누가복음은 성령 충만한 복음서이다. 그런데 거기에 기도가 추가되어 있다.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그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그 어떤 뜻인가? 종말로는 이야기 할 때 마태복음 24장 25장도 동일하게 종말에 대한 내용인데 여기는 뭐라고 설명 하냐면
 
*마태복음 24:45,
45a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그러니까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다는 말과 충성되고 지혜 있다는 말이 동일한 말이다. 지혜 없는게 어떤 건가 어떤 신혼부부가 있었는데, “목사님, 요즘 같이 어려울 때 아이는 안 낳겠습니다.”라고 했다. 신혼부부 애 안 낳겠다는 것이다. 왜 안 낳느냐고 하니 저에게 당당하게 누가복음 21장 23절을 가져왔다.
 
*누가복음 21:23절,
23 그 날에는 아이 밴 자들과 젖먹이는 자들에게 화가 있으리니 이는 땅에 큰 환난과 이 백성에게 진노가 있겠음이로다.
-종말의 때라고 하는데 "제가 어떻게 아기를 가질 수 있겠습니까?" 듣고 "이 사람아 그거는 "예수 안 믿는 사람들에게 하는 말씀이야! 그 예수 안 믿는 사람에게 주시는 말씀이야! 그런데 지혜롭고 충성된 종은 아이를 많이 낳아야 하고 대한민국 사람이면 최소한 세 명은 낳아야지~" 라고 했다. “어떻게 그게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됩니까?”라고 했다. “아이를 낳아보면 안다. 아기를 낳아보면 인간이 되는 거야! 부모가 되는 거야 부모는 마음대로 살 수가 없어. 부모는 함부로 살수가 없어, 부모는 자기 맘대로 살 수가 없어. 자식을 키우는 부모는 지혜롭고 충성되지 않으면, 자식을 키울 수가 없어. 자식을 키우다보면 별일이 다 있어. 정말 어떤 미운 다섯 살이라고 창밖에 던지고 싶어, 그런데 그걸 내 자식이라고 한 결 같이 아끼고 사랑하고 주님의 사랑의 심정을 가지고 목자의 심정을 가지고 어이어이, 저 자식을 어떻게 키울까? 그 마음먹고 계속 생각하면, 부모가 지혜롭고 충성되지 않을 수가 없는 거야! 그리고 이 아이들 제대로 키우려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이 아이를 위하여 깨어서 기도하고 항상 깨어서 기도하지 않으면 이 자식이 제대로 못 커, 그리고 조금 더 지혜롭고 충성되면 토요비전새벽예배에 애들 데리고 와!!~~정말 지혜로운 어제 같은 경우는 우리가 삼천의 기도를 했다. 삼천 명이 기도했다는 것이 아니고 6=7천 명이 와서 미어터지고 본당이 꽉 차고 했으니 천장이 울리는 기도이다. 그 다음은 저만 이렇게 좋아하는가? 천국의 물소리 같은 기도, 이걸 참 간절히 기도하는데 우리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면 아이들이 지혜롭게 자랄 수 있어, 아이들이 하나님 앞에 제대로 클 수가 있어, 그게 부모의 지혜야, 그게 깨어서 항상 기도하는 거야, 그게 지혜롭고 충성된 부모로서의 역할이야!”
 
그리고 이 준비한다는 것은 종말적인 말씀을 하는데, 이 종말에 대해서 우리는 준비를 해야 되는데 핵심은 이것이다. 오늘 지혜롭고 충성되면 오늘부터 잘 할 수 있는 것이다. 내일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라면 내일부터 잘하는 것이다. 일주일 뒤에 지혜롭고 충성되면 일주일 뒤에 잘하는 것이다. 일 년 뒤는 일 년 뒤로 미루어지는 것이다. 여러분 일 년 뒤, 한 달 뒤, 미루지 말고 오늘 당장 즉시 오늘부터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시고 이걸 위해서 항상 깨어서 기도하는 종들이 되길 바란다. 이렇게 하려면, 먼저 우리가 우리의 총 주제인 예수님의 비유의 말씀인 새 판짜기가 가능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새 판짜기가 무엇이냐면,
 
