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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주후 2023년 12월 17일) 제목: "성탄에 깨닫는 태초 진행형 생명" 말씀: 요한일서 1:1~4 찬양인도: 쉐키나(이 다니엘 부목나님), 영광찬양대 대표기도: 안승훈 부목사님(1부) 사회: 천동원 부목사님(1부) 설교자: 오정현 담임목사님 ㅡㅡㅡㅡㅡ *요한일서 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언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바 된 이시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누림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 ▶정말 이 영하의 강추위를 뚫고 여러분 나오셨는데 아무도 그냥 돌아가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거룩한 기대감을 가지고 이 안아주신 본당에 오신 여러분 성탄의 확실한 기쁨을 분명히 체험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지금 성탄의 절정기 이제 한 주일 남겨놓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한 몇 십 년 만에 후진국 중진국 선진국을 다 경험을 했어요. 문제는 뭐냐 하면 이렇게 하다 보니까 세대 간의 개성이랄까, 어떤 공통점이 쉽지가 않아요. 우리 지금 아이들은 이렇게 유리창 지나가면서 일을 하잖아요. 이렇게 스마트폰 이래 하면 다 나오니까 근데 어른들은 그거 쉽지가 않은데요. 그러나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 성탄의 진리와 기쁨이 온 세대가 공유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온 세대가 그래서 이번 주 다음 주 또 다음 주로 성찬식도 하고 또 25일 날 성탄 축하 예배드릴 터인데, 이 세 번에 걸쳐서 한국교회가 어른 세대나, 우리 자녀 세대나 공유할 수 있는 성탄의 확실한 진리와 기쁨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제목을 “성탄에 깨닫는 태초 진행형 생명”이다. 그래서 한 번 들으면 무슨 말인가 잘 이해가 안 될 텐데 이런 뜻입니다. 오늘 1장 1절에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이렇게 나와 있죠.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 이렇게 하려고 하다가, 그것만으로 끝나지 말고 이것이 오늘 내게 그대로 접목되고 확인되고 내 것으로 체험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런 의미에서 태초 진행형 생명이 되게 하여 주십시오. 그렇게 이제 제목을 붙였는데 이런 뜻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기록된 말씀으로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이 기록된 말씀이 지금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고 지금 우리를 변화시키는 말씀이 돼야 하는 것이에요. 이걸 일으켜서 기록된 말씀은 뤼튼 워드(Written Word) 기록되어 있죠? 그것은 예를 들어서 오늘 이 우리 육신의 차원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 지금 나를 변화시키는 말씀은 세이 워드(Say word), 소위 ‘레마’의 말씀이다. 이런 말씀을 많이 하는데, 베드로에게 주님께서 ‘야 그물을 깊은 데 가서 내리라.’ 그러는데 베드로 입장에서는 지금 오전 10시쯤 돼갖고 깊은 데 그물 내려오면 고기 없어요. 자기 생각에는 그렇지만 자기의 생각과 경험과 이성을 뛰어넘는 ‘주님의 말씀이니까 듣겠습니다.’ 하고 그 말씀이 베드로에게 역사하는 말씀이 되었을 때, 베드로에게 처음 드는 말씀이 되었을 때, 그걸 레마의 말씀이다. 이런 말씀하는데 오늘 이 말씀이 기록된 말씀으로 끝나지 말고,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체험된 말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이에요. 그래서 오늘 제가 이 요한 사도의 말씀을 여러분들과 같이 나누는데, 제가 지난번에 요한의 말씀은 굉장히 신비한 ‘영적 언어’라고 그랬어요. 