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예배(주후 2020년 10월 14일)

제목: ''두려움에서 경외로''

말씀: 마태복음 14:22~33절

설교자: 문진호 목사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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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의 치유책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부르실 때에 첫 번째 조건-자기와 함께 있게 하신 것이다. 함께 하는 훈련이다. 그만큼 제지들은 예수님은 함께 하셨다. 갈릴리 바다는 폭풍이 세다. 파도는 배를 침몰시키기고도 남을 상황이었다. 예수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다.

주님은 떠나신 것이 아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본문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을 구하시려고 행했던 기적들에 대한 내용이다. 그 기적이란 그리스도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이다. 깊은 밤에 현장에 찾아오시는 것이었다. 조난당한 그곳에 오셨다. 우리를 폭풍이 덮어도 예수님은 우리를 지켜 주신다.

그리스도는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셨다(25절). 이 일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명을 알 수 있다.

 

▶ 그리스도께서 바다 위로 걸으심 14:22-33

 

이 본문에서 나타나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을 구하시려고 행했던 기적들에 대한 내용이다. 그 기적이란 그리스도께서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신 것이다.

 

(1) 그리스도는, 오천 명을 먹이신 후에 제자들과 무리들을 떠나게 하셨다. 예수께서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사 자기가 무리을 보내는 동안에 배를 타고 앞서 건너편으로 가게 하시고(22절).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서둘러 이 모임을 해산시키신 것에 대해 특별한 이유를 밝히고 있다. 그 이유는 떡을 불어나시게 한 기적에 무리들이 몹시 감동케되어 그리스도를 '억지로 잡아 임금삼으려'(요 6:15)했기 때문이다.

 

1) 그리스도는 무리들을 보내셨다. 그는 무리들에게 축복을 주신 뒤 주의와 조언과 위로의 말씀으로 무리를 보내신 것이다.

2) 그리스도는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타고 앞서 가게 하셨다. 제자들은 가기를 꺼려 했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시지 않았다면 그들은 가지 않았을 것이다.

 

(2) 이 일 후에 그리스도는 조용한 곳으로 가셨다. 기도하러 따로 산에 올라가시다(23절). 여기서 다음의 사실들을 살펴 보자.

1) 그는 홀로 계셨다. 그는 조용한 곳으로 따로 가서 혼자 계셨다. 그는 때때로 혼자 계시기를 원했다. 그는 우리에게 본보기를 보여 주시려는 것이었다. 혼자 있는 원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과 자기 자신 외에 아무도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을 때 홀로 지낼 수 없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아니라는 말이다.

2) 그는 기도할 때 홀로 계셨다. 그리스도께서 이렇듯 홀로 계시면서 하신 일은 기도였다. 그리스도는 이 일을 통하여 은밀한 기도의 본보기를 우리에게 보여 주셨다. 그는 자기가 가르친 규율에 따라서 은밀하게 기도하신 것이다(마 6:6). 제자들이 바다로 나갔을 때 그들의 선생은 기도하려 갔던 것이다.

3) 그는 오랫동안 홀로 계셨다. 그는 저물매 거기 혼자 계셨다. 그리고 성경에 나타난 대로라면 그는 아침이 가까워 오는 밤 사경이 될 때까지 거기 있었다. 밤이 다가왔고 또 폭풍이 몰아치는 밤이었지만 그리스도는 계속 간절하게 기도했다. 우리의 마음이 넓어지는 것을 느낄 때 오랫동안 은밀한 기도를 계속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3) 이때에 가련한 제자들이 처해 있던 상황(24절) : 배가 이미 육지에서 수리나 떠나서 바람이 거슬리므로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24절).

 

1) 제자들은 폭풍이 일어났을 때 바다 가운데 있었다. 우리가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갈 때는 맑은 날씨였으나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폭풍을 만나는 수도 있다. 그러므로 오랜 정적 뒤에는 반드시 어떤 폭풍이 몰려온다는 것을 예상해야 한다.

