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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전한시...
 
 

秋夜寄丘員外(추야기구원외)-韋應物(위응물)

 

편지

懷君屬秋夜(회군속추야)
때는 마침 가을밤, 그대가 그리워서
散步詠凉天(산보영량천)
차가운 바람 속을 시 읊으며 걸었지요
空山松子落(공산송자락)
아무도 없는 산속에 솔방울 떨어지는데
幽人應未眠(유인응미면)
임자는 응당 아직 잠 못들었겠지요

위응물이 절친한 친구인 丘丹(구단)에게 보낸 시다.

가을밤에 문득 친구가 그리워 시를 써 편지로 전했다.

나도 그대가 그리워 함께 읊던 시를 떠올리며 산책하는데

그대 역시 조용한 산속에서 잠 못 이루고 있을 것이라 말하며 담백한 우정을 나눈다.

구단은 벼슬을 버리고 臨平山(임평산)에 들어가 도를 닦고 있다.

이 시를 본 구단은 곧바로 답장을 보낸다.

露滴梧葉鳴 秋風桂花發 中有學仙人 吹簫弄山月

(노적오엽명 추풍계화발 중유학선인 취소농산월)

‘오동잎에 이슬 맺히는 소리/ 가을바람에 계수나무 꽃 피고/

그 가운데 신선 공부하는 이 있어/ 피리 불며 산과 달을 희롱하네’

1300년 전 도사들이 주고받은 편지다.

*員外(원외) ; 벼슬 이름 *屬(속) ; 때마침 *幽人(유인) ; 隱者(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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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한시...
  

 

- 野 莊 [야 장] 시골별장 -
 
                 閉門終不接庸流 [폐문종부접용류] 용렬한 놈들 꼴보기 싫어 문을 닫아 걸고
                 只許靑山入我樓 [지허청산입아루] 다만 푸른 산만 내 누에 들어옴을 허락할 뿐 
                 樂便吟俄傭便睡 [락편음아용편수] 즐거우면 시를 읊고 곤하면 잠을 자니
                 更無餘事到心頭 [갱무여사도심두] 이 밖에 마음에 둘 일 뭐가 있겠는가...  

 

 
고려 공민왕 대의 학자 김구용이 지은 야장(野莊 : 시골별장)이란 시다.
그이처럼 문을 걸어 닫고 용렬한 인간들은 멀리 하며
청산만을 불러들여 신선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차마 그리 할 수 없어
오늘도 한쪽 귀는 닫고 한쪽 귀만 열어 정치뉴스를 기웃거리며
어설픈 귀동냥을 계속 하는 정치문외한의 민망한 심정을
똑똑하고 많이 배운 정치인들은 알기나 하겠는가..
 
그대는 무엇으로 삶의 집을 지으시는가
소리 속에 집을 짓는 이는 음악가요,
색채 속에 집을 짓는 이는 화가요,
글자 속에 집을 짓는 이는 시인이요,
다른 이의 마음에 집을 짓는 이는 성인과 님일 것이다.
 
야장(野莊)이란 제목의 이 시는
실로 글자로 마음의 집을 지은 시인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가 글자로 지은 이 '야장'이란 집은,
종일 문이 닫혀있었어 용렬한 무리들은 전혀 접근할 수가 없다.
다만 푸른 산만 들어옴을 허락하여,
푸른 산빛만 누 안으로 도도록히 들어 앉아 있다.
그 푸른 영혼의 객을 맞이하고서 즐거울 땐
문득 시를 읊고 그마저 실증이 나면 문득 잠을 청한다.
 
시와 잠 사이로 오가는 야장의 삶!
누의 시간은 그렇게 시 읊조림에 머물고 낮잠 속에도 머물지만,
그 시 읊조림과 낮잠 사이를 지나서
인생의 여유로움과 마음의 초연함 속으로 다가간다.
이 마음에 다시 다른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미칠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누에 들어왔던 청산은 시인의 누뿐만
그의 시에도 들어가 한 자리에 살포시 앉았을 것이고
또 그의 꿈속에도 들어가 푸른빛을 도른도른 드리웠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어찌 이처럼 늘 편안하고 한가롭기만 할까 만은,
때때로 뭇 시류(時流)와 번뇌의 그늘을 벗어버리고서
맑고 고요한 자연 속에 묻혀서 아무런 시름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정(詩情)으로 가슴을 풀어내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푸른 산빛이 들어앉은 누와 시와 꿈속…
마음에 이 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 시인!
시인은 정녕 글자 속에 마음의 집을 짓는 이일 것이다.