이건 우리의 영의 눈이 열려야 된다고 말씀을 드린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사도바울이 하는 역할이 있고, 베드로가 하는 역할이 있고, 요한이 하는 역할이 있는데, 1. 베드로가 하는 역할은 여러분 아시는 대로 베드로는 스타트 끊는 사람이고 천국 열쇠를 가졌고 예루살렘 공교회를 세워가지고 시작하는 은사를 받았어요. 시작의 은사를 받았어요. 다시 베드로가 뭘 은사를 받았다고요? 시작은 우리들 가운데 그런 사람이 있잖아요. 2. 바울은 어떤 사람이냐? 바울은 고린도서에 보면 지혜로운 건축자 이런 말이 나오는데 바울은 세우고 집을 짓는 은사를 받았어요. 그래서 저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이 바울이에요. 기독교를 비방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어하는 사람들이 바울이에요. 바울이 기독교의 모든 교리와 토대를 세운 것이에요. 3. 근데 요한이 한 일이 뭐냐? 요한이 예수님께서 요한을 불렀을 때, 이 이 신비로운 요한일서 이 말씀을 기록한 요한이 한 일이 뭐냐, 요한은 예수님이 요한을 불렀을 때 어떤 때 예수 요한을 불렀을까요? 마가복음에 보면, 요한을 보시니 그들도 배에 석 그물을 어떻게 하는데요? 깁는데, 부르셨다. 여기에 중요한 뜻이 담겨 있는데 그물을 깁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요한을 불렀어요. -무슨 바다에 나가 있을 때도 아니고 다른 거 할 때가 아니라 그물을 깁는다는 말이 영어로 맨딩(mending)한다. 그물을 고친다. 그물을 찢어진 곳을 다시 이렇게 메꾼다. 이런 뜻이 포함돼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요한의 사역은 베드로와 바울에 비해서 요한은 찢어진 자, 상처 난 자, 정말 인생의 모든 것들이 다 포기된 자들을 다시 세우고 치유하고 힐링하는 데 은사를 받은 거예요. 그러니 오늘 우리가 이 성탄의 계절에 이 말씀을 우리가 들을 때 여러분들이 이 말씀을 통해 치유가 돼야 되는 것이에요. 여기 여러분들이 고침을 받아야 되는 것이 상처 난 곳이 이렇게 꿰매져야 되는 것이에요. 그 이유가 뭐냐 하면 오늘 요한일서를 이 썼던 때가 어떤 때인가 하면 AD 90년 이후에요. 사도들 가운데 요한이 제일 장수를 했어요. 1세대 2세대 다 거의 다 사라지고 요한만 남은 거예요. 그러니까 무슨 뜻인가 하면 1세대 2세대 시간이 60년, 70년, 80년, 90년이 지나고 나니까, 무슨 일이 벌어졌는가? 초대교회의 역동성, 소위 복음의 능력 치유, 대단한 변화, 기름 부음 이런 것들이 점점 사라지고 건조해지기 시작하고 매너리즘에 빠지기 시작한 거예요. 이걸 요한이 보다 견딜 수가 없네!!!. 이러면 안 되는데 복음은 능력이 있고 복음은 치유가 있고 복음은 힐링이 되는 것인데 왜 사람들이 이렇게 건조하고 힘들게 했을까? 요한이 너무 안타까워 가지고 더더구나, 초대교회가 요한 일서를 썼을 때 에베소에서 목회를 할 때였고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하시는 말씀이 많았는데 요한이 뭐라고 그러냐면, 에베소 교회가 잘했지만 너희는 첫 사랑을 버렸느니라. 정신 차려라 그걸 다시 치유하고 깨물고 새롭게 하기를 원했던 것이에요. 그리고 이 요한일서를 쓴 배경 중에 또 하나는 당시에 이단들이 발호하기 시작했어요. 이단들이 막, 막 그냥 영지주의자들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들 여러분 만약에 예수님의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면 예수님의 성육신과 이 땅에 성탄에 오시는 걸 부인하고, 예수님의 육체로 오시는 걸 부인하면 무슨 일이 벌어집니까? 예수님의 구원 사역이 완성될 수가 없어요. 피 흘림이 있어야 죄 사함을 받는데 육신으로 오신 것을 부인하게 되면 예수님의 구원 사역과 부활의 능력이 다 사라지게 되는 거예요. 거기에다가 AD 90년경은 초기 기독교인들이 제 매일 박해를 받고, 도미티에노스 황제라는 이 악도가는 황제가 얼마나 박해를 하는지, 교회의 내면적으로는 역동성과 기름부음이 사라졌고, 이단들이 발로하기 시작했고, 강력한 핍박이 왔을 때 이걸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마치 사도 요한이 오늘 이 자리에 나타나가지고 여러분과 저를 격려하는 마음으로 그런 입장에서 이 말씀을 주시는 것이에요. 그러니까 지금 이 순간 오늘 이 순간 사도 요한이 나타나가지고 저와 여러분들을 만지시면서 우리를 치유하시면서 우리에게 찢어진 그물을 다시 한 번 고치는 그런 마음으로 주신 말씀인 줄 믿으시기 바라는 것이에요. 아멘!!! 그리고 오늘 이 말씀을 할 때에 1장에는요. 나라는 말이 나오잖아요. 