 

2) 제자들은 지금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장소로 가다가 이 폭풍을 만났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자기들의 임무를 수행하다가 폭풍들을 만나고 또 그들의 스승이 폭풍이 일어날 것을 미리 아셨음에도 그들이 바다로 보내지는 것은 전혀 새로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임무를 언짢게 생각하며 받아들이지 말아야 한다. 그리스도는 이 임무를 통하여 제자들을 위한 더 놀라운 은혜를 그들에게 직접 나타내시려는 것이다.

 

3) 제자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있지 않았기 때문에 매우 낙심해 있었다. 그들이 전에 폭풍을 만났을 때는 그리스도와 함께 있었다. 이처럼 그리스도는 제자들로 하여금 덜 어려운 고난을 당하게 하신 다음에 그보다 더 어려운 고난을 당하게 하신다. 이렇게 하여 그리스도는 제자들이 점점 더 믿음으로 살 수 있도록 훈련시키는 것이다.

 

4) 비록 바람이 거슬리고 제자들이 물결을 인하여 고난을 당하더라도 그들의 선생이 건너편으로 가게 하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바람받는 방향을 따라서 다시 돌아가지 않고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가려 했다. 그러므로 우리는 고난과 어려움이 비록 우리의 임무를 방해하더라도 그것들로 인하여 우리들이 길을 바꾸어선 안된다.

 

(4) 그리스도는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제자들에게 다가가셨다(25절). 이 일을 통해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명을 알 수 있다.

1) 그리스도의 선하심을 알 수 있다. 그는 제자들의 사정을 아시고 그들에 대한 관심을 가지셨던 분으로서 그들에게 다가가셨다. 하나님의 교회와 백성들이 당하는 곤경은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방문하시고 그들을 위하여 모습을 나타내시는 기회가 된다.

2) 그리스도의 권능을 알 수 있다. 곧 그는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 이 사실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피조물들을 지배하는 통치권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에 대한 중요한 실례가 된다. 우리는 이런 일이 어떻게 이루어졌는가에 대해 물을 필요가 없다. 그 일은 그리스도의 신적인 권능을 입증하기에 충분하다.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께서 자기의 백성을 구하기 위하여 자신이 기뻐하시는 방법을 택하실 수 있다는 것이다.

(5) 그리스도가 제자들에게 다가갔을 때 그리스도와 고난에 시달린 제자들 사이에 생긴 일에 당한 설명(26-31)

1) 그리스도와 모든 제자들 사이에 생긴 일. 우리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 수 있다.

 

① 그들은 어떻게 두려움이 일어났는가. 제자들이 그 바다 위로 걸어 오심을 보고 놀라 유령이다 하며 무서워하였다. 이 유령(spirit)이란 말보다는 망령(apparition)이란 말이 더 나은 표현이었을 것이다. 이 제자들은 "주님이다"라고 말했어야 했을 때 "유령이다"라고 말했던 것이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때때로 자기들을 구조하기 위하여 나타나 접근하는 것만 보고도 고통을 당하며 당황하는 경우가 있다. 종종 그들은 거의 상처받지 않을 때 가장 많은 두려움을 느낀다. 유령이나 그 환영이 나타나면 누구라도 그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영들의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더 잘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지키고자 더 주의를 기울일 것이며 우리는 그 두려움들을 더 잘 처리할 수 있을 것이다. 보잘 것 없는 것이라도 폭풍 속에서는 우리에게 두려움을 준다. 우리가 외적인 고통으로부터 당하는 대부분의 위험은 그 외적인 고통으로 말미암아 내적인 고통이 생길 때 일어난다.