I. 새 판짜기를 해야
-첫째 새 판짜기는 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팬데믹 코로나 이후에 우리 지극히 지난한 코로나 강을 건너왔다. 우리가 만약 코로나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거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간다면 그것은 너무나 안타까운 일이다. 다시 돌아간다는 말은 ‘리줌’이라고 말한다. 리줌(Resume),이라고 한다. 우리는 리줌이 아니라, 리셋(reset)을 해야 한다. 재설정, 완전히 새 판짜기, 리뉴얼(renewal) 하는 것이다. 단순히 초기화 하는 리셋 정도가 아니라, 재창조의 리셋, 재창조의 리뉴얼, 어떻게 보면 리포메이션(reformation)이다. 개혁을 우리가 해야 할 줄로 믿는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종말론에 대해서 눈을 뜨게 하시고, 제가 오늘 종말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할 때에 그 동안 종말론 하면 두렵고, 어떻게 보면 어둡고, 음습하고, 그리고 종말론을 옛날 보면 종말론 할 때, ‘몇 월 며칠 예수님이 오신다.’ 그래가지고 예언을 했지 않은가? 이런 사람들 때문에 종말론에 대해서 뭔가 희화화 되고, 뭔가 어둡고, 뭔가 음습하고, 뭔가 두려운 것인데 오늘 부로 모든 어두운 종말론은 다 종지부를 찍고, 밝은 종말론, 기쁜 종말론, 설레이는 종말론, 감사하는 종말론, 그리고 행복한 종말론의 깨달음과 은혜가 우리 모두에게 있어지기를 바란다. 다시, 두려움의 종말론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기쁨과 감사와 설레임의 종말론으로 주님이 변화시켜주시길 바라는 것이다. 그러려면, 우리가 리셋 정도가 아니고, 창조적인 새로운 리뉴얼이 우리에게 일어나야 한다. 절박한 심정으로 우리의 마음의 소원을 해야 한다. 자, 그러기 위해서 먼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무화과나무의 잎의 비유이다.
 
II. 무화과나무 비유를 깨달아야 새 판짜기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이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깨달아야 새 판짜기를 할 수 있다. 오늘 무화과나무 비유를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무엇일까? 앞에 사람들이 물어보았다. 역사의 대 종말, 역사의 마지막 때에 어떤 징조가 일어나겠는가? 라고 주님께서 물었을 때, 많은 징조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면서 드디어 마무리 딱 방점을 찍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깨달으라.’고 하신다. 그리고 이 누가복음에만 앞에 마태나 마가복음에는 무화과나무 잎에만 나와 있는데, 누가복음에만 ‘무화과나무와 모든 나무의 비유’, 라고 되어 있다. 왜냐하면 마태복음에나 다른 곳은 유대인들을 위한 것이었지만 누가복음에는 모두 이방인들을 다 포함하기 때문에 무화과나무가 무엇을 상징을 하냐면 유대인을 상징한다. 그리고 누가복음에만 우리 모두가 다 포함되어서 방향을 잡아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간 이 무화과나무를 생각하면서 이 모든 나무의 생태계를 상상하면서 마음의 그림을 한 번 그려보라. 픽쳐라이즈, 한 번 이렇게 그림을 그려보라.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자라는가? 무화과나무가 어떻게 되는가?
 