전부 다 우리가, 우리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해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주목하고, 손으로 만짐 바라. 어떤 단선적인 것이 아니라 입체적인 거, 스트로가 됐다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런 말씀을 할 때 우리는 가족 관계를 가지고 그러니까 사랑의 교회 오늘 오신 모든 성도들은 예수님 안에서 형제 , 자매인 줄로 믿습니다. 한국교회 전체가 형제자매가 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의 입장에서 좀 더 깊이 들어 우리는 영적 가족이 된 것입니다. 영원한 가족이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도 요한은 가족의 입장에서 어떻게 하면 가족들이 잘 될 것인가? 어떻게 하면 가족들이 좀 제대로 이 생명의 역사, 복음의 역사, 능력의 역사, 이돈들 이단들의 발로에 흔들리지 아니하고 핍박받는 가운데서도 강력한 하나님의 은혜를 유지할 수가 있을 것인가 하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도 요한이 뭐라고 그러냐 2장 1절에 보니까 자녀들아 같이 읽죠. *요한일서 2:1,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 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에게 쓰면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니라. -오늘 요한일서 1장부터 이걸 쓴 이유가 뭐냐, 가족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아 요한이 90이 넘었으니까, 간절한 마음을 가지고 자녀들아 너희들이 좀 행복하게 살려면, 너희들이 좀 제대로 살려면 너희들이 죄를 범하지 말아야 돼. 아니 죄를 처리해야 돼. 오늘 이 예배에 오신 여러분, 여러분 행복 하고 싶습니까? 여러분들이 정말 안정되길 원하십니까? 여러분들이 주님과 나만이 알 수 있는 샬롬의 평강을 유지하길 원하십니까? “주여! 우리 성도들의 모든 죄 문제를 해결하게 하여 주십시오.” 우리는 예수 믿을 때 구원받았지만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행복하게 살아야 될 거 아니에요. 그래서 뒤에 요한 1장 9절에, *요한일서 1:9,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주님 앞에 자백하면 주님은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리라. -그러신 거예요. 가족들 가운데서, 제발 미끄러지지 말고 넘어지지 말라. 오늘 강추위인데 연세 드신 분들이 제일 어려운 것이 넘어지면 안 되잖아요. 제가 넘어지지 않는 비결을 말씀드릴게요. 발뒤꿈치에 끝에 힘을 주고 그러면 안 넘어집니다. 젊은 분들은 이 중요성을 몰라요. 발뒤꿈치 끝에다가 힘 줘가지고 그러면 안 넘어지는 거예요. 60이 넘은 분들은 조심하기를 바래요. 이거는 팁이에요. 제가 여러분들에게 드리는 특전사에서 산악 눈 오는 산악지형을 탈 때 발뒤꿈치 끝에다 힘을 주고 탁 하면 물론 저도 배운 것이지만 여러분, 그런 마음으로 요한은 내가 이 요한일서를 쓴 이유가 뭐냐, 너희가 죄를 범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영적 가족의 생명의 역사를 누려야만 될 것이다. 그거예요. 또 요한일서 5장 뒤에 보니까, *요한일서 5:13, 13 내가 하나님의 아들의 이름을 믿는 너희에게 이것을 쓰는 것은 너희로 하여금 너희에게 영생이 있음을 알게 하려 함이라. -요한일서를 쓰는 중요한 이유가 뭐냐 하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게 함이라 영원한 생명의 수준을 제대로 깨닫기를 원하는 것이라. 그래서 이 영원한 생명에 대해서 설명하기 위하여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말씀하는 거예요. 영원한 생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저와 여러분들이 가진 하나님 우리에게 주신 영원한 생명을 이해하기 위하여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성경에 보면 태초가 크게 두 가지죠. 하나는 뭐냐 하면 물리적인 생명 시간적인 태초가 있어요. 창세기 1장 1절에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거는 시간적인 시작 소위 물리적인 시작, 그러니까 영어로 말해 인 더 비기닝(In the Beginning)이에요. 