용류(庸流)를 떠나,
푸른 시와 푸른 잠과 푸른 산이 사는 글자 속 마음의 집에,
그대 영혼 지칠 양이면 늘 주저 없이 찾아가
마음을 내려놓고 푹 쉬어보시기를..
 
시 속에 문은 닫혀있으나,
시의 마음은 언제나 그대 향해 활짝 열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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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落 梅 [낙 매] 떨어지는 매화 - 金雲楚 (芙蓉) [김운초 (부용)]

 

                玉貌氷肌冉冉衰 [옥모빙기염염쇠] 옥 같은 하얀 꽃이 하나 둘 시들더니
                東風結子綠生枝 [동풍결자녹생지] 봄바람에 열매 맺어 가지마다 푸릇푸릇
                綿綿不斷春消息 [면면불단춘소식] 해마다 쉬지 않고 봄소식 이르나니
                猶勝人間恨別離 [유승인간한별리] 외려 이별을 슬퍼하는 인간보다 낫구나.

 

눈보라가 몰아치는 추운 겨울에는

죽은 듯이 웅크리고 있는 매화나무의 억센 등걸이

마지막 생명마저 포기하고 꺼져버릴 뜻한 절망의 겨울을 버티고 나면

제일 먼저 생명은 매화나무로부터 온다.

 

하마터면 이대로 끝나 버릴 것 같았는데

봄의 약속은 생명을 안고 이 자연의 세상으로 돌아온다.

옥 같이 찬 매화꽃이 시들고 가지마다

푸릇푸릇 잎이 돋아나고 열매를 맺고 결실한다.

이 모든 것이 생명의 약속 봄의 약속이다.

이 약속은 끊임없이 면면히 이어진다.

자연의 약속은 해마다 돌아오건만 인간에게는 이것이 없다.

 

그러나 이 약속이 자연에만 존재하고

인간 세상에는 존재할 수 없을까?

한 번간 사람은 영영 돌아오지 못하는 강이 되어 버린다.

 

떠날 때는 꼭 다시 온다고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온다고 약속하고 갔건만

매화꽃이 필 때엔 우리 다시 만나요, 하고

떠난 사람은 감감무소식이라 기다리는 사람은 애가 끊는다.

 

차라리 이별의 한과 사랑의 그리움에

마음 아파하는 나보다 봄이 되면 꽃이 피고 열매 맺는

저 매화나무가 더 행복하지 않겠는가?

 

 

 

한번씩 들어가는 모 카페 즉석 다행시 방의 시제

'내 작은 소망 하나'에 맞춰 끌쩍거린 詩

 

 

                                             - 怨 春 [원 춘] 봄의 원망 -

 

 

              內院翁梅解雪枝 [원옹매해설지] 뜨락 안 늙은 매화 가지에 눈 녹으니
              鵲賓群集告春時 [빈군집고춘시] 까치들 몰려 들어 봄이 옴을 알리네.
              銀河掛月思君面 [하괘월사군면] 은하에 걸린 달은 그리운 님의 모습
              昭曉孤衾玉淚垂 [효고금옥루수] 새벽 외론 잠자리에 눈물만 흐릅니다.

                        

             望約笑來如旦露 [약소래여단로] 꽃피면 오마던 약속 아침 이슬같은지
               罅間紗帳聞鳴鳺 [간사장문명규] 비단 휘장 사이로 두견이 소리만 들려요.
               那何對鏡端裝勞 [하대경단장노] 어찌하나 거울 앞에 애써 꾸민 단장을
               寞寞東風洗送提 [막막동풍세송시] 쓸쓸히 봄바람에 씻어 날려 보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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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閨 怨 [규 원] 여인의 원망 -  林悌[임제]

 

                                         十五越溪女 [십오월계녀] 열 다섯 어여쁜 월계 아가씨 

                                  羞人無語別 [수인무어별] 부끄러 말 못하고 헤어지고는 
                                  歸來掩重門 [귀래엄중문] 돌아와 중문도 닫아 걸고서 
                                  泣向梨花月 [읍향이화월] 배꽃 달 바라보며 울었답니다.

