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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약한 당신

많은 괴물들이 있었다. 신이 타락했거나, 저주를 받아 잘못 태어났거나,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나보니 괴물로 변한 자신을 발견하거나, 혹은 복수심에 불타 스스로 괴물이 되거나. 그러나 이 괴물은 여러모로 다르다. 그는 역사상 가장 서정적이고 섬약한 괴물이며, 탄생한 지 200년이 지나도록 이름 하나 얻지 못해, 무어라 불러야 할지 여전히 알 수 없는 비운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촉망받던 젊은 과학자 프랑켄슈타인은 스스로 조물주가 되기로 마음먹는다. 그전까지 그의 인생은 정도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점잖은 귀족 집안의 자제인 프랑켄슈타인에게는 일찌감치 정해놓은 아름다운 약혼녀도 있었다. 그의 내면에 실금이 가기 시작한 것은, 어머니의 죽음 이후다. 죽고 사는 것이 신의 영역이었던 때, 만연한 죽음만큼 자연스러운 것도 없던 시절에, 젊은 천재는 생명체의 탄생에 비상한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의 작가, 메리 셸리가 이 이야기를 막 탄생시킬 무렵, 그녀의 나이는 열아홉에 불과했다. 조숙했던 그녀는 17세에 아버지의 제자와 사랑의 도피를 감행한다. 재능 있는 시인이었던 퍼시는 유부남이었다. 둘의 불장난 앞에 놓인 것은 8년간의 긴 유랑과 가난의 그림자였다. 도피 이듬해, 메리 셸리는 아이를 낳았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다. 그녀가 전 유럽 대륙을 지나며 긴 여행을 하는 동안,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뼈대에 살이 붙어갔을 것이다. 그사이 셋째 딸을 낳았으나 이듬해 잃었다. 메리 셸리는 십대 후반에 사로잡힌 불같은 감정 이후, 거의 모든 것을 차례로 잃었다. 그녀의 연보는 주인공 주변의 사람들이 하나씩 죽어나가는 공포영화와 크게 다르지 않다. 남은 것은 그녀의 소설뿐이다.

물론 프랑켄슈타인의 호기심과 열정은 순수한 것이었다. 어떠한 의도도, 욕심도 없었다. 그는 키가 240센티미터에 이르는 거구의 괴 생명체를 성공리에 만들어낸다. 생명체가 고르게 숨 쉬는 것을 확인한 순간, 박사는 자신이 만든 것이 흉측한 괴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프랑켄슈타인의 독특한 성향은 여기서 발현된다. 박사는 ‘그것’을 책임지지 않는다. 혼신의 힘을 다해 만들어낸 결과물을 방기한 채로, 실험실을 박차고 나가버리는 것이다. 프랑켄슈타인은 비탄에 젖은 채로 두려움에 떨며, 괴물을 외면한다. 아버지와 약혼녀가 있는 고향의 품으로 돌아간다. 일말의 애정도, 미련도 없다. 그는 실상, 보수적인 귀족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깨어난 괴물이 처음 본 광경은 텅 빈 실험실의 천장이다. 괴물은 태생적으로 고독하다.

이 소설의 뼈대는 공포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으나, 첫 장을 펼치는 순간 눈앞에 보이는 것은 아름다운 북극의 풍광이다. 기괴한 이야기의 진행과는 별개로, 작가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을 지속적으로 보여준다. 그녀가 기행을 통해 보았던 유럽의 울창한 숲과 여과 없이 떨어지는 태양, 달빛을 받으며 바스러지는 호수, 단단히 여문 열매들, 혹은 전혀 본 적 없는 상상 속의 풍경들이 이야기의 결을 따라다닌다. 죄책감에 몸서리를 치는 프랑켄슈타인도, 두려움과 고독에 몸을 웅크린 괴물도, 고요한 호숫가 앞에서 사색의 시간을 갖는다. 죽음의 그림자가 열린 창문으로 날벌레처럼 속속 들이치는 상황에서도, 풍경은 무심한 아름다움을 잃지 않는다. 서정적이고 고상한 말법이다.

순진무구한 괴물이 복수의 화신으로 거듭나는 결정적인 계기가 사랑의 부재라면 어떠할까. 태어나면서부터 아버지에게 버림받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노력을 기울였으나, 그마저 거부당한 운명이라면. 죽을 때까지 누구도 자신을 사랑하지 않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자신을 향해 경멸과 분노의 눈초리로 무기를 들이미는 조물주를 맞닥뜨린다면. 누구도 자신에게 이름을 주지 않아, 영원토록 무명(無名)의 괴물로 남아야 할 운명이라면, 그에게는 복수 이외에 무엇이 남아 있을까.

메리 셸리는 꼭 자신의 운명과 닮은 두 개체를 탄생시켰다. 훗날 사람들은 종종 프랑켄슈타인이라는 박사의 이름을 괴물의 것과 혼동한다. 괴물은 진실한 과학의 힘을 빌려, 머리에 못이 박힌 녹색 괴물로 형상화되었다. 그사이 프랑켄슈타인이란 이름은 박사의 것이었다가, 누군가는 괴물의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오해를 푸는 것은 애초에 무의미한 일인지도 모른다.

김유진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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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버림받은  괴물의 분노

♣‘프랑켄슈타인’줄거리

19세기 천재 여성 작가 메리 셸리가 열아홉의 나이에 놀라운 상상력으로 탄생시킨 과학소설의 고전.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윤리적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의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의 영화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빅토르 프랑켄슈타인은 생명의 원리에 대한 호기심으로 실험을 시작해 사람의 시체로 새로운 존재를 탄생시킨다.

그러나 성공의 흥분이 가라앉기도 전에 자신이 만든 피조물의 괴기스러운 형상에 경악해 도피해버리고, 괴물은 무방비 상태로 세상에 나타난다. 흉물스러운 모습 때문에 인간들의 혐오와 폭력에 맞닥뜨리며 근근이 생명을 이어가던 괴물은 어느 허름한 집의 축사에 숨어 살며 단란한 가족의 모습을 관찰하고 언어를 익혀 사유 능력까지 습득한다. 지독한 외로움에서 벗어나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삶을 열망했던 괴물은 가족에게 다가가지만 돌아오는 것은 역시 엄청난 혐오감과 인간 사회에서의 추방뿐이었다. 괴물은 창조주 프랑켄슈타인에게 자신과 똑같은 이성(異性)의 존재를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지만, 프랑켄슈타인은 끝내 청을 들어주지 않는다. 극에 달한 괴물의 분노는 엄청난 비극을 불러일으킨다.

 

원제: Frankenstein

저자: Mary Shelley(1797~1851)

발표: 1818년

분야: 영국 문학 한글번역본

제목: 프랑켄슈타인

옮긴이: 김선형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094(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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