저는 어릴 때에 우리 아버지가 개척교회를 하신 마당에 무화과나무가 있었다. 부산 사람들은 이 무화과나무를 무화과나무라고 하지 않고 ‘이찌지쿠’라고 한다. 웃는 사람들은 부산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데 이 무화과나무가 독특했다. 가을이 되면 잎이 다 떨어진다. 무화과나무 잎이 제법 큰데 다 떨어진다. 다 떨어지고 난 다음에 ‘봄에 다시 나오겠나?’ 하는 생각이 드는데 봄 되면 연한 순이 나온다. 그리고 잎이 커지게 된다. 나중에 열매가 맺히게 된다. 무얼 말하는가? 다 아무것도 아닐 것 같고 다 죽은 것 같고, 그런데 독특하게 그 잎이 큰 것이 다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봄에는 새싹이 나오고, “무화과나무 새싹이 나오는 것을 보거든 너희들은 종말의 때가 가까웠음을 기억하라.”고 말씀한다. 그래서 큰 잎이 나중에 열매가 맺히고 그 열매를 누가 먹느냐하면 제 동생과 제가 못 먹고 다른 봉사자들이 먹어버린다.

*누가복음 21:31-32,
31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그걸 위하여 청지기가 되고, 충성된 종이 되고 기도하고 깨어있으라. 그리고
3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모든 일이 다 이루어지리라.
-저 말씀에 우선 그 근접한 해석, 그 시대의 역사는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을 했다. 그대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 이 시대의 조금 더 확장해서 해석을 하면, 오늘 예루살렘이 완전히 무너지고 망한 그 멸망의 날이 온 것처럼 이 시대도 어느 날인가 반드시 하나님께서 무화과나무의 징조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그런 일이 일어나는 것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종말의 날이 올 것이다. 라는 것이다. 종말의 날이 온다는 것이며 밝아야 되는데 종말이라고 하니까 좀 두려워하고 무서워한다. 그러면 무화과나무의 징조를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몇 가지를 이야기 한다.
 
첫 번째 징조, 무화과나무의 꽃이 피었다. 여기에 해석은 여러 가지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1948년 우리나라 건국과 함께 이스라엘 나라가 동일하게 건국이 되었다. 무화과나무가 무얼 의미한다고 했는가? 이스라엘을 의미한다고 했다. 우리가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을 너무나 중요하게 의미 있게 생각할 거기에다가 모든 걸 다 주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해석하는 것은 조심스럽긴 하지만 한 가지는 이스라엘 나라가 건국 된 것이 하나님 나라의 건국에 아무런 의미가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해석이다. 그러니 무화과나무의 꽃이 피었다는 것은 1948년도에 이스라엘 나라가 건국 되었다는 것이 종말의 중요한 징조라는 것이다.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의 중요한 징조이다. 제가 거기에다 모든 의미를 다 부여할 의미는 없지만 그러나 징조가 있는 것이다. 저는 가능하면 균형잡힌 신학적 신앙을 가지고 말씀을 드리고자 사려 깊은 일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무화과나무의 꽃이 피었다고 할 때,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이 여기에 포함된다는 것이다. 이 정도는 어느 정도 균형 잡힌 해석이라고 말할 수 있다.
 
*누가복음 21:35,
35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두 번째 징조, 35절에 –지금 SNS 네트워크가 일어나서 전 세계가 다 연결되어 버렸다. 전 세계 컴퓨터의 거대한 흐름은 한 사람이 전 세계와 커뮤티케이션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이 펜데믹 이후의 포스트 코로나 시대에는 온라인과 오프라인이 예전보다 더 빨리 융합이 되어서 온라인 시대가 되는 것이다. 디지털이 극대화되고 메타버스 시대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온 세계가 어떤 영향을 받는가? 저는 이것 때문에 저는 그렇게 생각이 든다. 마태복음 24장 14절을 보면, 무슨 일이 벌어지냐면,
*마태복음 24:14,
14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SNS가 천국 복음이 온 세계에 전파되는 것과 연결이 되는 것이다. 오늘 이 복음이 2천년 역사상 시공을 초월하여 우리가 가장 많이 전파되고 있는 줄로 믿어야 한다. 세계 기독교 복음은 성경 다음에 많이 팔리는 책중의 하나인데 ‘패트릭 존슨톤’이라는 저자가 쓴 것인데 이분의 이야기는 이러하다.

