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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내신 연꽃송이

     

    연꽃을 군자라고 하지만, 강남의 채련곡(采蓮曲)을 들을 때면

    반드시 오희월녀(吳姬越女),

    즉 강남의 아가씨를 떠올리게 된다.

    우리나라에서는 불교 신앙 때문에 연꽃을 너무나 신성시하여

    도리어 그 참된 아름다움을 감상하는데 장애가 된다.

    고려에서는 연뿌리나 연밥을 모두 감히 따지 않는다.

    나라사람들이 모두 그것이 부처님의 발이 올라앉으신 곳이라고들 말한다.

    고려 사람들이 연뿌리와 연밥송이도 감히 건드리지 못한 것은

    그것이 부처의 보좌(寶座)인줄로 알았기 때문이다.

    연꽃은 거의 천편일률로 종교적 색채를 띤 이야기뿐이어서

    따뜻한 인정미 있는 일화를 좀체 기대하기 어렵다.

    불교 국가는 어디든지 대부분 같지만, 특히 우리나라의 경우는 더 심한 편이다.

     

    그러나 연꽃에 대해 예외적으로 운치 있는 아름다운 이야기가 하나 전해진다.

    예전 고려 충선왕(忠宣王)께서 원나라 서울인 연경에 계실 때

    어쩌다 한 아름다운 여인과 가연(佳緣)을 맺어 애정이 자못 깊었었다.

    그러다가 충선왕이 하루 아침에 고국으로 돌아가게 되자,

    그녀에게 사랑의 정표로 연꽃 한 송이를 주었다.

    생이별의 괴로움에 울던 그녀는 충선왕에게 시를 보냈는데 그 시는 이렇다

     

    贈遺蓮花片 [증송연화편] 보내신 연꽃 송이
    初來灼灼紅 [초래작작홍] 붉은 빛 작작터니
    辭支今幾日 [사지금기일] 가지떠나 몇날인가
    憔悴與人同 [초췌인여동] 나 처럼 여위였네

    한시가 아름답고 교묘하여 이야기와 함께 길이 전할만 하다.

    서양풍속에는 사랑하는 사람에게 무궁화나 장미를 준다고 한다.

    충선왕이 그녀에게 연꽃을 준 것은 자못 운치가 있다.

    이것이 우리 역사상에 나타난 연꽃에 얽힌 로맨스로는 대표적인 것이다.

     
    연꽃은 순백과 담홍의 두 가지 색이 흔하다.

    불경에는 이따금 청련(靑蓮)이 나타난다.

    옛날에는 있던 것이 오늘날 없어지고 말았는지,

    인도 본토에서도 청련은 볼 수가 없다고 한다.

    북경에는 자주색에 가까운 홍련이 있다고 한다.

     

    위 시에서 여인에게 꺾어준 연꽃을 두고 시에서 '작작홍(灼灼紅)'

    즉 불타듯 붉다고 노래한 것만 보더라도 그것이 흰 색 꽃은 아니고,

    담홍 혹은 아주 붉은 홍련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홍색이란 원래 정성을 나타내는 뜻으로 쓰니 애인에게 주는 것이 가장 적절한 것이다.

    더욱이 진흙탕에 더럽히지 않는 정결한 꽃이니,

    멀리 떠나는 애인에게 주는 것이 또한 의미가 깊다.

     

    충선왕이 스스로 이런 것을 의식하고 주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이 꽃을 기념으로 받은 그 여인은 충선왕이 떠난 뒤

    항상 몸을 정결히 지키면서 그를 오매불망하였다.

    충선왕은 그녀를 잊을 수 없어 이제현을 돌려보내

    그녀가 어찌 지내고 있는지 알아보라 하였다.

    이제현이 가보니 그녀는 식음을 전폐하고 거의 다 죽어갈 지경이었다.

     

    이제현을 본 그녀는 왕에게 전해 달라며 위의 시를 써 주었다.

    그러나 이제현은 충선왕의 마음이 흔들릴까 염려하여 그 시를 전하지 않고,

    충선왕이 그녀의 안부를 묻자,

    술집에 나가 젊은이들과 노느라 찾을 수가 없었노라고 거짓으로 아뢰었다.

    왕은 침을 뱉고 그녀를 잊었다.

     

    1년 뒤 왕의 생일날 이제현이 사죄하며

    그녀의 시를 왕에게 올리며 사실대로 아뢰었다.

    충선왕은 이 시를 읽고 울면서,

    "만일 그때 이 시를 보았더라면 귀국하지 않고 그녀에게도 돌아갔을 것이다."라고 하며,

    이제현을 책망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도리어 그의 충성과 의리를 가상하다고 칭찬하였다 한다.

     

    우리 지난 역사를 되돌이켜보면
    개개인의 능력으로 볼 때
    뛰어난 인재들이 상당히 많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런 인재들이
    니편, 내편, 가재편, 게편
    편가르기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개개인의 능력을 펼쳐보지도 못한 채
    뒤안길로 사라져간 것을 보면
    이도 우리민족의 타고난 운명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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