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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한시...
  

 

- 野 莊 [야 장] 시골별장 -
 
                 閉門終不接庸流 [폐문종부접용류] 용렬한 놈들 꼴보기 싫어 문을 닫아 걸고
                 只許靑山入我樓 [지허청산입아루] 다만 푸른 산만 내 누에 들어옴을 허락할 뿐 
                 樂便吟俄傭便睡 [락편음아용편수] 즐거우면 시를 읊고 곤하면 잠을 자니
                 更無餘事到心頭 [갱무여사도심두] 이 밖에 마음에 둘 일 뭐가 있겠는가...  

 

 
고려 공민왕 대의 학자 김구용이 지은 야장(野莊 : 시골별장)이란 시다.
그이처럼 문을 걸어 닫고 용렬한 인간들은 멀리 하며
청산만을 불러들여 신선처럼 살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차마 그리 할 수 없어
오늘도 한쪽 귀는 닫고 한쪽 귀만 열어 정치뉴스를 기웃거리며
어설픈 귀동냥을 계속 하는 정치문외한의 민망한 심정을
똑똑하고 많이 배운 정치인들은 알기나 하겠는가..
 
그대는 무엇으로 삶의 집을 지으시는가
소리 속에 집을 짓는 이는 음악가요,
색채 속에 집을 짓는 이는 화가요,
글자 속에 집을 짓는 이는 시인이요,
다른 이의 마음에 집을 짓는 이는 성인과 님일 것이다.
 
야장(野莊)이란 제목의 이 시는
실로 글자로 마음의 집을 지은 시인의 삶이 그대로 배어있다.
 
그가 글자로 지은 이 '야장'이란 집은,
종일 문이 닫혀있었어 용렬한 무리들은 전혀 접근할 수가 없다.
다만 푸른 산만 들어옴을 허락하여,
푸른 산빛만 누 안으로 도도록히 들어 앉아 있다.
그 푸른 영혼의 객을 맞이하고서 즐거울 땐
문득 시를 읊고 그마저 실증이 나면 문득 잠을 청한다.
 
시와 잠 사이로 오가는 야장의 삶!
누의 시간은 그렇게 시 읊조림에 머물고 낮잠 속에도 머물지만,
그 시 읊조림과 낮잠 사이를 지나서
인생의 여유로움과 마음의 초연함 속으로 다가간다.
이 마음에 다시 다른 일이라고는 아무 것도 미칠 것이 없기 때문이리라.
 
아마도 누에 들어왔던 청산은 시인의 누뿐만
그의 시에도 들어가 한 자리에 살포시 앉았을 것이고
또 그의 꿈속에도 들어가 푸른빛을 도른도른 드리웠을 것이다.
 
우리네 인생이 어찌 이처럼 늘 편안하고 한가롭기만 할까 만은,
때때로 뭇 시류(時流)와 번뇌의 그늘을 벗어버리고서
맑고 고요한 자연 속에 묻혀서 아무런 시름도 없이,
있는 그대로의 시정(詩情)으로 가슴을 풀어내고
마음 편히 쉴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푸른 산빛이 들어앉은 누와 시와 꿈속…
마음에 이 외에는 아무 일도 없는 시인!
시인은 정녕 글자 속에 마음의 집을 짓는 이일 것이다.

용류(庸流)를 떠나,
푸른 시와 푸른 잠과 푸른 산이 사는 글자 속 마음의 집에,
그대 영혼 지칠 양이면 늘 주저 없이 찾아가
마음을 내려놓고 푹 쉬어보시기를..
 
시 속에 문은 닫혀있으나,
시의 마음은 언제나 그대 향해 활짝 열렸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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