※우리는 이제까지 역사적으로 한 번 더 경험해 보지 못했던 가장 큰 무리가 하나님 나라로 모여들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패트릭 존슨톤(Patrick Johnston)-
-그러니까 지금 세계 선교가 완성되는 날을 우리가 우리 시대에 다 볼수 있을지 모른다. 어떻게 가능한가? 여러분, AI, 인공지능이 생겨서 전 세계의 우리 성경번역 각 종류마다 모든 언어 종류마다 성경번역이 다 되는 것이 시간이 앞으로 더 많이 걸릴 것이라고 그런 예측을 많이 했는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나와서 훨씬 빨리 성경이 다 번역이 되는 길이 열린 것이다. 그리고 이 AI 이러한 것 때문에 복음 전파와 복음 선포와 복음의 이 전해 짐도 전 세계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너무 늦지 않게 최소한 생애 한 번 이상은 복음을 다 들을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진 것이다. 지금 전 세계가 그러할 것이다. 이스라엘 나라의 건국, 전 세계의 복음의 네트워킹, 무엇보다 전 세계에 복음이 전파되는 것이다. 앞에 본문에 누가복음 21장 10-11절을 보니까,
 
*누가복음 21:10~11,
10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11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또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우크라이나 같은 일이 있는 것이고, 지금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 특별히 지금 코로나를 통해서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있지 않은가? 이러한 것들을 보면서 핵심은 이것이다. 주님은 다시 오실 것이다. 예수님이 이 땅에 연을 통하여 초림하신 것처럼, 2천 년 전에 오셨던 것처럼, 오늘 이런 징조들과 함께 이제 주님께서 예언하시고 말씀하신 대로 오늘 말씬하신 대로 주님은 다시 재림하실 것이다.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주님이 제 생애에 오실 것을 간절히 바라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불신자들에게는 이런 종말이 그저 두려움이 대상일 뿐이겠지 만은 종말의 의미를 알고 있고, 준비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의 이 종말임이고 소망이 되어야 한다.
 
※만일 우리에게 종말이 기다림과 소망이 아니라면, 종말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그래서 종말을 준비하지 않고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 모두는 종말을 기다림과 소망으로 기대하고 준비하는 축복이 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이것을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
 
*누가복음 21:36,
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에게 종말은 두려움이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서 인간의 시간 속에 살고 있지만 하나님의 시간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 종말의 기대감과 설레임과 행복한 시간이다. 왜냐하면 여러분들이 따라서 아무리 잘 살아봐야 천국이 1초와 비교가 안 되는 것이다. 너무 중요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준비를 잘 안 한다. 주일학교에서 종말에 대한 성경 공부를 하고 온 아이가, 딸 아이가 엄마에게 질문을 했다. “엄마, 오늘 주일학교에 가니까 교회의 선생님이 그러시는데, 이 세상에 삶은 천국을 준비하는 삶이래요. 그래서 이 땅에서는 천국을 준비하는 것이래요. 엄마 맞아요?” 엄마가 너무 기특해서 “그래, 맞지” 그렇게 대답을 했다. 그랬더니 그 딸아이가 엄마에게 다시 물었다. “엄마는 작년에 미국 가기 위하여 엄청 준비를 많이 하셨어요. 올해는 유럽 간다고 엄청 한 달 동안 준비하셨는데, 다른 나라 가실 때마다 한 달 전부터 미리미리 여행을 준비하시는데, 왜 엄마, 천국은 준비를 한하세요?”라는 것이다. 그 딸의 물음에 당황해서 그 대답을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 세상의 중요한 곳에 여행을 가기 위해서 준비를 그렇게 많이 하는데, 정작 종말과 천국을 위해서 어떤 준비를 f하고 있는가? 오늘의 핵심은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으라.’ 그리고 착하고 충성된 종으로 기도하고 깨어있으라.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천국이 도둑같이 오기 때문이다. 천국은 갑자기 오는 것이다. 그리고 기도하고 깨어있는 것은 두 가지는 다 자발적인 행동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사모하면서 기도하면서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서 자발적으로 준비하는 것이다. 우리가 왜 깨어 있어야 하는가?