 

② 이 두려움은 어떻게 잠잠해졌나. 주님은 구조의 손길을 잠시 멈추셨다. 그러나 그는 훨씬 더 위험한 그들의 두려움에서 서둘러 구해 주셨다. 그는 "안심하라 내니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심으로써 그들의 소동을 진정시키셨다. 그는 '내니'라고 하여 자신을 제자들에게 알리심으로써 그들의 오해를 바로 잡으셨다. 그는 이 제자들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으셨다. 단지 '내니'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족했다. 그것은 그들이 막달라 마리아처럼(요 20:16) 그의 양으로서 그의 음성(요 10:4)을 알아챘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자기들이 바라보고 있는 분이 누구라는 것을 아는 것으로도 충분히 편안한 마음을 가질 수 있었다. 올바른 지식 특히 그리스도에 대한 지식은 참된 위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그는 제자들에게 용기를 주심으로 그들의 두려움을 없애셨다. '내이 안심하라.' 만일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폭풍 속에 있으면서도 즐거워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그들의 잘못이긴 하지만 그리스도께서 그 제자들을 안심시키실 것이다. '두려워 말라' 그리스도는 이 말씀을 다음과 같은 뜻으로 하셨을 것이다. 첫째, "너희는 이제 나라는 것을 알았으니 나를 두려워 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그의 모습을 본 사람들에게 전혀 두려움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그를 올바로 깨닫게 될 때 그 두려움은 없어질 것이다. 둘째, "폭풍우가 몰아치고 심한 물결이 일어도 두려워 말라. 내가 너희와 가까이 있으니 그것들을 두려워 말라. 나는 너희에게 관심을 갖고 있으며, 너희가 죽게 되도록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라는 뜻이다. 그리스도를 가까이 모시고 있으며, 그리스도가 자기들의 소유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은 어떤 것에 대해서도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 비록 그것이 죽음이라도 우리는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

2) 그리스도와 베드로 사이에 생긴 일.

① 베드로의 용기와 그리스도의 후원. 첫째, 베드로는 감히 물 위로 걸어서 그리스도께 가려고 했을 정도로 매우 담대했다. 주여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 위로 오라 하소서(38절). 베드로가 보인 용기는 그의 주께서 베푸신 은혜로 말미암아 생긴 것이다. 비록 다른 제자들도 그리스도를 사랑했지만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사랑을 표현하려는 그 용기가 다른 제자들보다 앞서 나가게 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에게 오고 싶어 했던 것은 바로 그리스도에 대한 그의 애정을 나타내는 실례였다. 그는 그리스도를 보고 몹시 그와 함께 있고싶어 했다. 그는 기적을 일으키고 싶어 하는 사람처럼 '나를 명하사 당신에게 오라 하소서'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행동하는 사람처럼' 나를 명하사 당신에게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던 것이다. 참된 사랑은 그리스도에게 오기 위하여 불과 물도 헤치고 나아가게 할 것이다. 구주이신 그리스도에 의해 유익을 얻으려는 사람들은 이처럼 믿음으로 그에게 와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잠시나마 자기의 백성들을 떠나셨다가 돌아오시면 그는 자기 백성들에게 환영을 받으실 뿐 아니라 가장 애정이 넘치는 포옹을 받는다.

베드로가 그리스도의 허락 없이 가려고 하지 않았던 것은 그가 그리스도의 뜻에 유의하고 그 뜻을 합당하게 준수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실례였다. 베드로는 "만일 주시어든 제가 가겠나이다"라고 말한 것이 아니라 '만일 주시어든 나를 명하사 물위로 오라 하소서'라고 말했다. 가장 대담한 사람들은 위험한 모험에 대한 부르심을 기다려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경솔하고 무례하게 그런 모험들을 저질러선 안 된다.

그리스도가 베드로에게 명하셨을 때 베드로가 감히 물 위로 오려 했던 것은 그의 믿음과 결단을 보여 주는 실례였다. 어떤 어려움이나 위험이 그와 같은 믿음과 열성을 멈추게 할 수 있겠는가?

둘째, 그리스도는 매우 친절하셨으므로 베드로에게 그 일을 기꺼이 허락하셨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의 모험이 자기에 대한 열성적인 애정으로부터 나온다는 것을 알고 계셨으므로 그 애정을 친절하게 받아들이셨다. 그리스도는 자기 백성들이 사랑을 나타낼 때 그 사랑 속에 비록 잡다한 결점들이 혼합되어 있을지라도 그들의 사랑을 매우 기뻐하시며 또 될 수 있는 대로 그 결점들을 이용하신다.