그런데 요한이 얘기한 태초는 태초부터 있는 말씀 이거는 인 더 비기닝이 아니라, 프롬 더 비기닝(From the Beginning), 이거는 영혼의 시작, 영혼의 시작, 영원한 관점에서 하나님이 주시는 그 시간에 대한 얘기예요. 그러니까 시간에 대한 개념이 많이 다른 거죠. 하나는 물리적인 시작이고 하나는 또 뭐죠? 영원한 시작인 것이 영원한 시점에서, 그런데 오늘 요한이 말하는 것은 물리적인 시작인 태초 1장 1절도 창세기 1장 1절도 중요하고, 또 요한복음 1장 1절에 있는 말씀 다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지금 여러분들이 경험해야 된다는 것이 지금 내 것이 돼야 한다는 것이 그걸 일컬어 “태초 진행형 생명”이다. 제가 이런 용어를 써보았어요. 다시요. 여러분 이 말씀이 기록된 것으로 또 물리적인 시간 혹은 영원한 시점에서의 시작 정도가 아니라 이것이 저와 여러분에게 지금 실제적으로 체험돼야 한다는 것이에요. 이걸 일컬어서 “태초 진행형 생명이다.” 제가 써놨어요.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거예요. ▷태초 진행형 생명은 신앙 세계에서 체험하는 실존주의적인 시작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작을 말한다. -아무리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고 아무리 태초부터 있는 말씀이 있어도, 지금 제가 저와 여러분들이 이 생명의 역사를 지금 내가 체험해야 ‘태초 진행형 생명이 돼야 오늘 영원한 생명의 수준을 저와 여러분들이 이해할 수 있는 것’이에요. 이런 거 있잖아요.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어떻게 해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 그 생명은 두 종류의 생명이 있어요. 하나는 뭐예요? 육신의 생명, 소위 ‘비오스’라는 거예요. 물리적인 생명이에요. 그런데 영적인 생명이 있어요. ‘조에’라는 생명이 있어요. 영원한 생명이 있어요.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얼마나 더 풍성히 누리느냐, 이걸 위하여 하나님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뭐냐 하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기록된 말씀으로 끝나지 말고, 이것이 너희에게 지금 체험되는 말씀이 되게 하라 이거예요. 지금 내게 레마의 말씀이 되게 하라 이 말이에요. 그러니까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태초 진행형 말씀이 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태초부터 신앙 세계 실존주의적 다시 한 번 시작. ▷태초 진행형 생명은 신앙세계에서 체험하는 실존주의적인 시작, 지금 내가 경험하고 있는 시작을 말하는 것이다. -아멘. 내가 경험하는 태초 진행형이 되기를 바랍니다. 자녀들아 요한이 볼 때 너희 메마르고 건조하고 생명력 없고 힘들고 여러분들 다 메너리즘에 빠져 있다면, 지금 이 모든 것들이 있다면 지금 시대 신선하게 지금 새롭게 지금 생명력 넘치는 것을 체험하기를 바란다 이거예요. 이게 태초 진행인 것이에요. 지금 성탄절 기간이 되었습니다. 아무리 성탄을 얘기해도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성탄의 은혜가 지금 내게 임해야 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 토비새 있잖아요? ‘토비새, 토비새 나오면 은혜가 있다.’ 그리고 토비세 안 나오면 무슨 은혜가 있겠어요? 어제 우리 아침에는 토비새 때, ‘행복’이라는 찬송을 불렀어요. ◎“1. 화려하지 않아도 정결하게 사는 삶 가진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사는 삶, 내게 주신 작은 힘 나눠주며 사는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2. 눈물 날 일 많지만 기도할 수 있다는 것, 억울한 일 많으나 주를 위해 참는 것, 비록 짧은작은 삶 주의 뜻대로 사는 것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고 이것이 행복 행복이라오. -행복을 알지만 이런 것들이 여러분들에게 체화될 때 그것이 지금 나에게 주신 말씀이 되는 거예요. 그리고 3절을 저희가 새로 창작을 했어요. 3. 믿음의 눈 가지고 소망하는 우리 꿈, 203,350의 비전 품고 걷는 삶, 주신 사명 붙들고 달려가는 우리 삶, 이것이 나의 삶의 행복이라오 그리고 그다음에 뭐냐 하면 토비새에 오면 행복이라오. 