III. 새 판짜기를 위해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우리가 깨어 있어야 하는가? 예수님의 재림의 날짜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준비를 해야 하는 것이다. 재림이 도둑처럼 임한다고 했지만, 우리가 너무 준비를 잘 해가지고, 너무 준비를 잘 해서 도둑이 안 오면 섭섭할 정도로 잘 해야 된다. 예수님의 재림과 역사적 종말이 우리기 먼 것 같아도 여러분 최소한 개인의 종말은 오는 것이다. 그래서 제가 어떻게 하면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을까? 사랑의 교회는 ‘9.26 한국교회 섬김의 날’을 통하여 많은 성도들이 손님도 모시고 하면서 준비를 했다. 참 감사한 일이다. 저는 나름대로 준비를 하는데 어떤 중압감을 느꼈다. ‘이 집회와 이 큰 사역을 내 힘으로는 감당을 못하는데 어떡하면 좋을까?’ 그렇게 하다가 제가 이제 강단기도를 하고, 강단 기도 마지막 때에 사람에게는 진심으로, 하나님께는 전심으로 이런 구호를 주셨다. 그 마음을 갖고 하는데 9월 26일 날 아침에 오후 2시부터 집회인데 아침에 제가 산에 올라갔다. 저 혼자 기도하는 장소가 있다. 하나님이 제 마음속에 보통 집회를 하면 처음 시작 잘 해서 마지막 폐 예배 때에 결판을 내야겠다는 생각을 말고 이번 9.26 섬김의 날에 시작예배 때, ‘개회 예배 때에 끝내라. 개회 예배 때에 결판을 내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러면서 제가 42년 전에 옥천 수양회가 생각이 났다. 옥천에 대학생들 수양회에 책임을 맡고 있었는데, 아이구야, 수양회 가는데 한 60-70명의 불신자들을 데리고 갔다. 200명 가운데 불신자들이 있었다. 그러니까 굉장한 압박감이 있었다. 도착을 하면 오리엔테이션을 하고 개회 예배를 드리고 이렇게 하는데, 도착하는데 비가 억수 같이 쏟아지는 것이다. 밖에 나갈 수가 없었다. 충복 옥천인데, 개회 예배에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서 보통 우리가 6-70명의 형제자매들을 데리고 가면 마지막 다 은혜 받게 하고 모든 것을 종합해서 한 4박 5일을 이렇게 하는데, 마지막 때에 콜링을 하고 예수 믿는 자들이 앞으로 나오라고 하고 마지막 결단을 하라고 하는데, 그런데 개회 예배에서 너무 은혜를 주셔서 70명이 거의 다 결신을 했다. 두 명이 안 했는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래서 그때에 눈물 젖은 피아노이다. 그게 뭐냐면, 서울대학교 피아노학과 4학년 자매가 왔는데 이 자매가 자기 친구들 예수 믿게 해달라고 기도했는데 계속 그 친구들이 졸업할 때까지 예수를 안 믿는 것이다. 그래서 여름 수양회에서도 안 믿게 되니 걱정이 되었는데, 그래도 마지막 친국들을 데리고 온 것이다. 자기 피아노학과 친구를 데리고 왔는데 그 친구 둘이가 예수 믿겠다고 벌떡 일어난 것이다. 그러니까 이 자매가 너무 놀라가지고 눈물을 펑펑 흘리면서 피아노를 친 것이다. 그래서 제목인즉 ‘눈물 젖은 피아노’이다. 남은 두 명은 안 일어났다. 마지막 날,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예수 믿겠다고 했다.
 