 

 

'無語別[무어별] 말없는 이별' 이란 시제(詩題)로 불리기도 하는 詩.

 
가냘픈 소녀의 안타까운 첫사랑을 노래했다.

월계는 중국 남쪽 월나라의 시내다.

월계는 달리 완사계(浣紗溪) 또는 야계(耶溪)로 부르기도 한다.

월나라의 유명한 미녀 서시(西施)가 빨래하던 곳이다.

 

그녀는 이곳에서 빨래를 하다가 그 빼어난 미모가 눈에 띄어, 오왕 부차에게 보내진다.

그녀의 미모에 흠뻑 빠진 부차는 나라 일도 돌보지 않고 오로지 그녀만 바라보다,

결국 월왕 구천의 군대에 의해 나라를 빼앗기고 만다.

그러니까 월계의 아가씨란 서시처럼 예쁜 아가씨란 뜻이다.

더구나 그녀의 나이는 방년 열 다섯. 아직 이팔청춘도 안된 앳된 나이다.

 
이 시에서 가장 정채로운 부분은 제 2구이다.

'무어별(無語別)'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헤어진 것이 아니라,

하고픈 말은 너무도 많은데 부끄러워 한 마디도 못한채 헤어진 이별이다.

임이 부끄러워서기 보다는 내가 임과 만나는 것을 혹 누가 보기라도 했을까봐 부끄럽다.

 

'수인(羞人)'은 정감이고, '무어별'은 형상이다. 음미할수록 맛이 있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아직도 부끄러움이 남아,

바깥 문을 닫고 그래도 부족해 중문까지 꽁꽁 닫아 걸었다.

그리고는 그토록 기다려 만난 임 앞에서 정작 한 마디도 못한 자신이 너무 속 상해서

배꽃처럼 흰 달빛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울었다는 것이다.

 
조선시대에도 남녀간에 과연 이런 사랑이 가능했을까?

사람 사는 세상인데 다를 게 뭐 있겠는가?

하지만 이 시는 남녀간의 실제 상황을 노래한 것은 아니다.

월계녀란 말에서 이미 시인은 이 노래가 중국 남방에서 즐겨 불려졌던

남녀의 사랑을 노래한 악부풍의 시임을 명백히 밝혔다.

 

그러니까 시 속의 소녀는 분방하면서도 수줍음을 간직한

중국 남방의 어느 소녀를 생각하며 떠올린 상황이다.
임제가 활동하던 시기의 시인들은 중국 남조 민가풍의 악부시를 많이 지었다.

남녀의 사랑은 이 시기에 아주 즐겨 부르던 주제였다.

같은 풍의 한시 한 수를 더 읽어 보자. 

 

- 采蓮曲 [채련곡] 연밥따는 노래 - 許蘭雪軒[허난설현]
 

                             秋淨長湖碧玉流 [추정장호벽옥류] 맑은 가을 긴 호수에 벽옥같은 물 흐르고 
                             荷花深處係蘭舟 [하화심처계란주] 무성한 연꽃 속에 목란배를 매었다네

                             逢郞隔水投蓮子 [봉랑격수투련자] 임 만나 물 건너로 연밥을 던지다가

                             遙被人知半日羞 [요피인지반일수] 남의 눈에 띄었을까 반나절 무안했네 


가을날 호수물은 쪽빛 하늘을 닮아 벽옥처럼 푸르다.

그 강물 위로 쪽닥배를 저어간다. 연꽃이 가장 무성한 곳 아래 배를 묶는다.

연밥을 따기 위해서가 아니다. 임과 물가에서 만나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임과의 밀회 장면을 다른 사람들이 보아서는 곤란하겠기에,

무성한 연잎 속에 숨어 임이 오시기만을 기다린다.

마침내 저쪽에서 임은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나 있는 물가 쪽으로 걸어온다.

물가에 멈춰선다. 나를 찾지 못하는 그가 안타깝다.

 

그래서 연밥 하나를 따서 불쑥 임의 발치에 던졌다.

'저 여기 있어요'라고 말도 못하고 말이다.