세상에 줄 수 없는 하나님의 선물, 토비새에 오면 행복이라오. 7천기도 용사와 기도하는 것 이것이 행복이라오. 몇 명만 아멘 하죠?. 예를 들어 설명하는 것인데, 아무리 이것이 있어도 지금 내게 체화가 되는 지금 진행형이 되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제목을 ‘성탄에 깨닫는 태초 지능형 생명’이다. 이것이 얼마나 강력한지, 이것이 공동체적 체험으로, 가족의 체험으로 얼마나 강력한지 요한은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보면 우리가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주먹하고 만진 바라. 그리고 이것이 얼마나 그대로 가만히 있죠. 그리고 이제 그것이 아니라 이게 너무 강요하기 때문에 1절부터 4절까지 주동사가 있어요. 핵심 동사 그것이 ‘전함은’, ‘전함은’ 이라는 게 있어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는 뭐예요? 전함은, 너무 강력하니까 전하는 이게 핵심 동사에 그러니까 오늘 이것을 우리가 뭘 전하고,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이 내용을 좀 더 살피도록 하겠습니다. 예를 들어서 침체에 빠진 교회, 연약해진 성도 메마른 신앙 상황을 제대로 극복할 수 있도록 이 태초부터 생명의 말씀과 이걸 생명의 역사를 내 것으로 어떻게 현재 진행형으로 받아들일 것인가? 그리고 바울은 세우고, 베드로는 시작했다면, 요한은 우리를 고쳐주는데, 요한의 고침과 치유가 우리에게 있을 때, 태초부터는 이 생명이 우리에게 접목되었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오늘 오늘 핵심이에요. ▷현재 태초 지행형 생명에는 어떤 은혜가 있는가? -그것이 나에게는 무슨 의미를 말하는 것인가? 우리에게 주신 생명의 능력을 삶의 현장에서 경험하는 자에게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조금 깊이 들어가면 태초 진행형 생명의 역사가 있을 때 어떤 은혜가 있을까요? 하나 딱 말씀드린 이것이에요. 이것이 제대로 되면 태초 진행형 생명을 깨달으면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 것이 되는 것이에요. 너무나 놀라운 것이 시작되는 하나님의 모든 것 하나님의 위대하심, 하나님의 지혜, 하나님의 권능, 하나님의 인격, 하나님의 영광이 이걸 제대로 깨닫는 자에게 진행형으로 깨닫는 자에게 내게 전가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내게 부어지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이것도 여러분들 아멘, 이 정도가 아니라 오늘 이것이 여러분들의 실체적으로 실존적으로 경험되기를 바라는 겁니다. 이걸 위해 주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이에요. 다 같이 에베소서 1장 3절 시작! *에베소서 1:3,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할렐루야 뭐가 전가되는가? 우리가 이런 태초 진행형 생명에 대한 눈을 뜰 때에 하늘에 속한 모든 신뢰감 복을 저와 여러분에게 맞춤형으로 나눠주신다. 이 말이에요. 이것이 되면 위로부터 부어주시는 것인데, 다시요. 하늘에 속한 신랑 것이 우리 모두에게 부어지는 줄로 믿습니다. 찬송과 영광과 존귀와 부요와 지혜와 능력과 힘이 여러분들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부어주신다는 것이에요. 부모가 자식에게 주고 싶은데 자식은 이거에 대한 어떤 간절함이라든지 또 필요가 별로 없는 것 같아서 그냥, 그냥 뚱하고 있으면요. 그건 부모 입장에서 굉장히 안타까운 것이죠. 좋은 걸 손녀딸에게 주고 싶은데, 손녀딸은 별로 관심이 없어! 얼빵한 거야. 그러면 부모 입장에서는 야 이게 참 안타깝다. 여러분 그런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아이들이 모르니까 부모님이 많은 걸 준비하고 계시는데 아이들은 잘 몰라요. 오늘 성탄의 여기 태초 진행형 생명의 역사가 저와 여러분들에게 접목될 때 하나님의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에게 부어주는 줄로 믿습니다. 이거예요. 저는 요한일서 오늘 이 본문의 말씀을 청년 시절에 깨닫고 제가 뭡니까? 아무것도 아니죠. 그런데 이 말씀을 깨닫고 난 다음에 영의 눈이 열린 거예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 주목하고 손으로 눈으로 보고 막 입체적으로 깨닫고 난 다음에 무슨 일이 벌어지냐 “오주여 내 주여 내 아버지여 이 몸을 사랑하사 생명을 주셨네. 