그래서 제 마음속에 ‘아, 그렇구나!’ 그냥 길게 갈 것 없고 아예 개회 예배 때부터 결판을 내야 된다고 생각하고 주님께 질문했다. “주님, 개회 예배 때에 어떻게 결판을 내야 좋습니까?” 그렇게 하니 제 마음에 깨닫게 하시는 은혜가 있었다. 목사의 삶은, 사역자의 삶은, 성도의 삶은 오늘 말씀처럼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어야 되는데, 그러면 모든 그리스도인들, 모든 예수 믿는 사람들, 모든 사역자들을 항상 깨어 있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를 알게 하셨다. “네 삶을 돌아보라”이다. 저의 삶을 돌아보니까 평생 깨어 있게 하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하나는 권한, 또 하나는 믿음의 모험이었다.
 
그러니까 ‘고난과 믿음의 모험’이 제 삶을 깨어있도록 만들어 주셨다. 그래서 이 말씀을 제가 사도행전 강해 첫 시간을 하면서 그대로 제가 같이 나누었다. 많은 목회자들, 사역자들, 동역 자들이, “목사님, 오늘 고난과 믿음의 모험, 진짜 마음에 와 닿았습니다.”라고 했다. 이유가 무어냐면, 삶을 나누었다. 실체를 나누었다. 여러분과 제가 깨어있고, 항상 깨어있고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은 고난과 믿음의 모험을 하게 하신다. 우리는 새 판짜기의 마지막 우리의 삶을 리셋 정도가 아니라, 창조적인 리뉴얼을 해야 되는데, 고난에 대한 시각을 다시 한 번 정리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모험의 삶에 대해서 정리하면 우리가 지혜롭고 충성되고 종말론이 어둡고 음습하지 아니하고 밝고 설레고 행복한 종말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고난이 뭐냐면,
 
※고난은 우리를 주님께로 더 이끄는 지상에서 하늘로 이어지는 계단이 되게 되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모든 고난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하늘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고난 중에 깨어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계단이 되도록 만들어 주시는 것이다. 그래서 고난을 당하면, 내가 고난이라는 천상이라는 계단을 통하여 ‘하나님께 한 걸음 더 나아가고 있구나!’ 라고 생각하면 되는 것이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고난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영광을 통해서 계단을 타고 하늘에 올라가면 하나님의 영광에 눈이 열리는 것이다. 제가 무슨 말씀을 드렸는가? 하나님의 영광을 아무에게나 쉐어 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영광은 아무에게나 나누어주지 않는다. 대신 고난 가운데서도 깨어서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나누어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영광중에 놀라운 것 중에 하나는 뭐냐면, 고난당할 때, 우리가 깨어 기도할 때에 주님의 품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의 마음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의 은혜의 테두리 안에 들어가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희한한 은혜를 갚는 것이다.. 무슨 뜻인가? 요셉처럼 고난당하는 사람은 어디 있는가? 청소년에 팔려가서 애굽의 종이 되고, 감옥에 들어가고, 오해 당하고, 억울하게 모함을 당하고, 억울하게 별 짓이 다 있었다.
 