그리고는 혹시 그 모습을 누가 보았을까봐 반 나절 동안이나

두 볼에서 붉은 빛이 가시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가 던진 것이 '연자(蓮子)' 즉 연밥인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

'연자(蓮子)'는 '연자(憐子)', 즉 '그대를 사랑한다' 는 말과 발음이 같다.

 

따라서 그녀가 임의 발치에 던진 것은 단순히

'저 여기 있어요' 가 아니라 사실은 ' 당신을 사랑해요' 의 의미를 띤다.

 

이런 것을 한시에서는 쌍관의(雙關義)라고 한다.

그녀가 반나절 동안이나 양볼의 홍조가 가시지 않았던 것도

따지고 보면 이런 사정 때문이었다.
수줍지만 대담한 남방 소녀들의 이러한 사랑 노래는

당시 조선의 독자들에게는 아주 낭만적인 이국정서를 불러 일으켰을 것이다.

 

사실 사랑하는 남녀가 부끄럽게 만나 사랑을 속삭이는 것은

얼마나 두근거리고 설레이는 일인가?

이것을 아름답게 여기기는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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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한시...
  

- 白 髮 [백 발] 흰머리 - 鄭蘊[정온]

 

人皆羞白髮 [인개수백발] 남들은 다 허연 머리 싫어하지만
我獨愛無私 [아독애무사] 나는 홀로 사심 없어 좋아한다네
衰境理宜有 [쇠경리의유] 늘그막은 의당 오게 마련인 것을
少年能幾時 [소년능기시] 젊은 시절 호시절이 얼마나 되랴

舊愆多弱壯 [구건다약장] 젊었을 땐 허물지은 일이 많았고
新得在衰遲 [신득재쇠지] 늘그막엔 새로 얻은 것이 있다네
皎潔秋霜色 [교결추상색] 깨끗하긴 가을 서리 빛을 닮았고
淸高老鶴姿 [청고노학자] 고상하긴 늙은 학의 자태 닮았네

臨杯疑散練 [림배의산련] 술잔 들자 흰 비단이 쳐진듯하고
入鏡樣垂絲 [입경양수사] 거울 보니 하얀 실이 드리워지네
自是相隨物 [자시상수물] 백발 본디 날 따르는 물건이거늘
何須鑷去爲 [하수섭거위] 굳이 뽑아버릴 필요 뭐가 있으랴

 

 

병자호란 때 김상헌과 함께 척화(斥和)하다가

청나라와의 화의(和議)가 이루어지자,

칼로 자신의 배를 찌르며 자결을 시도하였다가 실패하고서,

경남 거창으로 낙향하여 은거해 지내었던

동계(桐溪) 정온(鄭蘊)이 지은 '백발(白髮)' 이란 제목의 시이다.

 

 

봄이면 돋아나고, 여름이면 생장하고,

가을이면 결실을 맺고, 겨울이면 사라져 가는 것,

이것이 천지자연의 이치이다.

 

여기에서 벗어나는 것은 천지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는 것이다.

자연스럽지 못한 것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태어나고, 성장하고, 노쇠하고, 사라져간다.

이것이 우리네 삶의 과정이다.

그러므로 삶의 과정에서 벗어나려고 지나치게 아등바등할 필요가 없다.

그저 그 과정을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인생의 노년기라고 해서 아름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침에 뜨는 태양에게 찬란한 아름다움이 있듯이,

저녁에 지는 해에도 장엄한 아름다움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노년기에도 젊은 시절에 못지않은 아름다움이 있다.

검은 머리의 동안(童顔)만 아름다운 것이 아니다.

허연 머리의 주름진 얼굴도 그에 못지않게 멋진 것이다.

 

거기에는 타고난 것이 아닌, 지난날의 노력으로 이룬 것이

고스란히 담겨 있어서 더 아름다울 수 있는 것이다.

또 화려하게 치장을 하고 나이스 샷을 외친다고 멋진 것이 아니다.

그윽한 눈길로 인생을 관조(觀照)하는 것도 아름다운 것이다.

 

다만 젊은 시절의 아름다움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누구나 누릴 수가 있지만,

늘그막의 아름다움은 차근차근 준비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다.

우리 모두는 아름다운 늘그막을 위하여

신체적 건강과 경제적 여유로움뿐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풍요로움도 준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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