이 몸을 사랑하사 하늘의 부유를 주셨네. 이 몸을 사랑하사 하늘의 영광과 능력을 부어주셨네!” 그걸 깨닫기 시작하고 난 다음에 삶의 차원이 완전히 달라지기 시작한 거예요. 우리가 그러고 난 다음 우리가 갖고 있는 수많은 한계들을 극복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주셨는데, 제가 여러분 제가 자세히 다 말씀을 드릴 수 없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 여러분 오늘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현재 진행형으로 실존적으로 여러분의 것을 깨달아서 눈이 열리기 시작하고, 영안이 열리기 시작하고 요한이 고쳐주시길 원하는 그 고침을 받고 하나님의 가족으로 이것이 접목이 되기 시작하면 하늘의 모든 부요와 능력이 여러분의 것으로 체험될 줄로 확신하는 것이에요.’ 이걸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도 바울이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골로새서 2장에 뭐라고 말씀하는가? 다 같이 우리 크게 읽겠습니다. *골로새서 2:2-3, 2 이는 그들로 마음에 위안을 받고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확실한 이해의 모든 풍성함과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깨닫게 하려 함이니. 3 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할렐루야! 이걸 여러분들이 오늘 삶으로 또 지금 내게 하시는 말씀으로 깨닫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이런 뜻이에요. 그게 가만히 있고요. 하나님의 모든 것이 누구에게 있는 거예요? 예수 그리스도에 담겨 있는 것이에요.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누구에게 담겨 있느냐 예수 그리스도의 모든 것이 오늘 이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이 진행형이 우리에게 될 때에 그 예수님의 모든 것이 지극히 적고도 적은 부족한 나에게 그것이 다 부어진다. 이것이에요. 하늘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부요가 여러분들에게 이 성탄의 계절에 부어지는 줄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성탄에 우리가 구유에 누신 아기를 찬양한다. 이 정도가 아니에요. 하늘에 있는 모든 것이 여러분들과 저에게 부어지는 것이에요. 놀라운 차원이에요. 놀라운 선물이고 능력인 것이에요. 하늘에 있는 모든 보화가 감추어져 있느니라. 여러분 이런 뜻입니다. 삶의 난제가 있습니다. 어려움이 있습니다, 문제가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2천년 지난 교회의 역사 동안 하나님의 모든 것이 예수님께 있고, 예수님의 모든 것이 지극히 작은 자인 나에게 부어준다고 생각할 때에, 그 어떤 것도 해결하지 못할 것이 없는 것이에요. 기가 막힌 일인 것이에요. 인생의 수많은 난제. 만약에 우리 정치하는 사람들도 이걸 깨닫고 진실로 집중했다면 하나님이 많은 것들을 처리해 주실 것이에요. 그러니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최고가 되는 것이에요.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오늘 이 성탄의 계절에 기록된 말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을 우리의 것으로 ing로, 현재 진행형으로, 우리에게 허락되기를 바라는 것이에요. 그러면 삶의 모든 난자에도 어떠한 난제도 해답이 있다. 어떠한 난제도 해답이 있다. 오늘 지혜와 지식의 모든 부하가 감추어지는 것을 체험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죽하면 이걸 요한이 깨닫고 요한복음 15장 15절에 뭐라고 하는가? *요한복음 15:15, 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리니 종은 주인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 내가 내 아버지께 들은 것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였음이라. -아멘 우리는 뭐라고 얘기한다고요? 