그런데 여러분, 나중에 창세기 50장, 창세기 마지막 부분에 너무 놀라운 일이 일어난다. 요셉이 뭐라고 이야기를 하느냐면, 형들이 나중에 아버지 죽고 난 다음에 형들이 더 걱정을 하는데 요셉의 놀라운 통찰격의 이야기를 한다. “당신들은 악을 행하고 당신들을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 악을 통한 그 헤아림을 통한 그 내 인생의 고난을 선으로 바꾸어 주셨느니라.” 이게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우리는 흔히 원수를 어려움을 당하고, 고난을 당하고, 억울함을 당하고, 고통을 당하고, 힘든 일을 당하고, 상처를 받으면, ‘아이고!, 하나님이 알아서 하시겠지’, 하나님이 심판을 맡긴다는 것은 그것은 좀 소극적인 것이다. 반드시 기억하라.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가지고 주님 앞에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의 삶의 일어나는 모든 종류의 고난과 상처와 어려움과 억울함과 원수 같은 하나님은 선으로 바꾸어 주신다. 이것은 너무나 놀라운 것이다. 그러니까 원수 갚을 필요가 없다. 우리도 사람이니까 원수가 있고, 우리를 괴롭히는 사람을 마음에 두고 한 마디고 말하고 싶고, 보지 않고 싶고, 사람이니까 그러니까 사람이니까 그런 감정들이 있기는 하지만 영적으로 보면, 모든 종류의 고난과 억울함과 문제와 짐들은 그 순간 여러분들이 깨어서 기도하면, 거기에 선으로 바뀌게 되는 것이다. 그게 놀라운 것으로 새롭게 전환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의 교회 모든 성도들, 오늘 이 말씀을 듣는 모든 성도들은 요셉의 고백을 우리 생애 동안 계속해야 한다. “당신들은 악을 행하고 당신들을 나를 해하려 하였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느니라.”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서 고난을 선으로 바꾸어 주신 주님을 찬양해야 되는 것이다. 우리가 종말론에서 우리가 해야 할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가 되도록 하는 말씀이다. 고난은 하나님께 더욱 가까이 나아가는 계단이 되고,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되고, 악을 고통을 어려움을 선으로 바꾸어 주심을 믿어야 한다. 그러니까 기도하면 우리는 간절하게 기도를 안 할 수가 없다. 7천 기도용사, 우리에게 선으로 바꾼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우리가 어려움을 당한 분들이 많다. 어제 여러분들에게 ‘7천 기도용사’ 임명장을 다 드렸다. 어떠했는가? 아예 원하는 사람들에게 요청을 하는 것이 아니라, 너무 좋다. 저는 우리 성도들이 종말의 이때에 7천 기도용사가 되라. 라고도 좋지만 7만 기도용사가 되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깨어 있게 하시고,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되게 하시고, 우리 생애 다하는 그날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든 삶의 환경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영광을 체험하게 하시고,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선을 체험할 수 있는 그런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늘 누가복음 21장을 했는데도, 22장을 보면, 제자들은 갯세마네 동산에서 잠을 잤다. 이런 말을 해도 이것은 내 것으로 완전히 체화 화 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때쯤 또 말씀하신다.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으라.” 코로나 기간 동안 혹시나 우리 가운데 기도에 녹이 쓸었다면 오늘 기도가 회복 되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또 하나 필요한 것은 믿음의 모험이라고 했다. 하나는 우리에게 고난당하게 하시고, 그 다음은 믿음의 모험을 하게 하신다. 모세가 그랬다. 40년 동안 무서운 고난당하고, 그 다음에 믿음의 모험을 하게 된 것이다. 홍해를 가르고, 반석위에 샘물을 터뜨리고, 그 광야에서 모험의 지팡이를 들고 아말렉과 전쟁에서 싸우게 되는 것이다. 바울도 수많은 고난을 당했고, 그러면서도 이방 선교에 대한 거룩한 믿음의 모험을 감당했다. 모든 믿는 자에게는 이런 믿음의 모험의 DNA가 있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 이게 그리스도인에게 갖는 독특한 속성이다. 제가 지금 믿음의모험이라고 할 때에 가슴이 뛰지 않는다면 내 속에 하나님이 창조성이 덜 들어오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창조의 하나님이시다. God of creative! 우리 하나님은 창조 때에도 모험을 하신 것이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구원의 모험을 하고 계신다.
 