 

그리스도는 베드로에게 '오라'고 명하셨다. 베드로가 표적을 구했을 때 그는 그 표적을 이미 소유한 것이다. 그 이유는 그가 그리스도를 신뢰하기로 결심하고 나서 그것을 행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베드로가 왔을 때 그를 도와 주셨다. 그래서 베드로는 물 위로 걸어갔다. 참된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나누는 교제는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그리스도와 함께 일어남으로써 나타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와의 교제는 참된 신앙인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물 위로 걸어가는 이 기사 속에 나타난다고 생각된다. 그리스도의 권능을 힘입어 우리는 세상일을 견뎌내고 세상일에 빠지거나 압도되지 않고 이 세상일을 이기는 것이다.

베드로는 자기의 유희나 과시를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께 가기 위해서 물 위로 걸어 갔다. 우리가 예수님의 권능으로 도움을 받지 않는 한 결코 그에게 나아올 수 없다. 그것은 우리가 물 위로 걸었던 베드로처럼 어떤 권능에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영원하신 팔이 네 아래 있는'(신 33:27) 동안엔 가라앉을 위험이 전혀 없는 것이다.

 

② 소심한 베드로와 그를 책망하시며 구원하시는 그리스도 :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명하여 '오라'하신 목적은 베드로가 물 위로 걸어옴으로써 그리스도의 권능을 알게 하시려는 것 뿐만 아니라 베드로가 물 속에 가라앉음으로써 그 자신의 연약함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었다. 베드로는 무서워할 정도로 물 위로 걷는 것이 몹시 두려웠다. 가장 강한 믿음과 가장 큰 용기 속에는 두려움이 깔려있는 것이다. "주여, 내가 믿나이다"라고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은 "주여,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라고 말할 수도 있어야 한다. 베드로는 처음에 매우 용감했으나 나중에는 낙심하고 말았다. 시험이 길어지면 믿음도 약해지는 것이다.

 

▶베드로가 두려워한 이유 : 베드로는 바람을 보고 무서워했다. 베드로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그의 말씀과 능력에 의지했을 동안 그는 아주 쉽게 물 위로 걸어갔었다. 그러나 그가 위험에 처하여 그 위험에 신경을 쓰자 그는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믿음의 눈으로 인식하고 약속받은 것보다 더 민감하게 어려움을 바라보면 우리는 심한 두려움에 빠지게 된다. 베드로는 몹시 사나운 바람을 보고 바람과 바다조차 그리스도에게 순종했었던 사실을 기억했어야 했다..

베드로의 두려움으로 말미암아 생긴 결과 : 그는 빠져 가기 시작했다. 믿음을 지키고 있었을 동안 그는 계속해서 물 위로 갈 수 있었다. 그러나 믿음이 흔들렸을 때 그는 물속에 빠져 가기 시작했다. 우리의 심령이 빠져 가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구원받을 때와 같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보호를 받는다. 베드로의 믿음이 약해졌을 때 그리스도께서 베드로가 물속에 완전히 빠져 '돌처럼 깊음에 내릴 때까지 내버려두지 않고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외칠 수 있는 시간을 준 것은 그리스도께서 베드로에게 큰 자비를 베푸셨기 때문이다. 참된 신앙인에 관한 그리스도의 관심은 이와 같은 것이다. 비록 그들의 믿음이 연약하더라도 그들은 단지 빠져 가기 시작할 뿐이지 물속에 아주 빠져버리는 것은 아니다! 베드로가 이런 곤경 속에서 의지했던 구제책은 침착하고 확실하며 인정을 받은 구제책이었다. 그것은 바로 베드로가 '주여 나를 구원하소서'라고 한 기도였다.

첫째, 베드로의 기도 방법은 열렬하고 끈질겼다. 그래서 그는 소리 질러 기도한 것이다. 믿음이 약해졌을 때 기도가 강해야 한다. 둘째, 베드로의 기도 내용은 아주 적절했다. 그는 '소리 질러 가로되 주여 구원하소서'라고 기도했던 것이다.