친구, 친구라, 그러고 그리고 주님께서 하늘의 모든 부유와 지혜를 우리에게 다 주셨다고 그랬을 , 그게 대체 무슨 뜻인가?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보니까 놀라운 말씀이 있어요. *고린도후서 8:9, 9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이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할렐루야,. 주님은 우리를 위해 가난하게 되셨어요. 그의 가난함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유하게 하려 하심이라. 태초부터 있는 이 생명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를 제대로 깨닫고, 성탄에 확인하고 접목되는 자에게는 하늘의 모든 신령한 것들이 우리에게 그대로 부어지고, 트랜스퍼 되는데 그중에 하나가 주님의 가난하심을 통하여 우리가 부유하게 되는 것이에요. 주님은 얼마나 가난하셨습니까?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에 나는 새도 집이 있는데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 그래서 최초의 홈리스(homeless)가 누구냐, 예수님이에요. 집이 없어서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어요. 우리를 부유하게 하시려고 가난하게 되신 것이에요. 이것이 하늘의 지혜와 능력과 은혜가 우리에게 접목되기 시작하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걸 깨달으면요. 오늘 아까 주동사가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이렇게 했을 때 세례도 주고 가서 가르치고 또 또 또 여러 가지 일들을 하지만 핵심은 뭐냐 제자 삼는 것이 주동사인 것처럼, 마태복음 28장에,, 오늘 요한일서 1장 1절 4절까지 핵심 주동사가 뭐냐 하면, ‘전함은’, 아까 말한 전함은 우리에게 하늘의 부여와 능력과 은혜로 다 채워 주셔가지고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라고 한 게 아니에요. 우리 배만 두드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 은혜와 능력을 전하라는 것이에요. 이 성탄의 계절에 이런 축복이 저와 여러분에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가장 대표적으로 이제 그렇게 됐을 때, 이런 은혜가 우리에게 주어질 때, 하늘의 모든 부여와 능력이 우리에게 이렇게 접목되는 걸 깨닫고 나면 무슨 일이 벌어지는가? 그 결과 자연스럽게 4절의 기쁨이에요. *요한일서 1:4,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 -이 기쁨은 예수님의 가장 좋은 것이 내 것으로 주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냥 내면에 좀 기쁘다. 내면이 참 좋다. 평안하다. 그 정도의 기쁨이 아니고, 이 기쁨은 기가 막힌 기쁨이고, 아주 익사이팅(exciting)하고, 신명나는 인생을 만들어주는 기쁨이 총체적 기쁨의 대상자가 되는 것이 내면으로 조용히 기뻐하고, 가만히 있는 정도가 아니라, 젊은이들 같은 경우는 이 사실을 제대로 깨달으면 기뻐서 펄쩍펄쩍 뛰는 것이에요. 오죽하면 담임 목사가 특새 할 때, 이 60이 넘은 인생에 펄쩍펄쩍 뛰면서 찬송하겠어요. 생명의 예수님께 우리가 접속하고, 현재 진행형 태초부터 생명의 역사를 우리가 깨닫고 주님께 의탁하면 주님이 주신 영광과 부여와 지혜를 누리게 될 때 그것이 세상이 알지 못한 기쁨 우리게 되는 것이에요. 그리고 이 기쁨은 세상을 변화시키는 기쁨이에요. 다시, 내면적으로 1차원적인 기쁨 정도가 아니라 우리의 삶 전체에 떨림과 울림을 주는 기쁨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누구도 빼앗지 못하는 것이에요. 예수님께서 삭개오를 만났습니다. 삭개오에 내려오라. 그래가지고 삭개오를 만나주셨습니다. 삭개오에게 지금 태초부터 생명이신 예수님이 접붙임이 되었습니다. 진행형이 되었습니다. 그 순간 삭개오가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압니까? 19장에 이렇게 나와 있어요. 제일 먼저 한 것이 삭개오의 제일 첫 번째 행 형태가 뭐냐 뭐였어요? 즐거워하며 기뻐했어요. *누가복음 19:6,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태초부터 생명과 접목이 되니까, 즐거움이 넘치는 것입니다. 