※하나님은 구원의 모험은 하나님께서 계속적으로 개입하셔야 할 가슴 졸이는 모험이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우리가 구원의 길로 갈 수 있도록 동행하고 계신다.
-정말 하나님의 모험이다. 오늘 사랑하는 교우들이여,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일 년 전의 삶보다 지금의 삶이 더 건강하고 더 깊고 더 역동적이 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십 년 전이나 지금이나 내 삶의 신앙적인 질문은 믿음으로 살지 않는 것이다. 오늘 예수님의 새 판짜기의 비유를 마무리 하겠다. 이 종말론이 어두운 종말론이 아니라 밝고 환하고 설레이는 종말론이 되기 위하여 여러분들은 복음이 깊이 깨달아져서 마지막 심판 때에 그 때 누가 나를 구원할 것인가? 다시 한 번 이 구원의 문제를 정리하라. 여러분, 인생에서 어머니만큼 저를 사랑하고 지난번에 어머니 1주기를 지냈는데 제가 생각하면 어머니 만큰 나를 사랑하신 분이 있는가? 어머니가 그렇게 나를 사랑하셔도 나를 구원하실 수 없다. 이게 구원의 독특성이다. 아내와 남편이 엄청 사랑해도 나를 구원할 수 없다. 세상에 똑똑하고 잘나고 멋지고 대단히 지혜로운 사람도 절대로 여러분들을 구원해 줄 수 없다. 아버지가 여러분을 구원해 주지 못한다. 그럴 때, 우리는 심판의 종말의 날에 어떻게 서야 하는가?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요한복음 3장 14-15절이 답이다.
 
*요한복음 3:14-15,
14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그를 믿는 광야에 뱀을 본 자가 살아날, 다 죽어가고 있는데 저 놋 뱀을 보면 다 산다고 했는데 다들 팅팅 거리고 놋 뱀이 어떻게 구원하냐고 모세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나 믿은 사람들은 다 구원 받았다. 이 예수님의 구원진리가 어떤 사람은 단순해 보일지 모르지만, 그러나 성령께서 역사하여서 오늘 이 예배에 처음 오신 계신 분들이 계시다면 우리 엄마가 나를 구원 못하고, 사랑하는 아내가 남편을 구원 못하고, 주위의 귀한 사람들이 나를 구원 못하지만 오늘 피 묻은 십자가의 복음의 은혜를 깨달으면 그 십자가 앞에 우리가 다가가면 내 공로가 아니라, 주님의 피의 은혜를 믿고 다가가면 그분이 우리를 구원해 주실 것이다. 그 구원의 은혜를 믿는 사람은 종말론 식이 가득차 있을 것이고, 종말의 축복을 받은 사람들은 지혜롭고 충성된 청지기로서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고, 항상 기도하고 깨어있기 위하여 고난도 선으로 바꾸심을 믿고, 그 다음 믿음의 모험을 통해 우리가 7천, 7만 기도의 용사가 있게 되어서 우리 시대에 세계 선교를 마무리 하고 전 세계 복음을 전파할 수 있도록 우리가 쓰임 받을 때, 하나님은 참으로 아름답게 만들어 주실 것이다. 할렐루야, 찬송가 180장을 하겠다.
 
※P.C주의자,
PC주의(Political Correctness: 정치적 올바름 혹은 정치적 교정주의)가 자리한다. 정체성 정치란 성별, 젠더, 종교, 장애, 민족, 인종, 성적지향, 문화 등 공유되는 집단 정체성을 기반으로 배타적인 정치 동맹을 추구하는 정치 운동이자 사상을 말한다.
 
♣요약
우리가 지혜롭고 충성된 종이 되어서 어린 아이 하나라도 종말론 적으로 키우며, 우리 모두가 다 7천 기도용사가 되게 하셔서 믿음으로 모험하고 고난도 선으로 바꾸신 주님 앞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우리에게 종말이 두렵고 음습한 것이 아니라 밝고 설레이고 기뻐하며 감사하는 종말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 우리에게는 모든 고난들이 선으로 바뀌는 그 은혜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 돌리는 평생이 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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