 

구원받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에게 소리 질러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이 빠져가는 것을 발견할 때까지 결코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필요 의식이 생기면 우리는 이런 행동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의 코로나가 걷히면 좋겠는데 이 폭풍처럼 믿음의 모험가였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해야 한다.

▷두려움에 빠진 베드로에게 그리스도께서 베푸신 큰 은혜 : 예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시며. 그는 베드로를 구원해 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즉시 손을 내밀어 저를 붙잡으셨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때는 우리가 낙심할 때라는 것을 주의하라. 그는 우리의 필사적인 노력이 요할 때 우리를 구원해 주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신자들이 낙심하지 않도록 아직도 그들에게 손을 내밀고 계신다.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 그는 자기의 백성들을 지키실 것이다. 나를 붙잡아 주신 그분을 믿고 배에 오른 베드로처럼 우리의 폭풍 속에서도 우리는 걸어 나갈 수 있다.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 것은 바로 예수님을 바라보며 붙들 때 주님은 더욱 붙잡아주시기에 우리는 경외심을 가지고 예배하는 것이다. . 베드로는 물 위로 걸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믿음을 가졌지만 자신을 극복할 정도는 아니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그에게 믿음이 적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우리의 용기를 꺾는 의심과 두려움은 모두 우리의 믿음이 약하기 때문에 생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의심하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적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더 많은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우리는 그만큼 덜 의심하게 될 것이다. 사실 그리스도는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버리시지는 않는다.

▷그리스도와 베드로가 '배에 함께 오르매 바람이 그쳤다.' 그리스도께서 영혼에게로 오실 때는 바람과 폭풍을 그치게 하여 평온해지도록 하신다.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그러면 요동하는 바다의 물결도 곧 가라앉을 것이다. 평온을 찾는 길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님이심을 아는 것이다. 이 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는 경배 받으셨다.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며 가로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하더라(33절). 그들은 이런 곤경과 구원을 통하여 두 가지 유익을 얻었다.

1) 그들은 그리스도를 확고하게 믿었다. 그들은 전에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이제 그 사실을 더 잘 알게 된 것이다. 믿음 없음으로 인해 생기는 갈등을 겪고 나서 믿음은 더욱 적극적으로 변모되며 체험한 것에 의해 더 강한 힘을 얻게 된다. 이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진실로 알게 되었다. 믿음은 그 믿음이 확신에 도달하여 그 사실을 분명하게 보고 진실로 말하게 될 때 성장하는 것이다.

 

2) 그들은 그리스도께 그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돌릴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그러므로 배에 있는 사람들이 예수께 절하게 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 우리는 그를 영화롭게 하여야 한다. 그들은 그리스도께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라고 말하며 경배드렸다. 따라서 우리의 신앙고백도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내용으로 표현되어야 한다. 믿음이 예배에 필요한 고유 원리라면 예배는 믿음이 낳은 순수한 결과인 것이다. 이제 주일예배가 회복될 줄 믿는다. 우리의 기도를 사용하시길, 믿음의 승리를 베드로처럼 담대하게 서 나가야 한다. 다시 나를 잡아주신 주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영광 앞에 온전히 나아가야 한다.

 

♣요약

상황이 주는 놀라움으로 우리가 두려움을 갖지 말고, 주님 앞에 확고히 서서 주님 앞에 더 나아가야 한다. 늘 주님이 함께 하시기에 이 폭풍 속에서도 우리를 담대하게 하시는 주님이시기 우리는 믿음을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야 한다. 주님 손을 붙들고 이 폭풍에서도 너끈히 두려움에서 경외를 승리하는 삶이 되어야 한다. 우리 인생의 배에서 삶의 모든 폭풍을 잠재워 주실 줄 믿는다. 교회와 하나님의 나라에도 수많은 폭풍 가운데에서도 하나님이 잠재워 주시길 기도하며 두려움을 갖기 말고 주님을 경외하면 모든 것이 풀리고 하늘 문이 열리게 되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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