오늘 이 자리가 이런 즐거움의 시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고, 이번 성탄 계절에 이런 주님의 즐거움이 여러분들에게 넘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리에게 있는 매너리즘, 모든 건조함, 모든 영적 건조증이 이렇게 해결이 될 겁니다. 에베소서 5장 14절에 다 같이 보겠습니다. *에베소서 5:14, 14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추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오늘 이 가운데 영적으로 잠자고 힘들고 있는 어려운 분들 계시면 벌떡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벌떡 일어나라 이런 것들이 이 기쁨은 이런 건조증과 이런 것들을 이런 매너리즘을 해결하는 것이에요. 습관적 신앙, 관성적 신앙 매너리즘에 빠진 신앙들을 볼 때, 이렇게 우리가 ‘2033-50 비전’을 얘기한다 할 때 이거 뭐 말도 안 되고 우리 내 몸도 하나 못 가는데 그게 아니에요. 벌떡 일어날 수 있도록 하나님이 힘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사야 52장 2절에는 특별히 우리에게 경고하는 말씀이 다 같이 읽겠습니다. *이사아 52:2, 2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 -매너리즘에 벗어나는 길은 주저앉은 자리에서 자세를 고쳐서 무거운 몸을 다시 일으키는 것이에요. 스스로, 스스로 내 목줄을 감고 있는 것을 풀어버리는 것이 이것이에요. 태초 진행형 생명에 접속되고 위탁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주신 축복이라고 믿으시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다시요. 이 생명은 적당한 생명이 아니에요. 육신의 생명 정도가 아니라, 영적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펄펄 나는 생명이 우리에게 확인될 수가 있는 겁니다. 아까 행복이라는 찬송 제가 이렇게 했는데요. 이 찬송 집에 가서 부르시기 바랍니다. 집에 가서 부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여러분들 와 닿아야 되는 거예요. 오늘 정리하겠습니다. 베드로는 시작하는 사람이고, 바울은 세우는 사람이라면 요한 사도는 고치는 사람입니다. -뭘 고칩니까? 생명력 없이 메너리즘에 빠져서 관성적으로 저 사람은 잃어버리고, 헤매는 그 성도들에게 우리라는 가족적인 개념을 심어주시고, 이것이 입체적으로 체험될 때에, 하나님의 모든 부요하심이 우리의 것으로 접목되는 줄로 믿습니다. 뭐가 될지, 그것이 어떻게 신비한 것이 될지 2천년 교회 역사에 하늘의 부요와 지혜와 능력은요 말로 다 할 수가 없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같이 부족한 인생이라도 하나님의 신비를 깨닫고 하늘의 부요와 사명을 주님 앞에서 기도하고, 사명을 주님 앞에서 고백하고, 그렇게 이루어지도록 마음을 모으고 한 생애를 달려가는 줄로 확신합니다. 그래서 이 성탄의 계절에 이런 축복 여러분들에게 한 번 한 번 주어지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약 우리가 영원한 태초부터 지금까지 이 신선하고도 새롭고도 압도적인 생명의 능력으로 우리를 붙잡아주신 주님을 경외하고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귀로 듣고, 자세히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진 반 된, 생생하고 강력한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능력’을 모두가 다 체험하고 그것을 전하여야 한다. 그리하여 우리가 피상적이고 나약하고 무력한 우리의 침체와 잠재적인 불신앙을 박차고 일어나게 될 줄 확신한다. 우리가 ‘태초 진행형 생명’의 교제를 우리에게 부어주심을 받아, 하나님의 모든 위대하심, 지혜, 권능, 인격, 영광이 우리의 것이 되어, 하나님 폭포수와 같은 생명의 능력, 참된 교제의 축복, 기쁨의 실체를 경험하는 하나님의 신실한 종들로 헌신하고, 진정한 지상명령인 ‘전함’을 실천해야 한다. -본서를 기록한 목적이 그리스도에 대해 바르게 증거 하여 성도들로 그분 안에서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나누게 하는 데 있음을 밝히는 내용이다.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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